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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 시절 '우리가 만나던 그곳, 종로서적'을 기억하시나요?

작성자인연|작성시간23.09.06|조회수96 목록 댓글 0

서점에서 시민들이 베스트셀러 코너를 살펴보고 있다. ⓒ윤혜숙

지난 1988년 어느 봄날이었다. 지방 소도시에서 성장했던 기자가 대학 새내기로 서울에 입성한 지 한 달쯤 지난 무렵이다. 책을 사기 위해 종로1가 전철역에 내려 종로서적을 방문했다. 지방에 살면서 본 적도 없는 대형서점이었다. 1층부터 층별로 주제에 맞는 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서울은 대도시답게 서점도 규모 면에서 압도적으로 컸다.

그 당시 종로와 신촌은 젊음의 거리였다. 역세권에 있었던 종로서적은 자연스레 친구들과의 만남의 장소가 되었다.

과거의 종로서적이 있었던 종로2가를 찾아가 봤다. ⓒ윤혜숙

사람과 사랑이 만났던 곳, 종로서적

친구들과 종로에서 만날 적마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종로서적 3층에 모였다. 3층에는 학생관과 사회관이 있었다. '학생관'에서는 어린이 도서, 문고, 카세트테이프를, '사회관'에서는 정치·행정, 법률, 매스컴을 주제로 한 도서를 판매했다.

그때만 해도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던 학생이었고, 지금은 온 국민의 필수품이 되다시피 한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다. 기자와 친구들은 주말에 종로서적에서 만나서 종로3가까지 대로변을 따라 걸었다.

대학생이었던 우리가 종로에서 만났던 이유가 있었다. 종로 대로변에 가까운 허리우드, 피카디리, 단성사 등의 영화관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영화관으로 가는 길에 즐비한 통유리로 된 매장을 둘러보다가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하면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친구를 따라 우르르 매장 안으로 들어가서 물건을 만져보다가 마음에 들면 구입하기도 했다.

과거 종로서적이 있었던 종로를 사람들은 '젊음의 거리'라고 불렀다. ⓒ윤혜숙

또 하나 기자 일행을 사로잡는 게 있었다. 길거리 곳곳에 세워 둔 손수레에서 틀어주는 최신 인기곡을 듣는 즐거움도 컸다. 최신 인기곡을 연속해서 틀어주기 때문에 당시에는 ‘길보드 차트’라고 불렀다. 미국의 '빌보드 차트'에서 따온 말이었다.

'빌보드 차트'가 미국의 음악 잡지 빌보드에서 매주 싱글과 앨범 성적을 합산해서 발표하는 순위를 가리키는 것처럼, ‘길보드 차트’라고 부르는 손수레 인기곡은 당시 국내 가요의 인기를 판가름하는 척도와도 같았다. 눈으론 매장에 진열된 물건을 보고, 귀로는 인기곡을 들으면서 느릿하게 걷다 보면 어느덧 목적지인 영화관에 도착해 있었다.

2002년 월드컵의 열기가 뜨거웠을 때 종로서적이 문을 닫았다. ⓒ윤혜숙

늘 젊은이들로 활기가 넘쳤던 종로가 이제는 젊음의 거리라는 별칭이 무색하게 바뀌었다. 지금의 중장년층이 청년이었던 그 시절 종로의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기자 또래의 중장년층은 종로의 변화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 이면엔 종로의 명물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상실감도 있으리라.

한일 월드컵의 열기로 서울을 비롯한 전국이 한창 뜨거웠던 2002년, 종로의 대표적인 명소였던 종로서적이 문을 닫았다. 월드컵 열기에 가려 종로서적이 문을 닫는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기자도 그랬다. 한참 뒤에 종로1가역에 내려 종로서적을 찾았을 때 그곳의 문이 닫혔음을 알고 한동안 상실감에 빠졌었다.

<우리가 만나던 그곳, 종로서적> 전시회가 열리는 공평도시유적전시관을 방문했다. ⓒ윤혜숙

<우리가 만나던 그곳, 종로서적> 전시

기자의 청년 시절, 추억의 장소로 남아있던 그때 그 시절의 종로서적이 부활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공평도시유적전시관에서 <우리가 만나던 그곳, 종로서적>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종로서적을 추억하는 중장년층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기자에게도 추억의 장소로 남아있는 종로서적이다. 그러니 그곳을 방문하고 싶었다. 30도를 웃도는 폭염도 오래 전 추억을 만류하지는 못했다.

종로서적은 층별로 주제관이 구분되어 있어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책을 골랐다. ⓒ윤혜숙

전시는 종로1가 사거리에 있는 종로타워 뒤편의 공평도시유적전시관에서 열리고 있다. 입장하여 왼쪽 계단으로 내려가면 과거의 종로서적과 마주할 수 있다.

종로서적은 층별로 매장이 구분되어 있었다. 매장 안내판을 보자마자 당시의 매장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1층 출입구 계단으로 올라가면 2층부터 6층까지 총 9개의 주제관이 있었다. 2층에 기독관, 3층에 학생관, 사회관, 4층에 문구·레코드, 인문관, 5층에 사무자동화기기·컴퓨터, 자연관, 6층에 외국서적관, 문화·예술관이 있었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원하는 책을 찾는 재미도 있었다. 그땐 매장 곳곳에 비치된 검색용 모니터가 없었다. 그래서 원하는 책을 찾으려면 직원에게 물어 보거나 아니면 한참 책을 찾아 돌아다니곤 했다. 책과의 숨바꼭질 끝에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내가 원하는 책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책을 구입한 고객을 위해 종로서적 직원이 새 책의 겉표지를 정성스레 입혀 줬다. ⓒ윤혜숙

지금과는 달리 그때만 해도 책 한 권을 사는 것도 신중했다. 막상 원하는 책을 찾았어도 그 책을 들었다 놓기를 거듭하면서 오래 고심했다. 그만큼 책 한 권이 소중했던 시절이다. 

그래서일까? 종로서적에서는 내가 고른 책의 겉표지를 정성스럽게 입혀 줬다. 내 뒤로 책을 결제하기 위해 줄지어 선 사람들이 아무리 많았어도 직원이 새 책의 겉표지를 입혀 주는 일은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책장에 꽂아두면 종로서적에서 사들인 책은 금방 알아낼 수 있었다.

지금과 같은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 종로서적에서 최신의 자료를 구할 수 있었다. ⓒ윤혜숙

가끔 하루종일 종로서적에 머물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개점과 폐점을 안내하는 방송을 들을 수 있었다. 개점 안내 방송은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종로서적을 찾아주신 독서인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로 시작했다. 

폐점 안내 방송은 “언제나 종로서적은 우리 사회의 건전한 문화공간이 되어 좋은 책과 독서인 섬기기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끝을 맺었다. 종로서적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일컬어 '독서인'이라고 부르는 호칭이 듣기 좋았다. 

1896년 대동서시를 위시해서 여러 서점이 종로에 문을 열었다. ⓒ윤혜숙

조선 시대 운종가였던 거리에 들어선 서점들

종로1가에서 광화문 방향으로 가다 보면 또 다른 대형서점이 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의 서울 전철 노선은 1호선부터 4호선까지만 있었다. 광화문광장과 연결되는 지금의 전철 5호선을 개통하기 전이었다. 그러다 보니 종로서적은 접근성 면에서 상당히 우위에 있었다.

종로가 어떤 곳인가? 보신각종이 있는 곳이어서 종로인 이곳을 조선 시대에는 '운종가'라고 불렀다. 운종가(雲從街)는 구름처럼 모였다 흩어진다는 뜻이다.

1948년 종로2가 대한기독교서회 건물 1층에 종로서적이 문을 열었다. ⓒ윤혜숙

조선 시대에는 군주였던 왕이 거주하던 경복궁이 있고, 경복궁의 정문이었던 광화문 남쪽에는 양쪽으로 육조거리가 있었다. 육조거리에는 의정부·육조·중추원·사헌부·한성부 등 관아 건물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 운종가가 이어졌다.

운종가에는 시전이 설치되어 육의전을 비롯한 많은 점포가 집중되어 있었다. 당시 한양 도성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물품을 사들이기 위해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였다. 그랬던 종로 입구에 종로서적이 들어서고 종로서적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은 역세권이라는 입지 조건에 따른 결과였을 것이다.

<우리가 만나던 그곳, 종로서적> 전시회는 내년 3월 17일까지 열린다. ⓒ윤혜숙

지금은 인터넷의 발달로 누구든 원하는 정보를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로 검색할 수 있다. 최근엔 검색에서 나아가 문답이 가능해진 챗GPT도 등장했다. 그래서 굳이 책을 통해 정보를 얻지 않아도 정보가 넘쳐난다. 하지만 과거엔 그렇지 않았다. 종로서적과 같은 대형서점은 자료를 얻기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 

서점에는 책을 펼쳐 든 채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서 자신의 공책에 글을 베껴 적는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책을 판매하는 직원이 보면 달갑지 않은 고객이다. 하지만 직원이 쫓아와서 그런 고객을 밖으로 나가라고 몰아세운 적은 없었다. 

대학생이었던 기자도 그랬던 적이 있다. 두꺼운 책의 서너 쪽을 참고하고자 책 한 권을 사기엔 정말 돈이 아까웠다. 그렇다고 책의 문장을 통째로 암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종로서적이야말로 지식의 보급창고였다.

종로서적을 기억하는 중장년층 여성이 자녀를 데리고 전시관을 방문했다. ⓒ윤혜숙

과거 학생이었던 시절 종로서적을 드나들었던 중년의 여성이 자녀를 데리고 이곳을 방문했다. 자녀에게 종로서적의 추억을 들려주고 있다. “직원이 정성 들여 겉표지를 입힌 새 책을 종이가방에 넣어줬어. 그 종이가방을 들고 전철을 타면 사람들이 자꾸만 쳐다봤어. 사람들이 종로서적이라고 적힌 종이가방만 봐도 책을 읽는 교양인이라고 봐주는 것 같았어.”

우리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종로서적에 가서 책을 샀고, 행여나 그 책이 구겨질까 봐 보물 다루듯 했다. 그때의 종로서적은 점차 잊혀 가던 우리의 청춘을 일깨워 준다. 물론 지금 종로1가 사거리에 종로서적이 있긴 하지만, 그 종로서적은 과거의 종로서적이 아니다.

<우리가 만나던 그곳, 종로서적> 전시는 내년 4월 30일까지 열린다. 시간 내어 우리의 기억 한편에 어렴풋이 남아 있던 종로서적에 얽힌 지나간 추억을 되살려 보는 것은 어떨까? 분명 즐거운 시간으로 꽉 채워질 것이다.

<우리가 만나던 그곳, 종로서적>

○ 기간 : 2023. 7. 21. ~ 2024. 3. 17.
○ 장소 : 서울시 종로구 우정국로 26 센트로폴리스 지하 1층 공평도시유적전시관
○ 교통 : 지하철 1호선 종각역 3-1번 출구
○ 관람시간 : 9:00 ~ 18:00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 1일
○ 관람료 : 무료
○ 누리집
○ 문의 : 02-724-0135

 

출처 내손안에 서울   윤혜숙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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