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뜰에는 해마다
내 생일 무렵이면
미선꽃이 만개한다.
미선에 대한 소개는 <미선꽃1>에서
4년 전 글을 가져와서 자세히 했다.
미선꽃 줄기가 너무 우거져서 아치가 내려 앉기 시작했기에
지난 해에
무너지는 아치를 걷어내고,
비닐하우스 만드는, 그것도 아주 튼튼한 철재 아치를
맞추어서 바꾸었다.
그러면서 나무 줄기를 몇 줄기만 남기고 대부분 정리했더니
지난 해보다는 좀 허술했지만
내년이면 예전의 모습을 되찾게 될 것이다.
난 여고 2학년 때부터 오십대 초중반까지 아파트에서만 살던
아파트 걸이다.
대략 15년 전쯤 되었을까?
가을이었다.
노후의 삶을 위하여 집장사가 막 지어서
아직 건축허가도 나지 않은 전원 주택으로 이사왔다.
고작 120평 대지에 29.7평의 집만 달랑 지어져 있고,
마당에는 잔디만 잔뜩 깔린 집.
울타리도 없고,
어린 황금측백이 자라면 생울타리 역할을 하도록
집을 뺑 둘러 심겨져 있던 집.
도로와 집의 경계석에는 어린 철쭉만 군데군데 심겨져 있었는데
길에서도 우리집으로 마음껏 드나들었다.
이듬해, 봄.
어린 미선나무 묘목 두 그루가 가는 가지 끝에
조롱조롱 흰 색도 아니고, 연 분홍도 아닌......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색깔의 꽃송이를 조롱조롱 달고 우리집으로 왔다.
흔한 벚꽃 색깔.
그보다 보다 조금 약한 분홍빛이 섞인 색깔.
이 미선나무 묘목을 우리집에 가져온 사람.
남자이면서 내겐 남자가 아니었던,
오빠이며, 삼촌이며, 연인 같으면서도
오빠도, 삼촌도, 연인도 아니었던 한 남자.
그러했기에 내겐 참이나 부담스러웠던 한 남자.
해 마다 생일이면 학교로,
학교에 정년 퇴직한 후에는 집으로 생일 축하 꽃바구니를 보내주었던 남자.
재혼한 후에는
남편에게 부담스럽다고 생일 축하 꽃바구니를
보내지 말라고 해도 보내 주었던 남자.
다시는 톡도 메시지도 전화도 하지 말라면서
내가 카톡에서 나가고, 폰넘버와 카톡을 수신거부하였던 남자.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 카페에 가입하여 다시 연락이 된 남자.
그는 지난 해,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가고 없지만
내가 막 이 전원주택으로 이사한 이듬해인
15년 여 전에 생일 축하 꽃바구니와 함께 가져 온
미선나무 두 그루는
아무리 가지를 정리해도 울울창창 꽃은 피었다, 어김없이 내 생일 무렵에......
돌이켜 보면 그 긴 세월 동안,
이 세상에서 날 그만큼 깊이 아껴주었던 사람이
또 있을까?
내 오빠가, 삼촌이, 연인이 아니면서도
오빠 같고, 삼촌 같고, 연인 같았던 한 남자.
나보다 12살 많았던 남자.
대학원을 나보다 2년 빨리 졸업했는데,
내가 대학원 졸업한 이듬해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참석했던 경남대학 대학원 총동문회에서
만났던 선배님.
시를 사랑하였던 사람.
시와 클래식 음악을 사랑했던 날 아껴주셨던 사람.
내가 좋아하는 클래식을 CD에,
더 세월이 흐른 후에는 USB 가득 담아왔던 사람.
그런 남자가 한 명만 있다고 해도
한 여자의 삶은 그다지 허망하지 않을까?
그가 떠난 세상에도 지금 꽃은 필까?
위의 사진은 오늘 찍은 미선나무 두 그루.
위의 두 사진은
내 생일에 찍은 미선 두 그루.
3월 18일이나
5일이 지난 3월 23일 찍은 사진이나
사진은 그대로 같지만
오늘 찍은 사진은
5일 전에 비해
꽃송이가 다 풍성해지고,
꽃 색깔은 흰색이 더 많다.
해 마다 생일을 맞아
미선꽃이 피면
한 여자의 생애를
허망하지 않게 해주셨고,
해 주실 것이 분명한
故어리연(유**)님의 명복을 빈다.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종이등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3.24 우리 데이지도 행복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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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흙 나무 작성시간 26.03.24 생일과 미선나무꽃
일방적으로 숨어있든 남성
우리지기님 양파같아요.ㅎ -
작성자효부효녀 작성시간 26.03.25 꽃피는 3월이 생일이라 미선나무 처음 알았지만 화사 하군요 생신 축하 드려요
아까운 오빠님 영혼께 축수 드리며 -
작성자행운만가득 작성시간 26.03.25 미선나무를 자꾸 주겠다는 남자....
꽃 늘리는 취미를 가진 ......
마음에 짐이 될까봐..
꽃은 좋은데 대가 신실치 못하다는 핑계로 물리치고 있었는데..
잘한?것 같네요..
아쉽고 아픈?기억들은 저장하고 싶지 않거든요...
아름다워도 ..
너무 아름다우면 .....
아프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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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제이정 작성시간 26.03.26 아름다운 추억에 이야기 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