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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 대로

오늘 부모님의 산소를 다녀 오면서...이런 저런 생각

작성자뿅망치(신현준)|작성시간26.03.29|조회수87 목록 댓글 8

오늘 시골 부모님의 산소를 형제들과 다녀왔다.

아버지는 돌아가신 지가 25년이 되었고 어머니는 17년이 되었고 산소는 합장으로 모셨다.

1년에 적어도 두 번 정도는 다녀오는데 벌초 두 번을 하거나 벌초 때 아니면 추석 때이다.

 

서울에서 세 시간 정도를 가야 하는 경북 의성이어서 자식들인 형제들은 내려가지만 손자들은 먹고 살기가 바빠서 가지 못한다.

자식들을 같이 데리고 가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차피 우리가 죽고 나면 우리 제사도 안 지내게 될 것인데, 조부모 산소를

돌보라고 하는 것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여 우리 부모는 우리가 모시는 것으로 끝을 내기로 하였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현재의 상황은 그렇다. 집안마다 사정과 여건이 다르겠지만 우리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식들이 효자라서 자발적으로 참여하거나 부모가 강압적으로 참여시키는 집안도 있을 것이다.

유교정신에 투철한 사람들은 조상을 제대로 모시지 못하는 후손들에 대해서 질타를 할 것이겠지만 제사니 산소를 돌보는 것도 결국

수십 년 이내로 없어지게 될 것이다.

 

제사나 산소의 관리도 역사적으로 유명한 집안이나 위인에 대해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관리하거나 문중이 아주 끌끌하여 문중

에서 관리하는 산소가 아니면 결국 자연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도 광해군 때 낙향한 조상이 이곳에 터를 잡아서 9대조의 묘소들이 있고 재실도 거창하게 지어져 있다.

마침 우리 부모님 산소가 재실 가까운 곳에 있어서 재실을 산소에 올 때마다 들러 보게 되는데 몇 년 동안 사람이 살지 않고 관리가

되지 않아서 허물어져 가고 있는 중이다.

관리할 사람은 고사하고 시골에 사는 일가 친척들이 거의 없어져 버렸기 때문으로 남아 있는 사람은 거동이 불편한 어른들 서너 명

뿐이니 관리가 불가능하다.

 

우리가 어렸을 때(1960년대)까지는 10월에 시제 때가 되면 전국에서 두루마기를 입고 오신 어른들이 재실에 가득 모여서 시제 지

내곤 했었는데 80년대 이후에는 그런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TV같은 곳에서 유명한 종가집의 그렇게 잘 지어진 기와집들이 무너져가는 것을 보면서 변해가는 시대와 흘러가는 시간 들이 그렇게

만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웠는데, 어렸을 때 산속에 있는 시제에 참석해서 떡과 고기와 제삿밥을 먹었던 추억이 있는 제실(祭室)

이 돌보는 손길이 없어 무너져가는 것을 보면서 세태의 변함과 세월의 무상함에 비감(悲感)해진다.

 

재실을 지을 때 이렇게 무너질 줄을 알았을까..

조상의 산소들이 이렇게 방치가 될 줄을 알았을까.....

 

******

 

산소에 올 때마다 술과 떡 과일을 준비해 가지고 와서 산소 앞에 진설해 놓고 절을 하게 되는데 대부분 이렇게 할 것이다.

우리는 화장을 하지 않고 매장을 해서 부모님의 시신은 무덤 속에 있는데 아직 세월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뼈까지 삭아

없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산소에 절을 하는 것은 부모님의 뼈가 그 안에 있어서 그 뼈를 부모님 대신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 뼈는 그냥 부모님의 뼈일 뿐 부모는 아닐 것이다.

우리가 마음속에 생각하는 부모님은 부모님의 마음이나 더 나아가서는 영혼일 것이다.

그리고 만약 영혼이 있다고 한다면 그 무덤 안의 뼈에 갇혀있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영혼이 있어서 영혼이 존재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어딘가는 우리가 알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무덤 안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러하기 때문에 산소에서 절을 하면서 부모님이 산소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절을 할 필요가 없는가?

그러나 그것은 아니고 부모를 대신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가까운 것이 그래도 유골이기 때문에 부모로 간주를 하고 절을 하는

것이 아닐까...

 

만약 시신이 없어서 평소에 부모님이 아끼던 안경이나 기념품 또는 평소에 입던 옷을 묻었다면 그것들을 통해서 부모를 기억할 수

있기 때문에 무덤에 절을 하게 되는 것일 것이다.

우리가 산소를 찾는 것 제사를 지내는 것 기념을 하는 것은 고인을 기억하는 행위가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오래되었지만 TV에서 시묘살이를 하는 아들이 산소에 대롱을 꼽아 매일 커피를 끓여서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넣어주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분은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했는지 궁금했었다.

무덤 속에 어머니가 그 커피를 마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니 무덤 속에 어머니가 계신다고 생각하고 그랬을 것 아닌가.....

 

나는 처음부터 산소를 찾는 일이나 제사를 지내는 일들은 고인을 기억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보아 왔기 때문에 다른 의미는 두지

않는다.

그래도 내가 건강하여 운전할 수 있을 때까지는 동생들과 함께 산소를 찾게 될 것이다.

부모를 기억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행위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운전해서 다녀오고 나서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 등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생각이 흘러가는대로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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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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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종이등불 | 작성시간 26.03.30 나랑너랑 읔~
  • 작성자종이등불 | 작성시간 26.03.30 공감에 공감에 공감을 하며 읽었습니다.

    전 죽기 전에
    무빈소, 무분묘.
    무제사.

    3無 유언하려구요.

    무분묘,
    무제사 까지는 누누히 말했고,
    무빈소는 지난 설에 처음으로 말했습니다.

    제 장례식에
    음식 올리지 말고
    꽃과 음악(좋아하는 곡 목록 미리 말함)을 틀어달라고 말했는데
    그건 빈소와 삼일장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서
    취소되었네요.^^
  • 답댓글 작성자뿅망치(신현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3.30 무빈소 무분묘 무제사..
    이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누군가 나를 추모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고 기억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이며 추억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추억할 수 있는 곳이나 공간이나 시간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기억하는 형제 자매도 있을 것이고 자녀들도 있을 것이며 친지들도
    있을 것이니 그들에게 그런 기회를 주지 않는 것도 너무 이기적이지 않을까요..

    나는 기독교인이었지만 죽어서 화장을 하고 난 다음에 서울에서 가깝고 경치가
    좋은 사찰에 봉안을 해 놓고 나들이 겸 1년에 한 번 정도는 왔다 가도록 할
    생각입니다.
    그들이 원하는 기간까지 10년이나 20년 정도...

    자녀들 입장에서는 부모를 기억할 수 있는 곳이나 공간이 없다면 그것도
    슬픈일일 것입니다.

    나도 전에는 뿌리고 없애버릴까 생각을 했었는데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자식이 1년에 하루 정도는 부모를 생각할 수 있는 날 정도는 있어도 되지
    않을까 해서요
  • 답댓글 작성자종이등불 | 작성시간 26.03.30 전 죽으면 모두에게 잊혀지고 싶습니다.
    만약 후생이 있다고 해도 감정이 있는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지도 않아서......
    그냥 모두에게서 잊혀지고 싶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뿅망치(신현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3.30 종이등불 그래도 누군가는 그리워하며 기억하고 있을 텐데요
    자식이거나 친구이거나....

    현재 우리가 제도적이거나 관습적이거 간에 이루어지는 행위들은
    그 시대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죽고 나면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것이 이미 이곳을
    떠난 나와는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지요..

    누군가가 미워하거나 사람하는 것 등 등....

    모든 것을 나 위주로 생각하면 종등님 생각이 맞지요..

    자녀들에게도 의견을 한 번 물어보아야 할 문제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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