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맛을 잃은 지 한 달 가까이 된다.
퇴직을 앞 둔 마지막 겨울 방학 첫날.
그해에는 근육통이 특별했다는 독감에 걸렸다.
베개를 베면 머리 살가죽이,
침대에 누우면 뼈가 아팠다.
그때, 난 누워서 앓을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가, 생각했다.
아이를 둘이나 자연분만했기에 산통을 충분히 경험했는데
산통보다 몇 배나 아팠다.
그렇게 고열, 기침, 가래와 통증에 시달리며 다 죽어 가면서도
입맛이란 것은 쌩쌩했기에
무슨 환자가 저렇게 잘 먹냐, 나이롱 환자 아냐?
가족들이 생각할까 봐서 부끄럽고 억울했다.
이 저주스러운 식탐과 식성과 입맛.
그랬다.
나는 입맛 없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고 살았으며,
세상에는 맛있는 게 너무 많아 괴로웠다.
그러했던 내가 65세가 넘으면서 가끔 하루, 이틀 입맛을 잃었는데
그때뿐.
나으면 멀쩡했다.
내가 입맛을 잃은 지 거의 한 달이 되어 간다.
도무지 구미가 당기는 음식이 없다.
그래도 억지로 먹었는데 요즘은 억지로 먹기도 힘든다.
어제 점심은 밀면을 먹으러 갔다.
시원하고 달콤매콤한 음식을 먹으면 구미가 당길까 봐서.
밀면과 찐만두를 시켰다.
도무지 먹을 수 없었다.
2인용 식탁 두 개를 붙여 4인용으로 만든 자리.
주문 태블릿도 따로 놓여 있었다.
한 팀 4명이 앉을 때는 테이블을 붙이고
두 팀이 앉을 때는 테아블을 띄웠기에
예전의 합석과는 달랐다.
우리 부부와 비슷한 시간에 모자로 보이는 팀이 들어왔다.
아들은 해맑고 건강하게 생긴 30대쯤의 청년.
엄마는 시골의 전형적인 늙은 여인이었다.
여인은 아들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엄마 학교 7월 24일 방학한다, 로 시작한 이야기.
목소리는 조용하고 낮았으나 이야기가 끝이 없었다.
어? 현직 교사인가?
교사라면 몸 관리좀 하지.
맘대로 퍼진 몸이야 그렇다 치고,
요즘은 시골 농사 짓는 할머니들도 저렇게 하고 안 다닌다.
짧은 펌을 한 머리는 염색을 하였지만 머리 윗부분은
탈모를 심하게 하여 거의 운동장 수준에 그나마 머리칼도 듬성듬성.
모자나 쓰지.
그녀의 듬성듬성 머리 윗부분을 보니
그렇잖아도 없던 입맛이 싹 달아나 버렸다.
얼굴은 쪼글쪼글.
로션이라도 좀 바르지.
요즘 학교는 교사들에게 각 개인마다 노트북을 지급해.
여자는 아들에게 말했다.
교실 칠판은 커다란 텔레비전 모니터로 되어 있어.
그 모니터가 칠판이야.
여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의문을 가졌다.
세상에 커다란 모니터로 되어 있는 칠판?
혹시 화이트 보드나 빔 화면을 말하는가?
간혹 영화나 드라머의
재벌 회사나 우리 나라 정부 기관에서
벽면을 가득 채운 모니터를 사용하는 것을 보긴 했지만
대한민국의 학교 교실 칠판이?
그런 건 학교를 다룬 드라머나 영화에서도 못 보았는데
이 시골 밀양의 학교 칠판이?
정말 그렬까?
진짜 교사 맞나?
혹시 급식소 조리원이나 미화원?
목소리는 조용했으나 여자의 끊임없는 이야기.
머리 꼭대기 듬성듬성 머리카락에 입맛이 떨어진 나는
커다란 컴퓨터 모니터로 된 교실 칠판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그나마 깨그작깨그작 억지로 먹던 음식마저 더 이상 먹을 수 없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저녁을 굶었다.
아침도 굶었다.
배 안 고프나?
남편이 물었다.
시간은 벌써 정오가 되어 가고 있었다.
당신 배는 때 되면 어찌 그리 한 끼도 거르지 않고
틀림없이 신호를 하니?
한 끼쯤 건너뛸 수 없니?
속으로 생각했다.
-배 고파요? 난 입맛이 없어서 밥 생각이 없는데.....
-당신, 어제 저녁도 아침도 안 먹었잖아?
당신, 입맛 없어서 큰일이다.
해물 아구찜이라도 사올께.
남편이 외출했다.
아구찜 식당 다섯 군데(아마 밀양에 다섯 군데 아구찜 식당이 있는 모양이다.)
모두 가봤지만 오늘 정기 휴일이라며 전화했다.
난 당신 먹을 거나 사오라고, 난 생각없다고 했다.
남편이 나간 지 두 시간만에 회 도시락 반 관을 포장해 왔다.
김밥도 네 줄 사왔다.
해물 아구찜은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회는 정말 먹기 싫었다.
그래도 남편의 성의를 생각하여 억지로 펼쳤다.
남편은 평소에도 회를 싫어하여
한 젓가락도 입에 넣지 않는다.
그런데 날 위해서......
나같은 것도 마누라라고 걱정되어
내가 먹을 만한 것을 찾아 저렇게 두 시간이나 돌아다녔구나.
콧끝이 찡해졌다.
남편은 하도 배가 고파 김밥 한 줄은 오는 차 안에서 먹었다고 한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운전하며 김밥을 먹었을까?
정말, 한 젓가락도 뜨고 싶지 않았지만
남편의 마음 때문에 김밥 세 조각.
회 몇 조각 억지로 먹었다.
회와 함께 딸려온 매운탕을 끓여 몇 숟가락 떠넣었다.
먹는데 남편이 고마워서 자꾸만 눈물이 났다.
성격이 급해
작은 일에도 걸핏하면 고함부터 지르고 보지만
마음은 한 없이 따뜻한
저 남자가 내 남편이다.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종이등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23 전 바다회보다 민물회가 맛 있습니다.^^
향어회.
안 먹는 분들이 의외로 많더군요.
디스토마균이 두렵고,
항생제 범벅이라고.... -
작성자오빈(양평) 작성시간 26.06.22 그런 사연이 있으셨네요
아무튼 고생도 많이 하셨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종이등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23 감사합니다.
빨리 입맛을 찾고 싶습니다. -
작성자안재환 작성시간 26.06.23 남편의 따스함에 고마움에 눈물이....
여자는여자 나이묵어도 여자는여자
식욕을 빨리되찼기를 바라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종이등불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23 식욕이 곧 제발로 걸어오겠지요.
오늘도 행복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