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당서역기 75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현장(玄奘) 한역
: 변기(辯機) 찬록
: 이미령 번역
제3권
4. 북인도
[8개국] - 17
마침내 나무가 쓰러지자
코끼리들은 사문을 싣고
큰 숲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병든 코끼리가
있었는데 상처로 고통스러워
하며 누워있었다.
그의 손을 이끌어 상처에
올려놓았더니 그곳에는
마른 대나무가 박혀 있었다.
사문은 곧 대나무를 뽑고
약을 발라준 뒤 옷을 찢어서 그
상처가 난 발을 싸매 주었다.
그러자 다른 큰 코끼리가
금 궤짝을 가지고 오더니
병든 코끼리에게 주었다.
코끼리는 그것을 받아들고
다시 사문에게 주었다.
사문이 궤짝을 열어 보니
그 속에는 부처님의
치아가 들어있었다.
코끼리들이 호위하고
있어 스님은 그곳을
빠져나갈 방도가 없었다.
다음날 밥 먹을 때가 되자
코끼리들은 제각기 다양한
과일을 가지고 와 그것으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식사를 마친 다음 코끼리들은
스님을 싣고 숲을 빠져나가
수백 리 떨어진 곳에 내려
주더니 각자 무릎을 꿇고
절을 한 뒤에 떠나갔다.
이윽고 나라의 서쪽
경계에 도착한 사문은
급류를 건너게 되었다.
그런데 강 중류쯤에
이르렀을 때 배가
전복되려고 하였다.
같이 배에 탔던 사람들이
저마다 서로 말하였다.
"지금 배가 뒤집어지려는
것은 사문이 탔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틀림없이 여래의
사리가 있을 것이다.
용들이 이것을 가지려고
다투기 때문에 배가
심하게 흔들리는 것이다."
선장이 조사해 보니 과연
부처님의 치아가 있었다.
그러자 사문은 부처님의
치아를 들고서 몸을
구부려 용에게 말하였다.
"내가 지금 이것을 너에게
맡기나 오래지 않아서
가지러 올 것이다."
그러나 끝내 강을
건너지 못하고 배는
방향을 돌려서 돌아갔다.
사문은 강을 돌아보며
한탄하여 말하였다.
"내게는 용을 막을
주술이 없구나.
용이라는 축생에게
사기를 당한 것이다.
다시 인도로 가서
용의 해악을 막는
법을 배워야겠다."
3년이 지난 후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다가
그 강가에 이르렀다.
그리고 단을 설치하자
그 용이 나타나 부처님의
치아가 든 궤짝을
사문에게 바쳤다.
마침내 사문은 그것을
가지고 돌아왔으며
이에 이 가람에 공양을
올리게 된 것이다.
가람의 남쪽으로 14∼15리
가다 보면 작은 가람이 있다.
그곳에는 관자재보살의
입상(立像)이 있는데
만일 단식을 하고
죽기를 맹세하며 보살을
보기를 원하는 자가
있다면 그 상에서 묘한
색의 자태가 나온다.
작은 가람의 동남쪽으로
30여 리를 가다 보면
큰 산에 이른다.
그곳에는 옛가람이 있는데
그 제작법과 모습은 아주
장엄하지만 잡초만 심하게
우거져 있으며 현재는 다만
한 편에 작은 중각이 서 있는데
승도의 수는 30여 명이다.
그들은 모두 대승법의
가르침을 배우고 있다.
옛날 승가발타라
(僧伽跋陀羅)[당나라
말로는 중현(衆賢)이다]
논사가 이곳에서 『순정이론
(順正理論)』을 지었다.
가람의 좌우에는
여러 솔도파가 있는데
그 속에는 모두 대아라한의
사리가 들어있다.
들짐승이나 산원숭이들이
꽃을 따다가 공양을 하는데
해마다 마치 명령을 받아서
하는 것처럼 변함없이
공양을 올린다.
그런데 이 산 속에는
여러 가지 신령스러운
기적이 많이 일어나는데
어떤 때는 석벽(石壁)이
가로로 쪼개지기도 하고
봉우리에 말의 자취가
남겨져 있기도 하다.
이런 것들은 모두가
그 형태가 괴이하였다.
모두가 바로 아라한과
사미들이 무리를 이루어
노닐다가 손가락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말을
타고 오간 것이다.
이와 같은 유적들은
자세하게 기술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부처님의 치아가 모셔진
가람에서 동쪽으로
10여 리를 가다 보면
북쪽 산 낭떠러지 사이에
작은 가람이 있는데
옛날 색건지라(索建地羅)
대논사가 이곳에서 『중사분비바사론
(衆事分毘婆沙論)』을
지었다.
작은 가람 안에 돌로
만들어진 솔도파가 있는데
높이는 50여 척이다.
이곳에는 아라한의 유신사리
(遺身舍利)가 안치되어 있다.
옛날에 어떤 아라한이
있었는데 그의 몸집은
매우 컸고 그가 먹는
음식은 코끼리의
양과 똑같았다.
그러자 당시 사람들이
이를 비난하며 말하였다.
"하릴없이 포식할
줄만 아니 어찌 옮고
그름을 가리겠느냐?"
(계속)
(모셔온글)
부산 동래구 쇠미로
만월사 부산포교원
법천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