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꾸오까 여행(3)...시카노시마의 금인공원(金印公園)과 시카우미 신사(志賀海神社)과 몽고총(蒙古塚)

작성자뿅망치(신현준)|작성시간26.06.10|조회수28 목록 댓글 1

아침에 일어나서 식사를 하기 전에 조그만 동산을 올라가는데 이미 벛꽃은 지는 중이다

동산에 올라가니 바다가 보이는데 대마도쪽인 대한해협이다 

시카노 시마 공원(志賀島園地)..벚꽃은 지고 있는 중이다.

사진사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아직 벚꽃이 남아 있으나 지려고 색깔이 변하는 중이다.

바다 쪽으로 계속 가면 대마도와 부산이 나온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 ...우측의 큰 건물

뷔페 음식들

아침 식사후 숙소를 떠나고...우리를 태우고 다닐 버스...

 

한 시간 반 정도 산책을 하고 숙소로 와서 식사를 하고 '우미노나카미치 해변공원(海の中道海浜公園) 가는 길에 금인(金印)공원에 잠깐

들렀다.

금인공원을  잠깐 들렀다가 우미노 나카미치 공원으로 간다.

 

금인공원(金印公園, 킨인 파크)은 일본 후쿠오카시 히가시구의 시카노시마(志賀島)에 위치한 곳으로, 매우 높은 역사적 가치와 아름다운

바다 전망을 자랑하는 기념공원입니다. 

이 공원의 핵심 역사는 일본의 국보급 문화재인 ‘한위노국왕(漢委奴國王)’ 금인(금도장)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금인의 발견: 에도 시대인 1784년(텐메이 4년), '진베이'라는 이름의 현지 농부가 시카노시마에서 밭을 갈고 큰 돌을 옮기던 중, 우연히 반짝

이는 금도장을 발견했다고 전해집니다.

역사 문헌과의 일치: 이 금인의 도장 면에는 음각 전서체로 ‘漢委奴國王(한위노국왕)’ 다섯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중국 《후한서·동이열

전》의 기록에 따르면, 동한 건무중원 2년(서기 57년), 왜노국이 공물을 바치며 조하(朝賀)하자 한나라 광무제가 이 왕인을 하사했다고 합

니다. 이는 고대 일본(야요이 시대)과 중국 대륙 정권 간의 교류를 증명하는 결정적인 물증이 되었습니다.

공원의 조성: 일본 고대사를 새로 쓴 이 중대한 역사적 발견을 기념하기 위해, 정부는 금인이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 바로 그 자리에 ‘금인

공원’을 조성했습니다.

공원 입구에는 ‘한위노국왕 금인 발광의 곳(金印發光之處)’이라고 새겨진 석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공원 산책로를 따라 전망 광장으로 올라

가면, 크게 확대된 금인 조형물 모델과 복제품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금인의 유래, 한나라의 인장 제도(예: 뱀 모양의 손잡이인 '사뉴(蛇

紐)'의 의미), 양국 교류사 등을 소개하는 다국어(한국어, 일어, 영어, 중국어) 역사 해설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구글) 

바로 길 가에 있는 금인공원

금인이 발견된 장소라는 공원에  있는 기념비...1800년 만에 발견되었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금인의 글씨..오른쪽 기둥 안에 금인이 들어 있다.

기둥 안의 금인... 본래 크기

 

그리고 시카노시마에는 금인공원만큼이나 유명한 곳이 있다고 하는데 시카우미 신사(志賀海神社)라고 한다.

일본은 신(神)과 신사(神社)의 나라라고 할 만큼 무수한 신과 그 신을 모시는 신사가 있는데 시카우미 신사(志賀海神社)는  바다의 신의

총본사라고 한다.

시카우미 신사(志賀海神社)

 

시카우미 신사(志賀海神社)는 금인공원과 함께 시카노시마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역사·문화적 명소입니다. 예로부터 바다를 지키는 신령

을 모셔온 곳으로, 독특한 전통과 볼거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바다의 신의 총본사: 일본 전국에 있는 와타츠미(綿津見, 바다의 신)를 모시는 신사들의 총본산(총본사)입니다.

아즈미 씨족의 씨신: 고대 일본에서 뛰어난 항해술을 지니고 해상 무역과 외교를 담당했던 강력한 해상 부족인 '아즈미 씨족(阿曇氏)'이 자신

들의 조상신과 바다의 신을 모시기 위해 세운 것이 이 신사의 시초입니다.

해상 안전의 수호신: 쓰시마(대마도)와 현해탄을 거쳐 한반도나 중국 대륙으로 향하던 고대 외교 사절단이나 무역상들이 바다를 건너기 전

이곳에 들러 항해의 안전을 기원했습니다.

 독특한 볼거리와 문화로는

액운을 쫓는 모래(오스나, 御砂): 신사 입구에 들어서면 작은 모래더미를 볼 수 있습니다. 시카우미 신사에서는 참배하기 전에 이 모래를 몸

에 가볍게 뿌려 액운을 털어내는 독특한 정화 의식(오하라이)을 행합니다.

사슴 뿔 당(鹿角堂, 로쿠카쿠도): 신사 경내에는 사슴 뿔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건물이 있습니다. 과거에 왕들이 섬에서 사냥을 한 뒤 봉납

한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현재 약 1만 개가 넘는 사슴 뿔이 보관되어 있어 시카우미 신사만의 기이하고도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조선 종(朝鮮鐘): 경내에는 과거 한반도에서 건너온 역사적인 종이 보관되어 있어 고대 동아시아 해상 교류의 흔적을 보여줍니다.

(구글)

액운을 쫓는 모래(오스나, 御砂)

일본스럽게 생긴 해신과 용왕

사슴 뿔 당(鹿角堂, 로쿠카쿠도)

 

시카노시마는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더 관심을 가질만한  섬으로 몽골과 고려 연합군과 일본군이 이곳에서 치열한 백병전을 치른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곳에 몽골군인의 위령탑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몽고총(무덤)

위령비

 

모코즈카(蒙古塚, 몽고총)는 앞서 소개해 드린 금인공원, 시카우미 신사와 더불어 시카노시마의 또 다른 중요한 역사적 단면을 보여주는 비

석이자 위령탑입니다. 영어로는 Mongolian Army Memorial Tower라고 불립니다.

이곳은 고대 한·중·일 교류뿐만 아니라, 격동했던 중세 동아시아의 전쟁사를 생생하게 품고 있는 장소입니다.

1. 역사적 배경: 여몽연합군의 일본 원정

13세기, 아시아와 유럽을 호령하던 몽골 제국(원나라)은 고려와 연합하여 일본을 침공했습니다. 이를 일본에서는 원고(元寇, 겐코) 또는 

골 습래라고 부릅니다.

시카노시마 전투 (1281년 홍안의 역): 2차 침공(고안의 역) 당시, 여몽연합군의 동로군(고려군 및 원나라군 부대)이 하카타만 입구에 위치한

요충지인 '시카노시마'에 상륙하여 진을 쳤습니다.

치열한 백병전: 일본 무사들은 작은 배를 몰고 와 야간 기습을 감행했고, 섬의 좁은 지형에서 양측 간에 피비린내 나는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

습니다. 이 과정에서 연합군과 일본군 모두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2. 모코즈카(몽고총)의 유래와 의의

원혼을 달래기 위한 무덤: 전투가 끝난 후, 일본인들은 이 섬에서 목숨을 잃은 수많은 몽골·고려 연합군 군사들의 시신을 거두어 화장하고 한

곳에 묻어주었습니다. 적군이었지만 타향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무덤을 만든 것이 바로 '모코즈카(몽고총)'입니다.

공양탑 건립 (1927년): 세월이 흘러 1927년, 이곳에 정식으로 석조 몽골군 공양탑(Memorial Tower)이 세워졌습니다. 전쟁의 적군과 아군

을 떠나 인간으로서 그들의 죽음을 위로하고 평화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장쭤린(장작림)의 시비: 공양탑 옆에는 당시 중국의 군벌이었던 장작림(張作霖)이 전사한 군인들을 추모하며 보낸 시가 새겨진 비석도 함께

세워져 있습니다. 비석에는 몽골어로도 '몽골 군인의 영혼(МОНГОЛ ЦЭРГИЙН ОНГОН)'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구글)

 

****

금인공원에서 20분 버스를 타고 우미노 나카미치 해변 공원(海の中道海浜公園)에 도착을 하고...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뿅망치(신현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0 이곳을 다시 여행하는 마음으로 여행기를 정리하면서 그 때 보지 못했던 그곳의 역사를 훑어 보게 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