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꾸오까 여행(17)...구마모토성(熊本 城)(1)...그리고 중국의 4대미녀 왕소군(王昭君) 이야기

작성자뿅망치(신현준)|작성시간26.06.19|조회수57 목록 댓글 3

아소산을 출발한지 1시간 반정도 지나서 구마모또에 도착했고 구마모또 성으로 구경을 하러 갔다.

 

구마모토성(熊本城)은 임진왜란 때 함경북도로 진격했던 왜장 중의 한 사람인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등청정)가 1607년에 축성한 성으

로 나고야 성 오사카 성과 함께 일본의 3대 성중의 하나라고 한다.

곧바로 구마모토 성 주차장으로 간다.

주차장에서 보이는 구마모토 성

성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주변..구마모토 공원으로 주차장이 이곳에 있다. 

성으로 들어가는 길 해자가 있던 자리

성으로 들어가고...

 

이성은 장기 농성에 대비하기 위해서 은행나무를 많이 심고 다다미도 고구마 줄기로 만들었다고 하며 주위 5.3 킬로미터의 성내에 120여개

의 우물을 팠고, 성루 49 개소, 성루문 18개소, 성문 29개소의 건조물이 존재하였다고 한다.

1877년 세이난(西南)전쟁으로 많은 건물이 소실되었으며 천수각(天守閣)도 그 때 소실되었으나 천수각은 1960년에 재건된 것이라고 한

다.

이 성은 벚꽃의 명소로서도 알려져 있어 일본 벚꽃 명소100선에 선정되고 있다고...

(참고로 서남전쟁은 일본의 최후의 대규모 내전으로 수만명이 내전으로 죽었고 사무라이시대가 사라진 전쟁이라고 하며 ‘라스트 사무라이’

나 ‘쇼군’ ‘바람의 검심’등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전쟁이라고 한다.)

 

누각은 아주 높고 축대 또한 높아서 공격하기는 힘들고 방어하기는 쉽게 되어 있다. 이 성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입방에서는 그냥

높은 누각이 있는 성(城)일 뿐이나 서남전쟁 때 정부군과 반란군이 57일간 공방을 벌였으나 결국 함락하지 못했다고 한다. 

에도시대의 구마모토성.. 에도시대(江戸時代, 1603년~1867년)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지금의 도쿄)에 막부(정부)를 열었던 시기로,

약 260년 동안 지속된 일본 역사상 마지막 무사(사무라이) 정권 시대이다.

주차장에서 한참 걸어 들어간다.

들어가는 입구

성벽...

성을 들어가는 길이 위에서 방어를 하기 쉽도록 길을 건물을 배치했다.

성으로 들어가면서 보는 천수각..1960년대에 새로 만든 천수각이라고

 성안 마당으로 들어가는 길

천수각을 배경으로 그룹별로 사진을 찍는다. 처가쪽

친가

성에 올라가서 보는 주변 앞에는 담장 밖은 공원이라고

잎이 가장 예쁠 때이다.

사람들이  작게 보이는 것을 보니 높은 곳에 올라온 듯

기념사진을 찍도록 만들어 놓은  곳 ....장군 복장도 있고 일반 여성의 복장도 있고...

왕소군의 그림이 있는 방...뜬금 없이 왕소군의 그림이 있는 것이 생뚱맞지만 그럴 이유가 있다고 한다.

 

구마모토성(熊本城) 내에서 가장 화려하고 격식 높은 공간인 혼마루 고텐(本丸御殿)의 쇼쿤노마(昭君の間, 왕소군지간)에는 중국 한나라

때의 비극적인 미인 왕소군(王昭君)의 고사를 그린 아름다운 병풍화가 사방의 벽면과 문(후스마)에 그려져 있습니다.

이 방에 그려진 왕소군 그림의 역사적 배경과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그림의 내용 (왕소군 고사)

그림은 한나라의 궁녀였던 왕소군이 고향을 떠나 흉노족의 선우(왕)에게 시집을 가게 되는 비극적인 여정을 담고 있습니다. 흉노의 땅으로

향하는 처연한 모습, 이국땅에서의 생활, 그리고 그녀의 슬픈 운명을 묘사한 장면들이 화려한 금박 바탕 위에 채색되어 있습니다.

2. 가토 기요마사의 숨겨진 의도 (도요토미 히데요리 보호설)

구마모토성을 지은 무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가 이 방에 굳이 왕소군의 그림을 장식한 것에는 특별한 정치적 의도가 숨겨져 있다는 설

이 유명합니다.

언어유희(고로아와세): 일본어로 '왕소군(소쿤)'은 '장군(쇼군, 将軍)'과 발음이 유사합니다. 즉, '쇼쿤노마(昭君の間)'는 사실상 '쇼군의 방(将

軍の間)'을 의미한다는 해석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위한 거처: 가토 기요마사는 주군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은 후, 그의 아들인 도요토미 히데요리가 도쿠가와 이

에야스에 의해 위기에 처했을 때 그를 구마모토성으로 피신시켜 보호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쇼쿤노마'는 히데요리가 성에 왔

을 때 머물게 할 가장 높은 격식의 방으로 준비된 곳이며, 사방의 화려한 왕소군 그림은 표면적으로는 중국의 고사이지만 실제로는 '쇼군(혹

은 그에 준하는 최고 권력자)'을 맞이하기 위한 방이라는 의미를 감추고 있었다는 전설입니다.

3. 복원된 화려함

원래의 혼마루 고텐과 왕소군 그림은 1877년 세이난 전쟁 직전에 발생한 의문의 화재로 인해 소실되었습니다.

현재 구마모토성 혼마루 고텐에 있는 왕소군 그림은 2008년 혼마루 고텐 복원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복원된 것입니다. 당시 에도 시대의 화

파인 가노파(狩野派)의 화풍과 과거의 문헌 기록, 남아 있는 도면들을 철저히 고증하여, 순도 높은 금박과 천연 안료를 사용해 당시의 압도

적이고 화려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냈습니다. 방에 들어서면 사방의 금빛 벽면과 어우러진 왕소군의 이야기가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냅니

다.(구글)

왕소군의 그림이 있는 방

 

천정의 그림

 

https://youtu.be/d_neTEkokdU?si=rus6aHCTTPO3456a....구마모토성 유튜브

 

참고로 왕소군에 대해서 

 

왕소군(王昭君, 대략 기원전 50년 ~ 기원전 15년)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4대 미인'(양귀비, 서시, 초선, 왕소군) 중 한 명으로, 한나

라와 흉노의 평화를 위해 이국땅으로 시집을 가야 했던 비극적인 운명의 여인입니다.

그녀의 이야기는 수천 년 동안 중국 문학과 예술에서 '애절함'과 '애국심'의 상징으로 다루어져 왔습니다. 왕소군과 관련된 가장 유명한 일화

와 역사적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왕소군 그림..비파를 타는 왕소군을 보고 기러기가 떨어졌다는 글이다. 

 

1. 화공 모연수와 낙선재의 비극 (전설 속 이야기)

한나라 원제(元帝)는 후궁이 너무 많아 일일이 얼굴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궁중 화공인 모연수(毛延壽)에게 후궁들의 초상화를 그리게 한

뒤 그 그림을 보고 밤에 부를 후궁을 선택했습니다.

뇌물을 거절한 왕소군: 다른 후궁들은 화공에게 잘 보여 가짜로 예쁘게 그려달라며 많은 뇌물을 주었지만, 출중한 미모와 곧은 성품을 가졌

던 왕소군은 뇌물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에 앙심을 품은 모연수는 왕소군의 얼굴을 아주 못생기게 그리고 눈가에 점까지 찍어 '상서롭지 못

한 상'으로 만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왕소군은 수년 동안 황제의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궁녀로 방치되었습니다.

2. 흉노로의 출가와 원제의 후회

기원전 33년, 흉노의 왕(선우)인 호한야(呼韓邪)가 한나라를 방문해 황제의 사위가 되기를 청했습니다. 원제는 변방과의 평화를 위해 후궁

중 한 명을 딸로 위장시켜 보내기로 결심하고, 궁녀들 중 가장 인기가 없고 못생겼다고 생각한(초상화 속) 왕소군을 지목했습니다.

황제의 뒤늦은 분노: 마침내 떠나는 날, 실물로 마주한 왕소군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고 기품이 넘쳤습니다. 원제는 크게 후회하며 그

녀를 붙잡고 싶어 했으나, 이미 외국 왕과의 약속이 끝난 터라 바꿀 수 없었습니다. 크게 분노한 원제는 사건의 전말을 조사하여 황제를 속인

화공 모연수를 사형에 처했습니다.

3. 낙안(落雁): 기러기가 날갯짓을 멈추고 떨어지다

왕소군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고사성어가 바로 '낙안(落雁)'입니다.

왕소군이 고향을 떠나 황량한 북방의 사막으로 가던 중, 말 위에서 고향 생각에 구슬픈 마음으로 비파를 연주했습니다. 이때 마침 남쪽으로

날아가던 기러기 무리가 비파 소리를 듣고 말 위의 아름다운 여인을 바라보느라, 날갯짓하는 것조차 잊어버려 땅으로 추락했다는 이야기에

서 유래했습니다. 이 때문에 오늘날도 '낙안'은 미인을 형용하는 말로 쓰입니다.

4. 춘래불사춘 (春來不似春)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구나"라는 유명한 시구 역시 왕소군의 슬픔을 노래한 것입니다. 후대 당나라의 시인 동방규(東方虯)가 왕소군의 심

정을 대변해 지은 시의 구절입니다.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흉노의 땅에는 화초가 없으니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

自然衣帶緩 (자연의대완) 시름 속에 몸이 야위어 옷띠가 느슨해지니

非是爲腰身 (비시위요신) 날씬한 허리를 만들려 한 것이 아니라네

5. 역사적 의의와 평가

비록 문학 속에서는 비극적이고 가련한 여인으로 묘사되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왕소군의 정략결혼은 매우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녀가 흉노로

시집간 이후 한나라와 흉노는 약 60년 동안 전쟁 없이 평화로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녀는 흉노 땅에서 한나라의 선진 문화를 전파하는 가교 역할을 했으며, 이 때문에 중국 역사에서는 국가의 평화를 가져온 '애국 여인'으로

높이 평가받기도 합니다. 현재 내몽골 자치구 후허하오터시에는 그녀의 무덤인 소군묘(昭君墓)가 남아 있으며, 사계절 내내 푸른 풀이 자란

다고 하여 '청총(青塚)'이라고도 불립니다.

 

기왕 알아두면 좋은 상식 

중국의 4대 미인과 비유

서시 : 침어 (沈魚)물고기가 강바닥으로 가라앉음 춘추시대 (월나라)

서시

 

왕소군 :낙안 (落雁)기러기가 하늘에서 떨어짐 한나라

 

초선 : 폐월 (閉月)달이 구름 뒤로 숨어버림 삼국시대 (후한 말)

초선

 

양귀비 : 수화 (羞花)꽃이 스스로 잎을 말아 숨김 당나라

양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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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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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종이등불 | 작성시간 26.06.20 구마모토 성과 관련한 뒷 이야기를 아주 흥미롭게 읽고,
    동영상까지 본 후에
    이 글을 읽습니다.

    정말 일본 땅에 생뚱맞게 왕소군?
    했는데
    쇼군과 발음이 비슷하여
    그 미인의 여정을.......

    곧 내 몽골의 흉노족의 옛 땅으로
    여행을 갑니다.
    왕소군의 무덤 청총 투어도 여행 일정에 잡혀 있더군요.

    춥고 긴 초원의 겨울에도
    왕소군의 무덤 풀만은 시들지 않고 푸르러서 청총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하네요.

    덤으로 4대 미인의 그림까지 잘 보았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뿅망치(신현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0 침어, 낙안, 폐월, 수화.....

    이 세상에서 과장이 가장 심한 나라가 인도이고
    그 다음이 중국일 것입니다.

    불교에서 인연의 중요성을 말 할 때 쓰는 겁이라는 시간은 세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반석겁 (磐石劫 / 바위의 비유): 사방이 1유순(由順, 약 10~15km)에 달하는 거대하고 단단한 사각형 바위가 있어서. 100년에 한 번씩 천녀(하늘의 선녀)가 내려와 아주 부드러운 비단 옷자락으로 그 바위를 살짝 스치고 지나 갈 때. 이 행위를 반복하여 그 거대한 바위가 닳아 완전히 없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일 겁’이라고 합니다.
    겨자겁 (芥子劫 / 겨자씨의 비유): 사방이 1유순인 거대한 성(城) 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워 둡니다. 그리고 100년에 한 번씩 장수가 와서 그 겨자씨를 딱 한 알씩 밖으로 꺼냅니다. 그렇게 해서 성 안의 겨자씨가 단 한 알도 남지 않고 모두 비워지는 데 걸리는 시간을 ‘일 겁’이라고 합니다.

    1겁을 현대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43억2천만년이라고 하며 사람이 옷깃을 스치는 인연은 500겁이 시간이 쌓여야 한다네요..

  • 답댓글 작성자뿅망치(신현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0 뿅망치(신현준) 그 다음이 중국 쯤 되는데 중국의 유명한 시인 이태백의 추포가에 白髮三千丈 (백발삼천장)아라는 글로 시작하는 시가 있는데 흰 머리가 3천장이라면 현대로 하면 9키로미터이다.
    중국과 인도가 과장이 심한 것은 인도의 사색문화와 중국 대륙의 크기 때문이라고....

    청총에 가시면 왕소군에게 문안을 하고 오시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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