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꾸오까 여행(23)... 다자이후 텐만구 (太宰府天満宮)(3)다른 계절도 좋은 이곳 ...그리고 신도(神道)와 야쿠자 이야기

작성자뿅망치(신현준)|작성시간26.06.23|조회수46 목록 댓글 7

다자이후(太宰府)라는 말은 지방을 통치하는 행정관이 머물렀던 곳이라는 뜻이라고 하며 천만궁(天満宮)은 학문의 신을 모신 신사로 다자

이후 천만궁은 다자이후에 있는 신사이다.

이곳을 참배하는 사람들은 학생을 비롯하여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믿기 때문에 시험을 앞 둔 사람

들이 많이 오며 입시철에는 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아주 많이 찾는다고...

그래서 신사를 들어가는 입구의 주변에는 먹거리를 파는 곳도 있지만 소원을 비는데 관련된 상품을 파는 상점들이 양편에 죽 늘어서 있기도

하다.

경내에는 스가와라가 교토에서 좌천되어 이 땅에 왔을 때 교토에서 날라 왔다는 매화나무 외 196종 6,000그루 정도의 매화나무가 식재되어

있어 매화의 명소로도 유명하다고 하며 이곳에는 천년이 넘은 나무도 신목으로 보호를 받고 있는데 계절마다 꽃을 즐길 수가 있기 때문에 매

월 여러 가지 행사도 열린다고 한다.

천년도 더 되었음직한 이 나무는 이 다자이후 텐만구(太宰府天満宮) 신사 경내에 있는 유명한 신목(神木)이라고 한다.

두 그루의 거대한 녹나무(楠, 쿠스노키)가 뿌리 부분에서 서로 단단하게 얽혀 있어, 마치 한 쌍의 부부가 다정하게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메오토구스(부부 녹나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국가 지정 천연기념물로 등록되어 있을 만큼 학술적·문화적 가치가 높으며 수령은

1,00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다자이후 텐만구 경내에는 수많은 녹나무가 자생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나무 중 하나

라고 한다.

나무를 그대로 두고 집을 지었다.

또 다른 천연기념물이라는 나무

수령이 1,000~1,500 정도가 되었다는 내용과 1922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는 안내판이다.

지금이 봄이어서 한창 잎이 예쁘게 피어날 때이다.

우리가 다리를 넌너서 지나왔던 심자(心字)연못이다....

 

옆에는 'iris pond(아이리스 폰드)라는 창포 연못(菖蒲池, 쇼부이케)'이 있는데 이 연못은 초여름 다자이후를 방문할 때 놓쳐서는 안 될 가장

아름다운 명소 중 하나라고 한다.

년 5월 말부터 6월 중순(특히 6월 초)이 되면, 연못 일대에 약 55종, 3만 그루에 달하는 보라색, 하늘색, 흰색의 꽃창포(Japanese Iris)가 일

제히 만개한다고 하며 야간에는 조명 행사도 이루어진다고 한다.

창포 연못

이런 꽃들이 핀다고 한다.

 

이곳 경내에는 6천 그루의 매화가 심어져 있다고 하니 3월에 오면 매화가 피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매화를 보러 오는

것도 좋을 듯하다.

경내의 매화나무들

곡수의 정원이라는 것을 보니 이곳에 물길을 낸 듯하고...이 곳에도 고목의 매화가 심어져 있는데...

매화향은 정말 매력적인 향이다. 

아쉽게  발길을 돌려서 경내를 빠져 나온다....도리이를 통해서 들어갔다가 그 문으로 다시 나오게 된다.

들어왔던 그 골목이다....떡도 팔고 소원지도 팔고...

우메가에 모치(매화 떡) 가게이다.

소원을 비는 악세사리...한국말로도 되어 있다.  합격기원이라는 

2008년도 8월에 이곳에 왔었는데 그해 10월에 아들이 사시 합격을 하였었다...아마도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버스틀 타러 나가는 길...앞에 간판에 또 오세요라는 한국어로 된 글씨가 보인다.

마지막 관광지인 캐널시키로 가는 길이다.

 

참고로 일본은 신사(神社)가 많은데 신사는 신(神)을 모시는 사당으로 8백만개가 있다고 하는데 일본에서의 8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일본은 사람이 죽어서도 신이 되지만 짐승이나 나무, 강, 바다, 하늘, 바람 등 눈에 보이는 것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나 다 신으로 받들어

모시는 사람들이다.

심지어는 사람이 쓰던 물건 예를 들면 고무신도 모심의 대상이 되며 그것도 신이 되는 나라이다.

 

일본인들은 일본고유의 종교인 신도(神道)라는 일본 고유의 종교를 믿고 있는데 이 종교의 뿌리는 일본의 건국신화와 연결되어 있다.

일본열도를 만들었던 남매 신(神)인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라는 가미(神)이 있었는데 그 신들이 만든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天照)라는

신이 손자를 보내서 일본을 다스리게 했고 그 아들이 일본 최초의 천황인 660년의 신무(神武)천황이라고....

 

이 신이 그렇게 중요한 신이기 때문에 이 신을 ‘아마테라스오미가미(天照大御神)’라고 불렀으며 일제 강점기에 우리에게 신사참배를 시켰

을 때 참배를 했던 신은 아마테라스오미가미(天照大御神)이다.

지금도 일제 강점기에 살았던 어른들은 천조대신(天照大神)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다가 17세기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 불교와 그리스도교 등 외국 종교와 문화들이 밀려오자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도를 부

흥시키려는 노력으로 신도와 유교의 윤리 덕목이 습합하여 일본 무사 계급 사무라이를 위한 ‘무사도(武士道)’가 생겨나게 되었으며 이 무사

도가 야쿠자들에게 전승되고 있는 중이다.

 

********

아래는 일본의 종교인 신도에 관한 내용이다 관심이 있는 분만....그러나 일본인의 생각을 알고 싶은 분은 꼭 보시길 그들의 종교를 알면 그

들의 생각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신도(神道)

 

 

신도는 일본인이 받들던 전통 신앙이다. 근대 일본 군국주의에서 초강성 민족주의 이념의 근간이 된 것도 바로 신도이다. 현재 일본에서 신

도 신자라고 공식 선언한 사람은 전체 인구의 3-4%에 불과하지만, 신도는 일본인의 정체성과 정신을 꼴 지우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고, 아직

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어느 면에서 신도를 이해해야 일본이 보인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일본 정신의 뿌리가 되는 종교이다.

 

신도란 ‘신의 길’이란 뜻으로, 일본어로는 ‘가미(神)노 미치(길)’라고 한다. 이름 그대로 신도에는 신이 많다. 뭔가 예사롭지 않아 경외감을 불

러일으키고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가미’로 받아들였다. 하늘도, 바다도, 바람도, 산천초목도, 역사 인물도 모두 가

미가 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일본에는 800만의 가미가 있다고 한다. 신도는 이런 면에서 기본적으로 정령 숭배(animism)에 기원을 둔 종교

라 할 수 있다.

 

 

신도의 유래

 

 

건국 신화

 

모든 가미가 한결같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많은 가미 중에 중요한 가미의 이야기는 신도의 건국 신화에 잘 드러나 있다.

712년에 편찬되기 시작한 『고지키(古事記)』와 720년에 쓰인 『니혼쇼키(日本書紀)』의 건국 신화를 종합해 보면, 부부이면서 남매이

기도 한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라는 가미가 있었는데, 이들이 일본열도를 만들었다.

 

창으로 걸쭉한 진흙 물을 찍어 올리자 창 끝에서 그 물이 뚝뚝 떨어지고, 이것들이 굳어져 일본의 여러 섬이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또 다른

가미도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 이자나기의 왼쪽 누에서 나온 태양의 여신인 ‘아마테라스(天照)’가 제일 중요한 가미였다. 이 태양의 여신 아

마테라스는 너무도 중요한 가미이므로 ‘아마테라스오미가미(天照大御神)’라 한다.

 

그는 손자를 보내 세상을 다스리게 하고, 그 손자의 증손자가 최초의 일본 천황이 되었는데, 그가 신무(神武)천황이다. 전통적으로 기원전

660년에 왕위에 올랐다고 본다. 물론 역사적인 사실과는 무관한 이야기다.

 

아무튼 이때부터 천황의 가계는 끊이지 않고 계속되어 오늘의 일본 천황까지 이른다고 한다. 따라서 천황은 아마테라스 신의 자손이고, 살아

있는 가미인 셈이다. 이렇게 신이 다스리는 나라는 세상 다른 모든 나라보다 우수할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양부(兩部) 신도

 

‘신도’라는 이름은 6세기에 생겼다. 불교, 도교, 유교가 들어오면서 토속 종교를 차별하기 위한 이름으로 채택되었다. 6세기 중순 한국에서

불교가 들어오면서 불교와 신도가 혼합되기 시작했다. 이런 혼합적 경향으로 나타난 것을 ‘양부 신도(兩部 神道)’라 한다.

 

신도 측으로서는 불교의 여러 부처나 보살이 가미(神)의 현현이고, 또 불교 측으로서는 신도의 여러 가미가 불교의 부처나 보살의 현현이라

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는 태양을 대표하는 부처 비로자나라고 본 것이다. 이런 식으로 두 종교의 경계가 흐려

지다가 몇 세기가 지난 후 신도는 하나의 독립된 종교가 아니라 불교의 일부가 되다시피 했다.

 

 

무사도

 

그러다가 17세기 도쿠가와 막부 시대에 불교와 그리스도교 등 외국 문화의 영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도를 부흥시

키려는 노력이 일기 시작했다.

 

신도의 부흥과 함께 무사 계급의 행동 강령으로 유교 윤리를 받아 들였다. 이때 신도와 유교의 윤리 덕목이 습합하여 일본 무사 계급 사무라

이를 위한 ‘무사도(武士道)’가 생겨났다.

 

토쿠가와 시대에 주자학파였던 야마가 소코(1622-1685)에 의해 체계화가 되었다. 무사도의 덕목은 충성, 생사를 넘어서는 용기, 명예, 공

손, 정의감 등이었다. 이 중에서 가장 두르러진 것이 충성과 명예라 할 수 있다. 사무라이는 영주에 대해 절대적으로 충성할 뿐 아니라. 무엇

보다 명예를 생명보다 더 중요시하였다.

 

사무라이는 긴칼과 짧은 칼을 가지고 다니는데, 긴칼은 물론 적과 싸울 때 쓰고, 짧은 칼은 불명예스럽게 사느니 명예롭게 생명을 끊기 위한

할복자살용이었다. 이렇게 배를 가르는 것을 셉부쿠(切腹)‘라 하는데, 서양에서는 ‘하라키리’라는 말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한가지 특이한 사실은 사무라이 사이에서 선 불교가 유행했다는 것이다. 선 불교의 정신 집중, 무아의 근거한 생사의 초월, 자기 훈련, 순발

력 있는 무의식적인 행동 등이 무사의 삶과 부합하는 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는 아직도 이런 무사도 윤리가 눈에 띈다. 재벌이나 회사가 거의 봉건 영주의 성처럼 운영되는 것이 그 예이다. 아직도 많은 회사원

은 사무라이처럼 보스에게 절대 충성을 바친다. 지금은 많이 달라 졌지만 많은 회사원이 회사의 번영이 개인의 이익에 우선한다고 생각하고

과로하다가 ‘과로사’로 쓰러지기까지 한다.

 

조직 폭력 단체인 야쿠자는 이런 무사도 윤리 체계를 유지하는 가장 전형적인 예라 하겠다.

 

 

신도의 종류

 

 

신사 신도-

 

신도는 크게 신사(神社) 신도, 교파(敎派)신도, 민속(民俗)신도로 나눌 수 있다.

 

신사 신도란 국가가 직접 주관하던 형태의 신도를 말한다. 영어로는 ‘State Shinto'라고 한다.

도쿠가와 막부가 끝나고 1868년 메이지 시대에 들어오면서 일본 정부는 국민을 결속시키는 통치 이념 내지 정신적 기반으로 신도를 채택하

고 이를 국민에게 강요하기 시작했다. 새로 제정한 헌법에 신도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를 따라 일본 천황이 신성불가침의 가미(神)임을 명시

했다.

 

일본 정부는 메이지유신 초기에 불교와 그리스도교 등을 금지하고 오로지 신도만 받아들이게 하려 했으나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정책을 바꾸어 신도를 국가 의례나 국민 도덕으로 받들게 했다.

 

이세(伊勢)에 있는 최고 신사에는 아마테라스 신을 모시고, 전국 각 지방 신사에는 지방 신이나 영웅이나 특별 사건과 관련된 신을 받들고,

황국신민은 누구나 국가에 대한 충성의 표시로 신사에 가서 참배를 하도록 의무화했다.

 

1980년 교육칙어를 제정하고 신도의 기본 가르침을 교육의 기본으로 삼았다. 학생들도 정기적으로 신사에 가서 참배를 했다. 신사 참배를

할 때는 누구나 ‘자신에게는 죽고 국가와 하나가 됨’을 다짐하게 했다.

 

이렇게 정치 이념으로서의 신도 신앙으로 무장한 많은 사람은 국가와 천황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2차 대전

말기 일본으로 접근하는 연합군 전함을 침몰시키기 위해 비행기를 탄 채 연합군 전함과 충돌하는 가마카제(신풍) 자살 특공대를 모집할 때

많은 지원자가 차례를 기다릴 정도였다는 사실도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시대 한국에도 군 단위로 신사를 지어 놓고 한국인 모두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그리스도교도 중에는 이를 거절하

다가 박해를 받는 일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천황을 살아 있는 가미로 존경하는 표시로서 천황이 있는 궁전을 향해 깊이 허리를 숙여 절하는

동방요배를 강요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한국 젊은이도 전쟁을 위해 강제 징집되고 처녀들은 정신대로 끌려가 성노리개가 되었는데, 이 모두가 살아 있는 가미 천황과 그의

나라에 대한 충성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것이다.

 

1945년 2차 대전에서 일본이 패배하고, 연합군의 요구로 작성된 「신도지령」에 따라 천황이 살아 있는 가미라는 주장이 공식적으로 폐기

되었고, 신도 신화가 교육의 기초가 되는 일도 금지되었다. 국가와 신도와의 유착관계가 끝나고, 그와 함께 국가 종교로서의 신사 신도도 끝

장이 났다.

 

 

교파 신도 -

 

교파 신도란 일본에 내려오던 재래 종교 전통을 기반으로 19세기 말부터 생겨난 13개 신도 계열 종파로서 메이지 정부의 공인을 받은13개

교단을 말한다. 영어로는 ‘Sectarian Shinto'리고 한다.

 

서민 계층에서 민간 신앙 형태로 유행하던 것이 특정한 교조를 중심으로 교파로 조직된 것이다. 산악 신앙에 기초하여 후지산을 가미로 숭배

하는 파라든지, 개인적으로 단식, 호흡 조절, 냉수욕, 주문 등을 통한 심신의 단련을 목적으로 하는 파라든지 무속 신앙에 기초하여 병 고침

을 강조하는 파 등이 있다.

 

특히 나카야마 미키(1798-1887)가 세운 종파로서 치병을 강조하는 천리교(天理敎)가 유명하고 한국에도 들어왔다.

 

 

민속 신도 -

 

교단 족직이나 교리 체계도 없이 민간에서 일반적으로 받들어지는 민간 신앙이다. 가장 두드러진 표현은 가정에 가미다나(新柵)을 설치하는

것이다.

 

이렇게 가정을 중심으로 하는 신도이기 때문에 ‘Dmestic Shinto'라고 한다. 가미다나는 조상의 신위나 조그만 신상이나 기타 종교적으로 의

미가 있다고 생각되는 상징물을 모시는 조그만 제단이다.

가정의 은인이 남기고 간 신발을 귀히 여기면 그것도 모시고 그 신발의 주인을 생각하기도 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어떤 힘이 집안에 도움이

된다고 믿기도 한다.

 

예배 형식은 간단하다. 매일 정결례(淨潔禮)의 일종으로 먼저 손을 깨끗이 씻고, 제단에 꽃이나 향이나 음식을 갖다 놓고, 영혼과의 교신을

위한 상징으로 손뼉을 치고, 합장한 다음 간단한 소원을 아뢴다. 집안에 졸업식이나 결혼 같은 경사나 기념할 일이 있으면 더 많은 것을 갖다

놓고 가미에게 사연을 아뢴다.

 

그러나 장례식의 경우 가미다나와는 관계없이 불교 스님이 맡아서 하도록 부탁한다. 보통 신도는 삶을 위한 것이고 불교는 죽음을 위한 것이

라고 믿으므로 죽은 사람을 위해서는 불단(佛壇)을 새로 설치하기도 한다.

 

 

신도의 오늘

 

2차 대전 후 신사 신도가 사라진 다음 일본은 일종의 종교적 공백 상태에 빠지고 이런 상태에서 이른바 ‘신흥 종교’가 우후죽순처럼 나타났

다.

 

이런 신흥 종교 중에는 민간 신앙으로서 신도가 가진 요소를 혼합한 종교가 많다. 일본 사회가 산업화되고 교육 수준이 놓아지면서 신도 같

은 종교는 없어질 것 같지만, 놀랍게도 일본인 상당수는 평소에는 종교와 무관한 것처럼 살다가 곤란한 일을 당하면 가미를 찾기도 하고 중

요한 일을 결정하거나 처리할 때 가미에게 빌곤 한다.

 

예를 들면 고속도로를 내기 위해 산허리를 잘라야 할 때 가미에게 제사를 지낸다. 물론 직접적인 효험이 있을 거라 믿는 사람도 있지만, 상당

수 사람은 ‘밑져야 본전’이라는 태도인 것이 사실이다. 거의 모든 일본 자동차나 전차에 붙은 부적이나 산사 나무에 하얗게 걸린 부적 종이는

일본인의 신도적 심성을 보여 주는 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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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종이등불 | 작성시간 26.06.23 서울 가는 열차를 기다리며 제목만 보고 댓글부터 씁니다.

    열차 안에서 차분하게 읽겠습니다.
  • 작성자종이등불 | 작성시간 26.06.23 와....1,000년 된 부부녹나무.

    당연히 구까 지정 천연기념물이 되고도 남겠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학술적 가치도 뛰어나구요.
  • 작성자종이등불 | 작성시간 26.06.23 일본의 태양신과
    천황이 태양신의 후손.
    (여기까진 잘 알고 있구요)

    그리고 처음 듣는
    신도에 대한 내용까지 무척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뿅망치(신현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3 일본은 섬나라라는 폐쇄가 주는 특수한 환경 때문에 중국이나 우리나라와는 아주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열린 곳에 있는 사람들은 정쟁을 하다가 패하게 되면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가거나 피란을 갈 수가 있는데
    섬나라인 일본은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권력자의 눈밖에 나는 순간 곧바로 죽음이 되는 구조이지요
    일본에서는 어떤 개인이 잡단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는 순간 곧바로 이지매를 당하거나 제거가 되기 때문에
    목소리를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런 상황이 수백년을 흘러 왔기 때문에 일본 사람들은 개인의 목소리가 없게 됩니다.
    정치가 개판이 되거나 전 세계적으로 미투 운동이 불 때도 일본은 조용했었는데 그런 DNA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일본에도 기독교가 우리나라보다 먼저 들어가 뿌리를 내렸었지만 배타적인 기독교의 교리가 일본 국가의
    안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기독교를 무자비하게 탄압하여 없애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기독교 대신에 국가에서 신도라는 종교를 만들었습니다.
    종교를 국가에서 만든 특이한 케이스이지요
    지금 일본은 사실 모든 사람이 종교인임과 동시에 모든 사람이 종교인이 아닙니다.
    그들은 태어날 때는 신도의 의식을 결혼식 때는 기독교식을 죽을 때는 불교
  • 답댓글 작성자뿅망치(신현준)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3 뿅망치(신현준) 의식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따르고 있으니 모든 생활이 종교적이면서 우리가 생각하는 종교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지요...
    일본인들은 애니미즘을 지금도 믿고 살아가는데 일본에 있는 신사가 수만에서 수십만이라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래서 일본을 타 종교의 무덤이라고도 부른답니다.
    다른 종교가 들어가서 아무런 맥을 쓰지 못하기 때문인데 기독교 선교가 가장 안되는 곳이
    일본과 인도 그리고 이슬람이라고 한답니다.
    선교가 되지 않는 곳은 이미 토착종교가 완전히 뿌리를 내린 곳으로 일본은 신도의 나라이니 발 붙일 곳이
    없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 기독교 선교가 쉬웠던 것은 불교가 유명무실했고 유교도 종교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종교적인 입장에서 무주공산 같은 상태였기 때문에 기독교가 국교가 되다
    시피 하게 되었지요..

    그러나 저러나 야쿠자의 뿌리가 일본의 신도라는 종교가 좀 아이러니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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