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농부가 미치는 과정
요즘 고추밭에 가보면 내가
농사를 짓는 건지 고추가
나를 키우는 건지 모르겄슈
아침에 눈 뜨면 고추 밥
먹으면서 고추 낮에는 고추
저녁에도 고추
마누라가 여보 나 좀 봐유
그러면 나는 잠깐만유
고추가 지금 중요혀유
고추는 하루에 세 번씩 크는
것 같고 나는 하루에 세 번씩
늙는 것 같아유
얼마 전에는 밭에 나가서
고추를 한참 보고 있었는디
동네 아저씨가 와서
물어보더라고유
뭘 그렇게 봐유?
그래서 내가 그랬쮸
나도 몰러유
한 시간째 보고 있는디 아직도
안 움직여유
그러자 아저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지유
그건 원래 안 움직이는 거여
가만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더라고유
나는 하루 종일 안 움직이는
고추를 지켜보고 있었던 거여
요즘은
고추가 갈라지는 거 걱정
벌레 먹는 거 걱정
비 오는 거 걱정
안 오는 거 걱정
농부는 참 희한혀쥬
비 오면 걱정
안 와도 걱정
많이 열려도 걱정
안 열리면 더 걱정
결국 걱정 농사를 짓고 있는 겨
그래도 고추 하나 따서 손에
쥐어 보면 또 흐뭇혀유
올해도 살아남았구먼
고추는 말이 없슈
근디 이상하게도 그 말 없는
놈이 농부를 울리고 웃기고
다 혀유
그래서 내일도 또 밭에 갈 거유
안 가면 궁금해서 미치겄거든유
농부라는 게 원래 그런 거 아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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