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장편소설> 떠오르는 지평선 [제1부]
[제1권]
악산(嶽山) 정대재(鄭大載)
차 례
서장(序章). 지기(地氣)가 들끊는 땅 제1장. 산사(山寺)를 다녀 오던 날 ◇두친구 ◇천추에 새긴 문양(文樣) 제2장. 일락서산(日落西山) ◇처가(妻家) ◇유종(儒宗)의 고향 제3장. 우국(憂國)의 밤 ◇이상한 만남 ◇안개마을 ◇성내에 부는 바람 ◇북쪽에서 온 손님 제4장. 운막향(雲幕鄕)의 후예들 ◇오리무중(五里霧中) ◇여황(女皇)의 행차 제5장. 운명의 그림자 ◇석양에 온 여승(女僧) ◇월하망월도(月下望月圖) ◇밀사(密使)가 된 절친(切親) 제6장. 종손(宗孫)의 반역(反逆) ◇이유있는 모반(謀叛) ◇불청객(不請客)
|
제5장. 운명의 그림자
◇ 석양에 온 여승(女僧)
운명의 그림 불공 행렬을 멀리 표충사로 떠나보낸 종가는 종일토록 빈 집처럼 한산하였다. 새로 찾아오는 내방객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경향 각지서 찾아와 시국과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며 비분강개하던 사랑 객실의 논객들도 하나 둘씩 떠나가고, 할일 없이 시권(詩卷)이나 읊조리며 남의 집 밥만 축내는 장기 식객들 몇 사람만 남게 된 것이다.
오뉴월의 긴긴 하루해도 어느덧 저물어 서산으로 기운 저녁 햇빛이 종가 앞의 늙은 은행나무를 비추면서 생긴 거대한 나무 그림자가 행랑 용마루 위에 흑룡처럼 두 다리를 걸친 형상을 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은행나무 밑동의 굵은 가지 사이로 스며든 석양빛을 등에 받으며 잿빛 천을 둘러씌운 삿갓을 눌러 쓴 웬 비구니 스님 하나가 솟을대문 앞에 나타났다.
굳게 닫힌 솟을대문 안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며 기웃거리던 여승은 좀처럼 인기척이 나지 않자, 마침내 목탁을 두드리며 천수경을 읊조리기 시작하였다.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깊게 눌러 쓴 잿빛 삿갓으로 얼굴을 통째로 가린 여승은 단아한 몸매에 약간 처진 듯한 좁은 어깨와 연륜이 웬만큼 지펴 보이는 외양으로 보아 오십대 초반 정도는 될 성싶었다. 그러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천수경을 읊조리는 목소리만은 유난히도 낭랑하고 청아하였다.
오방내외안위제신진언 나무 사만다 못다남 옴 도로도로 지미 사바하….
여승은 독경을 시작하기 전 대문 안을 기웃거릴 때에 삿갓을 한번 살짝 들어 올렸을 뿐으로 얼굴 생김새는 전혀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비록 낡았으나 풀을 빳빳하게 먹인 잿빛 바랑에다 사바(裟婆)의 온갖 고뇌를 아로새기듯이, 수십 개의 천 조각들을 서로 연결하여 한 땀 한 땀 꿰매어 만든 승복을 깔끔하게 손질하여 맵시 있게 차려입은 매무새가 그녀의 고상하고 꼼꼼한 성격과 지난 반생을 그대로 대변해 주는 듯하였다.
지엄한 상전들이 원지 출행을 떠나고 찾아오는 내방객들의 발길이 뜸해지자 청지기 서 서방마저 어디서 코를 골며 늘어지게 낮잠이라도 자고 있는 것일까? 굳게 닫힌 묵직한 솟을대문은 좀처럼 열릴 줄을 모른다. 그러나 몸매 호리호리한 비구니는 거기에 개의치 않고 얼음장 위를 굴러가는 차돌멩이처럼 청랑하고 탄력적인 목탁 소리와 함께 천수경 독경을 계속 이어 가고 있었다. 안에서 누가 나오든지 말든지 상관없이 한결같이 맑은 목소리로 읊조리는 비구니의 독경 소리는 은행나무에서 한가롭게 울려 퍼지는 매미소리와 함께 종가를 감싸고도는 석양 무렵의 나른한 적막감을 깨트리며 한 동안 계속되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여승의 독경이 거의 반 식경이나 계속되었을 무렵에야 비로소 육중한 솟을대문이 삐거덕! 하고 소리를 내면서 열리는 것이었다. 커다란 바가지에 시주미를 잔뜩 퍼 가지고 뒤늦게 대문 밖으로 총총히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새댁같이 젊은 병준이의 유모 옥이네였다.
안에서 누가 나오는 것과 상관없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 같던 나이 지긋한 비구니의 독경 소리는, 그러나 유모가 바가지에 넉넉하게 담아 온 시주미를 느슨하게 걸머진 자신의 바랑 속에 조심조심 쏟아 부어 주는 것과 거의 동시에 거짓말처럼 멈추고 마는 것이었다.
비구니의 위아래를 유심히 살피던 옥이네가 깊게 눌러쓴 삿갓 때문에 얼굴을 좀처럼 살펴볼 수 없게 되자 그대로 단념을 하고 대문 안으로 막 사라지려고 할 때였다.
“저어, 보살님!”
비구니가 나직한 목소리로 그녀를 가만히 불러 세우는 것이다.
“예, 시님. 저한테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옥이네는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며 의아한 낯으로 비구니를 바라본다.
“혹여 이 댁이 예전에 한양 도성에서 궁내부(宮內府) 칙임관(勅任官)을 지내신 승당 민 대감님 댁이 맞는지요?”
“예,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런 것은 와 물으시는데예?”
옥이네는 호기심이 잔뜩 실린 얼굴로 정확한 연륜을 분간할 길이 없는 비구니의 위아래를 새삼스럽게 눈여겨 살펴본다.
“아, 빈도는 한양에 있는 삼각산 진관사에서 탁발 수행차 내려온 객승이온데, 동래 범어사로 가는 길에 민 대감님 댁 정경부인 마나님의 안부나 한번 여쭈어 보고 갈까 하고 잠시 들러 보았습네다!”
"우리 노마님께서는 표충사 절에 불공하러 가고 지금은 안 계시는데, 이 일을 대체 우찌하면 좋습니껴?"
옥이네는 비구니가 멀리 한양에서 왔다는 바람에 허탕을 치고 돌아가는 게 딱하다는 듯이 낭패감을 감추지 못한다.
"아, 안 계셔도 괜찮습네다!"
비구니는 집을 제대로 찾아와서 용화 부인의 안부를 알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족하다는 듯이 황급히 두 팔을 내젓는다.
“범어사로 가시는 길이라면 아직도 갈 길이 먼데 여기서 하룻밤 주무시고 가실랍니껴? 아니면 노마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쌓인 여독을 푸실 겸 아예 며칠 동안 유하시다가 만나 보시고 가시든지…."
"아, 아닙네다!"
완강하게 고개를 흔드는 품이 비구니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그러시다면 날이 저무는데, 갈 길을 서두르셔야겠네예. 혹시 노마님께 전할 말씀이라도 있으시면 저한테 퍼뜩 하시소!”
마음씨 고운 옥이네는 동래로 간다는 여승의 만만찮은 전도가 마치 자신이 가야할 길이라도 되는 듯이 조바심을 낸다.
“민 대감님께서는 예전에 표충사 경내의 은둔처에서 극락왕생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네다만, 그 뒤로 노부인 마나님께서는 어떻게 지내고 계시온지요?”
“우리 집 노마님께서는 아직도 기체가 예전처럼 한결같이 정정하시고 정신도 젊은 사람 못지않게 명경처럼 맑으시지예!”
“예…. 그렇게 정정하시다니 정말 다행입네다! 그러면 안녕히 계십시오, 나무관세음보살….”
비구니는 용화 부인이 집에 없어도 이 정도의 근황을 알았으니 이제는 더 이상 아무런 미련도 아쉬움도 없는 듯, 옥이네를 향하여 허리를 깊게 숙여 합장 배례를 하고는 그대로 돌아서더니 종종걸음으로 표연히 사라지고 만다.
'삿갓으로 애써 얼굴을 가리는 걸 보믄 그냥 탁발하러 온 시님은 아닌 것 같은데, 웬 일로 찾아 왔일꼬?'
비구니를 그대로 떠나보낸 옥이네는 한 동안 움직일 줄을 모른 채 그 자리에 오도카니 서 있었다. 멀리 한양에서 왔다며 예전에 순국하신 승당 대감 나으리의 직함을 들먹이는 것도 그렇고, 용화당 노마님의 안부를 묻기 위해 일부러 들렀다는 것도 예사롭지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노마님께서 절간으로 불공하러 떠나고 안 계실 때 찾아왔일꼬?'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으로 우연히 그리 된 것인지, 아니면 출타 중임을 알고 일부러 날을 잡아 찾아 온 것이지 그것은 알 수 없었지만, 예사로 보아 넘길 일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안채로 들어간 옥이네는 그 사실을 그대로 별당의 박씨 부인에게 전해 올렸고, 적이 놀란 박씨 부인은 울렁이는 가슴을 주체치 못하고 있다가 그날 밤 침소에 들른 중산에게 그 얘기를 한껏 상기된 얼굴로 전하고는 그의 반응을 유심히 살피는 것이었다.
"서방님, 오늘 석양 무렵에 한양 삼각산 진관사에서 탁발 수행차 내려왔다는 비구니 스님 한 분이 다녀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옥이네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나이 지긋해 뵈는 그 여자 스님은 궁내부 칙임관을 지내신 승당 대감 나으리 댁이 맞느냐고 묻고서 출타하신 용화당 할머님의 근황까지 알아보고는 무엇에 쫓기는 듯이 총총히 사라져 버렸다고 합니다!"
"아니, 나이 지긋한 비구니가 찾아와서 승당 할아버지의 직함을 대며 용화 할머니의 근황을 알아보고 돌아갔다고요?"
중산은 불시에 차가운 물 한 바가지를 통째로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드는 심사였다.
그렇잖아도 운곡 선생의 밀서를 용화 부인에게 전해 올리고 윗분들의 엄명에 따라 거기에 수반된 모종의 일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은인자중하는 속에서 청관 스님의 행적에 대해서만은 은밀히 한번 알아보려던 참이었는데, 막상 그 얘기를 듣고 보니 할머니의 불공 행차에 대한 복잡한 생각과 맞부딪치면서 무엇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용화 할머니가 따로 준비한 사찰 음식들을 가지고 떠나간 표충사 인근에도 비구니 스님들이 수도하는 대원암(大願庵)이란 암자가 있다고 했는데, 멀리 한양 땅 삼각산 진관사에서 왔다며 용화 할머니의 안부를 묻고 간 나이 지긋한 비구니는 또 누구란 말인가? 승당 할아버지를 모셨던 청관 스님의 생모가 뼈대 있는 무반집 군관의 여식이라고 하더니, 승당 할아버지 순절 후에 삼종지의(三從之義)의 부도(婦道)를 지키고자 먼저 승려가 된 자식을 따라 머리를 깎고 중이 되어 찾아온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비구니 스님이 승당 할아버지의 직함을 대며 자기네 집을 찾아 올 까닭이 없지를 않은가?
"서방님 생각에는 그 여자 스님이 누구이며, 그 먼 서울에서 무엇 하러 천릿길을 걸어 우리 집을 찾아 왔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자기의 얘기를 듣고서 오래도록 말이 없는 중산을 보고 비단 금침 위에 병준이를 눕혀놓고 재우고 있던 박씨 부인이 자못 큰 관심을 가지고 재우쳐 묻는다.
"글쎄요…. 난들 그것을 어찌 알 수가 있겠소?"
승당 할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비밀스러운 생각이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내심 당황한 중산은, 그러나 짐짓 무심스런 표정을 지으며 능청스럽게 반문을 한다. 하지만 그의 심중을 그대로 들여다보는 듯이 찬찬히 바라보는 부인의 진지한 눈길 앞에서 그의 시선은 벌써부터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었다.
박씨 부인은 중산의 그런 모습을 보고 이러한 기회가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나 있었던 듯, 그의 의표를 찌르며 다시 캐묻는 것이다.
"서방님, 지난 단옷날 해천껄에 갔을 때, 혹시 그 동안 우리 시집의 윗분들께서 일체를 비밀에 부치고 함구하셨던 승당 할아버님의 과거사 얘기를 친정아버님으로부터 전해들은 바가 없었는지요?"
"허허, 부인께서는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게요?"
그 정도의 암시를 받고 떳떳하게 사실대로 털어놓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천고의 비밀을 지키려다가 불시에 허를 찔린 사람처럼, 중산은 그렇게 본의 아니게 역정을 내고 만다. 그러나 그의 얼굴은 이미 귀밑까지 홍당무처럼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서방님, 그렇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 하지 않았습니까? 부창부수(夫唱婦隨)는 삼종지의(三從之義)의 버금 항목으로 남편을 따라야 하는 아내의 도리요, 가정의 화목과 금슬지락을 일구는 요체라고 어려서부터 『내훈(內訓)』을 통하여 배웠습니다. 제가 동산이 민씨 가문의 종부가 된 지도 어언간 십 년이 넘는 연륜이 쌓였는데, 일심동체라는 부부지간에 못할 말씀이 무에 있다고 그렇게 당혹스러워하십니까?"
박씨 부인은 부부가 된 연륜과 자신이 어렸을 때 배웠던 여필종부(女必從夫)의 가르침이 세세히 담겨 있는 『내훈』까지 언급하면서 중산으로 하여금 추호의 심적 부담도 없이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게 하려고 내심 애를 쓰고 있었다.
『내훈』이라는 서책은 그녀가 방금 말한 것처럼, 유년 시절에 친정에서 배웠던 부도교육(婦道敎育)의 교본이었는데, 그녀가 이 자리에서 그런 사실까지 굳이 언급한 까닭은 그 교본이 이상적인 여성상인 부덕(婦德)·부언(婦言)·부용(婦容)·부공(婦功) 등의 네 가지 행실을 갖추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부녀교육을 위하여 그 책을 지은 사람이 다름 아닌 세조 임금의 며느리이자 중산네 가문에서 자랑하는 오우 선생 다섯 분의 진외종조부였던 점필재 김종직 선생을 유난히 총애하였다는 성종 임금의 어머니인 소혜왕후(昭惠王后) 한씨(韓氏)였다는 사실도 그녀가 그렇게 떳떳하게 말하는 정서의 밑바닥에 당연히 깔려 있었다.
『내훈』을 지은 소혜왕후는 친정아버지 한확(韓確)의 밑에서 유교적 부덕을 닦고 언행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왕손의 양육에 있어서도 어떤 실수나 허물도 비호하지 않고 훈계하여, 시아버니인 세조로부터 폭빈(暴嬪)이라는 말까지 들었을 정도였던 것이다.
또한, 『내훈』의 서(序)에서 대개 남자는 호연(浩然)한 마음을 가졌고 뜻은 오묘한 진리를 찾는 데 두어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으나, 여자는 오로지 침선(針線)과 방적(紡績)이 잘되고 못되었는가만 따지고 덕행을 알지 못하므로 성인의 가르침을 부녀자에게도 가르치려는 의도에서 이를 지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어서, 후손 교육을 가업의 으뜸으로 여기는 여흥 민씨 가문의 가치관과도 잘 부합되는 교본이었던 것이다.
"아니, 그러고 보니 당신도 지난 단옷날 칯정에 갔을 때 승당 할아버님의 하녀가 낳았다는 청관 스님이라는 서출 자식의 얘기를 들었던 모양이구료?"
중산은 부인에게조차 결코 알리고 싶지 않았던 승당 할아버지의 과거사 얘기를 그녀가 알고 있다는 사실이 전혀 예상 밖이라는 듯이 적잖이 놀란다.
"예, 서방님! 서방님께서 처가에 갔다가 큰 숙제를 받아 왔는데, 아내인 제가 그 사실을 모른대서야 어찌 생의 반려자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서방님께서 저의 친정을 떠나신 그 날 밤에야 저의 처소로 몸소 건너오신 친정아버님으로부터 승당 할아버님이 한양 현직에 계실 때 시중을 받듣던 하녀의 몸에서 태어난 청관 스님이라는 그 서자의 얘기를 듣게 되었답니다. 친정아버님께서는 저에게 하신 얘기를 서방님한테도 이미 다 하셨다고 말씀하셨지만, 직접적으로 말씀하시기가 곤란했던 부분도 없지 않으셨던 모양입니다. 왜냐하면, 청관 스님을 낳은 하녀의 친동생으로 예전에 우리 집에 있다가 떠나간, 아주 어릴 때 들었던 ‘언년이’라는 노비에 대한 얘기는 서방님께 굳이 말할 필요가 없겠다 싶어 안 하신 것 같았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아니, 해천껄 처가에도 청관 스님을 낳은 하녀의 여동생이 노비로 있었다니 그건 또 무슨 말씀이오?”
그렇잖아도 얼굴이 귀밑까지 벌게져 있던 중산의 두 눈이 화등잔만큼이나 둥그레진다.
“예, 서방님! 제가 아주 어렸을 때의 일이라 잘은 모르지만 그런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한테 일언반구의 언급이 없었던 그런 얘기를 부인한테는 따로 했다는 말씀이오?"
윤곽이 뚜렷한 중산의 검은 눈에서 일순간 서늘한 바람이 인다.
"예, 서방님! 하지만 서방님께 비밀로 덮어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얘기를 듣고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 몰라 부부지간인 저의 입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알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일부러 그리하신 것이 아닐는지요?"
"허허, 도대체 그 언년이라는 노비가 그 무슨 대단한 존재였기에 장인어른께서 나한테는 함구할 정도로 그렇게 신경을 쓰셨다는 말씀이오?"
중산의 반응이 예상외로 민감하게 나타나자 박씨 부인은 당황하는 빛이 역력하였다. 하지만 친정아버지가 못한 얘기를 자기가 대신 하기로 작심한 그녀로서는 이미 발설한 얘기를 다시 주워 담을 수도 없거니와 또, 피해 가고 싶은 생각도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언년이는 그리 대단한 존재도 아니고, 제가 세 살 되던 해에 저희 친정에서 면천 방면된 그저 마음씨 착한 노비였을 뿐이랍니다. 또한, 언년이의 얘기를 제가 들은 것이 아버님께 천자문과 소학을 배우던 아주 어린 시절이라, 사실 저도 그 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일이기도 하고요."
박씨 부인은 중산이 의외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바람에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대수롭지 않은 망각 속의 하찮은 존재였음을 애써 강조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중산의 태도는 그녀의 의도와는 달리 더욱 완강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언년이라는 하녀가 나한테 그렇게 문제시 되는 까닭이 대체 무엇이오?"
중산은 내심 자존심이 크게 상한 듯 쉽게 물러날 기색이 아니었다.
"서방님, 마음을 가라앉히시고 제 얘기를 마저 들어 보십시오. …이번에 친정아버님의 얘기를 듣고 보니, 그 하녀는 당시 우리 여흥 민씨 척족 정권의 실세 중의 한 분으로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로 계셨던 승당 할아버님께서 조정으로부터 공훈으로 배정받은 두 노비 중의 하나로 소싯적부터 동문수학한 막역지우인 운곡 할아버님에 대한 각별한 우의의 징표로 우리 집에 내려 보내셨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씨가 무던히도 곱고 착했다는 그 하녀도 임오군란 때 반란을 일으킨 부하 군병들을 사전에 막지 못한 죄목으로 참수를 당한 무위영 소속의 구훈련도감 군관의 딸로서 승당 할아버님 순절 후에 한양에 홀로 남은 청관 스님의 생모와는 친자매 사이로 바로 손아래 동생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사실은 저도 그런 말씀을 이번에야 듣고서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기막힌 일이 어디에 또 있겠느냐고요!"
"아니, 그렇다면 우리 친조부와 처조부님께서 임오군란 때 노비가 된 반란군 군관의 두 여식을 동시에 각각 하나씩 나누어 가지고 하녀로 부리셨단 말씀이오?"
경악하는 중산의 두 눈이 의외로 담담하기만 한 박씨 부인의 얼굴을 집어삼킬 듯이 더듬는다. 그는 장인어른으로부터 임오군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형편없는 급료미에 불만을 품고 선혜청(宣惠廳) 도봉소(都捧所)를 습격한 부하 군병들을 사전에 단속하지 못한 죄목으로 처형된 반란군 군관의 여식이 관노로 전락하여 척족 세력의 실세였던 승당 할아버지에게 전리품처럼 주어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그때 노비 신분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진 그 손아래의 친동생도 함께 승당 할아버지에게 전리품처럼 하사되었다가 해천껄의 처가에 우의의 징표로 내려 보내게 된 사실은 금시초문이었던 것이다.
"예, 서방님! 저 역시도 믿고 싶지도 않은 놀라운 일이었지만, 엄연한 사실이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적인 일로 뒤엉킨 두 집안 간의 얘기가 아닌, 슬픈 역사 속의 잔재이기에 우리 친정아버님께서도 남의 일처럼 넘겨 버릴 수가 없어서 혼자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가 서방님이 떠나신 후에 저에게만 따로 말씀을 하신 모양이고요. 그 자매 노비들을 하사 받아 부리셨던 윗분들 당대에는 몰라도 오늘에 이르러 청관 스님이라는 분이 승당 할아버님을 모시던 하녀가 낳은 서출로 확인된 이상 장차 가업을 계승할 우리 세대에서는 반드시 정리하고 넘어 가야할 과제라 여기시고 저에게나마 그분의 이모가 되는 언년이의 얘기까지 함께 털어놓으신 것이 아닐는지요?"
"아무리 슬픈 역사 속의 잔재라고 해도 그렇지, 세상에 어찌 그런 일이…!”
중산은 부인이 들려 준 말이 쉽게 믿기지 않는 듯, 망연자실한 얼굴로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무슨 문제점을 찾아냈는지 미간을 모으며 부인에게 다시 묻는다.
“서울에 남아 있던 노비는 승당 할아버지의 핏줄을 낳았는데, 그렇다면 그때 처조부님께 내려 보냈다는 그 하녀는 그 후로 어찌 되었다는 말씀이오?”
“사실은 두 자매의 처지가 서로 달라졌기 때문에 친정아버님께서 서방님한테 직접 말씀하시기가 난감했던 게 아닐는지요?”
“아니, 사정이 어떻게 달라졌기에 그러오?”
박씨 부인을 쳐다보는 중산의 얼굴이 심상치 않다는 듯이 굳어진다.
“언년이라는 그 하녀는 갑오년 노비 해방 때, 친정 할아버님께서 자유인이 되어 가정을 이루고 잘 살라며 노비 문서를 불태우고 지참금까지 마련하여 방면해 주었으니까 그렇지요!”
“아니, 뭐라고요?”
중산은 놀라다 못해 아연실색을 한다.
“서방님, 제 얘기를 마저 들어 보십시오! 그렇게 노여워하실 일만은 결코 아니랍니다. 우리 친정 할아버님께서 그런 조처를 취하시게 된 것은 서울에 계시는 승당 할아버님께서 당신의 시녀 몸에서 태어난 서출 자식을 적자 못지않게 애지중지하신다는 사실을 뒤늦게 전해 들으시고서 부득이 하게 그런 조처를 취하게 되셨나 봐요. 왜냐하면 일이 그렇게 되었다면 당신께서도 절친이 취해야 할 도리로 그 서자의 이모가 되는 언년이한테도 그에 상응하는 배려를 당연히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겠는지요?”
“그렇다면 장인어른께서 청관 스님을 낳은 손위 하녀의 얘기를 해 주시면서도 해천껄로 내려 보냈던 그 언년이라는 하녀에 관한 얘기는 왜 나한테는 감추고 당신한테만 하셨다는 말씀이오?"
중산은 그 과정이야 어찌 되었던 간에 결과적으로 그들 두 자매의 운명이 대조적으로 극명하게 엇갈렸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신경이 쓰이고 부담스러워지는 모양이었다.
"서방님, 입장을 바꿔놓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친정아버님께서도 무릉 선생이라는 분으로부터 근자에 이르러 표충사 인근의 토굴 움막 은거지에서 승당 할아버님이 의거 순절하실 때까지 침식을 같이하며 시봉을 받들던 떠꺼머리총각이 사실은 하인이 아니라 당신의 하녀가 낳은 서출 자식이라고 귀띔해 주는 것을 듣고서야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그 사실 만으로도 당신께서 이미 느끼셨듯이 서방님께는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닐 거라고 짐작하셨을 터인데, 어찌 그보다 더 충격적일 수 있는 언년이의 얘기까지 한꺼번에 털어놓을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차마 서방님께는 언급하실 수가 없어서 눌러 참으시고, 그 대신 저의 입을 통하여 시간을 두고 차차 아시게 하려고 그리하셨던 것이 아닐는지요?”
"허허, 이거야 원…! 사위의 충격이 겁나서 말 못할 일이 따로 있지, 명색이 백년지객인 나도 자식이라면 자식인데 어찌…!"
천정을 올려다보며 장탄식을 하던 중산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다시 정색을 하며 따지듯이 묻는다.
"부인의 말이 백번 맞다고 칩시다! …그런데 말이오. 그렇다면 부인께서는 왜 근 열흘이 다 되도록 그 동안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이제 와서야 그 언년이라는 하녀의 얘기를 나한테 하는 겐지, 그 까닭이 무엇이오? 거기에는 필시 그만한 곡절이 있었을 게 아니오?"
갑자기 언성을 높이며 박씨 부인을 바라보는 중산의 두 눈이 예사롭지 않게 뜨거운 불길을 뿜어낸다. 하지만 박씨 부인은 친정아버지의 깊은 뜻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 불길 속에서 자신의 몸을 송두리째 태우는 한이 있더라도 그대로 오롯이 감수하려는 듯이 결연히 고개를 끄떡인다.
"예, 서방님! 그렇답니다. 그럴만한 곡절이 있고말고요!"
"그렇다면 여태까지 함구하게 된 그 까닭이 무엇인지 알아듣기 쉽게 어디 한번 자세하게 설명을 해 보시오!"
너무도 뜻밖의 일이라, 자제하려고 애를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 불붙은 중산의 감정은 식기는커녕 자꾸만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의 언성이 갑자기 높아지는 바람에 그때까지 이맛살을 찌푸리며 꼼지락거리고 있던 어린 병준이가 기어이 잠에서 깨어나 그대로 울음을 터뜨렸고, 크게 당황한 박씨 부인은 아기 울음소리가 행여나 밖으로 새어 나갈세라 꽈리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우는 아이를 포대기 째로 서둘러 품에 감싸 안고 흔들면서 달래기에 급급하다. 그러면서 그녀는 더욱 자세를 낮추며 거의 울음에 가까운 목소리로 애원을 하는 것이다.
"서방님, 제발 고정해 주십시오! 언년이가 저의 친정집에 내려오게 된 것은 제가 태어나기도 전인 까마득한 옛날의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승당 할아버님과 운곡 할아버님께서 소싯적부터 깊이 쌓아 온 남다른 우의 때문에 빚어진 일이기도 하고요. 또한 언년이 쪽의 문제는 과거의 일로서 이미 기억에서 멀어져 간 것이지만, 청년 스님이 되어 나타난 청관 스님과 그분의 생모에 관한 문제는 현실 속에 살아 있어서 장래에도 문제가 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인데다, 궁내부 칙임관까지 지내신 승당 할아버님의 위상과 명예와도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손자며느리인 저로서는 한없이 어렵기만 한 시댁의 일로서,『내훈』에서 배운 대로 함부로 입질에 올릴 수 없는 민감한 문제라 말씀을 드릴 수 있는 적당한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느라고 그리하였을 뿐, 다른 의도는 결코 추호도 없었기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제발 노여워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것은 우리 민씨 가문이 처하게 될 미래의 위상과도 관련될 수 있을 만큼, 우리한테는 막중하기 이를 데 없는 민감한 사안이란 말이오! 그런데 부인께서는 시집의 미래보다도 과거에 친정에서 배운『내훈』의 가르침이 그토록 더 소중했더란 말씀이오?"
중산은 임오군란 때 노비가 된 하녀와 승당 할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청관 스님의 얘기를 듣고서도 지금까지 부인한테 함구하고 있었던 자기의 처사는 망각한 채, 『내훈』에서 배운 대로 민감한 시집의 일을 차마 함부로 입에 담을 수가 없어서 그렇게 할 적당한 기회가 오기를 기다려 왔다는 부인의 처사만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문제 삼는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지만 박씨 부인은 그의 이중성과 논리적인 모순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이 없었으며, 설령 생각이 거기에 미쳤다 한들 그것을 내색할 그녀도 아니었다.
"서방님. 방금 말씀 드렸다시피, 우리 친정에 있었던 언년이의 얘기를 하지 않았던 까닭은 이번에 불거진 시조부님의 과거사 얘기를 알기도 전의 일이고, 또 제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 집으로 보내어졌다가 제 나이 겨우 세 살이었을 때 자유인으로 방면되어 마무리가 된 일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거듭 말씀 드리거니와, 지난 단옷날 친정아버님으로부터 승당 할아버님의 서출 자식에 관한 얘기를 듣고서도 지금까지 함구하고 있었던 까닭은 어릴 때 배웠던 『내훈』 교육의 가르침에 따르고자 함이었던 것일 뿐, 다른 뜻은 전혀 없었음을 믿어 주십시오. 그 동안 그 사실을 함구하고 있었던 것도 다른 저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서방님께서 청관 스님의 얘기를 저한테 먼저 흉금을 터놓고 말씀해 주시기를 기다리느라고 그리했던 것뿐입니다. 그러다가 마침 청관 스님의 생모로 여겨지는 여자 스님이 우리 집을 다녀갔다고 하는 바람에 마침 잘 되었다 싶어서 언년이의 얘기도 조심스럽게 전해 드리게 된 것이고요.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무슨 다른 의도가 있는 것처럼 이렇게 노여워하시면 저는 어찌합니까? 그러니 제발 저의 마음을 알아주시고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래도 그렇지요! 임오군란과 관련된 문제는 장차 세상인심과 맞닥뜨리게 될 우리 가문의 미래가 걸려 있는 민감한 문제라는 사실을 부인도 삼척동자가 아닌 이상 잘 알고 있었을 게 아니오?"
"서방님, 밖에서 누가 듣고 있을까 두렵습니다. 제발 언성을 낮춰 주십시오!"
말이 밖으로 새어 나갈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서야 중산은 아차! 싶어서 겨우 마음을 가라앉힌다.
안절부절, 마음을 졸이던 박씨 부인은 중산이 겨우 마음을 가라앉히는 것을 보고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서방님! 그 언년이라는 하녀는 제가 어릴 때 지참금까지 주어서 방면하였기 때문에 민감한 사태에 얽힐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실 이곳 시집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기도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서방님께서 청관 스님의 얘기조차도 전혀 언급하지 않으시는 상태에서 언년이의 얘기를 입에 담는다는 것은 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고요. 그래서 전날, 용화 할머님께서 불공 음식과는 별도로 사찰 음식을 따로 준비하라는 영을 내리셨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기대에 찬 마음으로 그 사실을 서방님께 곧바로 전해 드리면서 내심으로 눈치를 살피게 된 것도 서방님께서 임오군란과 엮여 있는 청관 스님에 관한 말씀을 먼저 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리하였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논리 정연한 박씨 부인의 설명에 말문이 막혀 버린 중산은 속절없이 입맛을 쩝쩝 다시다가 자신이 경솔했음을 뒤늦게 깨닫고 스스로 뉘우치며 겸연쩍게 사과를 한다.
"부인의 말을 듣고 보니 과연 그렇구려! 청관 스님을 낳았다는 승당 할아버지의 하녀가 임오군란 때 참수를 당한 반란군 군관의 여식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그 손아래의 친 여동생까지 해천껄 처가에서 종살이를 하였다고 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그만 언성을 높이는 결과가 되고 말았소! 그러니 잘못 생각한 나를 용서해 주시구려. 정말로 미안하오!"
"서방님께서 제 뜻을 이렇게 쉽게 이해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감복스럽고 고맙기 짝이 없는데, 그렇게 거듭 사과까지 하시다니 당치도 않으십니다."
"그렇게 이해해 주시니 정말 고맙소!"
중산의 언성이 낮아지니 한사코 울어대던 병준이도 거짓말처럼 울음을 그치고 여느 결엔가 다시 잠이 들고 있었다. 중산은 부인이 안고 흔들던 아기를 비단 금침 위의 제 자리에 눕혀서 재우는 것을 지켜보면서 현명하기 짝이 없는 그녀의 속 깊은 마음을 미처 생각지 못한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며 혼잣말처럼 되뇌는 것이다.
"부인의 말을 진작에 알아들었더라면 좋았을 터인데, 내 체면이 아주 말이 아니구려…."
"서방님, 제가 이런 것을 한번 여쭤 보아도 될는지요?"
중산의 마음이 평정되어 마침내 자신의 마음과 합치되는 것을 보고 나서야 박씨 부인도 궁금증이 있어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물어 보는 것이다.
"부인께서도 나한테 물어 볼 말씀이 있다는 말이오?"
"그렇답니다, 서방님! 『내훈』의 서(序)에서 ‘천지의 영(靈)을 타고나 5상(常)의 덕을 머금고 태어난 사람들이 옥과 돌, 난초와 쑥 같은 차이가 생기는 것은 수신(修身)의 도(道)를 바르게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이라 하였고, 또 나라의 정치가 잘되고 못됨도 남자에게만 달린 것이 아니라 부녀자에게도 크게 상관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대개 남자는 호연(浩然)한 마음을 가졌고 뜻은 오묘한 진리를 찾는 데 두어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가 있지만, 다 같은 일인지하(一人之下)의 백성으로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오로지 방적(紡績)과 침선(針線)이 잘되고 못되었는가만 따지고 나랏일을 모른대서야 어찌 부덕을 아는 부녀자라 할 수 있을는지요?"
단아한 얼굴, 오뚝한 콧날, 지혜가 가득 담긴 듯한 그녀의 반듯한 이마에서 잘 익은 연시빛 같은 황촉의 불빛이 반사되어 거울처럼 반짝이며 미끄러져 내린다.
"오, 그래요? 나는 집안 살림살이밖에 모르는 속 깊은 살림꾼인 줄로만 알았는데, 부인의 생각이 이미 거기에 미치고 있었단 말씀이오?"
박씨 부인을 바라보는 중산의 눈에 찬사의 경지를 넘어선 경이로운 빛이 선연하다. 그것은 현명하기 짝이 없는 부인의 진면목을 발견한 놀라움과 설렘 때문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승당 할아버지의 과거사 문제를 기필코 비밀에 부치고자 했던 미혹한 자신에 대한 때늦은 자각과 자괴감에서 비롯된 반작용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서방님, 나라의 정치가 잘되고 못됨도 남자에게만 달린 것이 아니라 부녀자에게도 크게 상관되는 일이라고 어려서부터 배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솔직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지난 연초의 <광복단 사건>으로 시국이 살얼음판으로 변해 버린 이러한 때에 제 친정아버님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우리 내외에게 임오군란과 엮여 있는 승당 할아버님의 민감한 과거사 문제를 굳이 알려 주셨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우연찮은 기회에 그 동안 밖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박씨 부인의 재기 넘치는 통찰력의 진면목이 속속 드러나면서, 중산을 하늘같이 우러러 보는 듯한 그녀의 눈빛 또한 흑진주처럼 영롱한 빛을 더욱 띠며 반짝이고 있었다.
"아까는 몰랐지만, 부인의 뜻이 정히 그러하다면 내 솔직하게 털어놓으리다. 장인어른의 의도를 속속들이 다 알 수는 없으되, 망국의 한을 품고 의거 순절하신 승당 할아버님의 명성과 우리 가문의 위상과 명예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종손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라는 뜻으로 취하신 조처가 아니겠소?"
물론, 이것은 지난 단옷날 신의주에서 왔다는 정체불명의 사나이가 지난 임오년에 무위영 소속의 구훈련도감 군병들이 선혜청 도봉소를 습격하여 군란을 일으켰을 때, 그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던 척족정권의 실세였던 여흥 민씨 일파가 나라가 망한 지금도 향리 곳곳에서 가세를 유지하면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얘기는 이미 듣고 있었다며 자기에게 곱잖은 시선을 보냈던 일을 염두에 두고서 하는 말이었다.
"이제 알고 보니, 역시 서방님께서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던 거로군요?"
박씨 부인 역시 복벽주의가 대세이던 의병운동의 판세가 공화주의 세력들이 급부상하면서 자기네 척족들에게 심히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는 현상을 내심 우려하고 있는 때문인지, 한 줄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지혜로운 그녀의 단아한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렇다면 부인께서는 아까 낮에 다녀갔다는 그 여자 스님이 누구인지를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말씀이 아니시오?"
"예, 서방님! 옥이네한테서 얘기를 듣는 순간부터 직감적으로 갖게 된 느낌입니다만, 저의 생각으로는 아까 왔다 간 그 비구니 스님이야말로 승당 할아버님의 시중을 들면서 청관 스님과 같은 범상치 않은 서출 자식을 낳은 서울살이 때의 그 하녀가 분명하지 않겠습니까?"
"글쎄요, 그렇긴 하오마는…! 그런데 해천껄 처가에서 갑오개혁 때 면천 방면한 그 언년이라는 하녀일 수도 있지 않겠소? 사람의 일이란 모르는 일이니…."
"하지만 우리 친정에 있다가 면천하여 방면된 언년이는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친정아버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지요. 승당 할아버님께서 의거 순절하실 때, 표충사 절에서 해마다 사명대사의 향사를 주관해 온 무릉 선생이란 분에게 그 동안 토굴 움막집에서 침식을 같이 하며 당신 곁에서 시봉살이를 하였던 서출 자식을 사명대사의 법손(法孫)이 되도록 주선해 달라는 유지를 남기셨고, 또 승당 할아버님 사후에 서울에 남아 있는 그 서출 자식을 낳은 생모의 뒤를 보살펴 주려고 우리 운곡 할아버님께서 사람을 보내어 수소문해 봤더니, 그 생모마저 승려가 된 아들의 뒤를 따라 유산으로 남겨 주신 북촌 사가를 정리하여 한성에 있는 어느 절간으로 들어가 미련 없이 중이 되어 버렸더라니 말씀입니다!"
"성씨를 속일 수는 있어도 핏줄은 속일 수가 없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갑오개혁 때 노비에서 해방된 해천껄의 그 언년이라는 하녀도 명색이 뼈대 있는 무반 군관의 여식이라니 자유의 몸이 되어서도 팔자를 고칠 생각을 하기보다는 부하 장졸들의 폭거로 비명에 간 부친의 극락왕생을 빌며 여생을 중이 되어 살고자 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지 않겠소?"
"그야 그리할 수도 있기는 하겠지요! 하지만 승당 할아버님의 시중을 들었던 하녀의 몸에서 난 핏줄이 청관 스님이라는 범상치 않은 청년 학승이 되어 나타난 것을 보면, 홀로 남은 그분의 모친 되는 이도 불가에 귀의한 자식을 따라 머리를 깎고 중이 된 것으로 보는 것이 훨씬 더 자연스러운 이치가 아닐는지요? 더구나 지나치는 길에 우리 집을 일부러 찾아와서 용화 할머님의 안부까지 물어 보고 간 것도 그렇고 말입니다."
"하기야, 오늘 찾아온 바구니 스님이 해천껄 처가에서 데리고 있었던 그 언년이라는 하녀였다면 우리 집이 아니라 해천껄로 찾아가는 게 이치에 맞을 터이니, 부인의 생각이 역시 옳을 것 같구려!"
모처럼 의견의 일치를 이룬 그들 부부는, 그러나 한 동안 말이 없었다. 그 동안 운명의 장막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던 크나큰 의문점 하나가 속 시원히 풀렸건만, 방 안에는 용화 할머니가 불공을 하러 떠나면서 남기고 간 의혹만큼이나 크고 무거운 침묵이 오래도록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속에서도 중산은 용화 할머니와 부친이 당신들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는 일체 알려고도 하지 말 것이며, 언행에 대해서도 왜 그렇게 엄중하게 함구령을 내려가며 애써 단속하였는지를 이제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관 스님의 생모가 분명해 보이는, 아까 낮에 찾아왔던 그 비구니 스님이 용화 할머니의 안부를 묻고 간 까닭에 대해서는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바가 없지 않았다.
"아까 석양 무렵에 다녀간 그 비구니 스님 말이오. 그 스님이 청관 스님의 생모가 확실하다면, 무슨 까닭으로 우리 용화 할머니의 안부를 묻고 갔다고 생각하시오?"
"설마하니 나쁜 마음으로 그리하기야 하였겠습니까?"
주저하지 않고 말하는 부인의 대답에 중산은 무겁게 고개를 흔든다.
"아니, 사람의 마음이란 모르는 것이니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는 일이오. 혹시라도 자기네 인척들 중에서 우리 집안을 음해하려는 자가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우리 용화 할머님의 안위가 걱정이 되어 몸소 한번 확인하러 왔을 수도 있지 않겠소?"
"그 여자 스님이야 승당 할아버님의 남다른 배려로 지난날의 아픔과 우리 척족 집안사람들에 대해 품었던 원한이 모두 극복되었다 해도, 아직도 한을 품고 사는 자들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안타까운 마음에 그리할 수도 있었겠지요."
"그렇다면 부인 생각에는 지난번에 처조부님께서 용화 할머님이 친견하시도록 직접 전하라고 주셨던 밀서와 용화 할머니의 이번 표충사 불공 행차도 승당 할아버지의 극락왕생을 비는 단순한 천도제 외에 혹시 그와 같은 일들과 무슨 관련이 있을 것 같지는 않으오?"
중산의 머릿속에서는 지난 단옷날 운곡 선생으로부터 용화 할머니께 전하라는 밀서를 건네받는 자리에서 만났던 의성의 호암毫巖) 선생과 <광복단 사건>으로 읍내 헌병대 감옥에 갇혀 있는 남포(南浦) 선생의 얼굴이 연이어 맴돌면서 마치 때를 기다리는 폭발물과도 같은 불길한 예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글쎄요…. 잘은 모르지만, 친정아버님께서 해 주신 말씀을 되짚어 보면 용화 할머님의 불공 목적과 관련된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단서를 찾아낼 수 있지 않겠는지요?"
"아, 그래요?"
심각하게 긴장하고 있던 중산의 얼굴에 일순 화색이 돈다.
"제가 친정아버님으로부터 듣기로는 승당 할아버님 곁에서 시중을 들었던 그 노비는 참수를 당한 부친이 비록 부하 군병들이 선혜청 도봉소를 비롯하여 동별영(東別營)과 경기감영(京畿監營)의 무기고를 습격하고 우리 민씨 척신과 개화파 관료의 집을 습격하는 폭거를 일으키는 바람에 억울하게 반란군 수괴로 엮이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그 바람에 자시는 노비의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행실이 음전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무반의 여식다운 여인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랬던지, 그가 낳은 서자도 여느 명문대가의 귀공자들 못지않게 어려서부터 영특한 천재성을 보였다고 하고요.”
그런 까닭으로 승당 대감도 적자나 다름없이 무던히도 귀여워하면서 어릴 때부터 시간이 나실 때마다 무릎에 앉히고 천자문을 비롯하여 『소학』과 『동몽선습』을 가르쳤으며, 표충사 인근의 토굴 움막에서 은둔생활을 할 때도 제자백가의 각종 경서와 병서들까지를 몸소 가르쳤다는 것이다. 또 서울살이를 청산하고 낙향하실 적에도 무반의 여식에서 노비로 전락하여 당신의 자식까지 낳아 기르면서 성심으로 받들어 모신 기구한 운명의 여인에 대한 보상으로 한양 북촌의 대궐 같은 사저를 물려주고 제반 생활의 여건까지 부족하지 않게 마련해 주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특별한 배려에도 불구하고 승당 대감이 망국의 한을 품고 세상을 떠나고 나자 그 하녀는 노후의 안락을 취하지 않고 북촌 저택을 비롯한 그 모든 유산들을 절간에 시주로 내놓고는 아무 미련도 없이 머리를 깎고 중이 된 것을 보면, 예사로 보아 넘길 수 있는 여인은 결코 아니라는 얘기였다.
“그분이 그렇게 한 것도 무반의 딸로서 지난날 겪었던 은원(恩怨)의 소산일 수도 있겠고, 다른 한편으로는 임오군란 때 선혜청 도봉소를 습격하고 그 당시 선혜청 당상 겸 병조판서로 계시던 민겸호(閔謙鎬) 대감을 살해한 부하 군병들의 발호를 사전에 차단하지 못한 죄목으로 참수된 부친 때문에 노비 신세가 되고 만 자기네 자매를 거두어 생활의 지붕이 되어 주셨던 승당 할아버님에 대한 보은 정신에서 비롯된 인간적인 선택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하셨지요."
"장인어른의 생각대로 그게 사실이라면 오죽이나 좋겠소? 그러나 그들 모자의 뜻과는 상관없이 임오군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남은 군병들과 피해를 입은 주변 사람들의 원한 맺힌 끈질긴 발호가 이제도 계속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예감이 드니 더욱 큰 일이 아니겠소?"
"서방님, 그렇게 걱정부터 먼저 하실 일이 아니라 저희 친정아버님께서 우리에게 그러한 기막힌 과거사 얘기를 소상하게 말씀해 주신 의도가 무엇인지를 그것부터 먼저 되짚어 보는 것이 순서가 아닐는지요? 왜냐하면 승당 할아버님의 피를 받아 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그 서출 자식이 사명대사의 법통을 이어 받아 출중한 청년 학승이 되어 다시 나타났다는 말씀을 듣고 그런 인물이라면 왕조복원 사업에 절치부심하고 있는 우리 가문에 실보다는 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셨을 수도 있겠고, 다른 한 편으로는 청관 스님의 외가 집안에 임오군란 때 집안이 풍비박산이 난 원한으로 아직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는 자가 있음을 감지하셨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지요.”
“그렇다면 장인어른께서 우리를 따로 불러서 청관 스님의 애기를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하신 까닭도 비록 서출이지만 사명대사의 집계 법손으로서 위풍당당한 청년 학승이 되어 돌아왔으니 한번 만나 보는 것이 같은 혈육으로서의 도리가 아니겠느냐는 뜻이 아니라, 윗분들께서 아직도 못 풀고 있는 숙제가 있을 수가 있으니까 우리더러 윗분들 모르게 대신 알아서 처리해 드리게 하려는 뜻이었다 그 말씀이오?”
“그렇답니다, 서방님! 윗대에서는 역사적인 혼란 속에 그런 엄청난 불상사가 일어나 원한과 반목의 세월을 살아 왔지만, 이제는 세상이 바뀌어 왜놈들 식민지 치하에서 양쪽 모두가 같은 운명에 놓인 동족으로서 고통을 함께 겪고 있는 처지가 아닙니까? 그러니 가문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문중 종손인 우리가 나서 가지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마음으로 윗대의 아픔을 걷어내고 서로 화합하여 광명한 새 시대를 열어 나가도록 숙제를 내 주신 것으로 보는 것이 어느 모로 보나 이치에 합당할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렇잖아도 왕조복고 운동 이외에는 내가 아버님을 대신하여 당주 일을 챙기고 있으니까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셨을 수도 있겠구려! 하지만 윗분들 모르게 문 밖으로 운신하기도 어려운데 조선 천지의 명산 대찰들을 찾아 뜬구름처럼 돌아다니며 탁발 수행 중이라는 청관 스님을 무슨 수로 만난단 말이오? 더구나 지난 단옷날 무봉사에서 운 좋게 만났다가 면전에서 보기좋게 따돌림을 당하고 말았는데…!"
그러면서 중산은 가시처럼 목에 걸리던 얘기 하나를 이제야 비로소 부인에게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부인, 만시지탄이 없지 않으나 내 얘기를 한번 들어 보시오. 사실은 지난 단옷날 친정으로 가는 당신과 헤어져 감내 마을에 갔을 때, 겹겹이 에워싼 <감내 게줄 당기기> 구경꾼들 속에서 조선 황실을 비롯하여 지난날 권력의 실세였던 우리 척족들과 권문세가들을 두고 나라를 말아먹고도 누구 하나 책임을 지고 나서는 자가 없다며 나를 지척에 두고 고성으로 싸잡아 비난하는 낯선 중년 사내가 있었다오! 그래서 그자한테 대드는 김 서방을 제지하고 나서 세상인심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알아 볼 요량으로 정중하게 객줏집으로 데려고 가 주안상을 앞에 놓고 대작을 하면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게 되지 않았겠소! 그런데 말이오. 내가 동산리에 사는 여흥 민씨 종가의 종손이라고 신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신의주에서 미곡상을 하면서 대종교 사교 노릇을 하고 있다고 자기를 소개한 그 사내가 나한테 대놓고 그럽디다. 지난 임오년에 무위영 소속의 구훈련도감 군병들이 선혜청 도봉소를 습격하여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들의 공격 대상이 되었던 척족정권의 실세였던 여흥 민씨 일파가 나라가 망한 지금까지도 향리 곳곳에서 가세를 유지하면서 위세를 떨치고 있다는 얘기를 자기도 이미 듣고 있었다고 말이오!"
그때, 그 사내는 이 말을 지나가는 말처럼 흘렸지만, 임오군란에 대하여 맺힌 것이 있는지 그의 말 속에는 가시가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박씨 부인은 중산의 그런 얘기를 듣고서도 별로 놀라는 기색이 아니었다.
"옛 말에 때린 자는 쉽게 잊을 수 있어도 맞은 자는 평생토록 잊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요. 그러니 아직도 임오군란 때의 일로 한이 맺힌 예전의 군병들이나 그 후손들이 의병 부대와 독립군 부대에서 활동하면서 우리의 왕조복고 운동을 방해하고 있을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감내 게줄 당기기> 놀이마당에서 나라를 망하게 한 책임 문제를 놓고 비분강개하면서 황실은 무론 우리 여흥 민씨 척족들과 권문세도가들을 싸잡아 비난하는 사람이 있었던 것을 보면, 임오군란 때의 원한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면 그보다 훨씬 심한 해코지를 할 수도 있겠구려!”
그러면서 중산은 비로소 천기에 버금간다던 운곡 선생의 서찰 얘기를 비로소 입에 담는 것이었다.
“여보, 사실은 지난 단옷날 운곡 할아버님을 찾아뵈었을 때 천기에 버금간다는 밀서를 전달받아 용화 할머님께 전해 드린 바가 있었다오. 그런데 내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그게 마음에 걸리는구려. 왜냐하면 지난 1월 달에 <광복단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그 동안 비밀결사 활동을 벌여 왔던 전국 각지의 지부와 연락소에서 활약하던 주요 인사들 대부분이 왜놈 경찰과 헌병들한테 체포를 당하게 된 것도 동족인 우리 조선 사람의 밀고 때문이었다고 하니 말이오!”
중산이 말한 바와 같이, 1913년 3월에 풍기 한림촌의 채기중이 중심이 되어 <풍기광복단>이란 이름으로 국내 최초의 독립운동 단체로 첫발을 내디뎠던 <대한광복단>이 소위 <광복단 사건>으로 전국의 조직망이 와해되면서 최후를 맞이하게 된 것도 바로 천안의 이종국이란 우리 동족의 밀고가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그 사건의 진행 과정은 대강 이러하였다. 지난해 11월에 채기중, 유창순, 강순필 등이 경북 칠곡의 친일 부호인 장승원을 처단한 후 ‘曰維光復天人是符聲此大罪戒我同胞聲戒人 光復會: 외치는 바는 광복이다. 하늘과 사람이 도리에 일치된다. 너의 큰 죄를 꾸짖고 우리 동포에게 경고를 주노라. 꾸짖고 경고하는 자 광복회 ’란 격문을 내걸었던 바가 있었으며, 올해 1월 24일에 또다시 충남 아산군의 도고면장 박용하에게 사형 선고문을 제시하고 처단함으로써 <대한 광복단>의 존재가 만천하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 전국 도처의 친일 지주들의 집에도 그와 유사한 견문들이 투입되기 시작하였는데, 문제는 중산의 집 후원에서도 그와 같은 경고성의 격문과 몇 차례나 발견되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1917년 12월에 동족인 천안의 이종국이란 자가 천안경찰서에 밀고하는 바람에 <대한광복단>의 전국적인 조직망이 발각되는 사태가 벌어진 바가 있었으며, 그것을 토대로 대대적으로 펼쳐진 우편물의 검열로 인하여 지난 1월 달에 이르러 그 동안 치밀하게 활약해 온 암살단과 주요 인사들 수십 명이 체포 구금되었고, 가까스로 화를 모면한 김좌진, 노백린을 비롯한 나머지 인사들마저 모두 중국으로 망명하는 바람에 <대한광복단>은 <풍기 광복단>으로 출발한 지 만 5년만에 허망하게 지리멸렬 사태를 맞이하게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부인의 얘기를 듣고 보니 임오군란 때 집안이 풍비박산이 된 당사자들이나 그 후손들이 원한을 품고 우리 복벽파 유림들과 우리 문중의 왕조복고 운동에 대해 음해하려는 자들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니 사실은 나도 심히 걱정이 되는구려!"
하지만 박씨 부인은 그런 사실마저도 이미 간파하고 있었는지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의미심장하게 묻는 것이다.
“서방님, 그렇다면 용화 할머님께서 올리시는 이번 표충사의 천도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요?”
"글쎄요! 표충사는 이름 그대로 충의정신이 깃든 호국 사찰로서 사명대사를 위시하여 서산대사와 기허대사 등, 임진란 때 명성을 크게 떨쳤던 의승대장 세 분을 주벽 인물로 모신 고곳 <표충서원>에서 해마다 밀양 유림에서 사찰 측과 합동으로 추모 제향을 올리고 있는데다가, 그곳 명부전에는 또 사십구제를 올렸던 승당 할아버님의 위패까지 모셔놓고 있으니까 용화 할머니 나름대로 무슨 의도를 가기고 계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요. 그렇지만 처조부님의 밀서를 받아 보시고는 거기에 대해서 일체의 설명도 없이 나더러 당신께서 하고 계시는 일에 대해서는 알아서는 안 되고, 또 아예 알려고도 하지 말며 일체를 함구하라고 엄명을 내리셨으니 그 깊으신 속을 낸들 어찌 알 수가 있겠소?"
중산은 대충 그 정도로 얘기하고 나서 부인의 생각이 궁금한 나머지 그녀의 안색을 유심히 살핀다.
"서방님, 친정아버님께서는 우리 밀양 유림의 일각에서도 나라를 되찾아 왕조를 복원하려는 복벽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나라를 되찾아 왕조를 복원하려는 뜻이 누구보다도 간절하실 용화당 할머님과 중사랑 시아버님께서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어떤 어려움을 겪고 계시는 부분도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해천껄 친정아버님께서도 그런 속사정을 눈치 채시고 딱한 나머지 우리더러 당신들 모르게 청관 스님이라도 한번 만나보면서 그 해결책을 찾아 보라는 의도로 그렇게 권유하셨을 테고요. 그리고 용화 할머님께서 저의 친정 할아바지의 밀서를 맏아 보시고 나서 표충사 절에 가서 천도제를 올리기로 작정하신 것도 망국한으로 의거 순절하시는 순간에도 사명대사의 직계 법손이 되도록 길을 열어 주려고 애를 쓰셨던 승당 할아버님의 유지를 생각하시고 청관 스님을 각별히 위하는 마음으로 손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게 되신 것이 아닐는지요?"
청관 스님의 일을 계기로 친정 어르신들을 통하여 생활 전반에 걸쳐 여러 가지로 이야기들을 들은 바가 많았는지, 박씨 부인은 시집의 어른들이 도모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도 중산 이상으로 이미 알 만큼은 다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임오군란의 잔재인 승당 할아버님의 과거사 문제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까닭도 청관 스님의 모자가 던져 주는 부담감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어려움에 봉착한 왕조복원 사업 문제 때문이다 그 말씀이오?"
"예, 서방님! 이것은 아녀자의 좁은 소견입니다만, 저의 친정아버님께서 우리를 따로 불러 임오군란과 얽혀 있는 청관 스님의 출생에 관한 비밀 얘기를 은밀히 해 주신 것도 사실은 그 당시에 피눈물로 얼룩진 여러 가지 문제들 중에서 용화 할머님이나 시아버님께서 직접 해결하려고 팔을 걷어붙이고 전면에 나서기에는 남들의 이목도 있고 하여 여러 모로 어려운 부분이 있었던 속사정 때문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래서 다음 세대들인 저희들이 대신 그 해결의 실마리를 한번 찾아 보게 하려고 청관 스님을 만나도록 각별히 권하신 게 아닌가 싶은데, 서방님의 생각은 어떠하온지요?”
밤은 점점 더 깊어만 가는데 집 뒤의 동산에서는 죽은 촉나라 망제(望帝)의 화신이라고 전해지는 두견이의 처절한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그 소리는 마치 임오군란 때 죽은 뭇 영혼들의 원한과 살아남은 유족들의 가슴 속 깊이 남아 있는 원한을 그대로 대신하는 듯이,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쥐어짜게 할이만큼 구성지고도 처절하였다.
그들 두 젊은 종손 부부는 그 소리를 귀담아 들으면서 왕조 복원 사업에 매달리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용화 부인과 영동 어른의 엄명으로 그 문제에 대해서는 감히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청관 스님 모자와 관련하여 필운 선생이 던져 준 숙제에 대하여 지금 당장 무엇이 문제가 되며, 또한 그 해결책이 무엇인지에 대해 골몰하고 있었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중산이 비로소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용화 할머님께서 국권을 회복하는 일만큼 우리한테 화급하고 지중한 문제는 없다고 입버릇처럼 늘 말씀하셨으니까, 청관 스님 모자의 문제도 그 일과 깊은 연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나도 들기는 하오. 하지만 당신네들이 하고 계시는 일에 대해서는 일체를 함구하시며 우리가 아예 접근조차 하지 못하게 단속이 지엄하기 이를 데 없으니 이거야말로 소경의 술래잡기 형국이 아니고 무엇이겠소?"
그러자 박씨 부인은 갑자기 진지해지는 얼굴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조심스레 드러내는 것이었다.
"서방님. 그런데 저희 친정아버님께 청관 스님의 얘기를 은밀히 귀띔해 주셨다는 무릉 선생이란 사람은 어떤 분이시며, 또 무슨 까닭으로 하필이면 사돈지간인 우리 친정아버님께 임오군란과 관련된 승당 할아버님의 과거사 얘기를 해 주신 거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아, 그야 보나마나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생각으로 당사자들을 빼고는 우리 집과 밀양 유림의 사정을 가장 잘 알고 계시는 분이 장인어른이시기에 그리하셨겠지요! 무릉(武陵) 인익규(安益圭) 선생이라면 우리 밀양 유림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원로 유학자 중의 한 분으로서, 단장면(丹場面) 태룡리(台龍里)의 유서 깊은 고촌인 태동(台洞) 부락의 터주대감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임진란 때 의승대장으로 혁혁한 공을 세우신 사명대사를 비롯한 서산대사, 기허대사 등, 세분 호국승들을 주벽(主壁) 인물로 모신 표충사 경내의 표충서원에서 해마다 춘주로 올리는 봉향대제 때마다 밀양 유림 측을 대표하여 사찰 측과 함께 집례를 맡아 보게 된 것이 아니겠소? 더구나 우리 승당 할아버지, 운곡 처조부님과 함께 동문수학한 절친 삼인방 중의 한 분으로서 우리 승당 할아버지의 유지에 따라 청관 스님을 일찍이 왜놈들이 일으킨 임진 때의 호국 영웅이신 사명대사의 직계 법손이 되도록 주선을 해 주신 장본인이시라니 오죽했겠소?”
“그렇다면 무릉 선생께서 그 동안 승당 할아버님께서 순절하신 후, 거의 십 년이 다 되도록 일체를 함구하고 계시다가 뒤늦게 임오군란 때 반란군의 여식으로 관노로 전락한 하녀의 몸에서 난 승당 할아버님의 핏줄이 표충사 근처의 은거지에서 하인 행세를 하며 시봉을 받들다가 할아버지 순절 후에 곧바로 입산하여 청관 스님이라는 청년 학승이 되었다는 자세한 사연과 함께, 그 승당 할아버지의 핏줄이 성 안의 무봉사 절에 와 있다는 사실을 우리 친정아버님께 알려 주신 까닭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서방님께서 두고두고 심사숙고해 보신 적은 있으신 건가요?”
“글쎄요…. 그야 승당 할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호국 명승인 사명대사의 법손이 되도록 주선해 준 떠꺼머리 서출 자식이 출중한 청년 학승이 되어 다시 나타난 것을 보고 감개무량하였기 때문이 아니겠소? 더구나 태룡리의 광주 안씨(廣州 安氏) 하면 조선 헌종 때에 만포(晩浦) 안유중(安瑜重), 성재(省齋) 안정중(安珵重), 괴천(槐泉) 안수중(安琇重) 등, 세 형제들이 부북면(府北面) 전사포리(前沙浦里)에서 그곳으로 이거하여 정착한 후에 단연정(亶然亭)이란 제사(齋舍)와 서당을 짓고 자손들에게 학문과 가업을 장려하여 대대로 큰 인물들을 배출해 온 명문 호족인데, 그 집안의 큰 어른이시니 아무래도 승당 할아버지에 대한 못다 한 신의와 나랏일과 관계되는 무슨 큰 뜻이 있었기에 그리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오마는….”
중산의 입에서 그런 얘기가 줄줄 흘러나오자, 그제야 박씨 부인은 부창부수의 모범을 보일 심산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목청을 가다듬고 무릉 선생 집안에 관한 말을 이어 가는 것이었다.
“또, 그 집안의 시헌(時軒) 안희원(安禧遠) 선생이라는 분은 대과에 급제하여 승문원 권지부정자를 시작으로 여러 벼슬을 지낸 후에 고종 28년(1891년)에 승정원 동부승지를 사직하고 귀향하였다가, 광무 7년(1903년)에 관찰사 박제흥(朴齊興)의 주천으로 비서원승(秘書院丞)을 겸하여 장례원(掌禮院) 장례(掌禮)에 제수된 바가 있었지요. 그 뒤, 그분은 갑신정변 때 청나라 장수 원세개(元世凱)가 우리 고종 황제 폐하께 독대를 청하였다는 말을 듣고 분개하여 황제 폐하께 진언하기를, "원(元)의 공이 비록 중하지만 외국의 사신이고 신 등은 못났어도 내신(內臣)인데 어찌 외신(外臣)과의 독대를 용납하겠느냐며 물러가지 아니하였고, 나라가 망하자 융희처사(隆熙處士)로 자처하며 지금도 부북면 삽포(사포리)에서 노구를 무릅쓰고 두문불출하며 성호(星湖) 이익(李瀷) 선생의 전집 간행에 전념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박씨 부인은 청관 스님의 일로 인하여 친정아버지 필운 선생으로부터 여러 가지 얘기들을 두루 들었는지, 중산 못지않게 무릉 선생과 그 집안의 내력에 대해서도 알 만한 사실들은 이미 다 꿰뚫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릉 선생이 장인어른께 청관 스님의 얘기를 전해 주신 것도 임진란 때에 왜놈들을 크게 무찔렀던 의승대장인 사명 스님의 직계 법손으로서 당당한 풍모를 갖추고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 말씀이시오?”
"예, 서방님! 그런데 우리 친정아버님께서 서방님더러 청관 스님을 집안 어르신들 모르게 은밀히 한번 만나 보라고 권하시면서 특별히 당부하신 말씀은 없으셨는지요?"
"아, 그야 물론 있었지요! 청관 스님이 사명대사의 법손이 된 사실과, 하녀의 몸에서 난 서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인물됨이 보통이 아님을 강조하시면서 이러한 때에는 천군만마도 좋지만, 우리 앞에 사명대사와 같은 걸출한 불세출의 인재가 다시 태어난다면 좋지 않겠느냐고 감회 어린 말씀을 하셨지요! 장인어른께서 <광복단 사건>이 터지고 난 시점에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면, 아마도 청관 스님이 비록 노비의 몸에서 태어난 승당 할아버지의 서자이기는 우리에게 누가 되고 짐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큰 힘이 되리라는 기대감에서 그리하시지 않으셨는가 싶소이다마는…."
"서방님, 지금까지 시댁에서는 그 존재조차도 일체 밝히기를 꺼리고 있을 정도로 크게 부담이 되었던 인물을 두고 우리 친정아버님께서 그토록 곡진히 만나 보기를 권하셨다면, 거기에는 필시 그 이상의 다른 숨은 곡절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는지요?"
"하기야 아까 부인께서도 말씀하셨듯이, 장인어른께서도 우리한테 직접적으로 밝히기가 거북스러운 사실이 그분의 가슴 속에 남아 있을 수도 있지 않았겠소?"
"서방님, 그러시다면 청관 스님의 종적은 물론 피해 당사자인 그분 모친 자매들의 형편에 대해서도 한번 알아보심이 어떨는지요? 그래야 윗분들께서 굳게 함구하고 계시는 그 내막에 대해서 무언가 가닥을 잡을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지당한 말씀이오! 지금으로서는 아무래도 청관 스님부터 먼저 한번 만나보는 것이 급선무일 것 같구려!"
"그러시다면 청관 스님이 표충사에서 얼마 동안 행자 노릇을 하다가 비구계(比丘戒)를 받은 후에 연무사승(鍊武師僧)을 따라 그분들의 큰스님이 조실(祖室) 스님으로 계시는 동래 범어사에 승적(僧籍)을 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서방님께서 초량의 우리 미곡창이나 동래 객사에 행차하실 기회가 생기는 대로 그쪽부터 은밀히 한번 왕림해 보심이 좋지 않겠는지요?"
"허허, 그러고 보니 그 말씀부터 진작에 하셨으면 내 금방 알아들을 것을, 종손인 나로 하여금 우리 문중이 처해 있는 현실 문제를 다시금 하나하나 되짚어 보게 하려고 지금까지 그리도 길게 뜸을 들이며 복잡하게 장광설을 늘어놓으셨다는 말씀이오? 이제 보니 당신이 남자로 태어났더라면 지덕을 두루 갖춘 사내대장부로서 대단한 전략가가 되고도 남았을 것 같구려! 허허허….”
중산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러나 아주 만족스럽고 기꺼운 얼굴로 부인을 바라보며 껄껄 웃는다.
“서방님, 바쁜 일일수록 둘러서 가고,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넌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생활의 지혜가 담긴 옛말을 그대로 행한다고 해서 손해 볼 일도 없을 테고요.”
“지당하신 말씀이오! 아까 어렸을 때부터 배웠다는『내훈』얘기를 하면서 나라의 정치가 잘되고 못됨도 남자에게만 달린 것이 아니라 부녀자에게도 크게 상관된다고 하더니, 당신이야말로 이번 기회에 아주 부창부수의 모범을 보이려고 작정하신 모양 같구려!"
중산은 모처럼 요조의 지혜로 내조의 진면목을 그대로 보여 주는 부인의 두 손을 마주 잡으며 얼굴을 활짝 펴고 웃는다.
하지만 만행(萬行) 길에 올라 전국의 유명 사찰을 찾아 떠돌아다니면서 탁발 수행 중이라는 청관 스님을 윗분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감쪽같이 만나 보기란 방만한 문중 대소사를 부친 대신 맡아서 행하고 있는 그로서는 쉽게 성사시킬 수 없는 만만치 않은 난제가 될 것임은 분명하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해마다 가을 추수가 끝나면 수천 석이나 되는 미곡 출하를 위하여 미곡 창고가 있는 부산 초량과 동래 객관을 다녀오는 게 관례였으므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다렸다가 그때의 기회를 이용해 보는 것이 방만한 문중의 일상사를 책임지고 처리해야 하는 문중 종손인 그로서 취할 수 있는 최상의 방책일 터였다.
"친정아버님께서 저에게 어릴 적에 배웠던 『내훈』 교육을 일깨워 주시면서 천기(天機)와도 같은 시집의 비밀을 저에게 말씀해 주시면서 여필종부(女必從夫)의 소임을 다하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는데, 제가 어찌 그 일에 무심할 수가 있겠습니까!"
중산의 전에 없던 칭송에 박씨 부인은 얼굴을 붉히면서도 그에게 두 손을 내맡긴 채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남편에 대한 기꺼운 믿음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밝게 웃는다.
"고맙소, 부인! 이제야 답답하던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구려!"
중산은 비로소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 특단의 함구령과 경계령이 내려진 가운데 장인어른이 던져 준 숙제의 진의를 깨달음과 동시에 자신이 헤쳐 나가야 할 길을 제대로 찾았다는 생각에 모처럼 답답하던 가슴 한쪽이 뚫리는 것을 느끼면서 부인의 상체를 가만히 가슴에 쓸어안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도 두견새 소리는 여전히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