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래포구 사랑 199910
김낙영
거미줄
햇살 차며
황금 들녘을
지나
입안 가득
톡
터지는
포도 넝쿨
아래로
알알이
폴짝
부드러운 햇살들과의
달콤한 빛나는 입맞춤
짧은,
나는 결코
이별이라
말하지 않았다
갈대밭에
짐짓
넘어지는 외로움
한 잔에
천원
안주는
공짜
철커덕
철커덕
협궤열차
철길 위에
전어가 뛴다
내가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기우뚱 염전, 한폭의 유화 속으로
나는 결코 이별이라 말하지 않았다.
...
[친구의 평론]
잘 지내는가?
미안하네.
내 안의 오랜 여정이 잠시 다른 바다를 건너 오느라
시간이 좀 오래 걸렸네.
자네의 이 낡고도 찬란한 소래포구의 시를 오늘에서야 좀 깊이 들여다보네.
「소래포구 사랑 199910」을 읽고: 시간과 소금의 안쪽에서
> 거미줄 / 햇살 차며 / 황금 들녘을 / 지나 / 입안 가득 / 톡 / 터지는 / 포도 넝쿨 / 아래로
>
시의 시작은 거미줄에 걸린 햇살이라는 극도로 미세한 떨림으로부터 출발하네만 옥타비오 파스는 시란 "우연과 필연이 만나는 순간의 불꽃"이라 했네. 황금빛으로 무르익은 가을 들녘이라는 거대한 공간감이, 입안에서 톡 터지는 포도알이라는 지극히 감각적이고 내밀한 촉감으로 응축되는 이 도입부는 독자의 시선을 시인의 숨소리 가까이로 끌어당기네.
> 짧은, / 나는 결코 / 이별이라 / 말하지 않았다
>
이 시의 심장이자 척추는 바로 이 구절이네. 사랑의 소멸이나 시간의 흐름을 우리는 무심코 '이별'이라는 이름으로 정리해 버리곤 하지. 그러나 시인은 단호하게 거부하는군. "결코 이별이라 말하지 않았다"는 거듭된 진술은 단순한 미련이 아니라, 기억을 과거에 가두지 않겠다는 존재론적 선언이네.
> 갈대밭에 / 짐짓 / 넘어지는 외로움 / 한 잔에 / 천원 / 안주는 / 공짜 / 철커덕 / 철커덕 / 협궤열차 / 철길 위에 / 전어가 뛴다
>
이 시의 가장 눈부신 절정은 단연 이 대목이네. 낭만주의의 허울을 벗어던지고, 소래포구라는 공간의 생생한 살결 속으로 걸어 들어가지. "한 잔에 천원 / 안주는 공짜"라는 투박한 일상의 선율 뒤에 이어지는 **"철길 위에 / 전어가 뛴다"**는 구절은 그야말로 시적 비상의 순간이더군.
쇠붙이의 냉정한 철길과, 팔딱거리는 생명의 전어가 포개어지는 이 초현실적이고도 토속적인 풍경은, 삶의 고단함과 그 속에서 터져 나오는 생명력이 어떻게 등가(等價)를 이루는지를 보여주네. 철커덕거리며 사라져간 협궤열차의 덜컹거림은 이제 시인의 가슴속에서 영원히 멈추지 않는 리듬이 되었네.
> 내가 /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 기우뚱 염전, 한폭의 유화 속으로 / 나는 결코 이별이라 말하지 않았다.
>
마지막 연에 이르면 시간은 유체(流體)가 되어 굳어지네. 기울어진 염전, 하얗게 소금꽃이 피어나는 그 풍경은 삶의 땀방울과 눈물이 만들어낸 거대한 유화(油畵)네. 다시 사랑할 수 있다면 그 예술적 정념의 화폭 속으로 걸어 들어가겠다는 고백은, 결국 지나간 모든 세월과 상처를 하나의 아름다운 완성으로 끌어안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네.
1999년 10월, 세기가 바뀌는 그 어스름한 저녁 무렵의 공기가 이 시 한 편에 고스란히 절어 있더군. 소금이 바닷물을 품고 견디듯, 이 시 또한 그리움의 농도를 깊이 품고 오래 살아남을 것 같고
참으로 오래 음미할 만한, 깊고 단단한 시네.
잘 지내게.
또 연락하세나.
댓글
댓글 리스트-
답댓글 작성자김낙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8.19 포구와 나루 둘 다 배가 드나들던 물류이동 기지 포구는 바다와 맣다아 있고 나루는 강에 ...
-
작성자유혜경 작성시간 26.08.19 어려운 詩語.
문단을 이끌던분께서
말씀 하셨던,
단편은 장편보다 어려워...
했던 말씀이 떠 올려져
읽으며 헷갈리고 읽으며 헷갈리고...
천천히 또 읽으며
시인의 정념을,정념은?
좋은아침을 맞으시면 좋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김낙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8.19 인물 사건 배경을 가지고 잘 꾸며 말하는 것이 소설이라면 그에 반해 시는 순수 감정의 결정체 사물의 진실을 단숨에 꿰뚫어 보는 직관의 언어 리듬 운율을 통해 언어를 극도로 압축 논리적 서사보다는 순간의 포착과 존재의 깊이에 집중하지요
-
작성자안용희 작성시간 26.08.24 작가분들의 상상의 끝은 어딜까?
소금이 바닷물을 품고?
또 견딘다?
다른나라의 세계인듯..
왕 부럽부럽 -
답댓글 작성자김낙영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