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나라는 이와 같다.”
하느님은 ‘나’라는 씨앗을 세상이라는 밭에 뿌려 놓으셨다. 내가 값비싼 산삼 씨앗인지 흔해빠진 상추 씨앗인지는 사실 그리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하느님께서 수확을 원하셔서 손수 골라 뿌리신 씨앗이 바로 나라는 사실이다. 내가 귀한 산삼이 아니라 흔해빠진 상추일지 모르지만 삼겹살을 먹을 때는 상추가 가장 훌륭하고, 하느님은 이 상추를 원하셔서 나를 세상에 심으셨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느님은 내가 풍성한 결실을 내기에 가장 좋은 땅에 나를 심으셨다. 벼는 물이 많은 논에 심지만 상추는 밭에 심는다. 씨앗마다 자랄 수 있는 땅이 다른 것이다. 지금 내가 처해 있는 내 삶의 자리는 ‘나’라는 씨앗이 자라기에 가장 좋은 땅이고, 하느님은 풍성한 결실을 기대하며 정성껏 나를 돌보고 계신다. 그런데 나는 내 안에 펼쳐지는 하느님 나라를 알아보지 못한 채 나도 비싼 산삼이고 싶은데 왜 나는 상추밖에 안되냐며 못마땅해 하기도 하고, 삼은 시원한 그늘 아래서 자라는데 왜 나는 이렇게 따가운 뙤약볕 아래에 있어야 하냐며 원망하기도 한다. 이렇게 남과 나를 자꾸 비교하며 내가 갖고 있지 못한 것들을 부러워했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내 안에서 일구어 가고자 하셨던 그 하느님 나라의 싹을 제대로 틔워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땅에 뿌려지면 자라나서 어떤 풀보다도 커지고”
겨자씨는 세상의 어떤 씨앗보다 작지만 땅에 뿌려지면 하늘의 새들이 깃들일 정도로 큰 나무가 된다. 겨자씨를 귀한 금가루 속에 심었다고 해서 싹이 나는 것이 아니라 흔해빠진 흙에 심어야 거대한 나무가 된다. 나는 엄청나게 커다란 나무로 자랄 완벽한 가능성을 지닌 겨자씨이다. 그리고 그 거대한 가능성은 흙을 만났을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 내가 처해있는 삶의 자리는 하느님이 나를 위해 마련하신 너무나도 소중한 흙이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나는 거대한 나무로 자랄 겨자씨라는 것, 이는 가슴 벅찬 기쁜 소식이다. 그런데 우리는 더 많은 능력을 지니지 못하고 있음을 원망하고, 보잘 것 없는 흙에서 자라야 한다는 것을 부끄러워하느라 내 안에 거대한 가능성을 만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하느님 나라는 지금 여기, 바로 내 안에서 실현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