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조의 그림자와 권력의 유혹 ♣=
◈ 국가보다 권력이 앞설 때 나타나는 징후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서 가장 많은 논란을 남긴 군주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선조이다.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 그는 국왕으로서 역사적 평가를 받아야 했지만, 오늘날 많은 국민들이 기억하는 선조의 모습은 왜군에 맞서 나라를 지킨 영웅들의 군주가 아니라 의심과 불안, 그리고 권력 집착에 사로잡힌 지도자의 모습이다.
역사는 종종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물론 시대와 체제는 다르지만, 국가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권력 유지에 지나치게 몰두할 경우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선조는 자주 거론된다.
오늘날 일부에서는 최근의 국방정책과 군 인사, 그리고 정치적 갈등 양상을 보며 선조 시대의 권력 행태를 떠올린다고 말한다. 중요한 것은 특정 인물을 향한 감정적 비난이 아니라, 역사 속 교훈을 통해 국가 운영의 원칙을 되새기는 일이다.
◈ 충신보다 혁명과 양위를 두려워 한 선조
임진왜란 당시 선조는 한양을 떠나 의주까지 피난했다. 전쟁이라는 비상상황에서 피난 자체를 단순히 비난할 수는 없다. 문제는 전쟁 이후의 태도였다. 선조는 왜군을 격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한 이순신을 불신했다. 이순신은 명량해전과 한산도대첩 등으로 국가를 구한 영웅이었지만, 선조에게는 자신보다 더 큰 명성과 백성의 지지를 얻은 존재이기도 했다.
결국 이순신은 28일간 투옥되고 고문을 당했다. 칠천량 패전 이후 조선 수군이 사실상 붕괴되자 선조는 다시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시킬 수밖에 없었다. 역사가들은 선조의 행동을 권력자의 불안감과 연결하여 해석하기도 한다. 백성의 신뢰를 얻은 장수보다 자신에게 충성하는 인물을 선호했고 혁명과 양위를 두려워 했다는 것이다.
또한 선조는 임진왜란 당시 자신을 수행한 인물들을 대거 호성공신으로 책봉하였다. 나라를 지킨 공로와 왕을 수행한 공로 사이의 균형이 무너졌다는 비판은 당시에도 존재했다. 선조는 임진왜란 후 공신록을 작성케했는데 서애 유성룡, 백사 이항복, 약포 정탁은 공이 없다며 공신록에 이름 올리기를 거부했다. 신하들이 겨우 명부를 작성하여 결재를 상신하니 선조는 서명(수결)을 거부했다가 자신의 이름을 포함시키자 1604년에 완료했다.
공신록 완성에 6년이 소요되었다. 선조는 공신록에 이름을 올린 대상을 상대로 잔치를 벌였는데 앞에 언급한 사람은 부끄럽다고 참석을 거절했고 선조는 태평회맹도를 그려 공신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권력자가 국가의 성과보다 자신의 정치적 안전을 우선하기 시작하면 인사 원칙과 공정성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 국방은 정치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현대 민주국가에서 군대는 특정 정권의 군대가 아니라 국민의 군대이다. 따라서 국방정책과 군 인사는 정치적 보복이나 정치적 상징 조치로 비쳐서는 안 된다. 군 조직 개편이나 사관학교 개혁, 장성 인사 역시 국가안보라는 기준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만약 특정 정책이 추진된다면 국민에게 명확한 법적 근거와 전략적 필요성을 설명해야 한다. 특히 수십 년간 유지된 군사교육 체계를 바꾸는 문제는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국가안보 차원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전쟁 직전이나 국가적 위기 국면에서 군 조직을 정치 논리로 흔든 사례는 대부분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다. 고대 로마 말기, 프랑스 혁명기, 러시아 혁명기 모두 군대가 정치화되면서 국가 전체가 큰 혼란을 겪었다.
국방의 핵심은 정권의 안전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이다. 따라서 군 인사는 전문성, 지휘 경험, 전투 준비태세를 기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국민이 군을 신뢰하는 이유도 군이 정치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국가안보를 위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 역사가 주는 경고
선조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임진왜란의 영웅보다 자신의 권력 기반을 먼저 걱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결과 그는 전쟁을 극복한 군주가 아니라 전쟁 속에서 자신의 한계를 드러낸 군주로 기억되고 있다.
역사가 남긴 가장 큰 교훈은 권력은 유한하나 국가는 영원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어느 시대든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국가 이익보다 앞세우면 국민은 등을 돌린다. 반대로 국가안보와 국민통합을 우선하는 지도자는 비록 정치적 손해를 보더라도 역사로부터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선조가 남긴 실패의 교훈은 분명하다. 권력자는 비판 세력을 적으로 보지 말아야 하며, 국가를 지킨 사람들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또한 군대와 국방을 정치의 도구로 활용해서도 안 된다.
이 정부는 국방을 허무는 조치를 단행하고 있다. 밑도 끝도없이 3군사관학교를 폐교하고 국군사관대학교라는 족보나 법률적 근거도 명확치 않은 이름으로 합동성이라는 명분을 걸지만 사실은 12.3 계엄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육사를 태능에서 쫓아내고 자운대에 통합사관 학교 1,2학년을 교육하고 육사는 건물도 준비 안 된 전남 장성으로 쫒아내고자 하고 있다. 군의 전력을 보강하고 대변해야될 안 국방은 오히려 군을 약화시키는데 앞장서는 희한한 국방장관으로 행동하고 있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지시를 받들었다는 이유로 장군들을 파면하고 작전부서에 근무하였던 육사출신 보병 작전 직능 장군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인사, 군수 등의 직능을 가진 장군들을 지휘관에 임명하고 있다. 평양에 무인기를 보냈다는 명목으로 드론작전사령관을 기소하여 처벌하고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장관을 외환죄로 30년 형으로 처벌을 시도하고 있다.
평양드론을 처벌하려면 상응하게 김정은이 서울로 내려보낸 드론에 대한 입장 표명이 있어야 한다. 자기의 죄를 감추고 자기가 저질렀던 과오를 덮기위해 기소를 취소하는 특검을 하려는 조치가 민심을 떠나게 하고 지방선거 결과에서 견제를 받았다. 위 조치는 정권이 변경되면 반드시 재심이 이루어질 사안이다.
국민이 지도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충성 경쟁이 아니라 국가 경영 능력이다. 역사는 언제나 권력자의 의도보다 결과를 평가한다. 그리고 그 결과는 결국 국민을 얼마나 잘 살게 했는지, 국가를 얼마나 강하게 만들었는지, 국민을 얼마나 안전하게 지켰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선조의 사례가 오늘날에도 회자되는 이유는 단순한 역사 이야기가 아니라 권력이 국가보다 앞설 때 어떤 위험이 발생하는지를 보여주는 경고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 역시 과거를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애국동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