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화에게/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시선집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랜덤하우스중앙,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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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룰 처음 접하고 왜 하필 시의 제목이 ‘수선화에게’일까 궁금했었다. 그러니까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라고 대뜸 말하는 것으로 보아 화자가 사랑하는 사람이 수선화와 같은 여리면서도 고결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특히 한갓지게 물가에 피어난 수선화여서 누구라도 찾는 이가 나타날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는 속성은 외로움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나 기실 외롭지 않은 사람은 없고 사람이라면 다 외로운 존재이고 그 외로움을 견뎌야만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너만 외로운 건 아니다. 나도 외롭다’ 그리고 하느님마저 가끔 외로움을 타시기에 눈물을 흘리시고,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며 위로의 언사를 건넨다. 당신의 외로움이 안타깝지만 그 외로움 또한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존재의 본성임을 어쩌랴.
하지만 그 외로움을 견디기 위해서는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말고’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고 한다. 공연한 기다림은 집착과 근심으로 이어지고, 그 근심은 또 다른 외로움이 하나 더 늘어나는 꼴이 된다. 이를테면 외로움의 증식에 해당되는데, 그렇게 끝없이 외로움이 복제 증식되어가지고서는 사람이 견딜 수 있는 한계치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경각이리라.
비가 온다며 투덜거린다고 비가 멈출 것도 아니고, 눈이 온다고 호들갑을 떨어본들 무슨 소용이냐는 것이다. 그래서 불가의 말씀처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는 것인데, 쓸데없이 번민을 키우지 말라고 한다. 차라리 외로움을 옆구리에 끼고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라는 조언이다. 너 혼자 그렇게 외로움의 물가를 지킨다면 모를까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라며 넌지시 연대적 위로를 보탠다.
그래서 외로움도 마냥 슬퍼할 일만은 아니다. 그것도 삶과 더불어 관리되고 극복되어야만 존재의 완성, 즉 자기실현의 길이 열리기 때문이리라.
권순진
Le jardin / Kevin Ke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