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황영숙] 은사시나무 숲으로

작성자은하수|작성시간13.09.28|조회수18 목록 댓글 0

은사시나무 숲으로/ 황영숙


돌아오지 못할 거라는, 만나지 못할 거라는 한마디를
세상의 가장 순한 별빛의 눈물로 말하고 너는 갔다
질기고 아픈 인간의 길을 걷는 것이 힘들 때 너는 항상
은사시나무 숲이 아름답다고 하였지
너를 보내고 돌아오면서 나도 가만히 은사시나무 숲이
아름답다고 중얼거려 본다
그 곳이 어디일까. 은사시나무는 어디에서 살까

 

나는 오늘도 등 시린 골목길에 서서 오래오래 기침을

하고 목이 아팠구나
강둑에 앉아서 저물어 가는 하루를 굽어보면서
강물에 휩쓸린 물풀처럼 쓰러지기도 하였구나
바람이 불면 흩어지는 가랑잎처럼 뒹굴기도 하였구나
물빛 구름같이 가볍게 떠나는 한 생을
이토록 사랑했구나
언제나 붉은 등짐을 지고 오는 밤은 짧아
용서하는 일보다 사랑하는 일에 매달려 웃으며
울며 가는 한 생을 더욱더 미치도록 사랑하였구나
나는 다시 가만히 중얼거려 본다

은사시나무 숲이 아름답다고

너는 그 곳으로 간 것일까
하늘이 내려와 너와 눈을 맞추는
그 숲으로
우리들이 가고 싶어했던 그 하얀 은사시나무 숲으로

 

- 시집『 은사시 나무 숲으로』( 한국문연,2011)

 

오래전 이정하 시인의  '가끔은 비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다'라는 시가 인터넷에 꽤 퍼져있었다. 비에 젖을수록 오히려 생기 넘치는 나무가 은사시나무라 했다. 은사시나무는 나무 등걸이 보통의 나무와는 달리 수피가 하얗다. 하얀 수피에 마름모꼴의 문양이 점점이 박혀있다. 고고하다고 할까, 도도해 보인다고 할까. '은사시나무 숲이 아름답다고'  가령 박신양이나 이성재가 나오는 어느 영화의 에필로그 나레이션으로 써먹으면 딱 어울릴 것 같은 이 멋진 시 한 편으로 은사시나무는 좀 더 은밀하게 아름답게 숲을 이루고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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