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역사 충의 지조의 시

[스크랩] [신간박현채평전]불온한 시대 속에서 불운한 학자로 살아남은 민족경제론의 창시자 박현채

작성자은하수|작성시간20.05.02|조회수123 목록 댓글 0

 

만인의 소설 조정래의 태백산맥 속에 등장하는 조원제는 빨치산이다. 사실, 태백산맥에 등장하는 이 인물은 실제모델이 있다. 그 이름은 바로 ‘민족경제론’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경제학자 故 박현채 교수다.

 

빨치산 출신에 반골 기질이 가득한 경제학자 박현채는 다양한 수식어를 갖고 있는 학자다. 하지만 그의 이름 앞에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는 바로 ‘민족경제론’학자다. 이 책이 국민들에게 알려진 계기는 군부독재가 창궐한 박정희시대다.

 

당시 대기업을 중심으로 대외 의존형 전략을 폈던 ‘박정희 경제발전 모델’에 맞서는 이론으로 여겨진 ‘민족경제론’에는 소농을 보호하는 농업 협업화와 중소기업, 중소자본을 민족경제의 주체로 삼는 ‘중소기업 육성론’등을 담고 있다. 그의 이론은 1971년 대통령 후보로 나온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중경제론’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개발독재와 재벌경제 구조에 맞서는 진보 성향 하계의 학문적 기반으로 여전히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한국 근 현대 지성사를 언급할 때 그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책은 그의 평탄치 않았던 삶을 보여준다. 좌익 성향의 친척들과 유년기를 보낸 그는 중학교 때 빨치산에 가담해 돌격중대 문화부 중대장으로 활약했다. 원칙주의자였던 그의 별명은 ‘대꼬챙이’였다. 전투에서 총상을 입기도 했던 그는 빨치산 토벌 경찰에게 붙잡혔으나 경찰서장에게 돈과 쌀을 바쳐 통사정한 부모님덕분에 풀려날 수 있었다.

 

이 책은 화려한 학문적 업적대신 고단한 학자의 삶을 보여준다. 대학원을 거쳐 농업문제연구회 연구원으로 활동했던 그는 빨치산이란 꼬리표를 떼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는 최근 불거지고 있는 인혁당 사건으로 인해 옥고를 치렀다.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온라인마케팅모임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