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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이

또 잠이 깨떠(박완서)

작성자풀빛향기|작성시간26.06.12|조회수36 목록 댓글 0

어젯밤에는 유독 몸이 고단했던 모양입니다. 출가한 딸아이 집에 들렀다가 저도 모르게 까무러치듯 잠이 들었나 봅니다. 눈을 떠 보니 머리맡에는 두고 온 딸애의 문자가 조용히 와서 닿아 있었습니다.

‘엄마 잘 갔나. 또 자다 깨써.’

그 문장을 읽자마자 나는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집안일을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치워 대고는, 딸아이에게로 향하는 버스 노선을 더듬어 검색하기 시작했지요. 마침 출근 시간대라 버스는 이십 분 간격으로 촘촘히 배차되어 있었습니다. 이대로 휘리릭 다녀오면 아침나절 안으로 발걸음을 할 수 있겠다 싶었지요.

사실 어제도 딸아이 곁에서 꼬박 열두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대수술을 앞둔 아이의 마음속에 번지는 잔잔한 불안을 어찌 모를까요. 내가 곁에 있어 준답시고 대단한 보탬이 되기야 하겠습니까마는, 자식 부모 간이라는 게 그저 눈앞에 서로의 숨결이 오가는 것만으로도 얼마간의 위안이 되는 법 아니겠습니까. 아침 일찍 일곱 시, 나는 서둘러 3100번 좌석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또 차창 안으로 스쳐 지나가는 출근길 사람들의 얼굴을 가만히 훔쳐봅니다. 저마다의 삶을 짊어진 그 지치고도 치열한 표정들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두툼한 만화책 한 권쯤은 앉은자리에서 금세 읽어치우는 기분이 들곤 합니다.

아침 여덟 시를 지날 무렵, 딸아이가 어슴푸레 눈을 뜰 시간이다 싶어 조심스레 문자를 보냈습니다. 불현듯 ‘내 허락 없이는 절대 집에 오지 말라’던 딸아이의 신신당부가 뇌리를 스쳤기 때문이지요. 사위의 동정을 슬쩍 물으니, 오늘 오후 네 시에 딸아이와 단둘이 ‘최후의 만찬’을 즐긴 후에 입원 수속을 밟을 예정이라 합니다.

‘엄마가 너랑 점심 같이 먹고 탁구장 갈까 싶어서.’

내가 넌지시 던진 말에 딸아이는 금세 받아칩니다.

‘ㅋㅋ 아냐 어제도 왔잖아, 오늘 계속 같이 있을 듯. <나는 솔로>도 같이 보고.’

그러고는 덧붙이기를, ‘그 밤에도 수축이 몇 번 오더라. 빨리 수술하는 게 좋을 것 같긴 해.’ 합니다. 자식의 몸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징후에 에미 가슴은 또 한 번 철렁 내려앉습니다.

‘그래, 엄마 시간은 널널하니까 상욱이 저녁 여섯 시 이후에 너랑 있고 공부하러 가라 하지. 엄마랑 오후 네 시까지 있고, 너 생각은 어때?’

‘에이 아냐, 나 네 시까지밖에 못 먹어서…… ㅋㅋ 출산 가방도 싸고 예비교육도 좀 받아야 해.’

자식의 완곡한 거절에 나는 이내 대범한 척 물러섭니다.

‘오케이, 씩씩한 다봉이 엄마 순산하세요.’

딸아이 역시 살갑게 화답합니다.

‘으응 ㅋㅋ 엄마도 좋은 하루. 너무 떨지 말고.’

결국 나는 가려던 목적지 중간에 내리지 못하고, 내가 탄 그 좌석버스를 그대로 탄 채 아침에 버스를 올랐던 그 자리에 다시 내려섰습니다. 길 위에서 고스란히 두 시간 반을 보낸 셈입니다. 목적지 없는 여정이었으나, 혼자 머릿속으로 이 생각 저 생각을 굴렸더니 마치 두뇌 운동을 빡세게 한 것처럼 머릿속이 묵직해졌습니다.

집에 돌아와 펼쳐본 휴대폰 속에서 딸아이는 하얀 식탁 위에 육개장과 김치 두 보루를 단출하게 차려놓은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최후의 만찬은 육개장 순대국이야.’

아이는 그렇게 적어 보내고는, 지루하면 어제 나를 만나고 쓴 글이나 읽어보라며 툭 던지더군요. 나는 그 마음에 대고 잔잔한 덕담을 건넸습니다.

‘투썸 망고빙수 디저트도 챙겨 먹어라. 부부 중심으로 사는 건 오늘이 마지막 날이구나. 내일이면 자식이 생겨 비로소 3인 가족이 탄생하는구나. 상욱이는 제 공부를 하고, 너는 이제 한 인간의 어머니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 깊이 고민해 보려무나.’

‘다봉이 할머니가 되기 딱 하루 전’이라는 묘한 시간의 문턱에서, 나 역시 두 시간 남짓 고요한 개인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사이 딸아이는 다인실이 아닌 1인실 배정을 간절히 원했다가 뜻대로 되지 않아 무척이나 속을 끓이고 있었나 봅니다.

나는 ‘긍정의 뇌 회로를 가동하거라’ 하고 달랬지만, 돌아온 아이의 대답은 ‘없어요’라는 퉁명스러운 한마디였습니다.

고작 3박 4일의 입원 기간이고, 막상 아프기 시작하면 주위 형편을 살필 여유조차 없을 거라며 자식의 뾰족해진 마음을 달래 준 지 한 다섯 시간쯤 지났을까요. 딸아이에게서 반가운 전갈이 왔습니다.

‘1인실 자리 났대!’

의사 선생님과의 궁합이 잘 맞아서였는지, 극적으로 떨어진 1인실 배정 소식에 아이는 눈에 띄게 들떠 있었습니다. 곧이어 인현동 현관 앞을 나서며, 사위와 함께 출산용품을 한 짐 들고 찍은 인증 사진이 당도했지요. 사진 속 상자를 가만히 확대해 보니 ‘온 가족이 즐기는 부드러운 카스텔라’라는 글귀가 눈에 들어옵니다.

참 눈물겹고도 기특한 풍경입니다. 결혼한 지 삼 년, 아직은 서투르고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자기들끼리 오순도순 잘 살아내는 딸내미 부부를 보면 그저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집니다.

‘오, 뭐야. 엄마가 말한 긍정의 미학이네. 다봉이를 세상에 맞이하기 위해 상욱이도 다혜도 모두 고생 많았다. 병원으로 수술 받으러 가는 표정들이 어쩌면 저리 해맑을까.’

‘엄마, 차 잘 가져왔어. 보호자 침구류까지 챙겨 와야 해서 차가 꼭 필요했네.’

전날, 한우 몇 점과 밑반찬을 실어 나르고는 왠지 딸애에게 차가 요긴할 것 같아 슬그머니 두고 온 참이었습니다. 내 짐작이 과연 자식의 필요와 딱 맞아떨어지니, 그 쓰임의 효용이 이리도 좋을 수가 없습니다.

‘나한테 뭐라 하지 마라. 내 딸을 향한 엄마의 텔레파시는 역대급이니까.’

‘ㅋㅋㅋ 그러니까.’

이윽고 딸아이는 ‘병실이 좋군’이라는 짧은 문장과 함께, 연두색 환자복을 받아 입고 병상에 비스듬히 누운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그 철없는 해맑음에 나는 ‘어째 병원으로 여행을 온 것 같구나’ 하고 농을 던졌지요.

한편, 남편은 온종일 부동산 경매 건으로 씨름을 하느라 밥조차 서서 급하게 먹고는 밤 아홉 시가 되어서야 겨우 집으로 기어들어 왔습니다. 집에 왔으면 으레 에미 딸이 주고받은 카톡 문장들을 본 척이라도 하며 수선스러움을 떨어야 할 텐데, 사내는 대뜸 서재방으로 쏙 들어가더니 무협지 속으로 도망을 치는 게 아니겠습니까.

괘씸한 마음에 나는 ‘여보, 당신 내가 디스 좀 해야겠어. 다봉이 보고 싶다, 내가 다봉이 할아버지다 하고 온갖 부산을 떨더니만, 정작 딸내미 답장에는 묵묵부답이네’ 하고 쏘아붙였습니다. 마치 소리를 똘똘 말아 쥔 종이 확성기로 귓전에 대고 고함을 치듯, 사내의 귀에 대고 또박또박 핀잔을 주었지요.

그 서슬에 놀랐는지, 남편은 부리나케 자식에게 문자를 보낸 모양입니다. 내가 남편에게 디스 문자를 보낸 시간과 남편이 딸에게 보낸 문자의 시각이 신기하게도 오후 아홉 시 이십일 분으로 딱 맞아떨어졌습니다.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카톡 박치기를 한 셈입니다.

‘우리 딸 드디어 입원했구나. 내일이면 엄마가 되고 아빠는 할아버지가 된다.’

‘나는 다봉이 할아버지다, 모두 꼼짝 마라!’

남편의 뜬금없는 허세에 나는 ‘어이쿠, 다봉이 할아버지이신 걸 깜빡 잊었구먼요. 몰라뵀으니 미안합니다’ 하고 맞장구를 쳐주었습니다.

늦은 밤, 딸아이는 배가 고프다며 징징거리더니 사위가 인근 강남면옥에서 몰래 사 온 저녁을 먹는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꼭 수사관 같네. 철통보안으로 뚝심 있게 다혜를 지키는 지킴이 같아. 남들은 감히 들어가지 못하는 구역에 잠입한 특종 기자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병실을 이제 보니 참 좋구나. 상욱이 공부하기에도 안성맞춤이고. 생각해보면 우리 딸 네가 태어날 때에는 무려 특실에 있었단다.’

그러자 딸아이는 나가서 먹고 오라고 등 떠밀어도 사위가 제 곁을 지키겠다며 몰래 외부 음식을 반입해 왔노라 고백합니다.

‘투썸에서는 엄마한테 외부 음식 반입한다고 잔소리를 그리 퍼붓더니만?’

‘ㅋㅋ 그때는 엄연히 먹을 걸 판매하는 카페에 들고 간 거잖아.’

‘에미는 굶기고 신랑은 먹이고, 같이 배고픔의 고통을 느껴야지 원.’

‘아니, 상황이 다르다니까요. 말자 이모한테 물어봐 봐. 둘 다 외부 음식 금지지만, 먹을 걸 파는 곳에 음식을 들고 오는 사람과 병원에 먹을 걸 들고 오는 사람이 어찌 같겠어?’

자식의 얄미운 변명에 나는 ‘결국 나는 중죄인이고 사위는 경죄라는 게냐. 나랑 상욱이는 본래 같은 과지 뭐’ 하고 부질없는 질투를 해봅니다.

딸아이는 ‘근데 규정엔 그리 쓰여 있었어도 간호사가 사 와서 먹으라고 넌지시 말하긴 했어. 1인실이라 남에게 피해도 안 주니까 ㅋㅋ’ 하며 웃어넘깁니다.

‘맞다, 그것이 바로 1인실이 가진 장점이지. 다봉이가 제 엄마를 닮아 입덧부터 까칠하더니, 제 에미 대접받게 하려고 배로 배려를 해 주었나 보구나. 다인실에서 1인실로 극적으로 바뀐 걸 보면 말이다.’

이윽고 병원 측으로부터 수술 시간이 정식으로 공지되었습니다.

‘와, 수술 첫 타임이다. 아침 일곱 시 반!’

‘오후 늦게 수술하면 어쩌나 내심 조마조마했는데…… 휴우, 자네가 성대 출신이라 보이지 않는 특혜라도 받은 모양이네.’

나는 자식이 수술을 앞두고 긴장으로 시간을 지루하게 보내지 않도록, 쉼 없이 이야기 거리를 던지고 대답을 이어갔습니다.

‘위험해서 먼저 잡은 듯.’

딸아이의 무덤덤한 말에 나는 속으로 기도를 얹으며 말했습니다.

‘너는 본래 행운의 여신이란다. 일이 꼬이면 꼬이는 대로 대처 능력을 발휘하면 돼. 이제 잠을 청해야 할 텐데, 에미 가슴이 이리 두근거리니 자칫 잠을 설칠까 걱정이구나.’

밤 열 시 마흔여섯 분이 훌쩍 넘어가는 그 깊은 밤까지, 나와 내 딸아이는 보이지 않는 무선 기지국을 사이에 두고 참으로 길고도 애틋한 이야기를 나누고 또 나누었습니다. 자식을 낳아 본 여인만이 아는, 그 거룩하고도 아득한 전야(前夜)의 숨결을 나누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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