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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할머니 됐당(박완서)

작성자풀빛향기|작성시간26.06.14|조회수29 목록 댓글 0

1한국 문학의 어머니, 박완서 작가의 문체는 **일상의 겉치레를 걷어내는 매서운 통찰력**과 **그 밑바탕에 깔린 생명에 대한 지극한 연민**, 그리고 **인간사의 희로애락을 조목조목 짚어내는 능청스러우면서도 품격 있는 입담**이 특징입니다.

어머님의 글이 가진 극적인 서사와 뜨거운 모성을 박완서 작가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가슴을 옥죄어오는 문체로 재구성해 보았습니다.

### [수정·보완본]

오늘은 내 평생 몇 번 안 될, 긴장이라는 놈이 초시계처럼 째깍거리는 날이었다. 무려 서른일곱 주 만에 세상 빛을 보겠다는 아이가 겨우 2.75킬로그램이라니,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 또 안심을 했다.

딸아이가 출산하는 날을 두고, 나는 지난 아홉 달 동안 시쳇말로 ‘다봉이’라는 대업을 위해 온 몸을 바쳐 살았다. 손주 녀석에게 손톱만큼의 보탬이라도 될까 싶어 전전긍긍했던 시간들이었다. 드디어 칼을 대기로 한 날짜가 잡혔다. 딸아이는 제 속으로 낳을 새 생명을 위해서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먼지 한 톨도 용납할 수가 없는지, 새집인데도 벽걸이 에어컨 속까지 낱낱이 씻어내야 마음에 직성이 풀리겠단다. 아침 일찍부터 거금 18만 원을 주고 부른 기사가 에어컨 기계를 닦아내는 동안, 나는  내  키메라  폰속에 있는 딸아이의 옆얼굴을 훔쳐보았다. 다봉이를 제 품에 안겠다고 주변 정리니, 위생이니, 심지어 경제적인 안목과 제 정신 무장까지 단단히 해 가며, 마치 이 집안의 총지배인처럼 열정적으로  살아낸 딸이었다. 그 팽팽하던 기운이 마침내 종착지에 다다라 풀리는 것을 보니, 비로소 나에게도 숨 쉴 틈이 생기는 것 같았다. 아이만 무사히 나오면, 친가 쪽이 가까우니 몸조리는 우리 집으로 오게 해서 그때 진득하게 내 손으로 보살펴 주마, 속으로 다짐을 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세상일이란 게 어디 사람 마음대로 굴러가던가.

'나보다 긴급한 산모가 와서, 내 수술이 두 번째로 밀렸어. 9시.'

액정 화면에 뜬 딸아이의 문자 한 줄을 보는 순간, 느닷없이 머릿속의 산소가 뚝 끊긴 것처럼 앞이 아뜩하고 어지러움이 밀려왔다. 자식이 수숤 들어가는 마당에 순서가 밀렸다니, 어미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하지만 이내 침착해지기로 했다. 그래, 내 딸이 배 속의 아이와 함께 다른 다급한 생명에게 길을 양보한 셈이니, 그 또한 복을 지을 일이다. 응급 산모도, 그 배 속의 아기도 부디 순산하기를 빌어주는 것이 어미 된 도리리라. 사위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심호흡이라도 하라고, 내 불안을 감춘 채 편안해  보이는 답장을 보냈다.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목마르고 배고파. 곧 들어갈 것 같아.'

8시51분에 도착한 딸아이의 짤막한 문자 속에는 무서움과 갈증, 그리고 뱃속의 허기가 행간마다 빼곡히 숨어 있었다. 자식을 사지에 보낸 것 같은 어미 마음을 담아, 나는 에어컨 청소도 다 끝났으니 이제 다봉이 울음소리만 들으면 된다고 다독였다. 내친김에 사위와 딸, 신랑과 나, 이렇게 넷이 들어찬 카톡방을 처음으로 만들고는 이름표를 '다봉이 소식을 전하는 마당'이라 붙였다. 그 방이 우리 가족의 가장 간절한 기도실이 된 셈이었다.

마침내 사위에게서 기쁜 전령이 도착했다. 핏덩이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는 동영상이었다. 다봉이라는 태명 대신, 이제는 '다연'이라는 엄연한 제 이름을 얻은 녀석이었다. "다연이 세상에 나왔어요"라는 사위의 서툰 글자 뒤로, 내 입에서는 "어머나, 사랑한다. 축복한다. 고맙다" 소리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 한 아이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된 내 자식들이 대견해 목이 메었다.

이웃한 8층 엄마와 카페 '타임투비'에서 브런치를 먹다 말고, 나는 사위가 보낸 동영상과 사진 속으로 아주 풍덩 빠져버렸다. 주변 소음은 다 사라지고 오직 그 작은 생명만 눈에 들어왔다. 세상에 나온 지 두 시간도 채 안 된 다연이가 눈을 또박또박 뜨고 하품을 해대는데, 아, 사람들이 왜 그토록 '손주 사랑이 내리사랑의 으뜸'이라 하는지 뼛속까지 실감이 났다. 내 자식 낳을 때와는 또 다른, 한층 더 정제되고 눈물겨운 경이로움이었다. 아이를 키워본 8층 엄마도 핏덩이가 태어나자마자 눈을 뜨는 건 생전 처음 본다며, 역시 여자아이라 영특하고 이쁘다고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 지인 찬스까지 빌려 딸아이에게 내 벅찬 리액션을 고스란히 전했다.

은근히 울 신랑쪽의 두툼한 윗입술을 닮으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는데, 가만히 뜯어보니 황 씨 가문과 이 씨 가문의 우월한 유전자만 쏙쏙 골라 받은 모양이었다. "어머나, 내 딸이 해냈네. 우리 딸의 딸이 미인 등극이다!" 하고 내 멋대로의 해석을 붙여대며 웃었다.

그 와중에 말레이시아에 가 있는 아들 녀석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동생의 출산 날짜가 오늘인 줄도 몰랐던 무심하였던 녀석이, 여동생이 전화를 안 받는다며 나에게 불쑥 연락을 해온 것이다.

"어라, 네가 어쩐 일로 전화를 다 했냐?"

내가 짐짓 놀란 척 물으니, 녀석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아기 태어날 때 전화 안 해두면 평생 갈굼 당해요. 그걸 제가 무슨 수로 감당합니까? 근데 이름은 뭐래요? 딸이에요, 아들이에요?"

질문 세례를 와르르 쏟아내는 녀석을 보며 피식 웃음이 났다. 연년생 남매로 자라면서 평소에는 데면데면하니 소 닭 보듯 지내다가도, 정작 이럴 때 보면 핏줄이라는 게 무서운 법이다. 멀리서도 제 여동생 걱정에 전전긍긍하는 품이 영락없는 피붙이였다.

나는 이제 막 부모라는 낯선 멍에를 멘 초보 엄마 아빠에게, 신생아를 키우며 겪게 될 눈물겨운 에피소드들을 부지런히 날라 날랐다. 재채기 한 번에 눈물이 쏙 빠질 만큼 놀라던 일, 딸년 목소리가 무슨 장군감처럼 우렁차서 당황했던 그 시절의 기억들을 말이다.

그 길고도 짧았던 기다림 끝에, 저 아득한 먼 우주로부터 이 초록빛 지구별로 다연이라는 작은 행성이 무사히 안착했다.

'2026년 6월 12일 10시 08분, 강북삼성병원. 이다연, 2.75kg.'

다봉아, 건강하게 태어나 주어서 우리 모두에게 축복 같은 선물이 되어주었구나. 세상 구경을 한 지 고작 하루밖에 안 된 녀석이 이목구비는 어찌나 또렷하고 이쁜지, 나는 오늘 하루 종일 녀석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고, 또 보며 늙은 손주의 손에 마음을 다 빼앗겨 버렸다.

### [첨삭 및 문체 설명]

 1. **감정의 내밀한 묘사 (수축과 이완):**

   원문에서 "순간, 산소가 부족한 듯 어지러움이 일어났다"는 표현은 박완서 풍의 문체와 아주 잘 맞습니다. 이를 조금 더 극대화하여 딸의 출산 연기 소식을 들었을 때 어미가 느끼는 육체적·정신적 충격을 노련한 문장으로 다듬었습니다.

 2. **구어체와 독백의 조화:**

   박완서 작가는 '딸년', '시쳇말로', '그 속을 누가 알랴' 같은 친근하면서도 예리한 어휘를 잘 씁니다. 딸을 향한 깊은 애정을 퉁명스러운 듯 따뜻한 어조("딸년이었다", "자식을 사지에 보낸 것 같은")로 보완했습니다.

 3. **가족 관계의 생동감 감칠맛:**

   말레이시아 아들과의 통화 대목은 원문의 유머러스함을 살리되, '연년생 남매의 피붙이 정'이라는 인간 본연의 따스함을 박완서 작가 특유의 통찰 있는 문장으로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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