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의 마디자락마다 생각이 투둑, 투둑 건너왔다.
세상에 친정 없는 사람은 이 가슴 벅찬 날을 어찌 맞이할까, 제 어미 없는 사람은 또 얼마나 저린 슬픔을 속으로 삭이고 있을까. 가지 끝에 맺히는 이슬 같은 생각들이 마음을 적실 때, 딸아이의 카톡이 휴대폰 화면을 밝히며 하루의 문을 열고 또 닫았다.
글을 받아 적는 이 순간, 방 안에는 마치 내 남은 생을 축복하듯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선율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내 인생의 후반부에 홀연히 등장한 새 생명, 다연이. 그 가녀린 손을 잡고 앞으로 엮어 나갈 인생의 빛깔이 벌써부터 눈이 부시게 행복하다.
> *"아으, 어제 계속 토했어. 무통주사 부작용이래. ㅠㅠ 아직 밥 못 먹었고 37시간 공공복 중. 이제 미음 먹을 수 있대. 이거 봐봐, 다봉이가 삑빡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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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애가 보내온 날것의 문장을 읽어 내려가며 내 가슴은 덜컥 내려앉았다가도, 함께 첨부된 동영상 속 다봉이의 꼼지락거림을 보면 이내 무장해제가 되고 만다. 나는 어느새 세상의 온갖 때가 묻지 않은 저 '청정지역'의 침입자가 되어, 그 가없는 행복의 기운을 탐욕스럽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 *"뭐야, 최신작이 아니잖아. 어제의 동영상이잖아. 오늘의 다봉이 모습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어. 아이가 너무 이쁘다. 엄마가 미인이신가 봐."*
> *"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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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너스레에 딸아이는 금세 화답을 해왔다.
> *"응, 어제 ㅋㅋ 오늘 면회는 오후 7시에서 8시 사이일 듯. 하루에 딱 한 번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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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병원에서의 3박 4일이란 모름지기 어미에게는 비몽사몽의 나날일 터였다. 오직 다봉이를 마주하는 그 짧은 면회 시간만큼만 정신이 쨍하게 맑아지겠지.
시어머니께 축하 전화를 드렸던 기억을 딸에게 전했다. 우리 집에서 산후조리를 극진히 해준 다음, 아이가 이사 갈 근처에 사시는 사돈댁으로 12월쯤 보내드리겠노라고 하니, 시어머니는 다봉이의 출산 소식에 끝내 눈시울을 붉히셨단다. 우리 딸은 친정에서도 사랑을 독차지하더니, 시댁에서도 이미 차고 넘치게 준비된 사랑을 받고 있으니 참으로 복도 많지.
생후 이틀째를 맞이한 다봉이는 또 어떤 몸짓으로 우리를 들뜨게 할까. 용인에서 건건동으로 돌아오는 한 시간 동안, 사위가 보내온 짧은 동영상을 보고 또 보며 왔더니 길 위에서의 시간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순삭되어 버렸다.
> *"엄마가 마지막에 나를 너무 먹여서 조금이라도 더 컸나 봐. 이제 엄마도 진짜 할머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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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이의 그 한마디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 *"다봉이를 꺼내놓고 첫 눈맞춤을 했을 때, 느낌이 어땠어?"*
> *"따끈한 찹쌀떡 같다. 따뜻하고 말랑하네, 라고 생각했어. 태어나자마자 바로 나한테 볼을 갖다 대 주더라고. 따뜻하고 말랑말랑했어. ㅋㅋ 마지막에 엄마가 맛있는 거 많이 먹여줬잖아. 소고기도 많이 먹고."*
> *"너도 나중엔 겁이 났는지 내 체중 증가 프로그램에 아주 적극적으로 동참하더라만. 건건동 친정에 오면 집밥 실컷 먹고 건강부터 찾으렴. 풍경 맛집이며 이름난 맛집은 엄마가 다 데리고 다닐 테니."*
> *"웅웅,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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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의 대화를 끝내고 나니 가슴이 뭉클하고 눈시울이 축축해졌다. 저 먼 우주의 나라에서 이 초록 지구별로 기나긴 여행을 온 다봉이. 이 아이와 함께할 앞으로의 시간들이 우리들의 비루한 삶을 얼마나 더 눈부시게 빛내줄 것인가.
무뚝뚝한 제 아비는 다봉이의 첫 얼굴을 대면하자마자 *"어쭈구리?"* 하며 짐짓 태연한 척하더니만, 고모들에게 동영상을 보내고 나서는 고모들이 하나같이 너무 예쁘다고 난리를 쳤다며 어느새 어깨가 으쓱해지고 광대가 승천해 있었다.
> *"점점 통통해지고 이뻐진대."*
> *"미인 등장이네. 이 씨와 황 씨 가문의 가장 빼어난 유전자만 쏙쏙 골라 섞어놓은 조합이 틀림없어."*
> *"다봉이 할아버지는 뭐래?"*
> *"내 손녀라서 이쁘다고 난리지, 뭐. 참, 어제 서산으로 넘어가는 저녁 노을은 우리가 이 건건동으로 이사 온 날 중에서도 단연 최고였단다. 큰 산, 작은 산 할 것 없이 온 세상이 프리즘 쇼를 벌이더구나. 다봉이의 탄생을 축하하는 자연의 버라이어티 쇼 같았어."*
>
점심 무렵 딸아이와 그렇게 기나긴 카톡 만찬을 나누고, 남편이 사 온 아구찜으로 때 이른 점심을 채웠다. 해가 뉘엿뉘엿해질 즈음엔 수리산 도립공원으로 산노을을 보러 가자고 신랑이 소매를 끌었다.
어느 전원주택 마당에나 어울릴 법한, 햇볕 가리개가 달린 초소형 4인용 식탁에 마주 앉았다. 집에서 알뜰하게 챙겨온 오리 미나리 구이와 싱싱한 쌈채소를 펼쳐놓고 먹는 우리 부부의 소박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딸에게 보냈다. 그러고는 다봉이가 유모차를 타고 야외외출을 할 수 있을 법한 선선한 가을날에 꼭 같이 오자고 덧붙였다.
자리를 옮겨 반월저수지에 다다랐을 때, 남편은 둘레길을 걷겠다며 나섰고, 나는 낮에 화성까지 가서 탁구를 세 시간이나 치고 온 여파로 온몸의 기운이 빠져 나가동 사 지경이었다. 테슬라 차 안에서 시트를 뒤로 뉘고 까무러치듯 잠이 들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신랑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 *"어디야? 차를 가지고 가면 어떻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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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주차해 두던 자리에 차가 없자, 남편은 내가 차를 몰고 딴 곳으로 가버린 줄 착각하고 짐짓 나무라는 어투로 소리를 높인 것이다.
> *"바보야, 거기서 조금만 더 올라오면 돼. 나 차 안에 고스란히 누워있어."*
> *"이크, 그렇구나. 내가 착각했네."*
>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남편의 멋쩍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나는 비로소 다봉이 외할머니로서의 첫 페이지와도 같은 기나긴 하루를 가만히 마감했다.
### ✍ 박완서 문체 수정 포인트
* **내면 심사의 구체화:** 단순한 사실 나열을 넘어, 손주를 본 할머니의 들뜨고도 애틋한 속내와 딸을 향한 연민을 박완서 소설 특유의 섬세한 어휘(‘속으로 삭이고’, ‘가없는 행복’, ‘비루한 삶’)로 녹여냈습니다.
* **대화의 자연스러운 녹아내림:** 카톡 대화 텍스트를 그대로 나열하기보다, 어미와 딸의 주고받는 정겨운 대화체와 가문 유전자를 논하는 은근한 극성스러움을 소설적 대화로 다듬었습니다.
* **배경과 감정의 조화:** 노을을 보며 외손주의 탄생 축하와 연결 짓는 부분, 저수지에서 남편과 겪은 소소한 해프닝을 중년 부부의 일상적인 풍경으로 따뜻하게 시각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