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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강북병원(박완서)

작성자풀빛향기|작성시간26.06.11|조회수36 목록 댓글 0

1박완서 작가의 문체를 그대로 모사할 수는 없지만, 그 문체의 특징인 생활의 구체성, 담담한 유머, 모성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 일상 속에서 삶의 의미를 길어 올리는 시선을 참고하여 다듬어 보겠습니다.

글 전체에서 가장 좋은 부분은 이미 갖고 계십니다. 음식, 이동, 병원 대기실, 딸과 사위의 대화 같은 생활의 세목들이 살아 있습니다. 다만 사건을 나열하기보다 그 속에서 느낀 마음을 조금 더 절제해서 보여주면 문학성이 높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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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딸아이가 수술 전 마지막 진료를 받는 날이었다.

다른 병원에서는 다봉이 체중이 2.9킬로라 했는데, 강북삼성병원에서는 2.5킬로라고 했다. 임신 37주차. 고위험군 임산부라 진통이 오기 전에 제왕절개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 소견이 나왔다.

아이가 작다는 말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순식간에 작게 만든다. 수술 날짜는 이미 정해져 있었지만, 다봉이 체중은 기대만큼 늘지 않았고 딸아이는 입덧과 구토에 시달리면서도 직장에 나가고 있었다. 엄마라는 사람은 자식이 어른이 되어도 신경을 끄는 법을 배우지 못하는 모양이다.

딸이 출산휴가에 들어간 뒤로 나는 틈만 나면 서울로 갔다. 건건동에서 인현동까지는 가깝지 않은 거리였다. 자가용을 몰고 가면 멀미가 났고, 전철을 타면 몸이 피곤했다. 그래도 좌석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가는 길은 이상하게 작은 여행 같았다.

오늘은 서울에 못 가는 날들을 생각해 미리 음식을 장만했다. 반월한우정육식당에서 소고기를 사고, 장호원에서 따온 깻잎을 챙겼다.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궁평항 꽃게 두 마리를 쪘다. 머위는 들기름과 들깨가루로 볶고, 전복과 미역을 넣어 국도 끓였다.

음식을 하는 동안에는 내가 다봉이를 위해 뭔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실제로는 딸이 먹는 것이지만, 외할머니의 마음은 으레 한 다리를 건너뛴다.

딸네 집에 도착하니 하얀 식탁 위에 꽃 한 다발이 놓여 있었다. 장미를 든 토끼 인형은 다봉이라고 했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이미 이름이 있고 자리가 있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했다. 나는 토끼 인형을 커튼 옆에 기대 세워 주었다.

곧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는 집은 어딘가 밝았다.

병원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택시는 금방 잡혔지만 종각 일대가 꽉 막혀 있었다. 예약 시간에 겨우 맞춰 도착했다.

초음파 화면 속 다봉이는 여전히 작고 흐릿했지만, 그 흐릿함 속에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태동 검사를 하는 동안 딸은 오랜만에 편안한 얼굴로 누워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아이보다 먼저 딸이 안쓰러웠다.

의사 면담 시간.

원래 예정일은 17일이었지만 수축이 있었다는 이야기에 내일 입원해서 금요일에 수술하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일찍 낳아도 걱정이고 늦게 낳아도 걱정이었다.

딸에게 엄마가 되는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빨리 꺼냈으면 좋겠어. 입덧이 너무 힘들어."

딸은 여전히 솔직했다.

"나중에 다봉이가 먹는 거 보면 누굴 닮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 식탐 있으면 상욱 씨 닮은 거고 없으면 나."

그 말에 셋이 웃었다.

젊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씩씩했다.

수술 날짜가 당겨졌다는 소식에 사위는 제왕절개 후 산모를 돕는 방법을 급하게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딸이 웃었고, 나도 웃었다. 그런 웃음은 안도감과 비슷했다.

서울에서 건건동으로 돌아오는 길.

퇴근길 전철은 빽빽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내이고 부모이고 자식인 사람들이었다. 문득, 모두가 저마다의 걱정거리를 품고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초 말레이시아에 있을 때 나는 딸의 입덧을 곁에서 돌봐주지 못했다. 그 미안함 때문인지 5월과 6월의 나는 지나치게 애를 썼다. 딸은 부담스러워했고, 나는 서운했고, 중간에서 사위가 애를 먹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적당한 거리를 배웠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서로 이야기하고, 말을 아끼고,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했다. 덕분에 일주일에 세 번씩 만나 보낸 시간이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되었다.

이제는 사위와 가까이 사는 시댁에 조금 맡겨도 될 것 같다.

나는 사위에게 말했다.

"내일 다혜랑 맛있는 점심 먹어. 순산할 거야."

그리고 봉투 하나를 건넸다.

버스에 앉았다는 카톡을 보내자 딸에게서 답장이 왔다.

"양치하다 또 토했어."

그 문자 하나에도 나는 다시 서울 갈 채비를 하게 된다.

엄마란 그런 존재인가 보다.

열 달이라는 긴 기다림의 끝에서 우리는 모두 다봉이를 기다리고 있다.

문득 생각한다.

딸이 외고에 합격했을 때, 대학에 붙었을 때, 원하던 회사에 입사했을 때,

"엄마, 나 합격이야."

그 한마디가 며칠 동안 내 가슴속을 둥둥 떠다녔다.

금요일.

수술실에서 나온 딸은 내게 가장 먼저 무슨 말을 할까.

나는 지금 그 말을 기다리고 있다. :::

이 버전은 박완서 문체의 특징 중 하나인 **"사건보다 마음의 결을 따라가는 서술"**을 살렸습니다. 특히 마지막의 "엄마, 나 합격이야"와 앞으로 들을 "엄마..."를 연결한 부분이 이 글의 중심축이 될 수 있습니다. 문예지 투고용이라면 이 축을 더욱 강조하는 방향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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