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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남장사

작성자그림9|작성시간16.02.13|조회수447 목록 댓글 0

남장사(南長寺)

 


요약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동에 있는 사찰.
상주 남장사 철불좌상  경북 상주시 남장동 남장사. 보물 제990호. 조선시대.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경상북도 팔경(八景) 가운데 하나이다. 신라시대 832년(흥덕왕 7) 진감국사(眞鑑國師) 혜소(慧昭)가 창건하여 장백사(長柏寺)라 하였으며, 고려시대인 1186년(명종 16) 각원화상(覺圓和尙)이 지금의 터에 옮겨 짓고 남장사라 하였다.

 

신라 말 최치원(崔致遠)이 지은 쌍계사 진감국사비에 따르면 ‘당(唐)나라에서 돌아온 국사가 상주 노악산 장백사에서 선(禪)을 가르치니 배우는 이가 구름처럼 모였다’는 기록이 있고, 상주의 명찰(名刹) 모두 진감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사적기(寺蹟記)에 기록되어 있다.

 

그뒤 1203년(신종 6) 금당(金堂)을 신축하였고, 조선시대인 1473년(성종 4)에 중건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1635년(인조 13) 정수선사(正修禪師)가 금당 등을 중창하였다. 조선 중·후기에 걸쳐 몇 차례 영산전(靈山殿)을 중수하였으며, 진영각(眞影閣)과 상로전(上爐殿)이 신축되었고, 1807년(순조 7)에 진허(鎭虛)가 극락전과 조사각을 중건하였다. 다시 1889년에는 보광전, 1903년에는 칠성각, 1907년에는 염불당(念佛堂)을 건립하였다.

 

1978년 7월 영산전의 후불탱화에서 주불(主佛)과 16나한상을 조성할 때,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 4과와 칠보류들을 봉안했다는 기록과 함께 사리 4과와 칠보류가 발견되었다.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영산전, 보광전, 금륜전, 향로전, 진영각, 강당, 일주문, 불이문, 관음선원 등이 현존하며, 부속암자로는 관음전(觀音殿)과 중고암(中高庵)이 있다.

 

남장사 보광전 목각탱화는 보물 제922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주불 뒤에 있는 후불탱화를 그림으로 그리지 않고 나무로 조각한 것이 특색이다. 극락보전에는 중앙의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좌우에 관세음(觀世音), 대세지(大勢地) 두 보살을 모셨다. 또한 응향각 안에는 역대 조사(祖師)의 진영(眞影)을 안치하였는데 열두 폭을 주위에 걸어놓았다. 이것은 불화 형식을 갖춘 것으로 명주에 채색하여 그렸는데 탱화와 공통점이 많다. 

 

이밖에도 극락보전 안에 업경대(業鏡臺) 2점이 안치되어 있으며, 부도골에는 4기의 부도가 있고,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33호로 지정된 석장승 1기가 있다. 이곳에서 목판본이 개판되기도 하였는데, 조종경(趙宗敬:1495∼1535)의 《독암유고》 1권과 부록 1권, 이춘원(李春元:1571∼1634)의 《구원시집》 5권 등이 있다.

 

절 주변의 계곡은 별로 깊지 않으나 입구에 있는 장승은 그 인상이 매우 독특하고 재미있어서 볼수록 정감이 가는 귀중한 유물이다.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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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장사의 문화재

 

상주 남장사 보광전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尙州 南長寺 普光殿 木刻阿彌陀如來說法像)

종목 보물 제922호
소재지 경북 상주시 남장1길 259-22, 남장사 (남장동)
소재지 
지정일 1987.07.16
수량/면적 1점
시대 조선시대
소유자 남장사
관리자 남장사
자료출처 및 참조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2171.jpg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동 남장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목각탱. 세로 226㎝, 가로 236㎝, 두께 10∼12㎝.
 


보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시는 전각이므로, 이 목각탱화의 내용도 비로자나불과 그 권속을 도상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직사각형의 판목(板木) 8매를 서로 연결하여 고부조(高浮彫 : 모양이나 형상을 나타낸 살이 매우 두껍게 드러나게 한 부조)로 상(像)을 조각하였다. 연화대좌에 앉아 있는 본존불을 중심으로 10구(軀)의 보살과 10대 제자·사천왕(四天王)이 층단식으로 배치된 구도이다.


키형 광배〔箕形光背〕를 지닌 본존불좌상과 좌우에 배치된 두 협시보살상 등 연꽃대좌에 앉은 삼존불좌상이 화면 중앙에 묘사되었다. 이들은 신체 비례에 비하여 얼굴이 커서 둔중해 보이며, 괴체화(塊體化)되었다.
또한 앞으로 숙인 무표정한 얼굴, 불의(佛衣)의 간략한 옷주름, 평면적으로 처리된 신체의 세부 묘사 등에서 조선 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은 삼존불좌상 주위로 보살상과 10대 제자상·사천왕상 등이 합장하거나 지물(持物)을 들고 서 있다. 화면의 여백을 채운 구름과 연꽃 모양의 보개(寶蓋) 아래 표현된 비천상(飛天像) 등은 비교적 동적인 느낌을 준다.


이 목각탱화는 관음선원에 봉안된 또 하나의 목각탱(1694년, 보물 제923호)보다는 많은 상이 등장한다. 하지만 내용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관음선원의 목각탱을 모본(模本)으로 삼아 제작된 것 같다.


용문사목각탱(1684년)이나 실상사약수암목각탱(1782년)과 비교하여 볼 때 각 상의 형태 묘사에서 정교함이 줄어들어 둔중해져 있다. 그리고 불상·보살상의 크기가 거의 비슷하게 표현된 점등에서 19세기경에 조성된 대승사목각불탱에 가깝다.


이 목각탱화는 그 배치·구성이 당시 불화의 구도와 일치하고 있는 점에서 19세기 목조각상을 회화적으로 표현하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현재 이 목각탱화 앞에는 철조비로자나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상주 남장사 관음선원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尙州 南長寺 觀音禪院 木刻阿彌陀如來說法像)


종목 보물 제923호
소재지 경북 상주시 남장동 502 남장사
소재지 
지정일 1987.07.16
수량/면적 1점
시대 
소유자 남장사
관리자 남장사
자료출처 및 참조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3291.jpg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동 남장사에 있는 조선후기의 목각탱
 


탱화란 천이나 종이에 불화를 그려 족자나 액자형태로 만들어 거는 그림으로, 대개 사찰 전각 안의 본존불 뒤에 위치한다. 이 작품은 특이하게 나무를 깎아 만든 것으로, 관음전의 주존인 관음보살상 뒷편에 부조로 새겨져 있으며, 가로 184㎝, 세로 165㎝이다.
 
이 목각후불탱은 조선 숙종(肅宗) 20년(1694)에 조성된 것으로, 그 예가 드문 귀중한 자료이다. 장방형의 판목 가운데에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중심으로 4보살(四菩薩), 2비구(二比丘), 사천왕(四天王), 구름을 타고 모여드는 타방불(他方佛) 등이 고부조(高浮彫)로 새겨진 아미타극락회상(阿彌陀極樂會上) 목각탱(木刻幀)이다.
 
이러한 목각후불탱화가 언제부터 조성되기 시작하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현재 조선 후기의 작품이 10여 점 남아 있어서 적어도 이 시대부터는 유행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 목각탱은 용문사목각탱(1684년)과 함께 17세기 목각탱의 뛰어난 작품 수준을 알려 주는 대표작이다.


화면은 상·하단으로 나뉘었다. 화면 중앙에는 본존불과 그 좌우로 네 보살이 배치되었다. 다시 그 주위로 2대 제자인 아난(阿難)·가섭(迦葉)과 사천왕(四天王)이 배열되어 있다.


하단의 연꽃에서 나온 연꽃가지가 본존불과 두 보살의 대좌를 이루어 삼존좌상(三尊坐像)을 나타내고 있다. 이들 협시상 사이로는 구름을 표현하여 상단 좌우에 구름을 타고 모여드는 타방불(他方佛)을 묘사하였다.


본존불은 두 손을 무릎에 놓고 엄지와 중지를 맞댄 손 모양〔手印〕을 하고 있다. 협시보살상들은 손에 연꽃가지를 잡거나 합장한 모습이다. 제자상들도 합장을 하고 있다. 보관을 쓴 사천왕상은 조선시대 불화에 나타나는 사천왕상의 배치와 명칭을 따르고 있다.


왼쪽〔向右〕에는 칼을 든 지국천왕(持國天王)과 비파를 연주하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이 있다. 오른쪽〔向左〕에는 증장천왕(增長天王)이 구슬〔如意珠〕과 용(龍)을 잡고 있다. 그리고 광목천왕(廣目天王)이 보탑(寶塔)과 창을 가지고 있다.


이상과 같은 불상과 보살상의 손 모양과 지물(持物)만으로는 이 목각탱의 내용을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목각탱의 내용이 아미타극락회상도를 나타낸 것은 참고할 만하다.


얼굴과 신체 등 불상의 형태는 모두 사각형에 가깝다. 그리고 근엄하면서도 기묘하게 웃는 표정을 짓고 있어 친근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옷〔佛衣〕은 두껍고 옷주름은 간략하게 되었다. 사각형의 형태와 아울러 둔중한 느낌을 지닌 조선 후기의 불상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상주 남장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尙州 南長寺 鐵造毘盧遮那佛坐像)

종목 보물 제990호
소재지 경북 상주시 남장1길 259-22, 남장사 (남장동)
소재지 남장동
지정일 1989.04.10
수량/면적 1구
시대 조선시대
소유자 남장사
관리자 남장사
자료출처 및 참조 문화재청, 한국민족문화대백과
3292.jpg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동 남장사 보광전(普光殿)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 높이 133cm.
 


지권인(智拳印)의 수인으로 미루어 비로자나불로 추정된다. 머리는 나발인데 그 위의 육계는 매우 커서 잘 구별되지 않는다.
얼굴 형상은 다소 긴 편이나 눈·코·귀 등의 배치가 매우 정돈되어서 온화함을 더하고 있다. 그중 두 귀는 특히 길어서 두 어깨에 이르고 있다. 삼도(三道)의 각선도 부드러운 솜씨를 보인다.
 
법의는 통견의(通肩衣)로서 두 어깨를 덮고 내려와 두 손에 걸쳐서 무릎에 이르고 있다. 평판(平板) 계단식의 옷주름은 정비된 솜씨를 보이고 있다. 옷주름은 다시 결가부좌한 두 다리에 보이고 있으나 매우 간소하게 처리된다. 명공(名工)의 솜씨가 나타난 작품으로 보인다.
뒷면에는 좌견으로부터 내려진 옷자락이 길게 표현되어 있어 신라 말기로부터 유행한 우리 나라 철불좌상이 고려 이후에 이르러서도 그 오랜 전통을 이어온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 크기에 있어서 신라에 비할 바가 못되나 고려철불의 전통을 잘 계승한 작품으로 보인다.
더욱이 매우 긴 불신은 각 부분이 정제되어 안정감을 얻었으며, 법당의 주불로서의 위엄과 온화한 인상을 잃지 않고 있다. 현재 목각의 후불탱(後佛幀, 보물 제922호)이 있어 한층 장엄을 더하고 있으나, 이 목각탱은 훨씬 후대(17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므로 철불좌상과 그 연대를 견주어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철불좌상의 연대는 고려의 철불로서 오늘에 전래하고 있는 유품 가운데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철불상과 비교할 만하다. 미려하고도 원만한 상호 각 부분의 표정이나 옷자락 무늬의 처리, 양손의 수인 등으로 보아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문경 봉암사(鳳巖寺), 예천 한천사(寒天寺)의 신라의 거상뿐 아니라 충주·원주 등지의 많은 철불 분포도 주목할 만하다.

 

 

상주남장사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尙州南長寺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

보물 제1635호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사 극락전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시대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좌협시 목조관음보살좌상, 그리고 우협시 목조대세지보살좌상.

 

보물 제1635호.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높이가 139㎝이며,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높이가 128㎝이며, 목조대세지보살좌상은 높이가 131㎝이다. 이 삼존좌상은 조성 원문을 통하여 1645년에 청허(淸?) 등 6명의 화승이 조성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불상 속에서 발견된 조성원문에 따르면, 순치 2년(조선 인조 23, 1645)에 많은 사부대중이 발원에 참여하고, 지희(智熙)스님의 증명 아래 청허(淸虛), 영색(英?), 현욱(玄旭), 천휘(天輝), 나흠(懶欽), 법찬(法燦) 등 화승들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불상 조성을 주도했던 조각승 청허는 조선시대 17세기의 대표적인 조각승인 청헌(淸憲)과 동일한 인물로 추정된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통견식의 착의 형식에 결가부좌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신체 비례가 적절하며, 양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가락을 구부린 설법인을 결하고 있다. 불상의 정수리에는 원통형 정상계주가 있고, 나발 사이에는 반달형 중앙계주가 있다. 얼굴은 비교적 넓은 방형으로서 뚜렷한 인중과 작은 입술에서 근엄한 모습이 나타난다. 넓은 이마와 부풀어 오른 눈꺼풀, 살짝 뜬 눈, 돌출한 코 등 17세기 불상의 특징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다. 상체는 다부진 모습으로, 가슴이 편평하며 아랫배가 살짝 나와 있다. 결가부좌한 하체는 무릎이 낮고 넓어서 안정감을 준다. 법의는 통견 형식으로 착용하였다. 내의는 가슴까지 올려 수평을 이루며, 왼편의 대의자락은 발가락을 덮고 있으며, 오른편의 것은 부채살 모양의 주름으로 형식화되었다.

 

목조대세지보살좌상은 상호와 신체 비례, 수인, 착의법 등 형식적인 특징은 목조아미타불좌상과 동일하다. 그러나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수인과 신체 비례, 상호 등이 아미타불상, 대세지보살상과 같지만, 착의법에서 차이가 난다. 비록 관음보살좌상이 통견형식으로 법의를 입었지만, 세부적으로는 여러 곳에서 차이를 보여준다. 이는 여러 명의 조각승이 일을 분담하여 여래삼존상을 조성하였기 때문이다. 두 보살좌상의 세부 모습을 살펴 보면, 정수리에 틀어 올린 보개는 비교적 높은 편이며, 보발은 어깨에 닿아서 세 개의 원형을 이룬 후 다시 세 가닥으로 흘러내린다. 또한 꽃문양의 귀걸이와 팔찌를 착용하였고, 목걸이는 하지 않았다. 남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청허가 조성한 불상 가운데 삼존의 형식을 완전히 갖추고 있다는 점 외에도 상호의 표현과 안정된 신체 비례 등 원숙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즉 조선시대 17세기의 조각승 청허의 역작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고 하겠다.

 

남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17세기를 대표하는 청허 유파에 의해 조성된 불상 중에서 다소 연대는 늦어나 조각적인 완성도가 가장 높은 불상이다. 이들 불상은 조각승의 이름과 조성 연대가 분명하여 조선시대 조각사 연구의 기준작이 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상주 남장사 감로왕도(尙州 南長寺 甘露王圖)

 

보물  제1641호
명 칭 상주 남장사 감로왕도 (尙州 南長寺 甘露王圖)
분 류 유물 / 불교회화/ 탱화/ 기타
수량/면적 1폭
지정(등록)일 2010.02.24
소 재 지 경북 상주시 남장1길 259-22, 남장사 (남장동)
시 대 조선시대

 

이 불화는 1701년 탁휘(卓輝) 등의 화승이 그린 감로도로서 18세기의 감로도 가운데 가장 연대가 올라가는 작품이다.

 

각 장면 옆에는 방제를 적어 내용을 밝히고 있어 감로도의 도상을 파악하는 데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필치가 유려하며, 채색은 분홍색과 노란색 등 밝은 채색을 사용하여 화면 전체가 밝아 보이는 한편 금을 많이 사용함으로써 화려한 느낌을 준다.

 

화면을 3단으로 나누어 상단에는 칠여래와 인로왕보살, 지장보살, 관음보살을 배치하고, 중단에는 제단과 그 앞에서 의식을 행하는 승려들, 하단에는 고혼들의 다양한 모습을 질서정연하게 묘사한 이 감로도의 구성은 차후 18세기 감로도의 전형을 이루었다.

 

남장사 감로도는 감로도 도상 변천 연구에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닐 뿐만 아니라 가가 그룹별 도상의 묘사도 뛰어나다.

 

 

남장사 석장승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33호
지 정 일 1982.02.24
소 재 지 경북 상주시  남장동 산63-6
시 대 조선시대

 

 

장승은 마을입구나 사찰입구에 세워 잡귀와 액운의 출입을 막고 사찰내의 재산과 경계를 표시하는 민간신앙물로, 마을에서는 수호신의 기능을 겸하기도 한다.
 
이 장승은 남장사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석장승이다. 남장사는 832년(흥덕왕 7년) 진감국사가 창건하여 장백사라 하였으며 1186년(명종 16년) 각원이 지금의 터에 옮겨 짓고 남장사라 하였다. 그뒤 여러 차례 중건과 중창이 이어져 현재에까지 전하고 있다.

 

남장사 입구에 서 있는 이 돌장승은 원래 남장동에 있었는데, 1968년 저수지 공사로 인해 현재의 자리로 옮겨놓은 것이다.
 
높이 186㎝의 크기로, 자연석을 그대로 살려 다듬었다. 한쪽으로 치우친 비뚤어진 얼굴에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왕방울 눈과 커다란 주먹코, 야무지게 다문 입술에 송곳니는 아래로 뻗어있다. 가슴에는 한가닥의 수염이 있으며 그 밑에 ‘하원주장군’이라는 글귀를 새겨 놓았다. 성난 표정을 표현하려 했으나 그 보다는 소박함과 천진스러움이 엿보이는 걸작품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석장승과는 달리 균형도 잘 맞지 않고 구체화된 표현도 없으나 원초적인 소박함을 지니고 있다. 민간신앙과 불교가 어우러진 신앙예술품이다.
 
제작년도는 장승 앞면에 ‘임진 9월입’이라는 기록과 조선 철종 7년(1856)에 지은 남장사 극락보전 현판의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 순조 32년(1832)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남장사에는 사천왕이 없으므로 남장동을 지키기 위한 수호신으로서 이 장승을 세운 듯하다.

 

 

상주 남장사 일주문(尙州 南長寺 一柱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68호
명 칭 상주 남장사 일주문 (尙州 南長寺 一柱門)
분 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불교/ 문
수량/면적 1동
지정(등록)일 2013.04.08
소 재 지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259-22 (남장동)
시 대 조선시대

 

이 건물은 잡석(雜石)으로 낮게 쌓은 축대위에 자연석 주초(柱礎)를 양 쪽에 놓고 세웠다. 건물의 특색은 양쪽 기둥 앞뒤로 모난 기둥을 붙여 세우고 다시 또 하나씩의 활주(活柱)를 고여서 중압을 받쳐 주고 있는데 그 주두(柱頭)가 용(龍)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대단히 사실적이다. 정면 추녀 밑에는 '광서8년(光緖八年)'(1882)에 '노악산남장사(露嶽山南長寺)'란 편액이 해강(海岡) 김규진의 글씨로 쓰여져있다.

 

이 건물의 양식은 一자형에 정면 1칸(4m), 측면 1칸(2.6m)형태의 3평으로서 전체적으로 건축 외형에서 균형감과 볼륨감이 있으며 특히 구조적인 면을 고려한 까치발의 조각수법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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