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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시대에 걸친 술의 기원과 역사, 신화 전설

작성자그림9|작성시간07.11.19|조회수272 목록 댓글 0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시대에 걸친 술의 기원과 역사, 신화 전설

 

 

술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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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古字는 酉(닭,서쪽,익을)자이다.
酉字는 밑이 뾰족한 항아리(술의 침전물을 모으기 편리)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반면 술의 고유한 우리말은 "수블/수불" 이었다. 조선시대 문헌에는 "수울 ","수을"로 기록되어 있어, 이 수블은 "수블 > 수울 > 수을 > 술"로 변해왔음을 알수 있다.

"수블"의 의미에 대해서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술을 빛는 과정에서 비롯된것이 아닌가 한다. 즉, 술을 쪄서 익히고 여기에 누룩과 주모(酒母)를 버무려 넣고 일정양의 물을 부어빛는다.
이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발효가 이루어 져 열을 가하지 않더라도 부글부글 물이 끓어오르며 거품이 괴는 현상은 옛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신기해 보였을 것이다. 이를 마치 물에서 난데없이 불이 붙는다는 뜻으로 "수불"이라 하지않았을까 싶다. 우리나라에서 술을 언제부터 만들어 먹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수 없지만 <삼국지>,부여전에는 정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큰 행사가 있었으니 이를 영고(迎鼓)라 하였다. 이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술을 마시고 먹고 노래 부르고 춤추었다고 전한다.

또 한전(韓傳)에 보면 마한 에서는 5월에 씨앗을 뿌리고는 큰모임이 있어 춤과 노래와 술로서 즐기었고, 10월에 추수 가 끝나면 역시 이러한 모임이 있었다고 한다. 고구려도 역시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동맹(東盟)이라는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보아 농사를 시작 할때부터 술을 빚어 마셨으며, 의례에서 술이 이용된 것을 알수있다. 상고시대에 이미 농업의 기틀이 마련되었으므로 우리나라에서 빚기 시작한 술도 역시 곡류를 이용한, 즉 막걸리와 비슷한 곡주였으리라 생각 된다.

우리문헌에 술에 관한 기록이 드물지라도 술이 단순히 중국에서 전래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미 고조선시기 이전부터 동아시아 대륙에 번성했던 우리 민족은 발효문화를 장기로 하였으므로, 술의 역사도 우리 민족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술의 기원은 중국으로부터 전래된 것이라기보다 화북과 산동지역의 동이족 술문화가 중국과 한반도에 동시에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신화 및 전설

 

우리나라 문헌으로 술 이야기가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제왕운기]의 동명성왕 건국담에 술에 얽힌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고삼국사]에서 인용되어 있다.


하백의 세 딸 유화, 선화, 위화가 더위를 피해 청하(지금의 압록강)의 웅심연에서 놀고 있었다.
이때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세 처녀를 보고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신하를 시켜 가까이 하려고 하였으나 그들은 응하지 않았다. 그뒤 해모수가 신하의 말을 듣고 새로 웅장한 궁실을 지어 그들을 초청하 였는데, 초대에 응한 세 처녀가 술 대접을 받고 만취한 후 돌아가려 하자 해모수는 앞을 가로막고 하소연하였으나 세 처녀는 달아났다. 그 중 유화가 해모수에게 잡혀 궁전에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정이 들고 말았다. 그뒤 주몽을 낳으니, 이 사람이 동명성왕으로 후일 고구려를 세웠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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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고구려의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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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진한, 마한, 고구려의 무천, 영고, 동맹 등 제천행사가 '주야음주가무'하였다는 삼국지 위지동이전의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는 발효의 나라라 할만큼 훌륭한 술과 앞선 장담그기 기술이 발달했다. 이때 이미 술누룩酒鞠과 穀芽로 술을 빚는 방법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고구려의 주조기술은 중국으로 건너가 곡아주라는 명주를 잉태하고 고구려의 양조기술을 이어받은 낙랑주법이 신라사회에 뿌리를 내려 신라주가 당대 운사들에게 애용되었다.

백제의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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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酒神으로 모시는 백제인 수수보리가 일본에 누룩과 술 빚는 법을 전함으로써 비로소 일본에 술다운 술이 생겼다고 한다. 일본고사기 중권 응신천황조에 응신천황이 수수보리가 빚어 올린 술을 마시고 부른 노래의 가사가 전한다. 양조기술자인 수수보리는 이름의 뜻이 '술 거르는 이'로 이때 이미 백제에서는 발전된 양조법으로 술을 빚어진 것이다. 백제술의 자세한 기록이 없어 말하기 어려우나 일본에 남아있는 기록과 술빚기 기술로 보아 고구려의 술빚기에 비해 그리 못하지 않은 것이었을 것이다.

신라와 통일신라의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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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시인들이 칭송하던 신라주의 명성은 고구려로부터 전해진 듯하다. 삼국 중 비교적 늦은 시기에 국가의 체계를 갖춘 신라는 술빚기에서도 가장 낙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문화와 함께 고구려로부터 양조기술이 전해진 이후, 국력과 함께 말로 발전하여 "지봉유설"에 전하듯이 당대시인 이상은의 시조 "한잔 신라주의 기운이 새벽바람에 스러질까 두럽구나"하는 정도로 성장하였으며 해동역사에 나오는 고려주가 바로 신라주라 하였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태종무열왕은 식량으로 하루에 쌀 3말, 꿩 10마리가 소요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이르면 양조곡주들이 다양하게 개발되고 상류사회에서는 청주류의 음용이 성행하게 되었다.

고려시대의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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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가 되면 전대의 곡주류 양조법은 이미 완성되어 고려전기 중에 청주류, 중양주류, 탁주류, 재주류, 감주류 등의 양조기술가 종류가 심화되었다. 고려시대에도 송과 빈번한 교류가 있었고 사원에서는 여관업을 겸하여 술을 빚어 팔기도 했다. 한편 궁중의 양온서(궁중에서 술을 빚던 관청, 후에 장예서, 사온서로 명칭이 바뀜)에서도 국가의식용 술을 빚었다. 송나라 서긍의 고려도경에 의하면 '고려에는 찹쌀이 없어 멥쌀과 누룩으로 술을 빚는다', '술의 맛이 독하여 쉽게 취하고 빨리 깬다', '일반적으로 고려사람은 술을 즐긴다. 그러나 서민들은 양온서에서 빚는 그러한 좋은 술을 먹기 어려워 맛이 박하고 빛깔이 짙은 것을 마신다'고 고려의 술이 묘사되어 있다. 양온서에서 빚는 술은 ‘법대로 빚는다’해서 법주라고 하였는데, 요즘의 법주와는 전혀 다른 술이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종묘제사에 관용으로 쓰는 중양주였을 것이다. 또 고려시대에 비로소 소주가 전래되었는데 동의보감과 본초강목에 의하면 소주는 원나라 때 아라비아와 원,만주를 거쳐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소주가 유입된 시기는 대체로 고려 충렬왕 3년이며 소주 음용시기는 충숙왕에서 충혜왕 사이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고려시대는 우리나라 술의 3대 분류인 탁주, 약주, 소주의 기본형태가 완성된 시대였다.

조선시대의 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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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술빚기의 특징은 중양주류가 발달하고 양조원료도 멥쌀 일색에서 찹쌀이 점차 늘어난다는 점과 腐本, 즉 술밑을 사용하여 효모를 증식시키는 기법이 발전하였다는 점 등이다. 조선시대에 유명했던 술은 무려 3백 여 가지에 이르나 그 중에서도 백하주, 삼해주, 이화주, 청감주, 부의주, 향온주와 약산춘, 호산춘, 노산춘 등의 春酒類를 들 수 있다. 소주도 날로 소비가 늘어 다산 정약용이 전국의 소주고리를 거두어 들여 식량난을 예방하고자 상소하기도 할 정도였다. 유명한 소주로 감홍로, 죽력고, 이강고 등이 있고 조선후기에 들어서서는 合酒類와 過夏酒類가 출현하여 탁주,약주, 소주 외에 혼양주가 덧붙여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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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원문 : 꽃과 사랑 애국플라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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