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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속사건

[스크랩] 다산의 공간조영과 이즈음의 집짓기

작성자그림9|작성시간10.08.30|조회수193 목록 댓글 0


(초의선사의 다산초당도)

어제는 목포 사는 친구가 다녀갔다. 광주에서 살다가 시골로 살러 온 나를 위해 부러 찾아온 것이다. 다산초당 근처 마을에 산다는 걸 생각했던지 발효차와 청차, 연잎차, 뽕잎차를 가지각색으로 가져왔다. 그와 함께 농소(옹산별업)와 수양리 옛집을 둘러보고 다산초당엘 갔다. 얘기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초당에 오르기 전 나는 친구에게 '비장의 장소'를 보여주려는 기대에 차 있었다. 그러나 다산초당명가 뒤쪽 공터에 이르자 뭔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다. 거기에서도 이즈음 짓기 시작한 귤동의 '한옥짓기사업'의 일환으로 누군가가 또 한채의 집을 짓는지, 두세명의 목수들이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나 올릴 법 하게 크고 우람한 나무들을 다듬고 있었다. 좀 떫더름 했지만, 지나쳐서 내 비장의 장소인 그 집 쪽으로 갔다. 그랬더니 아뿔싸, 그 집은 말끔하게 사라지고, 마당과 집채로 나뉘어 2단으로 되어있던 집자리는 주변이 모두 정리되어서 휑한 하늘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한쪽에 시커멓게 그을린, 그나마 대부분이 없어지고 몇개 남은 구들장 방돌들과 함부러 나뒹굴고 있었다.

그 황망함이라니!

올 봄 초당을 찾았을 때, 내게 그 집을 알려준 이는 광주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곧장 이곳에 와 살고 있는 후배였다. 그는 '시골집으로 이사 올까 말까 하고 못내못내 하던' 나를 이끌고 그집으로 들어가 그것을 보여줬다. 그러니까 그 집은 다산이 초당에서 지낼 때의 제자이자 귤동 입향조의 종손댁이라 했다. 하지만 여느 집 종손댁과 마찬가지로 그 집 형편이 여유롭진 못한 것 같았다. 농촌의 여느 빈집과 마찬가지로 굴뚝 연기가 사라진지 오래인 듯 한 그 집은 쓸쓸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토방마루에 서 보니 범상치 않은 그 집의 풍모가 금새 느껴졌다.

바로 앞에 새로 지은 '다산초당명가' 건물이 높이 솟아있어서 다소간 풍치를 가리고 있었으나 집 앞에 펼쳐진 정경이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뭐 2층집처럼 높다는 게 아니라 예전의 집들에 비해 집이 크고 높다는 것이다) 올망졸망한 집들과 지금은 논으로 변한 마을 앞 어딘가에서는 다산의 시 '애절양'에 나오는 누에를 치던 잠실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멀리 구강포와 바다 건너 풍경들도 너무 좋았다. 그리고... 정말 인상적이었던 것은 거기에 있는 돌로 된 '주련'이었다.

그러니까 그것은 보통의 절이나 서원, 제각 같이 큰 건물 기둥에 새겨 걸었던 나무로 된 게 아니었다. 비탈진 산기슭에 있었던 집자리였던 까닭에 각기 높이가 다를 수밖에 없었던 마당과 집자리를 단으로 나눈 축대에 4개인가(?)의 돌판에 마치 목조건물의 주련처럼 글자를 새겨 축대의 기둥 삼아 새운 것이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4언절구의 시구절인가, 아님 다산이 명명한 '다산팔경'을 적은 것인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데, 어렴풋이 그 집 일대의 풍치에 관한 것임에는 분명했다.

세상에나! 그 돌주련이 대부분 버려지고 그나마 몇개 추려져 나뒹구는 새카만 구들장 방돌들 사이에 뒹굴고 있었고, 더 안타까운 것은 그중 하나는 함부러 내던져서 한쪽이 깨진 상태였던 것이다. (이럴 때 말이 필요없이 사진이 제격인데, 찍어둔 사진이 없다. 어제의 것도 생각치 못한 일이라 찍어둔 것도 없지만, 사진이라는 매체의 특성 때문에 혹여 그 집안 분들이나 관계된 이들에게 누가 되진 않을까 싶어 올리지 않는다)

...

이즈음 전라남도에서는 곳곳에서 한옥짓기 사업이 한창이다. 귤동에서도 그 일환으로 여러채의 한옥들을 짓고있는데, 양옥 대신에 한옥을 지어 산다는데야, 자잘한 문제들을 제쳐놓는다면 나는 대체적으로 그게 좋다고 본다. 하지만 '친환경, 생태'를 내세우는 그 껍질을 한꺼풀 벗기고 곰곰 들여다보노라면 안타까운 구석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갑작스런' 집짓기가 그 하나다. 예전의 경우 한채의 집을 지으려면 몇년을 거쳐 궁리하고, 그 과정엔 살림집의 구조와 논밭 등의 일터와 집의 거리, 헛간-대문이나 문간채의 위치, 목재를 비롯한 재료의 마련과 목수, 토수 등 사람들을 구하는 것 등등 여러가지 과정들이 정말 느리고 차분하고, 그리고도 꼼꼼하고 '엽엽하게'(강진 사투리) 이뤄졌다. 수년씩이 걸리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이즈음의 그것은 구상에서 완성까지 한 1-2년 사이에 뚝딱 해치운다. 실제 공사기간은 반년을 넘지 않는다. 게다가 대부분의 집짓기는 주인의 역할은 거의 없고 설계만 정해지면, 주인은 단지 의뢰인일 뿐이고 이후로는 위탁받은 사람에 의해 일사천리로 지어진다.

그러니까 짓는 동안 주인의 자질구레한 참견이나 도중에 필요할 경우의 설계변경 같은 게 이뤄질 리가 없다. 전근대적 집짓기와 효율성, 쉽게 말해 돈이 최고 덕목인 이즈음의 집짓기야 물론 이런데서 대별되겠지만, 아무리 시대가 그렇다지만, 더 효율적인 것(삶의 과정이나 질?)이 간과되지 않느냐는 거다. 그래서 집을 짓다가 처마나 토방마루의 높낮이를 조정한다거나 방 한칸 정도를 더 달아낸다거나 담장을 어떻게 쌓는달지 하는 소소한 집주인의 생각들이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또 이즈음의 새집들은 예전의 한옥들에 비해 대들보나 부재 같은 목재들이 장난이 아니다. 여느 대궐집이나 절간 같은 짓을 지울 때에나 쓰였을 법 한 큰 나무들을 쓰고, 또 그렇기 때문에 전체적인 집의 구조가 무척 크기 쉽상이다. 목수일을 하는 내 후배는 '서까레가 대들보 만 하다'고 했다. 그런데도 토방마루조차 없는 집도 많다. 뿐만 아니라 창 문들은 마치 여느 양옥집처럼 크게크게 내서, 거기에 창호지만 바르고 그치는 아니라 또 그 바깥 쪽에 유리창을 붙인 집들도 많다. 그렇게 단열이나 프라이버시가 중요하다면 아파트에서 살거나 훨씬 값싼 양옥을 짓지 왜 한옥을 짓는지 모르겠다.

대개의 전통적인 한옥들은 그리 큰 나무를 쓰지도 않았고(못했고) 집이 넓지도 않았으며 높이도 낮았다. 아무리 부잣집이라도 말이다. 집은 사람이 편히 살기 위해 필요하다. 그래서 그래서 그 집에 사는 사람은 그 크기가 위압적이지 않고, 높이도 적당해야 하고, 그래야 단열도 잘되고 살기에도 좋다. 아마도 4간 접집 정도의 크기라면 어지간한 여염집 크기로는 손색이 없을 것이다. 너무 작은 집도 궁상맞지만 너무 큰 집도 거추장스러운 점들이 많다. 짓고 사는데 돈도 많이 들어가고 말이다.  

요즘 집들의 대부분의 기름보일러를 놓는다. 더러 화목보일러를 놓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이사 와서 나는 그런 집을 본 적이 없다. 또 내가 본 몇몇 화목보일러들은 열효율성이 떨어지기가 보통이 아니었다. 기름값보다 돈이 더 들어간다나? 그러니까 열효율(생태환경)을 생각하면 구들장방이 제격이겠지만, 집이 그을리거나 화재예방상, 또는 나무 해 때기가 거추장스럽다면 몇개의 방 중에서 하나 정도는 구들장 방을 놔서 이즈음 어디서나 그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장작불로 따뜻하게 구들을 지피는, 환경에도 좋고, 몸에도 좋은 말 그대로의 '황토방'을 만드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예전 같으면 나무 해 때기가 얼마나 힘들었나? 그런데, 세상이 천지개벽해 땔나무를 해 때지 않아도 되고... 게다가 그 지긋지긋한 구들장방이 세상에나 그 좋은 '황토방'으로 거듭나다니!

(강진군에 제안한다. 동네마다 있는 노인당에 겨울철이면 일정액의 기름값을 보조해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노인당 기름보일러를 구들장방으로 바꾸지. 아님 그중 방 하나라도. 그리고 기름값을 마을사람 누군가-노인일자리 사업도 좋고, 무직자에게 줘서 뗄나무를 해 때게 해보자. 그럼 외화도 절약하고, 에너지도 아끼고, 적은 돈이지만 없는 살림에 시골사람 누군가에게 일자리 창출사업, 지역소득창출도 되지 않겠는가 말이다)

또 있다. 집구조다. 토방마루를 안 놓는 것은 것은 물론 댓돌이나 쪽문 곁의 자그마한 툇마루, 뒷마루 같은 것이나 벽장, 다락방 같은 수납공간이 없는 것이다. 역시 그러려면 왜 한옥을 짓는지, 왜 한옥의 특장인 벽장을 만들지 않고, 아파트에서도 요즘은 이리저리 이사하기에 불편한 농짝들 들고다니지 말라고 붙박이장들을 설치하는 게 대세인데 그 큰 공간을 차지하는 장농짝을 신주처럼 모시고 사는지 모를 일이다.

돈도 돈이다. 전남도에서는 한 마을이 열채 이상의 한옥을 짓고 그와 관련된 마을만들기 사업을 하면 건축비의 일부를 싼 이자에 빌려주고 3천만원씩을 그냥 준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당 건축비가 5-6백만원씩이니깐 보통 짓는 크기로 30평 이상씩이면, 모두 1억 5천만원 이상씩의 큰 돈이 들어간다. 가뜩이나 어려운 시골살림에 굳이 이렇게 무리를 할 필요가 있느냐는 거다. 뭐 그 정도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면 별문제겠으나 어쨌거나 그런 돈이 빚이나 그밖의 부담으로 남는다면, '잘 먹고 잘 살려'는 취지 즉 애시당초 '성주'의 의도는 많이 반감되지 않겠느냐 말이다.

귤동의 경우 사업의 취지가 민박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다산초당엘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잠자리를 제공하고 돈을 벌어들인다는 것. 하지만 그것은 눈 먼 정부돈 갖다 쓰는 명분 뿐이지 실제의 민박이 이뤼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통상 민박이라면 거기에서 밥도 먹을 수 있는 게 상식이지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잠만 거기에서 자고 밥은 다른 데 가서 먹어야 한다면 많은 경우 회피하지 않을까? 그것도 그것이지만, 군이나 도청 같은 기관에서 지역의 소득창출을 위한 체류형 관광사업을 한다면 잠자리 이외의 여러 인프라들을 잘 갖추거나 이미 있는 것들을 잘 매치시키거나, 운용의 묘미를 살려야 할텐데, 민박, 쉽게 말해 어느 지역에 호텔 하나 번지르르 하게 지어놓는다고 사람들이 거길 가겠느냐는 거다. 물론 사업계획서에는 구구절절 좋은 말들이 빈틈없이 적혀있겠지만 말이다.

말이 길었다. 나는 자꾸 '옛, 우리 것이 최고여' 같은 식의, 이 포스트모던 시대의 '원본' 지상주의를 지극히 싫어하지만, 다산선생이 살았던 귤동마을 얘기므로, 다산의 공간조영에 관한 시를 하나 덧붙이겠다. '다산팔십운'라 해야 하나? 다소간 시간을 들여 여유 있게 읽어봐야 할 긴 시다. 하지만 소박하고 근면했던, 그리고도 뛰어난 시대-역사와 미의식이 뛰어났던 다산과 그곳을 조영하고 살았던 사람들의 풍모가 그림처럼 선하게 떠오른다. 강진다산실학연구원의 황병기 교수가 번역했다.


_____________

어느 날 매화나무 아래를 산책하다가 잡초와 잡목들이 우거져 있는 것이 보기에 안 됐어서 손에 칼과 삽을 들고 얽혀 있는 것들을 모두 잘라버리고 돌을 쌓아 단(壇)을 만들었다. 그 단을 따라 차츰차츰 위 아래로 섬돌을 쌓아올려 아홉 계단을 만든 다음 거기에다 채마밭을 만들고 이어 동쪽 못가로 가 그 주변을 넓히고 대오(臺塢)도 새로 만들어 아름다운 꽃과 나무들을 죽 심었다. 그리고 거기 있는 바위를 이용하여 가산(假山)을 하나 만들었는데, 구불구불 굽이지게 하여 샘솟는 물이 그 구멍을 통해 흐르게 하였다. 초봄에 일을 시작하여 봄을 다 보내고야 준공을 보았는데 그 일은 사실 문거(文擧) 형제가 맡아서 수고를 해주었고 나도 더러 도왔다. 그 일이 비록 곤궁한 자의 분에 맞는 일은 아니었으나 보는 사람이면 감탄을 하고 또 모두가 아주 좋다고 하여 시로써 그 기쁨을 나타내기로 하고 이렇게 팔십 운(韻)을 읊었던 것이다.

一日散步梅下隱其榛蕪手持刀臿斫其纏糾砌石爲壇因緣浸染於其上下爲砌九級以爲菜圃遂至東池拓其匡廓新其臺塢列植名花佳卉因其巖石爲假山一區迤邐彎曲水泉穿瀉起功在首春送春而竣文擧兄弟實躬厥勞余亦助焉雖窮約匪分觀者歎咨僉曰洵美爲詩志喜凡八十韻 (1809.1.?)

 

다산 속의 집을 빌려 사는데 / 賃屋茶山裏

어느새 많은 세월이 흘렀다네 / 欻然歲華走

떠돌이라 원대한 계획도 없고 / 萍梗無遠圖

게을러서 하는 짓도 늘 구차했지 / 呰窳計常苟

지금 두 번째 봄을 맞고 보니 / 及玆再見春

살기도 꽤 오래 살은 게지 / 棲息亦云久

봄바람 땅 힘을 부풀게 하여 / 條風散地脈

썩은 등걸에서도 새움이 돋는데 / 苞蘖出焦朽

한 가지 안된 것은 위치가 난잡해서 / 所嗟位置亂

석류나무가 화톳불자리에 서 있고 / 危榴雜薪槱

지대가 외지고 규모가 좁아 / 地偏寡模楷

시설하기가 영 지리하기에 / 施設竟鹵莽

예쁘장한 매화나무 한 그루도 / 娉婷一樹梅

바로 뒷간 뒤에가 있다네 / 乃在溷圊後

가슴속에는 자그마한 은둔처 생각이 / 胸中小丘壑

반평 을 두고 서려 있었기에 / 半生鬱蟠糾

다짜고짜 그 뜻 한 번 펴보려고 / 勃然思一展

분수를 따질 겨를도 없이 / 拙分末遑守

채소밭부터 먼저 만들렸더니 / 疆理先蔬圃

당장 도움이 되기에 설득력은 있으나 / 利近良易誘

산언덕이 너무 경사가 심하여 / 山阿劇波陀

거름흙이라곤 남아난 것이 없기에 / 糞壤流不有

돌을 죽 세워 난간을 만들고 / 樹石列欄楯

흙을 깎아 비탈을 평평하게 하려는데 / 削土平培塿

옛날 치산치수의 책을 읽었기에 / 舊讀玄扈書

돌계단 쌓는 법은 알고 있으나 / 梯磴法有受

이때가 바로 농사철이라서 / 于時値東作

마을 장정들 모두 들에 가 있었네 / 村丁悉在畝

일이란 시기 있는 것이기에 / 事期有緩急

좋고 나쁘고 가릴 겨를도 없이 / 未敢律臧否

삼태기와 삽을 손수 챙겨들고 / 畚鍤手自操

돌 다듬고 가래질은 벗들을 시켰더니 / 鐝勸諸友

은이가 수염이 나고 힘이 세고 / 殷也鬍有力

두 팔에 강한 근육이 얽혀 있어 / 强筋絡雙肘, 문거(文擧)의 아우 윤규은(尹奎殷)을 이른 것임

돌 뽑기를 가을털 뽑듯 하고 / 拔石似秋毫

우수처럼 산을 옮길 정도였는데 / 移山學愚叟

날랜 말 결국 넘어지듯이 / 快馬終一蹶

함부로 하다가 손을 다쳤다네 / 豪擧惜傷手

무르익은 싸움에 장수를 잃은 격이어서 / 酣戰折良將

허전하기 짝을 잃은 것 같았지 / 悵然如喪偶

어린 애들까지 다 불러들여 / 招呼逮童穉

그들 힘으로 모든 잡초 제거하고 / 聊用除蓬莠

세월 걸려서야 공사 마치고는 / 荏苒得竣事

조촐한 자축연을 가졌었다네 / 草草行勞酒

자질구레한 각종 씨앗을 뿌리고 / 播種具瑣細

밭두둑을 따로따로 나눠놨는데 / 畦畛各牉剖

씨앗이 붉으레한 무와 / 紫粒武候菁

잎이 녹색인 부추에다가 / 綠髮周顒韭

늦파는 용뿔같이 싹이 트고 / 晩蔥龍角茁

올숭채는 소 양처럼 두툼하여 / 早菘牛肚厚

쑥갓은 꽃이 국화 모양이고 / 茼蒿花似蘜

가지는 열매가 쥐참외 같아 / 落蘇蓏如萯

해바라기는 폐를 활기차게 하고 / 魯葵工潤肺

겨자는 구토를 멈추게 하지 / 蜀芥能止嘔

상치는 먹으면 잠을 부르지만 / 萵苣雖多眠

먹는 채소로 빼놓을 수는 없어 / 食譜斯有取

특히 토란을 많이 심은 것은 / 蹲鴟特連畦

옥삼이 입맛에 맞아서라네 / 玉糝頗可口

빈터에도 잡초만 제거해버리면 / 壖地剔榛荒

저절로 나 자라는 나물도 많아 / 旅生多野蔌

곁채에다는 명아주 비름 기르고 / 廊廡畜藜莧

울에다는 구기자나무 세우며 / 藩屛列杞枸

고사리 캐다가 국 끓여 먹고 / 捋薇充羹滑

쑥은 뒀다가 뜸 뜨는 데 쓰지 / 留艾備焫炙

띠 엮어 노루 못 뜯어먹게 막고 / 綰茨防鹿齕

말이 밟을세라 울 쳐놓았으니 / 揷籬虞馬蹂

채소밭 일은 대강 끝난 셈이기에 / 圃務旣粗辦

정원 못에 때를 닦아내기로 했다네 / 園沼思滌垢

그전부터 정자 동편의 못이 / 由來亭東池

좁고 작기 방아확만 하여 / 狹小如碓臼

산 밑까지 닿게 활짝 넓히고 / 拓展抵山根

바닥 찍어내고 차양도 넓히고서 / 斫豁蒙蔀

좋은 단풍나무 느릅나무 세워두고 / 尊賢立楓枌

몹쓸 떡갈나무 싸리나무 제거하고 / 鉏奸去柞杻

덜거덩덜거덩 큰 바위 굴려다가 / 砰訇轉巨石

산에 대어 섬돌처럼 쌓아놓으니 / 甃砌因會阜

산은 첩첩이 바위를 드러내고 / 山骨露嶙峋

맑은 샘물이 솟아올랐다네 / 泉脈集淸瀏

구멍을 키우고서 홈통을 대놓으니 / 疏竇灌連筒

물이 금방 장군에 넘쳐 흘러 / 坎液欻盈缶

곤이도 길러 뛰놀게 하겠고 / 跳躍涵鮞鯤

올챙이도 까서 기르게 하겠네 / 産育容蝌蚪

담 터진 곳은 대나무 심어 메우고 / 缺垣補脩竹

양 언덕은 수양버들이 가리고 있다네 / 夾岸扞垂柳

이웃에 중이 감탄하고 가더니만 / 隣僧嘆嗟去

아이에게 연뿌리를 보내왔는데 / 遺兒分碧藕

푸른 줄기 행채처럼 엉겨 있고 / 翠帶交荇妾

동그란 잎 마름이 쌓여 있는 듯 / 靑錢疊菱母

당귀는 묵은 잎 속에 새움 돋고 / 蘄芽雜老嫩

작약은 여기저기서 동 오르고 / 藥筍紛左右

부양은 줄 서 우산을 받쳐들고 / 膚癢森擎繖

국화는 찬란한 실끈을 토하지 / 綉毬粲吐綬

모란 묵은 뿌리는 쪼개내고 / 牧丹老根撦

감탕나무 늘어진 가지는 휘어 매고 / 冬靑遠條揉

애써 유초 구해 심었더니 / 苦覓乳蕉栽

바위 굴문 앞에는 봉미가 있고 / 鳳尾當巖牖

붉은 복사꽃 연분홍 살구꽃은 / 緋桃與紅杏

꽃잎이 교묘하게 새름새름 매달리며 / 花葉巧蟠紐

담뿌리에 자색 포도덩굴은 / 牆根紫葡萄

성난 용이 꿈틀거리고 있다네 / 怒龍鬱蚴蟉

노 그는 성품이 기교를 좋아하여 / 魯也性好奇

솜씨 부리는 일로 자부를 한다네 / 匠心乃自負, 문거의 이름이 규로(奎魯)임

바닷가에 가 괴석을 주워다가 / 怪石拾海濱

산봉우리를 구루마냥 만들었는데 / 峯巒象岣嶁

어떤 것은 비비 꼬여 소라고동 같고 / 或譎如螺螄

어떤 것은 맑고 빛나기 옥돌 같으며 / 或瑩如瓊玖

어떤 것은 장난하는 사자같이 보이고 / 或儇如戲狻

혹은 쭈그리고 앉은 개같이도 보이며 / 或愁如蹲狗

혹은 추장같이 우뚝한 것도 있고 / 或特如酋豪

혹은 암수가 쌍으로 있는 것 같은 것도 있으며 / 或雙如牝牡

기를 세워놓은 듯 솟아있는 것도 있고 / 或挺如旌纛

혹은 포개놓은 단지 같은 것도 있으며 / 或累如瓿甊

혹은 초라하기 중 같아 보이는 것도 있고 / 或窮僂如僧

혹은 여인처럼 예쁘장한 것도 있으며 / 或嬋嫣如婦

어떤 것은 팔들고 겨드랑이 벌리고 있고 / 或奮臂張掖

어떤 것은 머리 맞대고 목을 포개고 있으며 / 或交頸騈首

혹은 아롱자롱 충치 앓는 이도 같고 / 或齾齾如齲

혹은 언뜻 보기에 통발도 같고 / 或睒睒如罶

어떤 것은 이끼 돋는 누룩과도 같고 / 或潑苔如麴

어떤 것은 물 새는 조리와도 같고 / 或滲水如籔

혹은 술 취한 듯 붉으레한 것도 있고 / 或蒨紅如酲

혹은 늙은이같이 누르케케한 것도 있어 / 或梨垢如耈

제각기 모양새가 다르면서 / 各各殊姿性

잇달아 검푸른 빛을 띠고 있다네 / 延緣帶蒼黝

봄 산에 가랑비가 지나가면 / 春山度微雨

채소 싹이 맑은 기운 머금는데 / 菜甲含淸

누가 알리 유랑의 부엌에서 / 誰知廋郞廚

날마다 삼구반찬 장만하는 것을 / 日日供三九

이웃에서 술과 단술 보내와서 / 隣比送酒醴

남새밭 주인영감 수를 빌었다네 / 請爲圃翁壽

그리고 소평같이 외도 심으면서 / 遂種邵平瓜

나란히 밭갈던 옛날 저익도 생각하지 / 緬懷沮溺耦

안회도 끝까지 단사에 표음이었고 / 顔回竟簞瓢

순임금 역시 마른 밥과 풀을 먹지 않았던가 / 虞舜亦草糗

궁하고 배고픈 것 당연한 내 본분인데 / 窮餒固吾分

이 맑은 복이야 하늘이 주신 게지 / 淸福乃天授

더군다나 저기 시렁 위에는 / 況玆鄴侯架

사부의 서적이 가득 쌓여 있고 / 縹緗積四部

고단하게 살기에 저술도 많이 하여 / 窮居富述作

값어치 없어도 나는 천금처럼 아끼지 / 千金惜敝帚

시경 풀이하면서 노로 되돌아왔던 일 생각하고 / 箋詩思反魯

주역 주 내면서 유리에서 연역했던 일 추억한다네 / 疏彖憶演羑

오직 한 사람이 알았으면 됐지 / 惟求一人知

세상이 다 욕해도 걱정할 것 없어 / 寧愁擧世詬

쇠북끈이 아무리 좀먹어 떨어져도 / 追蠡雖剝落

큰 쇠북은 두드릴 것에 대비하고 있다네 / 洪鐘猶待扣

그 소리는 너무나 먼 곳이라도 / 聲流到天荒

울려퍼지기 포뢰가 우는 것 같다네 / 殷若蒲牢吼

산경도 있고 수지도 있으며 / 山經間水志

해학과 궤담이 이유에 가득하다네 / 詼詭函二酉

책상에는 꽃다운 향기 널려 있고 / 几案羅芬芳

의복은 해지고 추한 것이 편하지 / 衣袴甘老醜

잘 먹고 잘 입고 사는 자들 / 須知齧肥者

남 시키는 대로 하느라 피곤하고 / 趨承困指嗾

자잘한 이끗 쫓아 이곳저곳 돌다가 / 營營逐錐刀

의젓잖은 양 차면 해해거리는데 / 欣欣塞筲斗

그게 어디 제 벌어 제 먹는 백성들 / 豈若食力氓

하늘과 땅에 부끄러움 없음만 같으랴 / 俯仰無愧忸

이괘의 구이를 늘 보더라도 / 常觀履九二

영육을 초월해야 탈이 없느니 / 幽貞諒无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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