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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종과 선종-불교

작성자그림9|작성시간08.03.08|조회수107 목록 댓글 0

교종은 경전에 의거한 교리해설을 주로 하기에 문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교종은 삼국 시대에 불교 경전이 유입되면서 수용되었다. 그 후 신라 통일기에 원효를 비롯한 여러 고승들에 의해 경전에 대한 주석이 가해짐으로써 불교 철학에 대한 이해가 심화되었고, 아울러 5 종파가 확립되었는데 보덕의 열반종, 자장의 계율종, 원효의 법성종, 의상의 화엄종, 진표의 법상종이 그것이다.

 

선종은 인도인으로 중국에 들어온 달마 대사가 “편안한 마음으로 벽을 바라보면서(安心觀壁)” 깨달음을 구한 후, 혜능이 “문자에 입각하지 않으며 경전의 가르침 외에 따로 전하는 것이 있으니 사람의 마음으로 직접 터득하고, 본연의 품성을 보고 부처가 된다(不立文字 敎外別傳 直指人心 見性成佛).”라 이야기하고 마조도일이 “타고난 마음이 곧 부처(自心卽佛)”라 하며 인간의 평등과 인간성의 고양을 강조하면서 체계화된다.

 

이러한 선종을 익힌 도의가 신라 헌덕왕 때 당으로부터 귀국하면서 우리 나라에 전해지나, 아직은 왕즉불(王卽佛)의 왕권 불교인 교종의 탄압을 받아 그 세력을 펼 수가 없었다. 그 후, 선종은 신라 하대로 접어들면서 새로이 대두하던 6두품 및 지방 호족 세력의 환영을 받는다. 이는 진골 귀족의 견제로 신라 사회에서 정치적 뜻을 펼 수 없었던 6두품들이 선종의 개창(9산)에 앞장섰기 때문이며, 복잡한 교리를 떠나 심성의 도야에 치중하는 단순한 선종의 수양 방법이 호족들의 호감을 산 데다 선종 자체가 혁신성을 띠고 있었기에 새로운 사회 건설을 꾀하는 6두품과 호족의 환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 참고 ]

왕즉불(王卽佛) 사상 : 인도에서 창시된 불교는 중국에 들어와 국가 종교적 색채가 농후해졌다. 특히, 북조에서는 국가가 불교에 은혜를 베품으로써 국가에 봉사시켜 왕의 권위를 높이려 했다. 그리하여 북조에서는 국왕이 불교를 공인하고 불교 사원을 건립했다. 이 때 황제 중에는 자신의 모습으로 불상을 조각하여 스스로 살아 있는 석가불이라고 자임하기도 했는데 이는 황제가 곧 부처라는 ‘왕즉불’ 사상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우리 나라에서도 왕이 부처를 자처하고, 왕의 부모를 석가의 부모와 동일시하는 경향으로 나타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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