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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나신 베들레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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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순례도(구약시대 지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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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들레헴의 별을 따라(1996년 8월 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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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7일 늦은 오후 우리 순례단 일행은 예루살렘에서 10.8㎞ 남쪽에 자리한 베들레헴(Bethlehem : 히브리 말로 떡집)으로 내려갔다. 베들레헴은 이스라엘이 중동전 때 점령한 요르단 서안 점령지역이다. 1994년 요르단과의 평화조약으로 야세르 아라팟트가 이끄는 PLO(파레스타인 해방기구)의 자치지역으로 이스라엘 통치권 밖에 있다. 양진영 간에 분쟁이 일어날 때에는 순례의 길이 막히게 된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다행히 이스라엘 경계초소(境界哨所)를 넘어 평화롭게 '아기예수'의 탄생지인 베들레헴으로 들어갔다. 베들레헴의 지형은 높은 산이 둘러 있고 주변에 비옥한 토지와 목초지의 들판이 있는 동곡(洞谷)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베들레헴은 약 3만의 아랍주민들이 농사보다 올리브 나무와 진주조개 껍질로 만든 성물(聖物)을 만들어 순례자 및 관광객에게 팔아서 살아가는 작은 관광고도(觀光古都)로 남아 있었다. 오늘 우리는 2000년의 시차(時差)를 두고 동방박사의 뒤를 따라 영원히 빛나고 있는 베들레헴의 별빛을 바라보며 멀고 먼 극동의 한국에서 이 곳에 도착한 것이다.
[베들레헴의 지세] - 해설 :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미5:2),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쌔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마2:1-11)
[별을 따라 베들레헴에온 동방박사들(성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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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Bethlehem)(19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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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의 들판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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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이 오신 첫 땅 베들레헴은 일찍이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된 야곱(이스라엘)의 애처 라헬(창29:17-20, 30)이 묻힌 곳이고(창35:19), 또 보아스(다윗의 증조부)와 룻의 아름다운 로맨스가 있었고(룻1:19-22, 2:8-16, 4:13-17),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이 태어난 곳이다.(삼상17:12) 그리고 로마황제 가이사 아구스도(Caesar Augustus)때 호적령에 의하여 정혼 관계가 있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마리아가 갈릴리 나사렛에서 조상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함께 호적하러 내려 가다가 이 곳 객사에서, 동정녀인 마리아가 미가 선지자의 예언대로 메시야 예수를 탄생한 곳이다.(미5:2, 마1:23, 2:6, 눅2:1-7, 마1:18-23) 참으로 베들레헴은 하나님이 인간(임마누엘)으로 고요히 이 세상에 연착륙(軟着陸)하신 거룩한 첫 땅이다. - 베들레헴의 위치 베들레헴엔 다윗의 거리, 라헬의 매장지, 롯의 거주지가 있고 27㎞ 남쪽에는 아브라함, 이삭 및 야곱이 살았던 헤브론이 있다. 서북쪽 18㎞에는, 여호수아가 태양을 정지시킨 기브온이 있고(수10:12-14), 서쪽에는 다윗이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죽인 소고가 있다.(삼상17:1, 48-49) 그리고 10.8㎞ 북쪽에는 하나님의 성전과 400여 년간 다윗 왕조의 수도였던 예루살렘이 있다. 가까운 남쪽(8㎞)엔 여호사밧이 백성과 함께 여호와를 찬송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주어 유대를 치러온 모든 적병을 진멸하여 주셨던 곳이고, 또 아모스 선지의 고향인 드고아가 있다.(대하20:20-23, 암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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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의 주위(구약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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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헬의 무덤(Rachel's Tom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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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순례객을 맞는 성탄교회(the Church of the Nativity) 세계에서 베들레헴으로 오는 기독교의 순례객들은 한결같이 예수께서 강보에 싸여 누우셨다는 사관(舍館)의 마굿간을 찾아간다.(눅2:6-7) 그 마굿간(동굴임)이라는 장소 위에 세워진 성탄기념교회가 여로(旅路)에 지친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했다. 이 교회당은 AD 135년 로마 황제 하드리안(Hadrian, 117-138)이 이 자리에 세웠던 로마신전을 파괴하고, AD 325년경 콘스탄틴황제(Constantine the great, 306-337)의 모친 헤레나가 성지를 방문하여 골고다의 성묘교회(Church of the Holy Sepulchre)와 감람산 교회와 함께 이곳에 성탄교회(Church of the Nativity)를 세웠다 한다. 이때 헤레나가 세운 대리석 교회는 아름다운 모자이크와 프레스코 벽화로 장식된 웅장 화려한 교회였으나 AD 529년 나블루스에서 온 사마리아인들의 비잔틴 제국에 대한 반란에 의하여 약탈 당하고 방화되어 거의 손상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유스티니안 황제(AD 527-565)가 재건했다고 한다. 건물의 규모는 길이 51m, 폭 24m로 십자가형이다. 내부는 이스라엘의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4줄의 돌기둥을 세워 5등분되어 있다.
[성탄교회와 그 입구] (이 입구는 엎드리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는 작은 문으로 겸손히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마음을 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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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교회의 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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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교회(The Church of the Nativit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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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탄교회의 별(The Star) 성탄기념교회(Church of the Nativity)의 중앙 제단 밑에 있는 동굴이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이라 한다. 그 굴의 천정부분은 4세기때 석조로 대치된 것이고, 벽은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석면으로 입혀 놓았는데 이것은 1874년 프랑스 대통령 맥마흔이 기증한 것이라 한다. 그리고 바닥엔 당시 모양의 말구유가 놓여 있고 그 왼쪽에는 대리석 바닥에 은색별(금속판 별모양임)을 붙여 놓았다. 그 별판에는 라틴어로 "Hic de Maria Virgine Jesus Christus Natus est"(여기서 예수 그리스도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다.)고 새겨 놓아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을 표시하고 있다. 그 곳에서 나는 2000년 전 그 거룩한 밤, 고요한 밤, 주님 나신 밤을 상상하며, 동방박사들(wise men : 지혜로운 사람들)의 지혜의 빛(마2:1-2)과 그들을 인도한 하늘의 별빛(마2:9)과 하나님의 진리의 빛(계22:16, 요1:9)의 찬란한 회동(會同)의 영광 속에 우주에 넘치는 천군천사들의 장엄한 찬송의 코러스(Chorus)를 듣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2:14) - 해설 : (1) 예수가 나신 말구유 방의 전설 예수가 나신 방이 옛날 다윗과 보아스와 룻의 집의 일부였다는 전설이 있다. 또 이 방에서 로마의 학자 히에로니므스가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30년을 지냈다고 한다. -해설 : (2) 로마 교황의 평화기원 우리가 베들레헴을 순례한 약 4년 후인 서기 2000년 3월 22일 로마 가톨릭교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79)는 중동평화와 종교화해를 위하여 중동성지를 방문하였다. 이것은 (타 종교 간의 화해 목적)교황청 창설 후 처음 있는 공식 방문 이였다. 교황은 현재 이스라엘 군과 파레스타인 인이 대치 중인 요르단강 서안의 베들레헴(PLO 자치지구)에 이스라엘이 제공한 공군기를 타고 착륙했다. 교황은 이날 야세르 아라파트 파레스타인 자치정부(PLO) 수반 부부와 함께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말구유 교회의 광장에서 1만여명의 가톨릭 신도들 앞에서 미사(예배)를 집전했다. 교황은 이 자리에서 예수의 말씀을 빌려 "평화가 우리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기원했다.(2000년 3월 23일자 동아일보, 목요일, 제 24464호) 교황의 이 베들레헴 방문 행사는, 그 전날(3월 21일) 이스라엘 방문 때 "이제는 가톨릭교회와 유대교 사이의 편견을 끝내자"고 했던 교황의 제의와 함께 가톨릭교회와 타 종교(유대교와 이스람교)간의 평화의 촉구이며 기원을 의미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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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의 별(The St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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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나셨다는 말 구유방(동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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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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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브온의 태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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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8일 08시경 우리 순례단 일행은 이틀 밤을 숙박한 예루살렘의 킹스 호텔(King's Hotel)에서 출발하는 버스 안에서 아침예배를 드리고 예루살렘 서북쪽 약 112㎞에 있는 지중해 연안의 옛 항구 도시인 가이사랴(Caesarea)로 떠났다. 약 반 시간 후 예루살렘에서 사론(Saron)평야로 내려가는 중턱 언덕길에서 버스를 잠시 멈추었다. 그 곳은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하여 아모리 사람과 싸울 때 여호수아가 "태양아 너는 기브온에 머므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 찌어다."(수10:12) 라고 기도하여 하늘의 태양과 달을 멈추게 했다는 곳이다. 그 곳에서 예루살렘 쪽으로 멀리 보이는 산이 기브온 산(772m, 예루살렘에서 16㎞)이고 사론평원에 접해있는 아래쪽 골짜기가 아얄론 골짜기였다. 그 날 이스라엘 백성이 그 대적을 이길 때까지 태양이 종일 중천에 머물렀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신 이 같은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그 장소에서(수10:12-14) 나는 그 하늘과 그 산과 그 골짜기를 신기한 눈으로 다시 보고 다시 보았다.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그 크신 그 날의 능력의 은혜를 찬송했다. 그리고 문득 40년 전 회생하기 어려운 중병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나를 발견했다. 오! 나의 기브온의 태양(나의 인생의 생명)도 아직 지지 않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에 놀랐다. 할렐루야! 그 현장에서 잠시 쉬는 동안 그 곳 산기슭 돌멩이 밭에서 자연산 포도넝쿨에 주렁주렁 달린 소담스러운 포도송이들을 감상(鑑賞)한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사론 평야를 한참 달려 드문드문 열대수가 서 있는 푸른 지중해 해변에 도착했다. 그 곳이 지금은 폐허의 유적지로 남아있는 옛 가이사랴였다.
[사론(Saron)평야에 핀 아름다운 야생화(야생화;아 2:1)]
[갈릴리지방에 핀 화려한 꽃들]
[갈릴리지방에 핀 화려한 꽃] [이스라엘의 포도밭] - 해설 : 가나안 정복 때의 3대 기적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할 때 세 번의 큰 기적이 있었다. 첫 번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널 때 요단 강 물이 갈라진 것과(수3:7-17), 두 번째는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 이스라엘 백성이 제 7일에 여리고 성을 일곱 번 돌고 함성을 질렀을 때 여리고 성이 무너진 일과(수6:12-21), 세 번째는 우리 일행이 잠시 멈추었던 곳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옛 벧호른(Bethhoron)에서 여호수아가 태양을 멈추게 함으로서 가나안 정복의 결정적 대승을 거둔 일이다.(수10:1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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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 순례로(1996. 8. 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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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지방의 사론평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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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예수의 고향 나사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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⑴ 샘터의 물소리 8월 8일 오후 2시경 우리 순례단 일행은 므깃도를 떠나 이스르엘 평원을 흐르는 기손강 상류를 가로질러 동북쪽 20여㎞에 있는 예수의 고향 나사렛으로 올라갔다. 나사렛은 분지(盆地)의 산 마을 이였고 옛 도로를 따라 주택들이 자유로이 지어진 고풍의 도시였다. 북편 쪽 산 중턱엔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예수의 수태고지를 받았다는(눅1:26-33) 마리아의 집터 위에 웅장한 수태고지 기념교회(The Church of Annunciation)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아래 바닥지대엔 마리아가 예수와 함께 물을 푸러 다녔다는 마리아의 우물(Mary's well)이 있었다. 그 샘터 위에도 희랍정교회가 세웠다는 기념교회가 서 있다. 우리는 모자를 벗고 그 교회 예배실에 들어가서 잠시 묵도를 드리고 교회당 안쪽에 있는 샘터로 갔다. 큰 샘 줄기가 우렁찬 물소리를 울리며 솟구쳐 흐르고 있었다. 그 물소리는 마치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사55:1)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계22:17)는 말씀을 외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물소리를 들으며 나는 잠시 이 세상에 계셨던 인간 예수의 초상화를 그리는 명상에 잠겼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후 예수는 헤롯왕의 핍박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난 가셨다가 헤롯왕이 죽은 후 나사렛 동네에 돌아와서 사셨다.(마2:13-23, 눅2:39) 그리하여 예수는 나사렛 사람이라 불리어졌다.(마2:23, 막1:24) 예수는 이 나사렛 동네에서 양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의 효성스러운 아들로서(마13:55) 이 샘물을 마시며 지혜와 키가 자라 가며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사랑스러웠다.(눅2:52) 오늘 이 순간 예수님은 이 자리에서 자신이 자랐던 고향 마을의 추억을 나와 함께 하시리라. "고향 그리움"은 인성(人性)의 상정(常情)이 아니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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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집터(현재의 수태고지교회의 자리)의 주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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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의 우물(Mary's Well)] [마리아의 우물뒤에
있는 성 가브리엘교회
(그리스정교회소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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⑵ 역사의 산하(山河)들 예수의 고향 나사렛은 예루살렘에서 북으로 92㎞, 갈릴리 바다에서 서남 19㎞, 가나에서 남쪽 13㎞에 위치하고 있다. 사방에 산이 둘러있는 둥근 골짜기이며 토질은 모래땅으로 척박하다고 한다. 주봉 '네비이스마엘'에 올라가면 북으로 멀리 흰 눈으로 덮인 헬몬산(2850m)이 바라보이고 약 5.4㎞ 떨어진 곳에는 요나의 고향인 '가드헤벨'이 있다. 남에는 비옥한 이스르엘(일명, 에스드라에론)평야가 다볼산(588m)에서 지중해까지 펼쳐졌다. 서남 18㎞ 지점엔 갈멜산이 전모를 보이고, 남쪽 14.4㎞엔 엘리사가 수넴인의 아들을 살린 수넴(Shunem)이 있다. 그 근방엔 기드온의 샘(Harod 샘)이 있다. 기드온이 정병 300명을 거느리고 미디안인을 멸한 곳이다.(삿7:3-23) 또 가증한 이세벨이 예후에게 처참하게 죽은 에스렐이 있고(왕상19:1, 왕하9:30-37) 사울왕이 불레셋인에게 죽은 길보아산(520m)과 드보라(Deborah)와 바락(Barak)이 시스라(Sisera)와야빈(Jabin)을 물리친 기손강과 그들이 패망하여 거름이 되고(시83:9-10, 삿4:2-24) 또 사울이 신접한 여인에 의하여 사무엘의 영을 불러들인 엔돌(Endor)이 있다. 참으로 나사렛은 많은 '역사의 산하(山河)들'에 싸인 메시야 예수의 30년간의 보금자리였다.
[나사렛주위의 산하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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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성] [나인교회에 있는 유화]
(가버나움에서 32km,나사렛에서 동남 9.6km) (예수께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시는 모습의 성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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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볼산(Mount. Tabor 570m)]
{다볼산은 이스라엘의 성산(聖山)중의 하나다.(시89:12) 또 예수께서 제자들과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화하셨다고 하여 변화산 이라고도 불리운다.(눅9:28~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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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볼산(변화산;560m)의 근경]
[다볼산에 있는 예수변화 기념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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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볼산에 있는
예수변화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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⑶ 예수의 이름표 나사렛 예수는 나사렛에서 사시다가 30세쯤 되어서 요단강에 내려가 세례 요한으로부터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마3:13-17), 또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고(눅4:1-13) 갈릴리에 돌아오신 후 성령의 권능으로 여러 회당에서 진리를 가르치셨다.(눅4:4-15) 특히 고향 나사렛 회당에서 가르치시니 나사렛 사람들이 놀라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는가. 이는 그 목수(양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는가.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한가. 그런 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는가." 나사렛 고향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의 권능을 보고, 놀라고 당황했다. 목수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그들의 선입견이 그들의 눈을 멀게 했다. 예수께서 이들 이웃사람에게,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눅4:24) 하시고 저희의 믿지 않음과 배척으로 인하여 고향에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셨다.(마13:53-58) 어느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고향회당에 들어가서 성경을 들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으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눅4:16-19)를 읽으신 후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다."(눅4:21)고 하셨다. 이 말씀은 자신(예수님)이 온 성경이 예언했고 온 이스라엘이 고대하든 메시야 임을 선포하신 것이다. 그러나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가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메시야라는 것을 믿지 못하고 도리어 모두 분노하여 동네 밖 산 낭떠러지(13.5m 높이)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했다.(눅4:16-30) 이 곳은 그 후 추락산이라고 불리웠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나다나엘이 빌립에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요2:46)라고 말할 정도로 나사렛 사람들은 무식하고 괴악하고, 또 풍속이 추잡하여 다른 곳 사람들이 나사렛 사람들을 천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사렛 예수"의 이름은 그 멸시도 담은 이름 이였던 것 같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은 다메섹 도상에서 만난 사울(바울)에게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히셨다.(행22:8, 26:9) 예수님은 "나사렛" 그 고향의 이름으로 골고다에서 우리 죄인들을 구속하셨고,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히 그 이름으로 불리 우시는 것을 기뻐하실 것이다. 나사렛은 우리 구주의 영원한 이름표이시다. ⑷ 수태고지 교회(The Church of Annunciation) 나사렛의 기원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지금도 신선한 물이 솟구치는 마리아의 우물(Mary's Well)이 있어서 일찍부터 마을을 이룬 것 같다. 이 마을의 큰 사건은 BC 4-5년경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수태고지를 한 사건이다. 『...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1:26-31)』 그 후 천사가 전한 예언대로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하였다. 해산할 무렵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호적령에 의하여 정혼자 요셉과 함께 마리아는 조상의 고향 베들레헴으로 호적하러 가다가 베들레헴 객사에서 예수를 낳았다. 그러나 헤롯의 핍박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난 갔다. 헤롯이 죽은 후에야 나사렛으로 돌아와 살았다.(마2:19-23, 눅3:23) 약 30년 후 예수는 요단 강에 내려가서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으신 후 나사렛 고향회당에서 말씀을 증거하시다가 유대인들의 분노와 증오에 찬 반발로 추락 산에 끌려가서 죽임을 당할 뻔했다.(눅4:16-30) 그 후 나사렛은 별로 극적인 사건이 없었다. AD 66년에 베스파시안(Vespasian, 로마황제, AD 69-79)에 의하여 파괴된 적이 있다. 유대교인 지도자 바르크흐바(Barkohha, AD 131-135)가 유대지역에서 로마에 항거하다 실패한 후 유대인들이 대거 갈릴리 지방으로 피난하여 나사렛에 정착하였다한다. 이 후 AD 4세기초까지 나사렛은 그리스도인들이 들어 갈 수 없었다 한다. AD 326년경에 기독교를 공인한(AD 313) 콘스탄틴(Constantine the great)황제의 모친 성 헤레나가 가브리엘 천사가 수태고지를 했을 것이라는 마리아의 집터(추정)에 수태고지 기념교회(the Church of Annunciation)를 세웠다. AD 614년 헤라클리우스 황제(Heraclius, AD 610-641, Byzantine Emperor)가 페르샤(Persia, 1935년 이후 Iran으로 개칭)와 전쟁을 할 때 헤레나의 성당은 파괴되었다 한다. 그리고 이때 정착하고 있었던 유대인들이 페르샤를 도왔다는 이유로 이 곳에서 추방되었다.(AD 629년) 그 후 10자군시대(AD 12세기)에 이르러서야 나사렛은 번영되기 시작했다. 이 무렵 갈릴리 지방장관(governer)인 탄크데드가 로마 건축양식으로 교회와 수도원을 재건했으나 AD 1187년 살라딘(Saladin, 시리아와 이집트의 회교국 군주, AD 1174-93)에게 나사렛이 점령당한 후 AD 1263년 칼리프 바이바르스에 의하여 교회가 또 파괴되었고, 그 후 400년 동안 모스렘(Moslem)의 지배를 받았다. AD 1620년부터 그리스도교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하여 1730년에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또 다시 작은 교회를 세웠고 1877년에 더 크게 확장했다. 이 수도회는 1955년에서 1969년에 걸쳐 다시 부지발굴부터 시작하여 중동지방에서 가장 웅장한 현재의 교회당을 완공하였다. 이 교회당을 건축하기 위한 부지발굴 작업 중에는 많은 역사적 유물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의 교회당은 우리 순례단이 방문한 마리아의 우물교회에서 쳐다보이는 언덕에 자리잡고 있어서 그 화려하고 웅장한 외양(外樣)은 쳐다보았지만 여행 스케줄 때문에 직접 들어가지는 못했다. 기록에 의하면, 이 교회당은 건축의 대가인 이태리 무지오가 설계한 20세기 최고의 걸작품이라 한다. 그는 한 교회 위에 또 하나의 교회를 얹어 안에서 서로 통하게 설계함으로서 옛 교회의 유적을 고스란히 보존하였다고 한다. 아래 교회당의 외벽들은 십자군시대에 지은 성전터가 혼잡한 거리에 있어서 서쪽으로 몇야드 옮겨지었다 한다. 이 건물의 규모는 정면 폭이 30m, 길이 70m, 우아한 돔(dome) 높이가 60m에 달한다. 재질은 돌로 강화된 콘크리트로 만들어지고 지붕은 구리로 덮고 작은 뽀족탑에는 등(燈)을 얹어 놓았다. 교회당 전면에는 천사가 마리아에게 수태소식을 전해주는 장면과 예수의 전기(傳記)를 기록한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4복음서가 조각되어 있다고 한다. 교회당 안에 들어가서 첨탑을 올려다보면 백합꽃을 거꾸로 달아 놓은 것 같아 하늘에서 백합꽃이 내려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세상에 내려오신 예수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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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수태고지 기념교회(The Church of Annunci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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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태고지교회의 내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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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태고지내부에 있는 마리아방]
(이곳에서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예수 잉태소식을 들었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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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요셉 기념교회] [마리아 방문교회]
(수태고지 기념교회에서100m옆) (마리아가 산중의 아인카렘에 있는
엘리사벳 집을 방문했을 때 마중
나온 곳이라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