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브로브니크(Dubrovnik-Neretva County)
크로아티아의 아드리아해 연안에 있는 관광 도시. 행정구역상으로 두브로브니크-네레트바 주에 속한다. 2021년 인구는 약 4만 명. 고딕,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이 어우러진 고풍스러운 시가지와 그곳을 둘러싼 성벽의 경관으로 유명하다.
두브로브니크 옛 시가지는 1979년에 플리트비체 국립공원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세계유산의 영역은 성벽 안쪽뿐만 아니라 성벽 바깥에 있는 로브리예나츠(Lovrijenac) 요새와 로크룸 섬 전체를 말한다. 1991년에는 지진과 전쟁으로 인해 심각한 피해를 입으면서 '위험에 처한 유산목록'에 올랐다가 복구 작업이 상당히 진척된 1998년에야 비로소 이 목록에서 해제되었다.
아메롤링 분수(Amerling Fountain)
그리스 신화의 신 판(Pan)과 님프(Nymph)를 묘사한 대리석 조각으로, 20세기 초 지역 자선가인 블라호 아메롤링(Vlaho Amerling)의 후원으로 제작. 두브로브니크 시민들에게 휴식 공간과 식수를 제공한다.
두브로브니크 성벽(Dubrovačke gradske zidine)
약 2km에 걸쳐 옛 시가지를 감싸고 있는 성벽이다. 필레 게이트 근처의 입구를 통해 성벽 위로 올라가 도시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다. 성벽은 최고 25m 높이를 자랑하며, 가장 견고한 곳의 두께는 6m에 이른다. 육지 쪽에는 해자를 파 접근을 더욱 어렵게 했다. 성벽 곳곳에는 탑과 요새를 배치했는데, 이 중 규모가 가장 큰 것은 북서쪽에 있는 민체타 탑(Kula Minčeta)이다.
민체타 요새(왼쪽)
두브로브니크 성벽 북쪽에 자리한 대규모 원형 타워.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장 아름다운 요새이자 크로아티아를 대표하는 르네상스 시대 건축물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필레 관문(Pile Gate)
1537년 중세시대에 완공되었고 구시가지로 들어가는 서쪽 메인 입구. '왕좌의 게임'에서 '킹스랜딩'의 성문 배경의 촬영 장소로 유명하다.
필레 게이트 성문 위의 두브로브니크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St. Blaise)이다. 크로아티아 조각가 이반 메슈트로비치(Ivan Mestrovic)가 제작했다.
오노프리오 분수(Onofrijeva fontana)
시민들의 쉼터이자 여행자들의 약속 장소.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를 찾은 여행자들에게 사랑받는 만남의 장소이자 시민들의 휴식처. 지어진지 600년 가까이 지났지만 각기 다른 얼굴과 동물의 모습이 조각된 16개의 수도꼭지에서는 여전히 마실 수 있는 맑은 물이 흘러나온다.
1667년 대지진으로 원래의 화려한 돔 모양 지붕이 손실되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각기 다른 얼굴과 동물의 모습이 조각된 16개의 수도꼭지.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의 중심인 스트라둔 (Stradun) 거리
'큰길'을 뜻하는 베네치아어에서 유래되었으며, 서쪽의 필레 문부터 동쪽의 플로체 문까지 약 300m 길이로 곧게 뻗어 있는 메인 산책로 '플라차 대로'라고도 불린다. 차량 진입이 금지된 보행자 전용 거리로, 양옆에 노천카페, 레스토랑, 기념품 샵이 즐비해 항상 여행객들이 북적인다. 바닥이 대리석으로 깔려있다.
성 블라이세(St. Blaise Church) 성당
17세기에 지어진 후 1715년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성당 이름은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 성 블라이세에서 따왔다.
성당 제단에 1667년 대지진 이전의 구시가지 모형을 들고 있는 성 블라이세 은빛 상이 모셔져 있다.
화려한 금빛 장식으로 꾸며진 파이프 오르간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구 시가지 스트라둔 거리의 끝에 있는 종탑(Bell Tower)
35미터의 길이의 종탑으로, 1444년에 세워졌다. 30분마다 종이 울린다.
시계탑 꼭대기에 종이 있는데 종 치는 인형이 두 개 있다. 녹색 쌍둥이( Zelenci)라고 불리고, 각각 Maro, Baro라는 이름도 있다.
정오에 종을 친다고 한다. 종은 Ivan Rabljanin이 만들었다고 한다.
스폰짜 궁전(Palača Sponza)
16세기 건축물이며 궁전의 이름은 라틴어 " spongia "에서 유래했는데, 빗물을 모으는 장소를 의미한다.
안뜰이 있는 직사각형 건물은 파스코예 밀리체비치 미호프 가 1516년에서 1522년 사이에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합된 형태로 지었다. 회랑과 조각상은 안드리이치 형제와 다른 석공들이 제작했다.
세관, 보세 창고, 조폐국, 무기고, 재무부, 은행, 학교 등 다양한 공공 기능을 수행했다. 16세기에 문학 아카데미인 아카데미아 데이 콘코르디가 설립되면서 라구사 공화국의 문화 중심지가 되었다. 1667년 대지진에도 피해 없이 살아남았다.
12세기부터 시작된 문서들을 보관하고 있는 두브로브니크 국립 기록 보관소이며 , 가장 오래된 문서는 1022년의 것이다. 7000권 이상의 원고와 약 100,000개의 개별 원고가 보관되어 있다.
마린 드르지치 극장 (Marin Drzit Theatre)
19세기 중반에 지어졌으며 연말 겨울 시즌(12월)마다 크로아티아의 대표적인 연말 공연인 호두까기 인형(The Nutcracker)을 무대에 올려 고풍스러운 19세기 극장과 환상적인 동화가 어우러진 매혹적인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선사한다고 한다.
마린 드르지치 (Marin Drzit) 동상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의 유명한 극작가이자 시인. 동상의 코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전설이 있어 코와 무릎이 금색이 되었다.
렉터 궁전(Rector Palace)
공화국의 총통 '렉터'들이 머물던 장소. 과거 라구사 공화국의 최고 통치자 '렉터'들이 약 한 달간의 짧은 재임 기간 동안 머물던 곳이다.
두브로브니크 수로와 오노프리오 분수를 설계한 나폴리 출신의 건축가 '오노프리오 델라 카바'가 지은 또 하나의 작품. 두 번의 화약 폭발과 대지진을 겪은 후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었으며, 후기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이 혼재된 처음 모습도 함께 유지하고 있다.
렉터 궁전의 안뜰이다. 라구사 공화국에 전 재산을 기부한 미호 프라켓(Miho Pracat)의 동상이 정면에 있다. 크로아티아와 인근 지역에 대하여 알 수 있는 문화 역사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렉터의 집무실을 비롯해 15,000여 점이 넘는 중세 회화와 조각품, 당시 귀족들이 사용하던 생활 물품 등을 구경할 수 있으며, 크로아티아 독립 전쟁 당시의 참혹함을 담은 각종 전시도 볼 수 있다.
군들리치 광장(Gundulic Suare)
16~17세기 시인인 이반 군들리치(Ivan Gundulic) 동상이 있다. 매일 아침 특산품을 판매하는 야외 시장이 열린다고 한다.
올드타운 항구 주변에 현장학습온 학생들과 교사.
올드 포트(Old Port). 항구 앞에 아드리아 해가 시원스레 펼쳐져 있다.
로크룸 섬(Lokrum Island)
구 항구에서 배로 약 15분 정도 걸리며. 1023년에 지어진 베네딕도회 스도원과 식물원, 요새등이 남아 있다. 스르지산에서 본 모습이다.
스르지 산에 올라!
높이 412m의 스르지 산에 우리 일행은 미니밴으로 올라갔다. 케이블카로 갈 수도 있는데 바람이 불면 운행하지 않는다. 성벽에 둘러싸인 빨간색 지붕이 예쁜 구시가지가 보이고, 아드리아 해가 발아래 펼쳐진 시원한 전경이 아름답다. 구름이 끼어서 멀리까지 보이지는 않았지만 구름 위에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돌산에 피어난 노란 꽃도 아름답다.
보카르 요새(Fort Bokar)
해안 바위 절벽 위에 새워져 방어 시스템의 핵심 역할을 하였으며 왕좌의 게임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스르지 산에 올라갔다 와서 지금부터는 우리끼리 자유시간을 만끽해 보자!
오른쪽에 로브리예나츠 요새에 올라가는 사람들을 보니, 우리 일행도 올라가 보자고 의기투합. 성벽 한 바퀴 도는 것은 포기하고, 대신 여기 올라가서 성벽을 내려다보기로 한다.
로브리예나츠 요새에 올라가 보자!
로브리예나츠 요새(Fort Lovrijenac)
11세기부터 건축하여 14세기 완성. 왕자의 게임 촬영지로도 유명하며 구시가지와 아드리아 해 전경을 감상할 수 있다.
베네치아 인들이 이 장소에 요새를 세우러 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두브로브니크 시민들이 미리 요새를 세워버려 베네치아 인들이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도시 바깥을 향한 요새 벽은 무려 12m나 되는 철통 방어를 자랑한다.
요새 아래 척박한 절벽에서 해풍을 맞고 한쪽으로 자라난 소나무.
요새에 올라가 내려다본 멋있는 풍경.
구시가지의 붉은색 지붕과 안개에 싸인 스르지 산 정상이 눈앞에 펼쳐진다.
두브로브니크 대성당(Dubrovačka katedrala) 일명 성모승천 대성당.
십자군 원정을 마치고 돌아가다 조난을 당한 잉글랜드의 '사자왕' 리처드 1세. 로크룸 섬에서 목숨을 건진 뒤 감사한 마음으로 신에게 헌납한 성당.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1667년 대지진 당시 완전히 무너졌다. 지금의 모습은 17세기에서 18세기 사이 이탈리아 건축가들에 의해 로마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된 모습이다. 중앙 제단 뒤에 성모의 승천을 묘사한 성화(聖畵)가 그려져 있어, '성모승천 대성당'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두브로브니크 대성당 주 제단 뒤에 '티치아노'의 '성모승천' 그림이 있다.
티치아노의 성모승천(Assumption of the Virgin)
이 작품은 성모 마리아가 죽음 이후 영혼뿐 아니라 육체도 함께 천국으로 올라가는 장면을 담고 있다. 티치아노의 노년기 1552년 경 제작한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프란체스코 수도원&성당(Franciscan Church and Monastery)
높은 종탑이 있는 이 수도원은 1317년 처음 지어졌으나, 1667년 대지진 후 재건되었다. 드브로브니크의 스트라둔 거리에 있다.
프란체스코 수도원 입구의 성모 마리아가 예수의 시신을 안고 있는 모습을 조각한 피에타상.
프란체스코 성당의 주 제단
프란체스코 성당의 성십자가 제단
두브로브니크에서 몬테네그로의 헤르체그노비까지 1시간 30분 달려 숙소에 도착. 총 5시간 소요. 여행 4일 차가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