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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안내 및 후기

발칸반도 9개국 5( 알바니아- 티라나, 북마케도니아-오흐리드)

작성자kk1kk2|작성시간26.06.05|조회수7 목록 댓글 0

어제 몬테네그로의 코토르에서 4시간 30분 이동, 알바니아의 레저에 도착. 오늘은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로 1시간 반 이동한다.

 

 

 

알바니아

동남유럽 발칸반도에 위치해 있고, 북서쪽으로는 몬테네그로, 북동쪽으로는 코소보, 동쪽으로는 북마케도니아, 남쪽과 남동쪽으로는 그리스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지중해, 서쪽으로는 아드리아해, 남서쪽으로는 이오니아해와 해안선을 맞대고 있다.

 

 

 

티라나(Tirana)

알바니아의 수도이자 과거와 현재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가장 큰 도시이다. 알바니아 중부의 이샴(Ishëm) 강 근처에 위치하며, 해발 약 110m 고도에 자리 잡고 있다. 인구는 약 90만 명으로, 알바니아 전체 인구의 약 3분의 1이 거주하는 핵심 도시이다. 1614년 오스만 제국 시대에 세워졌고, 1920년 알바니아의 수도가 되었다. 오랜 공산주의 시대를 거치며 많은 변화를 겪었으며, 1990년대 이후로는 현대적인 도시로 빠르게 발전하였다.

 

 

벙커(bunkerët)  

알바니아는 엔베르 호자 정권 시절 국토요새화 정책 아래 전국적으로 75만 개가 넘는 벙커를 건설해서 전국을 요새화했고, 이 과정에서 사회 전반이 군사화되고 통제되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티라나에서도 벙커가 도시 경관의 일부처럼 남아 있으며, 현재는 단순한 군사시설이 아니라 공산주의 탄압, 감시, 정치적 박해를 보여주는 역사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당시의 대부분 벙커는 버려졌지만 일부는 박물관, 숙박 시설, 카페, 창고, 동물 보호소, 노숙자 보호소 등 다양한 목적으로 재사용되고 있다.

 

 

벙커아트 2(Bunk'Art 2)

스칸데르베그 광장 바로 옆 도심 한가운데 있는 지하 벙커 박물관이다. 과거 공산주의 시대 경찰과 군인이 정권 반대자를 어떻게 박해했는지를 보여주며, 1945년부터 1991년까지 약 10만 명의 알바니아인이 정치적 박해를 받았다는 설명과 사진, 장비를 전시하고 있다. 

 

 

벙커아트 2의 출구를 지나 입구 쪽으로 가는 일행들.

 

 

벙커 아트 2 안으로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입구에서도 내부를 들여다볼 수는 있었다.

 

 

벙커아트 2의 내부

엔베르 호자 정권 시절 국토요새화 정책 아래 전국적으로 수많은 벙커를 건설했고, 이 과정에서 사회 전반이 군사화되고 통제되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티라나에서도 벙커가 도시 경관의 일부처럼 남아 있어. 과거의 공산주의 시절의 폐해를 고발하고 있다.

 

 

벙크아트 2(BunkArt2) 박물관 전시 모습

비밀경찰의 은신처였던 핵 방공호로 사용되었던 장소를 박물관으로 개조해 놓았다.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감시당하거나 희생되었으며 그들의 사진을 전시하고 있다.

 

 

에템베이 모스크(Et'them Bey Mosque)

티라나 중심광장에 있는 이슬람교 사원 에템베이 모스크, 1789년 몰라 장관이 짓기 시작하였고, 아들인 에템 파샤 군사령관이 1823년 완성하였다. 알바니아가 공산국이던 시절 폐쇄되었으나, 공산당이 몰락하기 직전인 1991년, 이슬람교도 만여 명이 모스크에 침입하여 집회를 다시 시작하였다.  이 사건은 알바니아에서 종교의 자유가 다시 태어나는 이정표가 되었다. 이 모스크에는 이슬람 예술에서 보기 드문 나무, 폭포, 다리 등을 묘사한 정물 프레스코화가 있다고 한다.

 

시계탑

모스크 뒤의 티라나 시계탑은 티라나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며, 1822년 에템베이 모스크를 완성한 에템 지방 장관이 세웠다.

1928년 높이 35m로 개조되었으며, 내부에는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90단 계단이 있다.

 

 

스칸데르베그 광장( Sheshi Skënderbej) 파노라마

알바니아 티라나 중심에 위치한 중앙 광장이다. 알바니아의 독립을 위해 싸운 국민 영웅 스칸데르베그 장군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

국립 역사박물관, 오페라 하우스, 에템 베이 모스크와 같은 랜드마크로 둘러싸여 있는  유럽에서 가장 큰 광장 중 하나이다. 

 

 

티라나의 눈(Eyes of  Tirana)

높이 135m 31층과, 10층의 건물이다.  티라나의 역사적, 문화적, 도시적 면모를 역동적으로 표현하는 공간으로 설계되었다고 한다.

 

 

국립역사박물관

건물 외벽의 거대한 모자이크 벽화는 '알바니아인들'이라는 작품이다. 알바니아에서 가장 큰 박물관으로,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티라나 중심부에는 노란색의 인터컨티넨탈 호텔과, 독특한 곡선형의 현대식 건물이 보인다. 이 독특한 건물은  알바니아의 민족 영웅인 게오르기 카스트리오티 스칸데르베그(Gjergj Kastrioti Skanderbeg)의 두상을 형상화하여 얼굴 모양을 나타내는 건물이다.

 

 

I Love Tirana 뒤쪽 건물은 오페라 하우스.

 

 

 

고대 그리스 양식의 석상으로 장식된 이국적인 분위기를 보여주는 건물 외관.

 

 

게오르기 카스트리오티 스칸데르베그(Gjergj Kastrioti Skanderbeg) 동상

15세기 오스만 제국의 침략에 맞서 알바니아의 독립을 지켜낸, 최고의 군사 전략가이자 민족 여웅이다. 알바니아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 오스만 제국에 인질로 끌려가, 이슬람교로 개종하고 군사 교육을 받아 탁월한 장군으로 성장. 1443년 니시 전투 중 오스만 군대를 이탈하여, 고국 알바니아로 돌아왔다. 다시 기독교로 돌아와 민족 연합체 '레저 동맹'을 결성해 총사령관이 되었다.

오스만 대군을 상대로 25년간 승리를 거두며 국경을 지켰다. 이 저항 덕분에 오스만의 서유럽 진출이 수십 년간 지연돼 교황청을 비롯해 기독교 국가들은 그에게 '기독교의 수호자'라는 칭호를 부여했다.

 

 

치즈, 고기, 채소 등을 토르띠야로 감싸 만든 '퀘사디아'라는 음식으로 점심 식사를 했다. 우리나라의 부침개와 비슷한 맛이다.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에서, 북마케도니아 호반의 도시 오흐리드로 가는 길. 3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북마케도니아 공화국(Република Северна Македонија)

동남유럽 발칸반도 한가운데에 있는 내륙국이다. 북쪽으로는 코소보와 세르비아, 동쪽으로는 불가리아, 남쪽으로는 그리스, 서쪽으로는 알바니아와 접하고 있다. 수도는 스코페이다. 50개가 넘는 호수가 있고, 2,000m가 넘는 산도 16곳이나 있다고 한다.

 

이전 국호는 마케도니아 공화국(Република Македонија)이었으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으로 잘 알려진 고대 그리스계 국가였던 마케도니아 왕국으로부터 이어지는 국호이기 때문에, 그리스는 슬라브족이 마케도니아를 참칭 한다며 마케도니아라는 국호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마케도니아 공화국은 1991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부터, 그리스와 20년 넘게 명칭 분쟁이 있었다. 2019년에 마케도니아 측은 그리스의 입장을 수용해, 국호를 공식적으로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으로 개칭하였다.

 

 

 

오흐리드 (Ohrid)

북마케도니아의 남부에 있는 도시. 선사시대와 청동기 시대의 유적부터 중세 말기까지의 유적들이 남아있는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오래된 도시이다. 게다가 정교회와 이슬람이 같이 공존하다 보니, 덕분에 '발칸의 예루살렘'이라는 별명이 있다.

오흐리드와 오흐리드호는 1980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선정되었다.

 

 

오흐리드 호수(Ohrid Lake)

호수의 전체 면적 가운데 약 2/3는 북마케도니아에, 1/3 정도는 알바니아에 위치한다. 호수 주변에 위치한 습지에는 펠리컨, 오리, 고니, 독수리를 비롯한 여러 철새들이 겨울을 보내는 곳이다. 1979년에 호수의 뛰어난 자연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의 자연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980년에는 오흐리드 시와 주변의 역사 문화유산이 추가되어 지정되었고, 2019년에는 인접한 알바니아 호수 연안까지 확장되었다.

 

 

배를 다고 오흐리드 호수를 한 바퀴 돌아보자! 비 오는 날의 호수는 흐려서 경치가 잘 보이지는 않지만 운치는 있다.

 

 

배가 출발하고 곧 산 위에 멋진 교회가 보인다. 나중에 저기를 올라갔는데, 호수와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은 '성 요한 카네오 교회'다.

 

 

 

오늘 일정이 끝나면 이런 호텔(Inex Olgia Hotel & Spa)에서 묵는다고? 호텔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얼마나 멋있을지 한 껏 기대가 된다.

 

 

빌라 빌랴나(Vila Biljana)

과거 유고슬라비아의 지도자 티토 대통령의 여름 별장이었다고 한다. 슬로베니아의 블레드 섬 경치 좋은 곳에도 있었는데, 오흐리드 호수 경치 좋은 곳도 선점하고 있었나 보다.

 

 

 

비 오는 날 오흐리드 유람선 한 바퀴도 즐거운 추억!

 

 

'십자가를 든 사람' 동상

매년 1월 19일 정교회 주현절( 主顯節, Epiphany, 주님이 나타난 날) 축제 때, 사제가 얼음처럼 차가운 호수에 나무 십자가를 던지고 많은 사람들이 물속에 뛰어든다. 처음 십자가를 건진 사람은 일 년 내내 건강과 행운을 얻는다는 믿음이 있다.

 

 

목공예를 직접 제작하며 판매하고 있는 청년. 비도 오고 손님은 없고 기웃거리며 구경만 하는데도, 사람 좋은 웃음으로 맞아준다.

 

 

성 소피아 성당(Црква Света Софија)

북마케도니아 오흐리드에 있는 정교회 성당. 북마케도니아에서 가장 중요한 기념물 중 하나로, 중세 시대의 건축과 예술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잘 보존되었다. 처음 6세기 초 야만인의 침략으로 파괴된 대도시 대성당의 기초 위에 세워졌다.

 

 

고대 원형 극장

기원전 200년경 헬레니즘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로마 시대에는 검투사 경기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1980년대 우연히 발견하였고 지금은 여름축제 등 다양한 공연이 열린다고 한다.

 

 

고대 원형극장 객석에서 오흐리드 호수가 내려다 보인다. 우리도 고대 관객들의 시선이 되어 본다.

 

 

 

붉은색 옹기 항아리를 개인 집 정원에 장식해 두었다. 조지아에서 본 포도주 항아리와 비슷하다.

 

 

성 클레멘트 교회 (Sveti Kliment Ohridski ) 입구

 

 

성 클레멘트 교회 (Sveti Kliment Ohridski)와 판텔리이몬 (Pantelejmon) 

성 클레멘트는 이곳에서 '오로리드 문화 학교'를 세워 키릴 문자를 가르쳤다.  슬리브 문화권의 중심지였으며, 교회 바닥 아래에는 그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마케도니아 정교회(동방 정교회)의 가장 큰 대성당이다.

슬라브코 브레조스키가 설계해 1972년에 짓기 시작, 1990년 8월 12일 교회의 수호성인인 오흐리드의 성 클레멘트 탄생 1150주년에 봉헌되었다. 돔과 아치로만 구성된 36m x 36m 크기의 원형 교회는, 현대 마케도니아 역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건축물 중 하나이다.

 

본당은 오흐리드의 성 클레멘트에게, 아래층 교회는 성모 마리아 에게 봉헌되었다. 예배당 중 하나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헬레나 황후에게  다른 하나는 순교자 성 미나 에게 봉헌되었다. 

 

 

플라오슈닉(Plaoshnik) 고고학 유적지

오흐리드의 역사적인 중심지이자, 아름다운 호수 근처에 위치한 고대 로마 및 비잔틴 시대의 교회 유적지이다. 지금도 발굴 중이다.

 

 

발굴된 석조 기초와 벽체 위로 기둥들이 세워져 있으며, 지면보다 낮은 곳에 유적이 보존되어 있다. 

 

 

 

하얀 구름 아래 멋진 호수 풍경을 보면서 내려가는 길은 기분 좋은 일이다.

 

 

성 요한 카네오 성당 ( Свети Јован Канео 또는 Sveti Jovan Kaneo )

오흐리드의 카네오 해변 절벽 위에 자리 잡은 마케도니아 정교회 성당이다. 이 성당은 요한계시록의 저자인 파트모스의 요한 에게 헌정. 일부 학자들은 그를 사도 요한과 동일 인물로 간주하기도 한다. 1447년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고학자들은 이 성당이 오스만 제국이 등장하기 이전, 13세기에 건축되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1964년 복원 공사 중에 돔에서 프레스코화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비 오는 날 나선형 계단을 돌고 돌아..

 

 

오호리드 호수에 있는 소원의 다리(The Bridge of Wishes)

다리를 건너며 소원을 빌고 호수에 동전을 던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다리 난간의 체인에 사랑의 자물쇠와 소원을 적은 종이가 빼곡히 걸려 있다.

 

 

내려오면서 다시 스쳐 간 성 소피아 교회의 뒷모습.

 

 

성 나움 동상(Saint Naum) 

중세 불가리아의 작가이자 슬라브족 선교사. 제1차 불가리아 제국(서기 7세기~ 11세기)의 일곱 사도 중 한 명으로 여겨진다. 그는 키릴과 메토디우스의 제자로, 글라골 문자 및 키릴 문자의 창제와 관련이 있다. 그는 9세기에 불가리아 정교회가 창립된 후 최초로 시성 된 성인 중 한 명으로, 그의 선교 활동은 지역의 초기 슬라브족을 불가리아인으로 변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오호리드 시티 파크(Ohrid City Park)에서

 

 

 

 

호수가 내려다 보이는 분위기 좋은 벨베데레 호텔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고.. 호수 뷰가 아닌 뒷산 쪽 방이 배정되었지만 조용해서 좋다. 오늘은 레저에서 티라나를 거쳐 오흐리드까지 5시간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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