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스크랩] 첫 자유여행/체코의 프라하 - 프라하 성으로

작성자green|작성시간11.12.11|조회수171 목록 댓글 0

 

 

 

 

 

프라하성을 찾아가는 코스야 여러 가지 겠지만, 우리는 민박집 사장님이 일러주신데로

22번 트램을 타고 Pražsky hrad역에서 내렸다. 이 지역을 흐드라차니 지역이라 하는데

흐라트차니 지역에는 스트라호프 수도원 (Strahovsky klaster), 로레타 성당 (Loreta),

체르닌 궁전(Cernin Palace), 슈바르첸베르크 궁전 (Schwarzensky palac) 이 있다.

사람들이 몰려가는 길로 쭉가니, 머지않아 관광책자에서 많이 봤던 로레타성당과

체르닌궁전이 눈에 들어왔다.

길을 사이에 두고 왼쪽편에 체르닌 궁전, 오른쪽에 로레타 성이 있었는데,

로레타성당은 6200개의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진 성체안치기가 있다고 해서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내부는 무척 아름답고 화려하다.

, 성체안치기는 촬영이 금지되어있다. 그런데도 슬쩍슬쩍

사진을 찍으시는 분도 계셨다. 물론, 유료다.

 

 

 

 

프라하성에서 12시정각에 위병교대식이 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12시를 기다리고 사진찍기 좋은 장소앞에 진을치고 있다.

정각 12시가 되고 나팔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이 성문 창살 앞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디카를 들이댄다. .40여분 이상 한 것 같다.

위병교대식은 하루에 딱 한차례만 있어서 바쁜 일정으로 프라하를 돌아보는 사람들은 놓치기

쉬운 광경인데, 볼 만 했었다.

 

 

 

 

! 이제 1정원으로 들어가 프라하성으로 들어가기 위한 티켓을 끊어야한다.

정문을 들어서서 왼쪽 편에 위치한 인포메이션, 우리가 갔을 때는 A코스, B코스, C코스 로

나뉘어 있는데, 우리는 B코스를 선택했다. 나중에 민박집에서 다른 코스로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들어본 결과, B코스가 더 좋은 선택이였다는 것.

물론, 성안에는 무료로 볼 수 있는 곳도 많다.

여기에서는 오디오 가이드 시스템이 갖추어져있어, 원하는 여행객은 티켓을 내고 구입을

하면 된다. 문제는 한국어가 없다는 것. 그것이 왜 그리도 섭섭한지.

이 곳에 와서 느낀 건데, 한국인의 입지가 일본이나, 중국보다 그다지 넓지 않다는 것을 실감했다.

우리보고 한국인이냐고 물어본 적이 거의 없고, 일본인, 중국인이냐고 묻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니까.

 

붉은색의 건물은 프라하 성에서 가장 오래된 성이르지 교회(성 조지 성당).

그리고 조지 성당 뒷편에 하얗게 뾰족탑이 보이는 그것은 프라하 최초의 수도원이라고 한다.

 

 

성 이르지 교회 맞은편이 구왕궁! 현재는 대통령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는 곳으로 일부만

공개되어지고 있다. 이 곳은 모든 코스에 다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끝이

안보일 정도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곳에서 우리는 사람들이 커다란 핸드폰으로 통화 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니, 이런데서 전화를?? 그런데 이 나라는 핸드폰이 저렇게 크나?"

딸과 나는 이런 대화를 나누며 신기해서 자꾸만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그나마 나보다는 눈치가 빠른 딸이 알아챘다.

"아하!! 저게 오디오 가이드 기기네!"

딸은 유럽여행이 처음이고, 나는 패키지여행은 몇 번 다녔지만

그때마다 현지가이드가 항상 따라다녔으니 이런 걸 볼 기회가 없었다.

정말, 촌티를 팍팍내며 모녀는 킥킥 소리 죽여 웃어댔다.

 

왕궁안 3층으로 가면 블라디슬라프 라는 넓디 넓은 홀이 나타나는데,

둥근 타원형 지붕에 기둥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게 특색이다.

당시 이 곳에서 기사들의 경기가 있었다고 한다.

 

홀의 오른쪽 안에 있는 작은 방은, 그 당시 총독실로 사용되었는데,

그 곳에서 30년 종교 전쟁의 도화선이 된 창문투척 사건이 있던 곳이다.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이지만, 우리에겐 흥미로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칼로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니고, 창문으로 사람을 던져서 죽이려고 했다니,

얼마나 웃기는 일인지.

 

< 내가 공부한 거> 

30년 종교전쟁 (1618~1648) 은 신성 로마 제국이 있던 독일을 중심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와 개신교 사이에서 벌어진 종교전쟁이다

당시 보헤미아는 로마 가톨릭 국가였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 하에 있었고,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 교도들 사이에 여러 차례 불협화음이 일어났으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들은 개신교도의 세력이 크다는 것을 인식하고 신앙을 인정해 주었다.

이후 황제 겸 보헤미아의 왕 마티아스도 양쪽 진영에 대한 융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1617년 열렬한 로마 가톨릭 교회 신자인 페르디난트 2세는 보헤미아 왕에

선출되는 동시에 개신교에 대한 탄압을 실시했다. 그 와중에 프라하 대주교령에 속해있던

개신교 예배당들이 철거되었고, 개신교 신자들은 이에 항의하였으나 묵살되었다.

결국에는 다음해 1618년 탄압에 반발한 개신교 시민들이 프라하의 왕궁을 습격해 국왕

고문관 3명을 왕궁의 창문에서 던져버리는 프라하 창문 투척사건이란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으머,

개신교 신자인 보헤미아 제후는 이 사건을 계기로 단결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것이 30년 전쟁의 시발점이 되었다.

 

모든 역사적 비극은 한사람의 사이코 때문에 일어난다.

히틀러가 그렇고, 연산군이 그렇고, ,오사마 빈 라덴이 그렇고, 카디피도 그렇다.

 

수세기에 걸쳐 완공된 성 비투스 성당

구 왕궁 마즌편에 위치한 검은색 건물의 웅장한 성 비투스 성당.

이 곳은 무료입장이다. 줄의 끄트머리가 안 보일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성 비투스 성당은 성인 비투스를 기리기 위해서

1344년 카롤 4세에 의해 짓기 시작하여 1929년에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1929년에서 1344년을 빼면 575..  계산이 맞나?

 

딸이 묻는다

"엄마, 바로크양식과 고딕양식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

"바로크는 지붕이 둥글고 고딕은 네모나거나 뾰죡한거 아닌가?"

"오호~ 엄마 공부했구나."

"바로크는 발음이 일단 부드럽잖아, 고딕은 왠지 딱딱하고.."

여행책자를 보면 건축양식에 대해서 많이 적혀있다.

근데, 사실 내가 건축양식에 대해 뭘 알수있나.

아무리 많이 읽어도 잘 이해가 안되고, 정확하게 구분지어지지 않는다.

그냥, 대충 그렇다고 생각만 할뿐.

북유럽 패키지로 여행갈 때, 그 곳의 수도원 성당들은 대개가 양파처럼 둥글었는데

그 때 가이드분이 바로크 양식이라고 그렇게 설명해 줬었다.

성 비투스 성당이 중세시대에는 바로크양식이었는데,

뒤에  고딕양식으로 완성되어졌다고한다.

 

성 비투스 성당에서 우리는 제법 많은 시간을 보냈다.

사람마다 느낌은 각자겠지만, 난 참 좋았다.

 

프란츠 카프카의 황금소로

 

 

프라하성으로 들어서면서 제일 기대하고 갔던 곳이다.

근데, 에게 ~~ 겨우 이거야! 하며 놀랬던 곳이기도 하다.

아주 좁고 짧은 골목, 그 것이 모두 다였다.

만약, ‘이란 소설을 읽고 가지 않았다면, 실망으로 끝나버렸을지도 모른다.

 

프라하를 찾는 관광객이면, 절대 빠트릴 수 없는 곳, '황금소로'

이 곳은 우리나라에도 많이 알려진 '프란츠 카프카' 가 머물며

'' 이란 소설을 탄생시킨 곳이다.

카프카의 변신은 워낙 유명했던 것이라 소싯적에 읽었었지만,

성은 여행전에 구해서 읽었다.

 

성의 측량사로 K 란 작자가 이 동네에 들어오면서, 소설은 전개되어진다.

그러나, 측량사는 성의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하고 소설은 끝이 난다.

측량사가 성에 다다르기 위해서 벌어지는 과정의 전개가,

사소한 일상의 개인적인 상황을 쭉 나열해 가는 형식의 내용인데, 사실 좀 지루했다.

 

황금소로의 골목길을 보면서 '' 이란 작품이 탄생된 그 배경을 좀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 당시 프라하성에서 일하는 사람들, 경비병, 잡일, 또 연금술사,

서민들이 이렇게 작고 좁은 집에서 어렵게 살았으리라는 짐작이 간다.

그들은 완연한 신분의 차이를 느끼며,

바로 눈앞에 있는 저 높은 ''에 들어갈 수 있기를, 꿈꾸며 살지 않았을까.

그것은 곧 그들의 신분상승을 의미하는 것이니까..

 

어린애 같은 마음으로 보면, 좁은 골목 사이사이에

채송아, 봉숭아, 과꽃 따위가 피어있고,

키 큰사람들은 허리를 굽혀야만 들어 갈 수 있는 작은 집들.

동화속의 어딘가에 온 듯 한 착각을 일으키게 함직한 곳이다.

 

이 작고 좁은 공간에도 있을 것은 다 있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불과 서너평의 공간들로 흙벽으로 칸막이가 되어있고

기념품, 미술품, 공예품들을 팔고 있다. 집 한채 한채가 모두 특수성을 가지고,

소품, 카프카 카페, 갤러리 등 무기박물관까지.

그러나, 기대를 너무 해서 그랬는지 아무래도 실망스러웠다.

 

오히려 카를교 끄트머리 강가에 위치하고 있는

프란츠 카프카의 작은 박물관이 작지만 느낌이 강렬하고 인상깊었다.

작은 공간에 낮은 음악이 흐르고,

카프카가 직접 그린 그림과, 필체, 백색 스크린에 투영된 영상들은 나를 짜릿하게 했다.

만약, 내가 프란츠 카프카란 인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면,

이 작은 박물관이 그렇게 와 닿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태생을 포함한 우울한 삶 전체가 조금은 느껴지기도 했으니까..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여자 혼자가는여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