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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사진첩

[스크랩] 歷史 Essay 1163 - 이준용(李埈鎔) 옹립사건(擁立事件), 대원군(大院君)의 수모(受侮)

작성자김영식|작성시간21.04.20|조회수62 목록 댓글 0

歷史 Essay 1163 - 이준용(李埈鎔) 옹립사건(擁立事件)

♣ 歷史 Essay 1163 ♣
☞ 이준용 옹립사건
이준용(李埈鎔1870-1917)은 고종의 친형인 흥친왕(興親王) 이재면(李載冕1845-1912)의 아들이다.
청(淸)국의 원세개(袁世凱)는 친러 정책을 펴는 민씨 척족(閔氏 戚族)을 견제하려고 1886년
어린 준용을 왕에 앉히고 대원군(大院君)을 재집권시키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했다.
정권욕에 불탄 대원군은 1894년 7월 23일 일본에 의해 집권한 다음 다시 음모를 꾸미다가

근왕파(近王派)와 일본 공사관(公事官)에게 발각된다.
주동자 5명은 사형에 처해지고 준용은 10년형을 받고 교동(校洞)에 유배된다.
이 사건으로 대원군은 민비(閔妃)에 대해 더욱 큰 원한을 품게 되고

준용은 3년간 일본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출국하였다가 1907년 7월 순종(純宗)이

즉위한 다음에야 귀국이 허락되었다,

 

歷史 Essay 1164 - 대원군(大院君)의 수모(受侮)

♣ 歷史 Essay 1164 ♣
☞ 대원군의 수모
두 번째 옹립사건(擁立事件)이 발각되자 이준용(李埈鎔)은 1895년 4월 19일 체포돼 종신형을 받았으나
왕의 친조카이고 배후가 왕의 부친이라 당일 10년 유형으로 감형을 받고 강화(江華) 교동도(喬桐島)로 유배된다.
수십명의 경관들이 손자와 함께 가겠다고 몸부림치는 대원군(大院君1920-98)을 운현궁(雲峴宮)에 모셨지만
그는 마포(麻浦) 별장으로 간다 속이고 여인용 가마를 빌려 현석포로 달려갔다.
그러나 민비(閔妃)가 파견한 경관들에 의해 나루에 접근조차 할 수 없자
파선 하나를 발견하고 그것이라도 탄다고 몸부림치다 물에 빠지기도 했다.
결국 순검들에 의해 공덕리(孔德里) 아소정(我笑亭)으로 모셔졌다.
그 이후 대원군은 정계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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