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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동 선사유적지 -청동기시대에 형성된 최대의 마을 유적터

작성자자청비|작성시간07.04.04|조회수154 목록 댓글 0


삼양동선사유적지 발굴 작업 - 삼양교회 북쪽

 

 구획정리 개발사업이 한창 진행되던 중  삼양동 선사유적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유적의 조사 결과 300여기가 넘는 집터가 확인되어, 하마터면 사라졌을 위기를 모면하고 2000년 전 고대 탐라의 마을 모습이 고스란히 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답니다.

 

 삼양동 유적지에 서 보면 그 옛날 왜 이곳에 일찍부터 마을이 들어설 수 있었는지 짐작이 된답니다. 무엇보다 가까이에 풍부한 용천수가 여기저기서 흘러 나와 식수를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 해수욕장을 낀 바다옆이라 각종 해산물을 쉽게 얻을 수 있고,  또 비옥한 땅. 농업기반공사 조사에 의하면 삼양동은 제주시 부근에서는 최고로 농사를 짓기에 좋은 1급의 미사질 양토여서 여러 가지 곡물 재배하기에 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삼양1동부터 삼양3동에 이르는 만처럼 굽어들어온 바다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비교적 높은 위치에 있어 바다를 통해 들어오는 외부인들을 쉽게 감지할 수 있는 조망권. 가까이에 원당봉이 있어 땔감이나 목재도 얻을 수 있는 점등 마을이 들어설 수 있는 입지조건이 충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삼양동 유적지가 발견되기 이전에도,우리는 남아있는 고인돌 4기만으로도 삼양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이 드나들며 정주했던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요. 하지만 이제 2천년전부터 이미 큰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곳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밝혀 줄 수 있는 유물들이 나왔답니다.

 

 삼양동 마을속의 선사유적지는 1923년에도 일본인 고고학자에 의해 발견되었으나 당시 그대로 덮어버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1996년 농업기반공사 건물 신축을 위한 공사 도중 발견하게 되어 1999년까지 제주대학교 박물관 팀에서 발굴작업을 하였고 일부나마 옛모습이 복원되어 2004년 4월부터 선사유적지에 전시관이 개관되어 일부 유물과 함께 전시물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삼양동선사유적지는 청동기시대에 형성된 최대의 마을 유적터로 200~300년간 지속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움집

 발견된 집자리 만도 236기인데 한마을에 석축을 쌓아 12~15가구씩 모여 살게된 형태입니다. 일반 원형주택들과 우두머리집(원형,크기가 더큼) 그리고 장방형의 공동작업장이 갖춰져 있습니다.  원형 움집터에서는 취사를 했던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것으로 보아  취사는 옥외에서 했던 것으로 짐작됩니다.  제주도에 송국리형 주거형식(BC5~6C)은 400~500년 뒤에야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토기

발견된 토기는 송국리형 토기에 비해 제작기법은 덜 발달된 단계이며, 삼양에서 나온 진흙에다 모래를 섞어 만들었다고 합니다. 


  토질

삼양동은 농업기반공사 조사에 의하면 제주시 부근에서는 최고로 농사를 짓기에 좋은 1급의 미사질 양토여서 여러 가지 곡물 재배했을 것으로 보고 그러나 벼는 재배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발견된 쌀알은 타지역과의 교류무역 등으로 들어온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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