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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음과 봉헌. 헨델의 할렐루야!

작성자보문산인(대전)|작성시간25.12.21|조회수103 목록 댓글 9


내려놓음과 봉헌의 차이
 
법정 스님의 유명한 수필집 『무소유』에는 스님이 가장 아끼던 난초 이야기가 나옵니다.

스님은 지인에게 귀한 난초 두 분을 선물 받아 정성껏 길렀습니다.
그런데 이 난초가 어느새 기쁨이 아니라 스님의 '상전'이 되어버렸습니다.
 
한번은 스님이 외출했다가 햇볕이 뜨거워지자, 난초가 말라 죽을까 봐 허둥지둥 절로 돌아왔습니다.
여행을 가서도 난초 걱정에 잠을 설쳤습니다.

'무소유'를 수행한다는 수행자가 고작 풀포기 하나에 매여 안절부절못하게 된 것입니다.
 
깊은 고민 끝에 스님은 결단을 내립니다. "이 난초가 내 수행을 방해하는구나." 스님은 난초를 쓰레기통에 버렸을까요? 아닙니다.

난초를 정말로 아끼고 잘 기를 수 있는 친구에게 '주어버렸습니다'.

친구에게 난초를 건네주고 빈손으로 돌아오는 길, 스님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그때 비로소 날아갈 듯한 해방감을 느꼈다."
 
이 일화는 우리에게 중요한 영적 진리를 가르쳐줍니다.

내 방에 난초를 두고 "신경 쓰지 말자, 마음을 비우자"라고 다짐하는 것은 고문일 뿐입니다.

하지만 친구에게 주어버리면, 그때부터는 그 난초의 주인이
내가 아닌 친구가 되기에 더 이상
내 마음을 졸이게 하지 않습니다.
소유권이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흔히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상을 내 품에 둔 채 마음만 내려놓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눈앞에 보이면 다시 잡고 싶은 것이 인간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어설픈 내려놓음으로 파멸한 두 가지 슬픈 사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사무엘기 상권에 나오는
엘리 사제입니다.

그에게는 홉니와 피네하스라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하느님의 제물을 가로채고 성전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망나니였습니다.

엘리는 그들을 단호하게 하느님의 법대로 처리하거나 봉헌(심판)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아버지로서의 정에 매여, 그저 "얘들아, 왜 그러느냐"라며 나약하게 타이를 뿐이었습니다.
 
그는 자식을 하느님보다 더 소중히 여겨 꽉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너는 어찌하여 나보다 네 자식들을 더 소중하게 여기느냐?"
(1사무 2,29)라고 꾸짖으셨습니다.

결국 전쟁터에서 두 아들은 한 날
한 시에 죽었고,
그 소식을 들은 엘리도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하느님께 맡기지 않고 내 손에 쥐고 있으려 했던 집착의 대가는 가문의 몰락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롯의 아내입니다.
소돔이 멸망할 때 천사는 "뒤를 돌아보지 마라"고 했습니다.
몸은 소돔을 떠났지만,
그녀의 마음은 그곳에 두고 온 재물과 안락함에 여전히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녀는 미련을 버리지 못해 고개를 돌렸고, 그 순간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영적인 마비를 상징합니다.

손에 쥔 것을 완전히 놓지 못하면,
우리는 과거에 갇혀 한 발자국도 미래로 나아갈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질긴 집착을 끊을 수 있을까요?

답은 '비움'이 아니라 '봉헌'입니다.
봉헌이란 소유권을 하느님께 완전히 이전하는 것입니다.

내 것이 아니어야 쳐다보지 않게 되고, 그래야 집착이 끊어집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렙톤 두 닢을 헌금함에 넣는 가난한 과부를 보시고
"저 과부가 가장 많이 넣었다"고 칭찬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 과부의 행동은 '상실'입니다.

"저 돈이 없으면 당장 굶을 텐데..." 하며 걱정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것을 위대한 '봉헌'으로 보셨습니다.

과부는 돈을 길바닥에 버린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 봉헌된 돈은 영원한 가치로 변합니다.
또 한 번 봉헌한 것은 다시는 손을 넣어 꺼낼 수 없습니다.
봉헌함은 돈이 들어갈 만한 구멍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법정 스님이 난초를 친구에게 주어버림으로써 해방되었듯,
우리도 우리를 짓누르는 가장 소중한 것들을 하느님께 주어버려야 합니다. 

자녀 문제로 속을 썩이고 계십니까?
그 아이를 내가 조종하려 하지 말고 하느님께 봉헌하십시오.

"주님, 이 아이는 제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의 자녀입니다.
당신이 키우십시오."라고 소유권을 넘겨드리십시오.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잠을 못 이루십니까?
그 걱정을 십자가 아래 내려놓으십시오.

"주님, 제 앞날을 당신께 드립니다.
이제 제 걱정이 아니라 당신의 계획입니다."
 
우리가 쥐고 있으면 썩어버리거나 무거운 짐이 되지만,
하느님께 드리면 그것은 기적이 되고 은총이 됩니다.

'내려놓음'이라는 막연한 비움이 아니라, '봉헌'이라는 확실한 드림을 선택하십시오. 
 
오늘 이 미사 중에 예물과 함께 여러분의 가장 큰 집착을 봉헌하십시오.
빈손이 되어 돌아가는 여러분의 발걸음은, 그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하느님의 자유로 가득 찰 것입니다. 아멘.

수원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님



■ 헨델의 할렐루야

<어느덧 올해의 마지막 달이 되었고 곧 성탄의 절기가될것입
니다.
매년 그랬듯이 금년에도 한두번 헨델의 '메시아'를 감상하는
행운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소개합니다.>

1741년 겨울 어두운 런던 거리 한 모퉁이에 지친 다리를 끌며 흐느적 흐느적 걷는 한 초췌한 노인이 있었다.

꾸부정하게 굽은 허리 모습의 그는 이따금씩 터져 나오는 심한 기침 때문에 한동안 걸음을 멈추곤 했다.

조오지 프레데릭 헨델, 그가
저녁 산책중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허름한 차림
새에 초라하고 지쳐 보였지만 그의 마음 속은 마치 용광로 속처럼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의 마음은 지난날 누렸던 그 영광스러운 기억들과 현재의 심연처럼 깊은 절망감이 어우러
져 싸움을 벌이고 있는 전쟁터
였다.

지난 40여년동안 그는 영국과 유럽 일대에 걸쳐 하늘을찌르는 명성을 누려온 대 작곡가였다.

새로운 곡이 발표될 때마다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갈채를 아끼지 않았다.

왕실에서도 그에게 온갖 명예를 안겨주었다.

그랬던 그가 지금은 어떤가?

마치 보잘 것 없는 길거리의 돌멩이처럼 그들 모두에게서 버려진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지금은 그날 그날의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의 빈궁속에 빠져 버리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4년전에는 뇌출혈이 생겨 오른쪽 반신이 마비되
었다.

걷기는 커녕 영감이 떠오를 때도 손을 움직여 음표 하나 그릴 수 없었다.

의사들은 도저히 회복을 기대할 수 없다고 단정하였다.

그만큼 병세는 절망적인 상태였
던 것이다.

헨델은 온천에 매일 1시간씩 몸을 담그고 있으면 차도가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 독일의 '악스 라 샤펠'이라는 온천장에서 목욕을 했다.

한번에 계속해서 3시간 이상은 온천 물속에 있지말라는 의사들
의 경고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생에 대한 무서운 욕망으로 의사들의 말을 무시했다.

한번에 9시간 이상씩 물 속에 들어가 있곤 하였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병세가 차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무기력한 근육에 생기가 돌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손과 발을 조금식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재생의 환희, 그는 끓어오르는 창작열에 도취되어 연달아 네 편의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사람들은 그에게 다시 갈채를 보내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장마 때 잠시 내리쬐는 햇빛이 잠시 반짝이다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리듯이 사라져 버렸다.

열렬한 후원자 캐롤라인 여왕이 작고 한 후 공연이 점차 줄게 되고 겨울의 혹한이 휘몰아쳐 왔다.

얼음장 같은 극장에 관객은 줄고 공연은 속속 취소되었다.

날이 갈수록 생활고는 더해 갔다. 창의력도 의욕도 감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점점 지쳐 갔다.60을 바라보는 나이였다.

정신적인 타격은 노쇠를 촉진
했고 이제는 더이상 희망을갖지 말자고 스스로를 위안해야 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럴듯한 깊은 절망감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저녁이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산책을 나서곤 했다.

방안에 가만히 누워 있다는것은 마치 스스로 죽음을 손짓해부르
는 것 같아서 참을 수가 없었다.

헨델은 계속 인적이 없는 길을 천천히 걸어 갔다.

저 만치 어둠속에서 교회의종탑
이 어렴풋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문득 발을 멈추었다.

그 순간 그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주저 앉아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 잡혔다.

"하느님께서는 어찌하여 제에게 소생하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가 또 사람들로 하여금 저를 버리게 하십니까.

어찌하여 저에게 창작 생활을 계속할 기회를 주지 않으십니까?

하느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십니까!"

그는 마음  밑바닥으로부터 솓아져 나오는 목소리로 울부
짖었다.

그는 밤이 깊어서야 한없는 슬픔 가운데 초라한 숙소로 돌아왔다.

책상 위에 소포 한 덩어리가 있었다. 그는 조금 이상스럽게 생각하며 그 소포를 풀었다.

내용물은 한 묶음의 오라토리오 가사였다. 시인 '찰스 제넨스로 부터'라는 서명이 들어 있었다.

헨델은 그 가사 뭉치를 훑어보
면서 투덜거렸다.

'방자한 녀석 이류 시인인 주제
에..."

그는 모멸감이 앞섰다.

혼잣말로 불평을터뜨리면서
동봉한 편지를 대충 읽어 내려갔다.

곧 그 가사를 붙여 작곡을 착수
해 주기 바란다면서 덧붙여 '주께로부터 말씀이 있었다.'고 씌어 있었다.

헨델은 다시 분통을 터트렸다.

헨델은 사실 그다지 믿음이 두터운 편은 아니었고 성격도 워낙 격렬하였다.

그는 "아니, 그래 뻔뻔스럽게도 제까짓 놈에게 하느님께서 영감을 주셨다고?

그래서 나에게 오페라 대본도 아닌 겨우 이 가사 쪼가리를 보내 주었단 말인가"

심히 불쾌한 마음으로 그 오라
토리오의 가사 원고를 뒤적거리
다가 헨델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이상하게 가슴을 찔러 오는 대목이 얼핏 눈을 파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버림을 받았도다.
그는 자기를 불쌍히 여겨 줄 사람을 찾았건만 그럴 사람이 아무도 없었도다.
그를 위로해 줄 사람은 아무데
도 없었도다.>

<하느님은 그의 영혼을 지옥에 버려 두지 않으셨도다.
"그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
라.">

그로부터 헨델은 글자 하나 마다 마치 영혼이 있어 구구 절절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감동으로 그 원고를 다시 한번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말 한마디 글자 하나 하나가 새로운 의미를 지니고 빛나는 것 같았다.

< 현명한 지도자, 나의 구주가 살아 계심을 나는 알도다. 기뻐하라. 할렐루야.>

헨델은 황급히 펜을 찾아 들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아무렇게나 앉아 악상이 떠오르는 대로 마구 휘갈겨 악보를 그리기 시작했다.

놀랄 만한 속도로 음표가 오선
지를 메워 나갔다.

다음 날 아침 하인이 조반상을 들여 올 때까지도 그는 책상에 엎드려 일을 하고 있었다.

그는 날이 밝아 아침이 된 것도, 또 조반상이 들어와 있는 것도 전혀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충성스러운 하인의 권고에 따라 빵을 집어 들긴 했으나 일에 정신이 팔려 있는 그는 빵을 입으로 가져가기 전에 연신 손으로 부스러뜨려 마룻 바닥에 떨어드리곤 했다.

그러면서 정신없이 악보를 그리다가 미친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방안을 큰 걸음으로 왔다 갔다 서성거리기도 했다.

때로는 팔을 쳐들어 허공을 후려치기도 하고 큰 목소리로 우렁차게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
리고 있었다.

'나는 일찍이 그분이 그런 행동
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어요.'

하인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나를 빤히 바라보시는 것 같은
데 그 눈에는 내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어요.

하늘나라의 문이 열린다고 하면서 하느님이 바로 거기 계신다고 소리치기도 했지요. 

그분이 정신을 잃은 것이 아닌
가 더럭 겁이 날 정도였다니까
요."

무려 24일 동안 그의 이러한 광적인 망아 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는 거의 먹지도 쉬지도 않고 무섭게 일에만 달라붙어 있었다.

그리고는 마침내 기진맥진하여 침대 위에 나가 떨어졌다.

그의 책상 위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오라토리오 <메시아>의 악보가 마구 흩어져 놓여 있었다.

헨델은 혼수상태에 빠져 계속 14시간을 잤다.

하인이 겁이 나서 의사를 불렀다. 그러나 헨델은 의사가 도착하기 조금 전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하인에게 먹을 것을 요구하였다.

마치 굶주린 들짐승처럼 그는 햄 덩어리를 꾸역꾸역 입으로 틀어 넣고는 음료수를 한없이 들이켰다.

얼마만에 그는 불러 오른 배를 쓸어 내리면서 물러 앉아 방금 도착한 의사에게 활짝 웃어 보였다.

"선생이 나와 더불어 유쾌한 이야기를 하러 오셨다면 환영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몸뚱이 여기저기를 쿡쿡 찌르고 툭툭 두드려 보러 오셨다면 돌아가 주십시오, 보시다 시피 나는 멀쩡합니다."

곡을 완성한 그는 런던에서는 헨델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뻔했으므로 <메시아>를 들고 아일랜드로 갔다.

그는 자기 작품을 연주하는 데 한 푼도 요구하지 않았다.

공연이 생기는 모든 수입은 자선사업 기관에 보냈다.

"<메시아>는 나를 가장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건져낸 기적이었다.

이제 이것은 온 세상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https://youtu.be/akb0kD7EHIk?si=udfI-x3jC5BATYkm

헨델의 할렐루야.



유네스코문화유산 레스토랑.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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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이사장. | 작성시간 25.12.22 보문산인님
    내려 놓음과 봉헌
    내려놓음 이라는 막연한 비움이 아니라 봉헌이라는 확실한 드림을 선택 하십시오

    헌델의 할렐루야
    나를 가장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 에서 건져낸 기적 이었다
    이제 이것은 온세상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늘감사드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보문산인(대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12.22 이사장님!
    동짓날
    팥시루떡
    팥죽
    많이 드시고
    운수대통하시길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이사장. | 작성시간 25.12.22 보문산인(대전) 감사합니다
  • 작성자한이수(당진) | 작성시간 25.12.22 첫댓글
    감사합니다.
    애동짓날
    팥시루떡
    많이 드시고
    새해도
    행복하세요 ♡
  • 답댓글 작성자보문산인(대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12.22 한이수님!
    동짓날
    팥죽
    많이 드셨나요?
    행밤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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