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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가요무대에 등장하는 <눈물젖은 두만강>에 얽힌 이야기

작성자가을바다|작성시간26.06.08|조회수20 목록 댓글 0

   < 눈물젖은 두만강>은 1938년 오케레코드사에서 발매했습니 다. 이 곡은 두만강 부근에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를 가요로 만들었습니다.  이 곡을 지은 작곡가  이시우 님은 1938년 악극단인 예원좌를 따라 주로 만주 하얼빈지역에서 악극 공연을 했습니다. 다음은 이시우 님의 증업입니다. 

 

    어느 날 악극단 ‘예원좌’가 남하하여   두만강 부근에 소재한 도문의 여관에서 묵고 있을 때였죠. 잠결에 들으니 옆방에서 여인의 흐느낌 소리가 끊이지 않았어요.  이튿날 아침  여 관 주인에게 사연을 물었습니다. 그러니 주인이 말하기를 여인의 남편은 독립 투사였고, 일본 경찰에게 쫒겨다니는 신세라  가족한테 연락조차 없었답니다. 이후  남편이 도문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여인이 달려와 보니 남편은 이미 일본 관헌에게 체포돼 어디론가 끌려간 뒤였답니다. 

 

   이시우 님은 여인의 사연을 듣자  멜로디를 만듭니다. 제목이나 가사도 없이 오선지에 음표를 그린 상태였지요. 그러다가 이시우 님은 서울을 방문합니다. 이후   오케레코드사 문예부 일을 맡고 있던 김용호 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멜로디와 사연에 어울리는 제목과  가사를 써줄 것을 부탁합니다.  

 

1.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흘러간 그 옛날에 내 님을 싣고
떠났던 그 배는 어디로 갔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2. 
강물도 달밤이면 목 메어 우는데
님 잃은 이 사람도 한숨을 지니
추억에 목 메인 애달픈 하소
그리운 내 님이여 그리운 내 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3.

님 가신 강 언덕에 단풍이 물들면 

눈물진 두만강에  밤앳가 울면

떠나간 그 님이 보고 싶구나
그리운 내님이여 그리운 내님이여
언제나 오려나

 

   이 곡이 만들어진 1938년은 일제가 만주를 완전 장악한 시기였지요.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킨 뒤 1932년 괴뢰국가인 만주국을  창설합니다.  일제는 벼농사를 진흥시키고자 100만명이 넘는 조선인을  만주로 이주시켰지요. 이 시기 조선의 악극단들은 만주 거주 조선인을 상대로 공연을 하곤 했습니다. 이 곡의 탄생지인  도문은 두만강 북쪽에 있는 지역으로서 조선인들이  다수 거주하고 있어 항일운동하기에 유리했지요. 

 

    당시 독립운동가들은 일제의 삼엄한 감시와 탄압을 뚫고 항일운동을  했습니다. 체포되면 행방을 알 수 없는 경우도 많았지요. 이 곡은 그런 상황에서 체포된 독립운동가와 부인의 아픈 사연을 잘 그려냈지요. 명시   < 국경의 밤>도 두만강을 건너  밀수하던 남편을 걱정하는 아내의 마음을 그린 시이지요.   다음은   < 국경의 밤>입니다. 

 

 

"아하, 무사히 건넜을까,

이 한밤에 남편은 두만강을 탈 없이 건넜을까?

저리 국경 강안(江岸)을 경비하는

외투(外套) 쓴 검은 순사(巡査)가 왔다ㅡ 갔다ㅡ

오르명 내리명 분주히 하는데 발각도 안 되고 무사히 건넜을까?"

소금실이 밀수출(密輸出) 마차를 띄워 놓고

밤새가며 속 태우는 젊은 아낙네, 물레 젓던 손도 맥이 풀려서

'파!'하고 붙는 어유(魚油) 등잔만 바라본다.

북국(北國)의 겨울밤은 차차 깊어 가는데.

2

어디서 불시에 땅 밑으로 울려 나오는 듯,

"어ㅡ이!" 하는 날카로운 소리 들린다.

저 서쪽으로 무엇이 오는 군호(軍號)라고

촌민(村民)들이 넋을 잃고 우두두 떨 적에,

처녀(妻女)만은 잡히우는 남편의 소리라고

가슴 뜯으며 긴 한숨을 쉰다.

눈보라에 늦게 내리는 영림창 산림실이 벌부(筏夫) 떼 소리언만.

(이하 줄임)

 

두만강과 도문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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