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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 백치 아다다>에 얽힌 이야기

작성자가을바다|작성시간26.06.15|조회수16 목록 댓글 0

   이제 계절은 초여름인 6월이 한창입니다. <초여름 산들바람>으로 시작하는  가요 < 백치 아다다 >는 초여름에 어울리는 곡이라 여겨집니다. 이 곡은 영화 < 백치 아다다>의 주제가 로 사용된 바 있지요. 영화 <백치 아다다 >는 조선문단 1935년 5월호에 발표된 소설가 계용묵 님의 단편 소설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 백치 아다다 >는 1956년 이강천 감독이 영화로 연출합니다. < 백치 아다다 >는  상품성과 작품성 모두 크게 인정을 받았고, 제4회 아시아영화제에 출품되어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 영화는 당시 2천만환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으로 한국전쟁 이후 침체한 영화산업을 부흥시키는데 일조했다고 합니다. 영화는 흥행에 성공했으며, 주제가였던 < 백치 아다다>의 레코드도 날개 돋힌 듯 팔렸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나애심 님은 < 백치 아다다 >에서 연기와 함께 노래까지 불렀습니다.

 

   다음은 이 소설의 줄거리입니다.

 

   벙어리이며 백치인 아다다는 가난뱅이 노총각에게 시집을 갔다. 시집갈 때 지참금으로 논 한 섬지기를 팔아 가지고 간 아다다는 처음 5년간은 다시 없이 행복했다. 아다다 덕분에 잘 살게 된 남편은 어느날 투기에 손을 대어 큰돈을 벌게 되고 그러자 새 색시를 얻어 아다다를 내쫓는다. 친정에서마저 쫓겨난 아다다는 수롱이를 찾아간다. 수롱이는 부모 형제도 없이 사는 서른이 넘은 노총각으로 아다다를 끔찍이 사랑해 주었다. 아다다는 수롱과 함께 마을을 떠나 신미도라는 섬에 정착한다. 어느날 수롱이는 모아 두었던 돈 150원을 보이며 전답을 사자고 한다. 아다다는 갑자기 슬퍼지는 것이다. 돈 때문에 남편에게서 쫓겨난 아다다는 돈 한푼 없는 줄 알았던 수롱이에게 돈이 있다니 몸서리가 쳐질 수밖에 없었다. 수롱이가 전답을 사서 장차 돈을 벌면 전 남편처럼 자기를 내쫓을 것이 뻔했다. 아다다는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몰래 그 돈을 가지고 나와 바다에 뿌린다. 뒤쫓아 온 수롱이는 떠내려가는 돈을 건질 길이 없게 되자 말없이 벌벌 떨고 서있는 아다다를 사정 없이 발길로 찼다. 아다다는 바닷물 속에 잠겼다.

 

 영화 < 백치 아다다 >(1956)의 한 장면

    다음은 < 백치 아다다 >의 가사입니다.

 

1. 초여름 산들바람 고운볼에 스칠때

검은머리 큰비녀에 다홍치마 어여뻐라

 

꽃가마에 미소짓는 말못하는 아다다여

차라리 모를것을 짧은날의 그 행복

 

가슴에 못박고서 떠나버린 님그리워

별아래 울며새는 검은눈의 아다다여

 

 

2. 얄궂은 운명아래 맑은순정 보람없이

비둘기의 깨어진꿈 풀잎뽑아 입에물고

 

보금자리 쫓겨가는 애처로운 아다다여

산넘어 바다건너 행복찾아 어디갔나

 

말하라 바닷물결 보았는가 갈매기 떼

간 곳이 어데메뇨 대답없는 아다다여

 

 

   가사의 내용은 소설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옮겨 놓은 것으로서, 아다다의 비극적인 결혼 생활을 그린 것입니다. 가사는 아다다가 끝내 바다에 빠지고 만다는 것으로 결말을 맺습니다.

 

   이 곡의 가사는 시나리오 작가였던 홍은원 님이 쓴 것입니다. 홍은원 님은 한국에서 드문 여성 감독으로서 < 여판사 > 등 세 작품의 연출을 맡습니다. 홍 감독은 여성 심리의 섬세한 묘사에 탁월했다고 합니다. < 백치 아다다 >는 홍은원 님이 시나리오 작가일 때 쓴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곡을 작곡한 분은 유명한 가곡 < 가고파 >를 만든 김동진 작곡가였습니다.

 

   나애심 님은 처음 아다다 역에 캐스팅되었을 때 기분이 언짢았음을 숨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가수로서의 가창과 영화배우로서의 연기 또한 누구보다 자신있었는데, 하필 대사가 거의 없는 언어장애인 역할이 맡겨진 것에 불만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강천 감독은 6개월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촬영된 이 영화를 연출하는 내내 항상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으며, 그의 선글라스 아래는 눈물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고 합니다. 이 감독의 실제 다섯 살 난 딸이 바로 언어 장애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를 뒤늦게  알아차린 나애심 님은 '아다다'역을 위해  열연했다고 합니다.

 

   < 백치 아다다 >는 발표되자마자 대중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습니다. 결국 < 백치 아다다 >는 나애심 님의 대표곡으로 등극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곡이 약자들의 시위현장에서 자주 불리곤 했다는 사실입니다. 아마도 약자들은 어려운 처지로 내몰린 아다다와 자신의 처지를 동일시했기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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