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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을 잘 보여주는 <단장의 미아리 고개>이야기

작성자가을바다|작성시간26.06.23|조회수29 목록 댓글 0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가요입니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1956년 오아시스 레코드에서 SP 음반으로 출시한 곡입니다. 이 곡을 작사했던 분은 < 꽃마차 >, < 울고넘는 박달재 >, < 산장의 여인 >, < 무너진 사랑탑 >, < 열아홉 순정 >, < 만리포 사랑 >, < 유정천리 >, < 두메산골 >, < 소양강 처녀 > 등 한국 대중가요사를 수놓은 명곡들의 가사를 썼던 반야월 선생이지요.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작곡한 이재호 선생은 < 나그네 설움 >, < 귀국선 >, < 아네모네 탄식 >, < 홍콩 아가씨 >, < 경상도 아가씨 >, < 무영탑 사랑 >, < 물방아 도는 내력 >, < 산장의 여인 >, < 고향에 찾아와도> 등 불후의 명곡을 지어 ‘한국의 슈베르트’라고 불리기도 했던 분이지요.

  

   한국전쟁 때 북으로 끌려가는 시민들 1950년대 미아리 고개

           

    올해는 참혹했던 한국전쟁이 일어난지 76주년이 되는 해이지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기습적으로 남한을 침공하여 한민족에게 크나큰 상처를 안겨줬습니다. 한국전쟁은 남북한 사이의 적대감을 심화시키고 삼팔선의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비극적인 결말을 초래했습니다. .  

 

   한국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심대한 피해를 안겨 주었지요. 숱한 사람들이 희생되고, 가족들이 흩어지고,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 결과 한국전쟁의 참상을 노래하거나 전쟁 동안의 피난 생활을 묘사한 가요가 많이 만들어졌고, 큰 인기를 끌었지요. 대표적인 곡들은 <아내의 노래>, <향기품은 군사우편 >, <님 계신 전선>, <전선야곡>, <이별의 부산 정거장>, <굳세어라 금순아>, <꿈에 본 내 고향>, <경상도 아가씨>, <미사의 노래> 등이 있습니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반야월 선생이 전쟁으로 따님을 잃은 뒤 비통한 심정으로 지은 곡이지요. 반야월 선생은 전쟁이 일어난 다음날인 6월 26일 홀로 경상북도 김천에 있는 처갓집으로 피난을 내려갔습니다. 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반야월 선생의 부인은 힘겹게 가족을 보살필 수 밖에 없었지요. 그 해 여름을 호박죽과 감자죽을 먹으며 버티었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다섯살짜리였던 둘째 딸이 탈진 상태에 있다가 총, 대포소리에 놀라 불행한 일을 당했다고 합니다. 반야월 선생은 서울 수복 이후 부인으로부터 이를 전해듣고 깊이 후회합니다. 이 사건은 반야월 선생에게 두고 두고 큰 상처로 남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반야월 선생은 따님을 잃은지 6년이 지난 1956년 비장한 심정으로 이곡의 가사를 쓰지요. 이 곡은 출시 직후부터 대중들의 심금을 울려 크게 히트했고, 해마다 6월이 돌아오면 수많은 방송에서 흘러나오고 있지요. 반야월 선생은 딸과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바꾼 것 같은 심정이라고 회고하기도 했지요.

   

     <단장의 미아리 고개>의 가사는 아래와 같습니다.

  

1.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 넘던 이별 고개

   화약 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헤매일 때

   당신은 철사 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끌려가신 이 고개 한 많은 미아리 고개

  

(대사)

   

여보 당신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계세요

어린 용구는 오늘 밤도 아빠를 그리다가 이제 막 잠이 들었어요

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 몰아칠 때

당신은 감옥살이 얼마나 고생을 하고 계세요 고생을 하세요

십 년이 가도 백 년이 가도 부디 살아만 돌아오세요

네 여보 여보

  

2. 아빠를 그리다가 어린 것은 잠이 들고

   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 몰아칠 때

   당신은 감옥살이 그 얼마나 고생하오

   십 년이 가고 백 년이 가도 살아만 돌아오소

   울고 넘던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 고개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북으로 끌려가다가 미아리 고개를 넘는 순간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지요. 단장(斷腸) 이라는 용어는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엄청난 아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곡은 미아리 고개에서 헤아릴수 없는 아픔을 겪은 한 여인의 절규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미아리 고개는 한국전쟁 당시 서울 북쪽의 유일한 외곽도로로서 남북한 사이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던 장소이고, 많은 분들이 이 고개를 넘어 북으로 끌려갔던 곳이기도 합니다. 가사에는 손을 묶인 채로 북으로 끌려가면서도 자꾸 가족을 뒤돌아보는 남편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지요. 또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북으로 끌려가는 남편을 속절없이 바라보는 광경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 같이 납북 장면을 생생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반야월 선생이 비극적인 가정사를 고스란히 가사에 녹여냈기 때문이겠지요.   청아한 목소리로 애절하게 이 곡을 표현한 것도 곡의 인기에 크게 기여했다고 보여집니다. 

    

    한국전쟁을 노래한 가요들은 <전우야 잘자라>, <승리의 노래>, <6.25의 노래> 등 북한에 대한 적개심을 고취하는 것들이 많이 있지요. 크게 유행했던 < 삼팔선의 봄>도 ‘이등병 목숨바쳐 고향 찾으리’라는 가사에서 드러나듯이 북한에 대한 강렬한 적대감을 표출하지요.

 

   그 에 비해 < 단장의 미아리 고개> 는 북에 대한 적개심보다는 남편의 신변을 걱정하고 무사귀환을 바라는 아내의 애틋한 심정을 잘 보여주지요. 이 곡의 분위기와 유사한 곡으로는 비슷한 시기 유행했던 <아내의 노래>, <향기품은 군사우편>, <님계신 전선> 등이 있지요. 이 곡들은 <단장의 미아리 고개>와 같이 남편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애타는 심정이 잘 드러나지요. 이 노래들은 휴머니즘이 짙게 깔려있고, 아내의 애틋한 심정을 잘 묘사한 탓인지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전쟁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북으로 납치되어 끌려갔지요. 그 중에는 정치인들도 많았고, 대중 음악을 하던 분들도 많았습니다. 일제 시기 유명한 가수였던 신카나리아 선생은 북으로 끌려가던 도중 미아리 고개에서 극적으로 탈출했지만, 이난영 선생의 남편 김해송 선생 같은 분은 북으로 끌려가서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로 인해 이난영 선생은 홀로 가족을 돌보느라 모진 고생을 겪었지요.

 

    전쟁은 평범한 시민의 일상 생활을 엄청나게 변화시키는 법입니다. 가족의 희생, 가족의 이별, 그리고 육체적, 정신적 상처를 남기지요. 유명한 가요 < 과거를 묻지 마세요 >(1959)는 전쟁의 상처를 받고 살아가는 미망인의 이야기를 그려 대중들의 탄식을 자아냈지요. 1983년 남한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났던 이산가족찾기운동은 한국전쟁때 해어진 가족을 찾는 것이 목적이었지요. 그 당시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1964)가 크게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전쟁이 평범한 사람들을  얼마나 슬프게 만드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다시는 한반도에서, 나아가 세계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엄중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지요. 대중 가요가 대중들에게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한편 우리 역사를 생생하게 증언하는 사료의 구실도 하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 1996년에는 서울시 성북구에 노래비가 건립되었습니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과거 유명 가수들이 리메이크했고, 최근에는 여러 무대에서 신인 가수들이 이곡을 부르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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