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6.15) 가요무대는 아리랑 특집입니다.
다음은 아리랑에 관한 내용입니다.
아리랑은 좁은 의미에서는 「아리랑」이라고 하는 특정한 곡의 노래를 뜻하기도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아리랑 계통의 노래 전체를 통칭하기도 한다. 아리랑이 역사 기록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이후이므로 근대에 발생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선아리랑」의 기원설을 비롯하여, 메리 테일러·님 웨일즈·고권삼 등에 의해 추가 자료들이 발견되면서 여말∼선초에 재구된 정치적 성향의 노래로 인식되기도 한다.
아리랑은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유명한 한국의 노래이다. 아리랑의 종류는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한 곡의 노래를 특히 「아리랑」이라고 한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이러한 대표 사설 외에도 가창되는 지역을 중심으로 「경기 아리랑」 「밀양 아리랑」 「진도 아리랑」 「정선 아리랑」 등 전국적으로 다채로우며 중국·일본·카자흐스탄 등 해외에서 만들어진 것들도 있다. 출현 시기를 기점으로 하여 이전부터 불리어 온 전통 아리랑, 1920년대 이후에 새롭게 변형된 신민요 아리랑, 현대적인 모습의 대중가요 아리랑 등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해외에 흩어져 있는 동포들에게 민족적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어서 민족의 노래라고도 불린다. 높은 지명도를 바탕으로 국가적으로 중요한 행사에서 가창되고 있으며, 2012년 12월 5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아리랑은 구전으로 전승되고 재창조되어 온 한국의 전통 민요이다. ‘아리랑~’ 또는 ‘아라리~’ 및 이들의 변이를 여음(후렴 또는 앞소리)으로 지니고 있는 일군의 민요를 통칭하는 말이다. 정선·밀양·진도 아리랑을 3대 아리랑으로 부르지만 장단·박자·가사가 서로 다른 수많은 아리랑이 한국은 물론 우리 민족이 사는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다채로운 가락과 넋두리 같은 2행시 표현 속에 사회와 시대의 변화를 증언하면서 주제사적인 문제까지 제기하는 아리랑은 한국의 문학사와 예술사에서 질기고 굵은 맥을 전승해오고 있는 유일무이한 사례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민요.
본래 노동요의 성격을 갖고 있었으나, 직업공동체·사회공동체의 문화적 독자성이 강한 노래를 넘어서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민족적 동질성을 지탱하는 노래로 널리 알려졌다. 민족의 애환을 나타내는 한국의 민요. 농부·어부·광부들이 각기 그들 생활 속의 애환을 아리랑에 담았다는 점에서 직업공동체·사회공동체의 문화적 독자성이 강한 노래가 되었고,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민족적 동질성을 지탱하는 가락이었다.
한국의 3대 전통민요 아리랑은 <정선아리랑>·<진도아리랑>·<밀양아리랑>이다. <정선아리랑>은 태백산백 동서를 따라 설정된 메나리토리권의 민요로 민요적 전통성과 지역성이 강하다. <진도아리랑>은 호남지역의 육자배기토리권에 속하지만 다른 육자배기토리 민요와 약간 차이가 있다. <밀양아리랑>은 영남지역에서 전하지만 영남지역의 정자토리 민요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밖에 시기와 지역에 따라 <춘천아리랑>·<본조아리랑>·<광복군아리랑>·<치르치크 아리랑> 등 많은 아리랑이 국내외에서 창작, 전승되어 왔다.
기원
<아리랑>의 기원설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체로 여음인 '아리랑'의 어원에서 그 바탕을 찾고 있다. <아리랑>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시기는 1930년대를 전후한 시기이다. 이런 이유로 어원설은 대체로 <아리랑>의 최초의 형태가 1930년대에 정착된 <아리랑>과 유사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아리랑’이라는 말의 유래에 관한 설로는 ①아리랑 : '나는 사랑하는 님을 떠난다'는 뜻을 갖고 있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설, ②아이농설 : 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때 고생하던 민중들이 반가운 말은 못 듣고 괴로운 말만 듣게 되니 '차라리 귀가 먹었으면 좋겠다'라고 한 말에서 나왔다는 설, ③아랑전설 : 밀양 영남루의 아랑낭자의 슬픈 전설을 그린 노래에서 나왔다는 설, ④알영성 : 신라의 박혁거세의 아내 알영부인을 찬미한 말에서 변했다는 설 등이 있다. 이 밖에도 여러 발생설이 있으나 어느 것도 확실한 근거가 없으니 그저 구음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나 유래했다고 본다.
역사적 상징
아리랑은 다른 민요와 마찬가지로 본래 노동요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이때는 주로 두레노래로 불렸으며, 따라서 구술과 외우기에 의한 전승 또는 자연적 습득이라는 민속성 이외에 지역공동체 집단의 소산이라는 민속성을 가지게 되었고, 그 집단성은 시대성과 사회성을 내포하게 되었다. 비록 그 노랫말이 개인적인 넋두리의 비중이 컸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근세의 민족사가 반영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농부든 어부든 광부든 각기 그들 생활 속의 애환을 아리랑에 담았다는 점에서 직업공동체·사회공동체의 이른바 문화적 독자성이 강한 노래가 되었고,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민족적 동질성을 지탱하는 가락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대원군에 의한 경복궁 중건때의 민중의 고통이나 관리의 가렴주구가 아리랑에 얽혀 전해지는가 하면, 일제 강점기하의 민족적 수난에 대한 저항의식이 영화〈아리랑〉을 탄생케 했음이 이를 입증한다. 특히 영화〈아리랑〉의 등장은 아리랑이 지니는 역사적 상징이 민간전승으로부터 다른 차원의 문화영역으로 옮겨갔음을 보여주는 획기적인 예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리랑은 단순히 단일한 장르의 민요로 파악할 수 없는 다양성과 초역사성을 지닌 음악사·문학사·예술사의 거봉으로서, 한국 민족의 원초적 정서와 맥을 같이 해왔다고 할 수 있다.
현황
아리랑은 그 자체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한국의 전통민요로 계승되고 있지만, 그 밖에도 고전과 현대의 결합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장르에서 접목되고 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개회식과 폐회식에서 개최지역인 강원도의 <정선아리랑>이 편곡되어 연주되었으며 피겨 스케이팅의 아이스 댄스 종목에서는 아리랑에 맞춰 연기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 외에도 아리랑에 맞춰 팝핀을 추거나, 인형극으로 표현해내는 등 아리랑의 변화는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