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고 훌륭하며 작품성있고 무엇보다도
농구의 가치와 미학을 표현한 표본,심지어 클래식이라고
까지하는 만화 <슬램덩크>를 당신이 싫어하는 이유는?:
한마디로
말해 농구에 대한 유미주의有美主義적 묘사와 표현만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불필요하다 할 수밖에 없는
유치한 속히'코믹 캐릭터 묘사'가 본 만화의 가치를
현저하게 결정적으로 저하시킨다고 믿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비판받아 마땅한 점이라고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바로
이지메를 방불케 하는 등장인물들의 몰이해적 태도와
몰인정함이라 할 수있다.
2.당신이 <슬램덩크>를 접한 건 언제이며 처음 접한
그 때에는 어떤 감정을 느꼈나?: 1992년 한국땅에 이노우에
타케히코의 일본만화 <슬램덩크>가 한국에 건너온 해로
알고 있는데 그때 나는 학교에서 돈받고 보여주는 신문
소년한국일보에서 당시 그 만화를 연재하기 시갖한 <챔프>
광고에서 였다. 사실 그때에는 고등학생들보다 대학생들
이야기를 좋아했고-고등학생 이야기라야 쫒기고 받치는
일상이라고만 생각했던 만큼..- 농구도 그다시 관심이
없었던 만큼 나는 같이 연재시작된 <타이의 대모험>에 더
관심을 보여왔다. 주로 치과에 치아교정을 받으러 다니면서
챔프 만화잡지들을 기다리며 읽었었는데 그때만 해도
<슬램덩크>는 싹 거들떠 보지도 않고 가장 먼저
<타이의 대모험>을 보았고 당시만 해도-지금 생각하면
야비한 하질 만화이지만-호기심을 끄는 일본적 소재를
보여준 <고스트 스위퍼>를 간간히 곁들여 보았었다.
그러다가 1997년이 되자 내가 사는 집에 처음으로 케이블
을 설치하고 유선방송을 볼 수있게 되었을 때 그때에도
다른 프로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우스꽝스러운 웃음을
자극하는 본 만화영화의 첫 인상에 점점 코미디 프로를
보는 심정으로 계속 보다가 그만 점점 등장인물 남성들의
볼 만한 외모와 움직임에 끌려서 -사실 농구는 뒷전이고..-
공중파 체널인 SBS서 방영했을 때도 즐겨 시간만 나면
보았지만 점점 본 만화가 내 보이고 있는 가진 자들의
못가진 자 들에 대한 모욕과 기만, 그리고 진정한 스포츠
정신과 페어 플레이 정신의 부재, 무엇보다도 여성 등장
인물들의 질적저하質的低下스러운 묘사가 결국 일본인이
만든 농구를 소재로 내세운 만화 <슬램덩크>뿐 만이 아닌
그 작가 이노우에 타케히코와 이를 애니로 생산시킨
도에이동화, 그리고 이런 만화를 육성하고 홍보하는
일본이라는 나라를 싫어지게 만들었음을 밝힌다.
3.한국의< 헝그리 베스트5>와 일본의 <슬램덩크>를
비교하면?: 많은 한국사람들이 <헝그리 베스트5>를
<슬램덩크>의 아류라고 무시했음을 안다. 나도 한때는
일본의 만화와 비슷하고 또한 만화책 광고에서
일본만화가의 지지와 추천(이노우에에게 재미있다는
찬사를 받았다고 하는) 을 빌려오는 점이 싫었었다.
하지만 역시 극장에는 안가고 집에서 쉬는 날 텔레비전 서
보여주는 특집방송으로 나오는 걸 보았고 또 그 다음으로
<슬램덩크>를 보았을때 참 한국인들은 일본족속들에 비해
상대방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정이 있고 인간미가 있는
민족이구나를 느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비교를 할 수 있다.
먼저 일본의 <슬램덩크> 의 등장하는 농구선수들은
상대편 선수가 시합을 열중하여 진행하다가 머리를 다쳐
피가 철철 나는데도 자신의 승리라며 버젓히 말하는 반면,
한국의 <헝그리 베스트5>에서는 자신이 비록 상대편 선수
에게 패했어도 연적이라고 할 수있는 상대편 선수가 한
사람의 사랑하는 여성에게 승리의 기쁨을 표할 수있는
기회를 너그럽게 넘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말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헝그리 베스트5>가
<슬램덩크>를 퇴장 아니 출전정지 시키지 못한 것이..
4. <슬램덩크>의 작가로 알려진 이노우에 타케히코에 대한
불만과 실망을 말한다면?: 우선 왜 <슬램덩크>의 주인공
하나미치는 계속 주변으로부터 무시와 기만을 받는 것도
모자라 자기자신의 의미있는 돌아봄이 배재된 체 아집의
철옹성에만 안주하는가이다. 더욱더 화가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이 만들어 낸 그리고 주인공으로 내세운 인물을
이지메를 하듯이 툭하면 머리를 때리고 여자들에게는
조롱과 무시를 당하고 같은 농구를 하는 사람들에게도
철저한 기만과 정당하지않은 굴욕을 당연한 듯이 표현
하느냐 이다. 기왕 주인공인 하나미치를 자존심이 많고
넘쳐나게 그릴 것이면 주변사람들이 우선 그런 그를
혐오하고 무시하는 분위기가 아닌 존중하고 이해하는
분위기를 적용했다면<슬램덩크>는 더 가치가 빛이 날
남자가 그린 스포츠 만화가 되었으리라 본다.
그리고 이후로 그린 그의 만화들<버져비터>,<배가본드>,
<리얼>에 대해서도 그렇다. 이 만화들에서는 주인공으로
내세운 인물들이 하나같이 주변인물들의 혐오와 몰이해의
대상이라던가 혐오는 받지 않을지라도 진정한 정신적
교감은 부재한 모습으로 나온다는 점을 불평하고 싶다.
물론 다른 만화를 홍보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속히 '여자들
이 그린 만화' 에서처럼 이노우에의 캐릭터들이 끌어앉고
키스를 하고(남자와 여자랑), 사랑의 밀어와 시를 속삭이는
걸 바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내가 그의 만화를 본 사람
으로서 원했던 것은 남자든 여자든 그의 주인공과 주변등장
인물들이 불필요하다고만 할 수밖에 없는 조롱,폭언과
폭력적 린치, 그리고 대놓고 평면화적으로 적용된 몰이해와
모욕을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아마 작가의 표현에 대한
자유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겠다.
만화를 읽는 사람도 등장하고 표현되는 주인공의 공감할
만한 그리고 자제력과 지조있는 모습을 보고
진정한 인간미가 표현된 만족감을 느낄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더 말하자면 그런 몰 이해적이라고밖에 할 수없는
이노우에의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일본과 일본만화의
가치를 점점 떨어 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5.미국의 <스페이스 잼>과 일본의 <슬램덩크>를 비교하면?: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듯 확대지향사회와 축소지향사회의
차이라고 할 수있다. 그렇다고 미국의 <스페이스 잼>이
무조건 옳고 일본의 <슬램덩크>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결론을 짓자면 <스페이스 잼>이 미국의 냉정한
개방성 속 다양함을 표현했다면 <슬램덩크>는 일본의
획일적 질서 속 확대지향을 표현했다고 하겠다.
6.당신은 앞 글에서 이노우에의 여성캐릭터 표현을
불만으로 여긴다 했는데 이에 대한 악영향을 말하라면?:
무엇보다도 남자들의 여성에 대한 경멸과 격하를
고착시킬 것이다. 생각해 보라, 그 어떤 남자가 맹목적으로
자신들의 좋아하는 대상에만 발광을 하고 좋아하지 않는
심지어 혐오하기까지 하는 대상에는 외면과 무시로 모자란
모욕을 가하는 여자를 좋아하겠는가? 게다가 자신의
아들에게만 맹목적으로 집착을 하고 다른 것은 다 틀렸다고
자신만의 아집의 성을 쌓아 버리는 것으로 묘사되는 모성과
같이 한 팀에서 어울리는 남자가 쓰러졌는데도 일으켜
주기는 커녕 오히려 밟고 지나가는 여성, 남자의 숨겨왔던
모습을 보고 그를 버리고 떠나버리는 여성, 그리고 남자가
모처럼 편지를 보냈는데도 읽지도 않고 찟어버리는 여성의
모습을 보면 나는 이노우에 그가 여성이라는 존재를 남자의
볼거리와 치다거리,심심풀이 대상으로만 묘사한다는
다시 말해 남자의 동반자가 아닌 이용가치가 있거나
없거나 한 하등생물 로서 자신의 만화를 보는 남자아이들
에게는 그릇된 기득권 심리를 여자아이들에게는 자기비하
심리를 확연히 주입함을 알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 사견을 붙이자면 이노우에 그는 어린 시절에
주변 사람들에게 무시와 모욕을 당하며 매를 많이 맞고
어머니나 여동생,누나와 같은 인물들에게 조차 위로를
얻기는 커녕 오히려 모멸감만 느껴온 사람이 아닌가 한다.
일본이라는 멸사봉공,강자지존의 야비한 사회에서 말이다.
7.당신은 왜 <슬램덩크>와 같은 만화와 만화영화를
재미로만 받아들이고 넘기지 않고 일본사회의 병리적
해악성과 결부시켜 비판하는가?: 바로 이노우에와 그의
<슬램덩크>가 일본사회의 지지와 후원을 받아 생산된
오락물이기 때문이다. 우리 다시한번 생각해 보자.
<슬램덩크>와 <원피스>를 위시한 일본의 모든 만화들이
그 어떤 것이 자신들의 역사를 진지하게 반성하며 안으로는
부락민과 조총련,아이누인과 오키나와인 그리고 재일
조선인 등과의 화해를 모색하며 밖으로는 아시아 나라들과
공생을 서양과는 도둑심보를 통한 굴종이 아닌 진정한 국가
대 국가 민족과 민족으로서의 관계를 그린 것이 그 어느
하나라도 있는가? 대답은 자명하다. 그들은 축소지향적
시각을 고수하며 자신들의 주변이웃에 대해서도 몰이해와
이지메적 모욕을 즐거히 가할 뿐이다.
당신은 이런 그들의 모습을 좋고 재미있다며
당신의 아이들에게 전하고 가르칠 텐가?
8.<슬램덩크>를 싫어하는 당신은 그 만화가 아이들에게
전하고 물려주기에 가치가 없다고 단언하는가?: 그렇다.
백번 십번 그렇다고 말하겠다. 다시 그 이유를 분명히
하기 위해 질문을 하겠다.
당신은 당신이 기르는 아이에게 아카기 하루코와 쇼호쿠의
류가와 추종자 계집들,히코이치의 누나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만 호감을 주고 안 그런 것들은 다 무시하고
외면하고 심지어 폭언을 가하고 때리기까지 하고, 하나미치
처럼 자신의 잘난 맛만을 맹신하고 자신만의 아집의 성에
거하며 매를 벌고, 류가와처럼 약간의 이해와 동정을 해 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차갑게 무시하고, 기미노부처럼 주변의
상황에 굴종하며 신경질이나 부리고 쇼호쿠 농구감독과
그 외 다른 농구감독들처럼 눈뜨고도 자기 앞에서 벌어지는
비 인격적 행위를 방관하거나 오히려 자신이 가하기까지
하고, 마지막으로 주인공이 아닌 주변인물들은 힘을 가진
하나미치와 쇼호쿠 주장에게 굴종해야만 하는 모습을
선이요 정당한 도리라고 가르칠 것인가?
아마 끝까지 좋아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다.
그 사람과 그 사람 아이들은 힘만 있다고 자기만 잘났고
약한 자들은 모두 쓸만한 데가 있을까 한 하등생물일테니..
아마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마음에 안 드는 자에게는
그들이 도움을 구해도 곰팡이가 핀 상한 밥을 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다의 <원피스>와도 상통하지않는가?
<슬램덩크>의 근본정서가? 대동소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9.그렇다면 만약 이노우에 타케히코가 <슬램덩크>의 연재를
또 시작한다면 전망을 어떻게 보나?: 말할 거 없이
작가한테나 소비자인 독자들에게나 부정적이리라 본다.
우선 고교농구계 에서 부터 서로에 대한 무시와 모욕,
그리고 기만과 술수를 정당한 양 썼으므로 그들이 성인
농구계에 재 등장하면 또 얼마나 속히 '기득권자의
돈주정'과 같은 모욕적 행각을 벌일까?
또 '맬로 만화'의 로맨스는 절대 아닐지라도 하나미치 혹은
류가와와 하루코,료타와 아야코가 부부가 된다 해도 이들
역시 진정한 부부 관계가 아닐 것이다. 다시말해
<드래곤볼>에서의 치치의 역할과 같은 영웅의 후계자를
낳고 잔소리와 간섭을 잡다하게 하는 하수인으로서의
역할만 하리라 생각한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언제
일본인이 그린 만화에서 다른 나라와 같은 남자와 여자의
동등한 1대1의 진지한 관계가 있었던가? 남자들이 그린
만화들 뿐 아니라 여자들이 자신들의 굴종심리를 정당화
미화하며 그린 만화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다시 결론을 짓자면 재 연재되어 무대가 넓어진 <슬램덩크>
의 주인공들은 더욱 마키아벨리즘 적이요, 약자알기를
하등생물알듯이 하고 그것도 모자라 모욕을 즐기면서
가하는 모습이 더욱 다분해 질 것이며 보너스로 미디어
선전과 거대자본을 이용한 기득권을 굳히는 술수도
보태질 듯하다.
10.당신이 비판하는 <슬램덩크>와 <원피스>는 모두 일본의
슈에이샤에서 출판되고 도에이 동화에서 제작되었으며
한국에서는 대원 씨아이에서 번역,연재,출판되고 같이
한국 만화잡지 챔프서 나온 공통분모까지 있는데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상기에서도 말했듯 두 오락물은 정말
대동소이한 점이 눈에 꽤 띈다. 그런만큼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슬램덩크>와 <원피스> 그리고 더 나아가서 <드래곤볼>은
일본의 야쿠자와 같은 기득권 세력이 도에이 동화와
슈에이샤와 같은 거대자본을 이용해 민중에게
진정한 성찰과 반성을 격리시키거나
거부하고 오로지 코스프레와
상품매매라는 분위기 전환으로 눈을 돌리게하는
던져주어 쇠뇌시키기위한 놀이감을 던져 준 것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 이노우에 타케히코나 오다에이치로같은
작가진을 통해 자신들의 약자에 대한 모욕과 기만에
기반한 기득권 추구와 현상유지를
정당화 하는 등장인물들의 사고방식을 주입시킴으로서
진정으로 일본민중,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부터 격리를 꾀한다고 볼 수있다.
그리고 한국의 대원씨아이에도 그리고 성우들에게도
문학동네와 요코이야기 와의 관련성과 영향 을 묻고 싶다.
일본인들의 위와 같은 잘못된 사고방식을 한국만화와
오락문화의 활성화라는 미명하에 무방비로 이 나라
미성년들을 그들의 뻔뻔함과 무책임함에 물들게 하고
결국에는 만화오락 출판사가 아닌 문학동네까지 즉
순수한 지식문화의 매개 수단이 되어야 할 출판사 까지
한 통속이 되게 하여 순수 문화와 대중문화,
고급문화와 저질문화의 경계를 허물어 뜨려 버린 것에
대해서 역시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위의 만화들은 절대로 민중의 가야할 가치를
진정으로 추구하는 만화 작품이 아닌
단지 기득권층의 이익을 확고하게 쇠뇌시키는
민중이 만드는 의미가 아닌
주입당하는 의미로서의 만화 오락물인 것이다.
(3월 21일에 추가하는 글)
윗 글 마지막 열번째 물음에서 일본 엔터테인먼트 계와
그 속의 카데고리 중 하나인 일본만화계에 대해 비판했는데
몇 마디를 더욱 하고 마치고자 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원피스>와 <슬램덩크>를 위시한 모든
일본만화는 절대로 보는 사람의 영혼과 정신을 살 찌우거나
건강하게 북돋아 주는 양식이 아닌 오히려 야위고 인습으로
찌들게 하는 하등오락이라 확신한다. 오로지 한국인들에게
있어 그 가치는 일본사회의 모습과 근원을 알기위해서에만
있을 뿐 절대로 호응과 숭앙의 가치가 되어서는 아니된다
단언하는 것이다.
또 분명히 말하자면 도에이 동화건 가이낙스건 모든
일본의 애니메이션 생산 회사들 역시 다른 나라들의
애니매이션 회사들과 비교한다면 절대로 한 개인의
창조적 자주성의 구현보다는 집단의 가치관에 대한 지지와
이를 확고하게 하는 축소지향적 에고이즘을 정당화 하는
모습을 데즈카 시대부터 청산하기는 커녕 더욱 2000년대인
지금까지 표면화하여 정상인 것인양 드러내 므로 지금
한국 사회 미성년자들과 컨텐츠 산업에 속한 성인들에게서
보여지는 무분별한 지지와 예찬은 한마디로 득이 없는 행위
라 할 것이다.
더 자세히 강변하자면 미국과 유럽 그리고 우리나라 한국의
만화가들과 애니메이션 종사자들은 절대로 기득권자를
맹종하지않고 자신들의 역량을 기득권자들의 피 기득권자
들에 대한 기만의 도구로 팔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한국의
<태권브이>가 당시 한국의 군사정권과 재벌들에 굴종하고
진지한 문제의식을 미루었다면 아마 일본의 로보트 메카물
들과 똑같은 상품시장을 형성하여 '일본에 건담,한국에는
태권브이'라고 알려져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반비례하여
한국인들은 여전히 군인들과 재벌들의 기만을 벙어리와
귀머거리, 장님이 되어 삭히고만 살 것이다.
그리고 왜 아니메와 망가를 위시한 일본의 오락물들이
다른 나라에서 모범이 안되고 호응받아서는 안되는가의
이유를 한가지 예를 들어 보일테니 생각해 보길 바란다.
미국의 마돈나는 자신의 역량과 용기,자존심으로 미국
엔터테인먼트 계의 기둥이 되었지만 일본의 모닝구 무스메
는 층구상 이라는 거대 자본에 의해 채집되어 사육되어
속히 일본 연예계의 애완동물 장난감인 아이돌이 되었다.
결과는 어떤가? 마돈나는 자신과 유사한 분위기(겉만)의
여가수들과 여전히 당당하게 대중시장무대에서 경쟁하고
있고 모닝구무스메는 속히 졸업이라고 미화 은폐되는
구성 멤버들의 빈번한 탈퇴로 현재는 그 인기만이 아닌 본
모습마저 유야무야 흐지부지 되어 버렸음을 알 수있다.
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집단 덕만 본 개성말살의
현 주소가 아니고 무엇이랴.
따라서 결론은 지금 일본 미성년자들이 그리고 청년들이
윗 세대의 더러운 물을 맑게 하기는 커녕 더욱 더럽게 이어
받고 있는 것도 모두 그들이 즐기고 인정(!)하는 만화를
위시한 오락문화의 영향이 다분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