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우리들의 이야기

깊은 밤 삶의 존재감

작성자이인이|작성시간25.08.02|조회수44 목록 댓글 0


이인이






죽음보다 깊은 밤 / 이 인이


그대 있음에 내가 있고
사랑하기에 존재감을
느낍니다

밖은 어둡고
세상은 침묵하지만

그대와 난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인생의 굴레에 휘감겨
외로이 울 때도

마음 깊은 곳에 울림을
확인합니다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이건 침묵하는 세상에
대한 나의 경고 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을 알리고
싶습니다

그대는 나만의 님이라고.


깊은 밤 / 김용택


깊은 밤
강가에 나가
담배를 태우다가 마을을 돌아보면
한두 집은 불빛이
새어나온다.

마을은 하루도 깊은 밤이 없는 것이다.


깊은 밤 / 이동순


깊은 밤
나는 텅 빈 도로를 마구 달려갑니다
차디찬 아스팔트 위에는
차들이 안 다니는 호젓한 밤에


혼자 살그머니 등피를 빠져나온 노오란 가스등 불빛이
방금 잠깬 시골집 강아지처럼 어리둥절한 얼굴로
길 한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나는 그 불빛 사이로
어딘지 알 수 없는 아득한 계절을 향해
마냥 달려갑니다


깊은 밤 / 이동순


깊은 밤
등불을 밝혀놓고
지난날
아름다웠던
그대와의 추억을 생각노라면
옹달샘에 맑은 물 퐁퐁 고여오듯


봄 둔덕에 봄풀
새록새록 돋아나듯
옛일은 하나 둘 연둣빛으로 고이고 돋아나
뜨거운 눈물 되어 방울방울
발끝에 떨어집니다


깊은 밤 / 장석남


나는 지금
빈 백사장이 자꾸 눈에 보여
무슨 까닭인지 백사장이 자꾸만 눈에 보여

바람이 불고 있다 웅성거리는 웅성임들
지붕이 바람을 업고 모래꿈을 꾸고

처마에 매달린 풍경이 자기 육신을 치는 소리
풍경이 자기 육신을 쳐서
소리로라도 가려고 하는 곳
그곳을 나는 지금 보고 있다

백사장 위로 下弦이 하나 우두커니
걸어가고 있다


깊은 밤 / 도종환


어려서 아버지께 편지를 자주 쓴 것
첫 줄을 쓰기 위해 별을 올려다본 것
슬픈 밤마다 별들과 가만히 눈을 맞춘 것
실패한 아버지를 찾아 떠도는
어머니가 보고 싶어 혼자 조용히 운 것
수업 시간에 창밖을 자주 내다본 것


화폭에 칠한 색감에 몰입하는 시간이 좋았던 것
수시로 도서실로 달려가던 오후
‘사랑이 무성한 수풀’ 같은 소설 제목에 끌려
무성한이란 말과 수풀에 대해 수많은 상상을 한 것


나이 들어서 결국 숲속에서 살게 되었고
영혼을 편하게 하는 일이 숲의 일이라는 걸 알게 된 것
내 인생에서 잘한 일을 들라면
나는 이런 것들을 떠올린다


기다리는 일에 익숙해진 것
인내의 길이를 길게 늘여가는 게 시간이고
시간이야말로 은혜롭다는 것
시간이 사람을 깊게 한다는 말을 믿은 것
어머니에게 여린 마음의 씨앗을 물려받은 것


그 씨앗이 자라
제비꽃 애기똥풀 같은 꽃만 보아도 마음이 순해지고
사랑하는 이를 만나면 마음이 선해지던 것
스무살에 니체를 알게 된 것
반야심경을 꼼꼼히 읽은 것
좌절과 자학이 질펀하던 시절에
사르트르와 키르케고르를 만난 것


빈곤한 날들의 끝에 톨스토이를 좋아하게 된 것
변방에서 쑥부쟁이처럼 비천하게 살았지만
외롭게 살다 간 사람들의 인생을 흠모하게 된 것
시골 학교 선생으로 오래 일한 것
그것도 잘한 일의 목록에 들어가야 할 듯싶다

세상에는 문자를 만들어 나무껍질에 새겨
공유하기 시작한 이도 있고
범람하는 세상의 강을 다스리는 일에 생을 던진 이도 있고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을 살려낸 이도 있고


증기의 압력으로 동력을 얻어 새 시대를 연 이도 있으나
나는 세상을 바꾸는 어마어마한 일을 하거나
역사의 물줄기를 튼 사람들 근처에도 못 간다


잘하는 것보다 못하는 게 더 많고
세상에는 나보다 훌륭한 사람이 많다는 걸 안다
내 안에는 빛보다 그늘이 많지만
그늘도 사랑하고 햇빛도 사랑한다


햇빛에 반짝이는 부분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그늘진 곳이 나를 겸손한 자리에 머물게 한다


내 인생이 나를 통해 무엇을 이루려 하는지
아직도 다 알지 못하지만
여기까지 함께 와준
고마운 내 인생을 향해 편지 한장 쓰는 밤
별을 올려다보는 밤이 깊다


겨울 깊은 밤 1 / 김주완


지리산 반달가슴곰,
지난 여름, 남자 2호와 여자 1호가 숲 속 깊이 들어갔다, 발신기가 보내오는 신호는 눈밭의 토끼눈처럼 빨간 점으로, 나란히 좌표계를 이동하였다,


파상형의 행로가 모니터에 출렁거렸다, 종복원기술원에서는 푸른 그늘 아래 분홍빛 짝짓기를 확신했다, 땡볕 내리쬐는 번식기라


여자 1호가 겨울잠을 잔다, 억새풀로 은폐된 바위굴에 누가 자꾸 하얀 담요를 덮어주는 겨울, 깊은 밤, 잠자는 여자 1호가 자면서 두어 마리 새끼를 낳는다,


이백 그램이면 어른 쥐만 한 크기도 못 되지, 어미는 겨우내 잠을 자고 새끼는 깜깜한 품에서 어미젖을 빠는데, 그렇지, 먹는 것이 없이도 어미는 젖을 내주고 어둠 속에서도 새끼는 젖을 찾을 줄 알지


산마루를 내달리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툭툭 부러지고 산이 통째로 찢어지는 소리를 낸다,


동굴 앞에 도사리고 있는 날카롭게 날선 겨울 깊은 밤, 폭설이 퍼붓고 계곡이 쭈빗쭈빗 얼어붙는 추위 속에서도 여자 1호가 깔고 누운 가랑잎에는 온기가 있다,


새끼를 품은 세상의 어미는 방어막을 가지는 법, 추위와 바람과 어둠을 막는 치마폭을 두르는 법


늙은 할미가 치성을 드리는 사월이 오면 사 킬로그램이 된 반달가슴곰 새끼가 어미를 따라 기어나올 것이다, 깊은 겨울밤 먹빛 물이 들며 자란, 몽실몽실한 이른 봄을 만날 것이다, 작은 앞발을 치켜들고 불쑥 일어서는 봄을


깊은 밤 깊은 곳에 / 남진우


깊은 밤 잠자리에 누우면
차갑게 식은 몸에서 비명이 스며나온다
스며나와 방바닥을 가로지른다
내 몸을 떠나가는 저 하루 치의 쓰라림

서서히 모든 집 문지방에서
비명이 새어나온다 새어나와 피처럼 골목을 적신다
때로 웅덩이를 이루고 때로 거품을 일으키며
텅 빈 거리와 광장을 무섭도록 고요하게 흘러가는
비명 소리

낮은 곳으로 더 낮은 곳으로 비명은 모여든다
모이고 모여 마침내 일어선다
일어서서 하늘을 향해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비명이 다 빠져나간 몸은
침침한 어둠 속에 가라앉고
지상은 눈부신 달빛 아래 치솟아오르는 비명의
소용돌이 비명으로 뒤덮인 세상은 참으로 고요하다



[ 타 문헌 문서 참고 ]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