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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260620 희양산

작성자상선약수(지운흥)|작성시간26.06.21|조회수117 목록 댓글 0

▼희양산(曦陽山) 산행기

 

장소 : 희양산(999m, 충북 괴산, 경북 문경)

일시 : 2026년 6월 20일(토))

코스 : 은티마을 주차장~희양산·구왕봉 삼거리~지름티재~미로바위~직벽 로프구간~시루봉·희양산 갈림길~희양산~시루봉·희양산 갈림길~희양폭포~주차장 (10, 4시간 소요)

참가자 : 동탄산악회 세시반 박은영 회장님 포함 72명

 

 

희양산(曦陽山, 999)   [曦 햇빛희]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경북 문경시 가은읍의 경계에 걸친 희양산은 도 경계 능선이자 백두대간 능선이다.

희양산이라는 이름은 ‘햇빛이 비치면 하얗게 빛나는 산’이라는 뜻이 담겼다.

희양산은 산세가 험하고 경사가 급해 만만한 산은 아니지만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조망이 압권이다.

지름티재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구간은 가파른 암벽 구간으로,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 한다.

 

희양산 남쪽 산자락에 있는 봉암사는 879년 신라 헌강왕 5년에 세워졌다.

스님들의 특별 수행처로서 일 년 중 단 하루, 석가탄신일에만 개방한다는 특별한 도량이다.

 

 

 

▼ 희양산 정상에서...

좌로부터, 존칭 생략.

정상석 왼쪽 : 삿뽀로 김정현, 골드리버 조한길, 상선약수 지운흥, 하하 이충훈, 진우 김진철 전임 동탄산악회 회장

정상석 오른쪽 : 명원, 그린가이 이기현, ?, 소장사 김의삼, 벨아저씨 김종근, ?, 흰구름, 파란마음, ?, ?.

 

▼ 등산안내도

 

▼ 심란한 마음을 지울 수 없게 했던 충주휴게소의  비 내리는 전경

 

▼ 은티마을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 준비 중

 

▼ 은티마을 주차장에서 기념 촬영

 

은티마을 유래비와 남근석

은티마을로 오지의 산골 마을이라서 6.25 전쟁이 난 줄도 모르고 전쟁이 끝날 정도였다.

마을 입구에는 백두대간 종주 산꾼의 베이스캠프 격인 은티마을 주막집이 있고 맞은편에는 남근석을 세워 놓았다.

은티마을은 풍수로 보면 여자의 자궁인 ‘여궁혈(女宮血)’에 해당해 남근석을 마을 입구에 세워 드센 음기를 누르고 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 수묵화를 보는 듯한 풍경

 

▼ 희양산 3.6km, 구왕봉 3.0km, 은티마을 0.8km. 이정표가 세워진 삼거리

 

▼ 비가 내려 등산로 곳곳이 물에 잠겨있다.

 

▼ 지름티재와 희양폭포-산성 방향 갈림길

숲길을 따라 조금만 가면 아무 표시가 없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산행 리본이 많이 달린 오른쪽이 지름티재로 가는 길이다.

 

▼ 비가 내리는 숲 속 풍경

 

백두대간 마루금지름티재

괴산 연풍면에서 봉암사로 넘어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라 해서 '지름티'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닐지 추측해 본다.

현재 지름티재에는 등산객과 관람객의 출입을 금하는 안내문과 함께 단단한 목책이 세워져 있다.

이곳 능선부터 봉암사 방면은 모두 사찰 소유의 산림이다.

스님들의 엄격한 참선 수행을 보호하기 위해 등산객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으며,

산림청이 지정한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이기도 해 나무울타리 너머로는 발을 들일 수 없다.

 

▼ 미로를 닮은 '미로바위'

집채만 한 거대한 바위들이 서로 맞닿아 만든 틈새가 마치 복잡한 미로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미로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미로바위를 지나자

"이곳은 긴 직벽 구간으로 추락 위험이 매우 높으니, 노약자나 체력이 약한 등산객은 안전을 위해 되돌아가라"는 경고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 엄숙한 경고문은 향후 만날 희양산과 시루봉의 능선 갈림길에도 똑같이 세워져 있다.

 

 

희양산과 시루봉 갈림길까지 이어지는 약 1km 구간은 실제로  코가 땅에 닿을 만큼 가파른 등산로이다.

게다가 거친 암벽을 타고 오르는 아찔한 로프 구간이 끝없이 길게 이어진다.

 

▼ 희양산 암벽 구간을 동행하며 사진을 촬영해 주신 하하 이충훈 님.

 

희양산 최고의 하이라이트, 200m 직벽 로프 구간

암벽 구간이 제법 길어 체력 소모가 상당하다.

길게 늘어진 로프에 매달려 사투를 벌이다 보니, 땅을 걷는 시간이나 바위에 매달려 있는 시간이나 비슷하게 느껴질 정도다.

 

 

 

희양산·시루봉 능선 갈림길

희양산 정상으로 가려면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완만한 마당바위 형태로 부드럽게 이어진다.

 

▼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B코스 선두팀과 만남.

좌로부터... 아폴로 박현철 전임 산악대장님, ?, 하하 이충훈 전임 등반대장님, 가리용 김용관 전임 운영위원님, ?.

 

10:12  희양산 정상 도착 (은티마을 주차장에서 1시간 35분 소요)

 

비 구름 속에 갇힌 희양산 정상 (999m)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희양산은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동쪽으로 조금 비껴 서 있는 독특한 산이다.

날이 맑았다면 사방으로 탁 트인 멋진 조망을 선물해 주었을 텐데, 오늘은 짙은 비구름 탓에 지척을 분간하기조차 어렵다.

 

 

▼ 희양산 정상 부근 모습

 

▼ 정상에서 인증샷

 

▼ 하산길에 마주친 이충훈 님과 호호 님 부부.

두 분이 다정하게 발맞추어 산행하시는 모습이 참 보기 좋고 부럽기만 하다.

 

▼ 구름이 몰려가니 잠시 시야가 조금은 트이기도 한다.

 

정상을 확인한 후 다시 갈림길로 돌아와 시루봉 방향으로 10여 분쯤 내려선다.

이윽고 나타난 성곽 터에서 은티마을 이정표를 확인하고 본격적인 하산길에 접어든다.

 

▼ 희양폭포 방향으로의 하산길 모습.

 

▼ 바위가 겹겹이 쌓여있었던 것이 특이했던 하산길 풍경

 

 

 

▼ 비가 멈추자 잠시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던 희양산 전경

 

▼ 하산길에 바라본 아늑한 은티마을 전경

 

▼ 은티마을 입구의 정취

하산을 완료한 은티마을 입구에는 정겨운 주막집과 그 맞은편의 남근석이 등산객을 맞이한다.

시원한 샤워 후 주막에서 마시는 막걸리 한 잔으로 희양산이 준 거친 긴장감을 달콤하게 풀어낸다.

 

 

12:37  은티마을 주차장에서 산행 종료 (10, 4시간 소요)

 

 

[에필로그]

 

산행을 떠나는 날 아침은 언제나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떠야 한다.

전날 밤 알람을 맞춰 놓고 잠자리에 들면서도, 일상의 생체 리듬을 깨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은 늘 은근한 부담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오늘은 온종일 비 소식이 예보된 희양산 산행 날.

잠시 ' 가지 말까' 하는 망설임이 마음을 스쳤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우중 산행 채비를 마친 뒤 집을 나섰다.

안내 버스에 올라타니 신청자 명단과 달리 빈 좌석이 제법 많이 보였다.

아무래도 쏟아지는 빗줄기와 우중 산행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발길을 돌린 이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평소에는 그리도 자주 틀리던 일기예보가, 어째서 오늘따라 이토록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지 야속한 마음도 살짝 들었다.

은티마을에 도착해 빗속에서 우의를 챙겨 입으며 본격적인 산행 준비를 시작했다.

코스는 희양산의 백미인 'A코스 직벽 구간'과 조금은 완만한 'B코스 우회로'로 나뉘었다.

나의 선택은 망설임 없이 A코스였다.

무려 25년 전,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 백두대간을 종주하던 그 시절의 기억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시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아찔하게 치러냈던 야간 산행의 기억이 여전히 가슴 한구석에 선명히 남아 있었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비로 인해 등산로 곳곳이 물에 잠기고, 화강암 바위층은 미끄러워 한 걸음 한 걸음이 위험의 연속이었지만,

다행히 산행은 큰 탈 없이 무난하게 마무리되었다.

궂은 날씨 속에서도 대원들의 안전을 위해 시종일관 노심초사하며 산행을 이끌어 주신 세시반 박은영 회장님과

도깨비 김해용 산악대장님, 그리고 모든 운영진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린다.

아울러 하루 종일 내리는 빗속에서, 그 험난한 급경사와 아찔한 암벽 코스를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이 완주해 내신 일행분들을 보며

산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대단한 내공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함께여서 더욱 즐겁고 행복했던 희양산 우중 산행.

앞으로도 동탄산악회가 안전하고 멋진 산행을 오래도록 이어가기를 마음 깊이 기원한다.

 

 

2026년 6월 21일

상선약수 지운흥

 

 

 

PS.

2002년 당시에는 밤 11시쯤 서울 동대문에서 산악회 버스를 타고 출발해 산행지에 도착하자마자,

랜턴 불빛 하나에 의지한 채 곧바로 야간 산행을 시작하곤 했다.

희양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암벽은 경사가 70~80도에 달하는 매우 위험한 화강암 절벽이다.

대개는 백두대간 종주 등산객들이 암벽 구간에 로프를 묶어두곤 했지만,

2002년 당시는 봉암사 스님들이 백두대간 등산로를 통제하던 때라 암벽에 설치된 로프마저 수시로 제거되던 상황이었다.

 

하필 희양산 암벽을 오르던 그날은 바위 곳곳에 얼음까지 얼어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얼어붙은 절벽을 로프도 없이 맨손으로 오르는 것은, 그야말로 생명을 걸어야 하는 아찔한 사투였다.

 

내가 앞장서서 바위를 기어오르자, 뒤따라오던 아내가 무서웠는지 손을 잡아달라고 청했다.

하지만 이런 절대적인 위기 상황에서는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오르는 것이 훨씬 더 위험한 법이다.

"여기서 손잡으면 둘 다 위험해. 만약 사고라도 나면 집에 있는 아이들은 누가 돌보나? 죽더라도 한 사람은 살아야지."

그 순간의 판단으로 툭 던진 말이었는데, 아내는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말이 참 야속했다며 두고두고 이야기한다.

아주 오래전 절체절명의 순간에 본능적으로 나눈 대화인데, 그것을 이토록 생생하게 기억하는 걸 보면

아내의 머리가 좋은 건지, 기억력이 유달리 뛰어난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희양산 암벽은 우리 부부에게 이런 잊지 못할 에피소드를 남겨준 곳이다.

 

[사진 1]  2002년 백두대간 종주 중, 희양산 암벽을 맨손으로 오르며…

 

[사진 2]  빛바랜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온몸에 긴장감이 감돌던 그때의 전율이 아스라이 다시 살아난다.

 

[봉암사 스님들이 희양산 암벽의 로프를 철거했던 진짜 이유]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봉암사를 거쳐 희양산에 오르는 것이 가능했다.

당시의 봉암사 주변은 여느 사찰과 다름없는 풍경이었으나, 점차 등산객들이 몰려들면서 문제가 시작되었다.

사찰 부근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거나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일이 잦아졌고,

심지어 술에 취한 유흥객들의 고성방가로 인해 조용히 정진해야 할 수행 도량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결국 사찰이 훼손되는 것을 더는 방치할 수 없었던 봉암사 스님들은 1982년, 사찰 주변의 등산로를 철저하게 폐쇄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했다.

 

봉암사 방면의 등산로가 막히면서 희양산 암벽등반도 자연스럽게 금지되었다.

스님들은 교대로 희양산에 올라 봉암사 소유의 사찰림 구역으로 등산객들이 무단 진입하는 것을 온몸으로 막아섰다.

또한 아찔한 암벽 구간에서의 추락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진입로를 전면 차단하고, 바위에 묶여 있던 로프를 수시로 철거했다.

 

이후 등산객들과 봉암사 간에 수년간의 격렬한 마찰과 갈등이 이어졌다.

그 결과 지름티재에서 봉암사 경내로 넘어가는 길은 지금도 여전히 굳게 폐쇄되어 있지만,

등산객들이 이용하는 '지름티재~미로바위~암벽구간~희양산 정상' 코스는 과도기를 거쳐

2008~2009년경부터 로프를 제거하지 않고 등산로도 통제하지 않는 것으로 정리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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