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광여행(觀光旅行). 며칠 전에 아끼고 사랑하는 후배 목사님의 전화를 받았는데 그 섭섭함이 가시지를 않는다. 내용은 내 외 분이 중국관광을 다녀왔다는 것이다. 그분들은 지성인(知性人)들이며 교회를 섬기기에 최선을 다하시고 사모님은 기도를 많이 하신분이다. 우리는 연령적 차이는 있으나, 신앙적인 문제, 나라를 위해 걱정하는 일, 가정문제 등등을 수시로 장시간 통화를 하며, 마음을 나누는 벗이다. 지난번 남미(南美)까지 자녀들에게 수개월 간 다녀오실 때는 그렇지 안했는데...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지혜 있는 자 같이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에베소5장 15절 관광여행을 하는 것이 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허나, 그 분 내외는 너무 신앙과 사상 면에서의 기대(企待)한 것이 무너진 것 같아, 이렇게 섭섭하고 허전할 수가 없는 것이다. 연휴를 통하여 외국에 관광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이것이 보통사람들의 삶이요 문화요 가치다. 그러하나,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세대말적(世代末的)인 조급성(躁急性)과 초조감(焦燥感)을 사유(思惟)해야 한다. 유한(有限)한 유약(柔弱)한 인생의 존재의미와, 삶의 가치에 대한 분별력과, 어떻게 행(行)할까에 대한 의지적(意志的) 계산(計算)이 사상적으로 무장되어야 한다고 고백한다. 우주유일의 자아 자존이란, 그 자아의 존귀성(尊貴性)이란, 모든 것, 시간, 재산, 생명 및 유무형적(有無形的)인 모든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자존적(自尊的) 자아(自我)를 어떻게 투자(投資)하고 돌아갈 것인가? 목욕비가 아까워서 집에서 샤워를 하고, 버스비가 아까워 두세 코스를 걸어 다닌다. 한 푼이라도 아껴 주의 일에 힘쓸 것이다. 그런 청지기 직(職)의 사상에는 관관여행 같은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드리라”(로마12장 1절)시는 우리 하나님의 기대(企待)앞에, 존재의 절대성과 그 사명의 위대성이 우리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는 오히려 부족할 뿐이기 때문이다. 며칠 후에 우리는 그 보좌 앞에 나가게 될 것이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에베소 5장15-17절. 우리는 우리 하나님의 청지기다. 최고 최대의 행복자란? 그 주인 되신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존재하는 자이다. “하늘에 계신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를 향하나이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같이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시편123편 1-2절. 유한한 우리에게는 시간이 없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오직 남은 것은 전 존재를 드려 섬기는 것뿐이다. 거기에는 어떻게 행할 것인가의 의지적(意志的) 선택과 구체적인 삶의 계획이 절대필요하다. 그리고 헛되지 않은 생명의 십자가(고난)의 길을 행하게 되기를 고민, 연구, 투자할 것이다. 그 길이란 주어진 모든 것을 철두철미 관리하고, 그 분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위하여, 촛불이 다 타서 산화된 것같이 사랑하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드려져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우주유일의 존재의 복음적 해답이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긍휼하심이 없이는, 그 사상도, 계획도, 십자가적(十字架的) 섬김도 불가능함을 고백하면서, 그 여종처럼 눈을 들어 앙모(仰慕), 앙망(仰望)하나이다. “하늘에 계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편 18편 1절. 아멘. 2019년 9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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