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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돈 목사 문집

제대로 된 사람

작성자노동교회|작성시간26.06.14|조회수101 목록 댓글 0

제대로 된 사람

    

 

몇 교회 집회인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 온 길이다.

서울역에서 환승을 해야 하는데 거리가 꽤 있다.

부지런히 걷고 있는데 지금까지 처음 본 정도로 남루 한 옷에 그것도 80은

넘어 보이는 노파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이 엄동의 추위에 어찌할 줄 모르고 있다.

보통은 깊이 엎드려 있는데 극히 불안하고 걱정스런 모습으로 앉아 있다.

 

나는 빠른 발걸음을 계속하는데,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가 없다.

되돌아가고 있는 자신을 의식하면서 지갑을 꺼냈다.

물론 천 원짜리 정도의 생각이었는데 만 원짜리로 손이 간다.

도우려거든 최소한도의 도움이라도 되게 하라는 양심의 명령 때문일까?

 

그런데, 어느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경기도 말씨의 부인이 다가 오더니,

“아저씨는 제대로 된 사람입니다. 이 각박한 세상에, 그것도 되돌아와서“

그러니까 나의 거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그 부인은 돈의 액수는 모를 것이다.

은밀하게 손속에 쥐어드렸으니까.

 

헌데 그만한 일로 “제대로 된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에는 지나치게 부담이 된다.

정말 제대로 된 사람이 되라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으로 깊이,

무겁게, 무섭게 받아드려야 한다.

 

나는 자선가도 돈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이번 여행(13일간)에서 사용하고 온 돈은 헌금 4만원과 버스비 18300 원 뿐이다.

지난번 일본 집회를 다녀올 때도 헌금과 교통비 외에는 한 푼도 안 썼다.

간 곳 마다 우리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예비해 놓으셔서

오히려 황송할 정도로 선대를 받고 왔다.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은 청지기로서 위법이다.

주인 것을 관리함에 있어, 그 사상(思想)의 정립(定立)이 문제이다.

청지기(종)에게는 소유권(물)이 없다.

그 생명까지도 주인의 것이다.

 

종으로서 택정을 받았다는 그 자체가 영광이요 감사 감격이다.

자아에 대한 신분을 부지(不知)하면, 소유에 대한 철학이 확립되지 않으면,

원론적(原論的)인 충성은 어렵다고 본다.

주님의 종이 되어 쓰임을 받음,

그 자체가 인간으로써는 최고 최귀의 사건이다.

여기에는 강제성(强制性)이나 의무성(義務性)이 없다.

 

주를 위해 드려진 생명이, 그 삶이, 그 섬김이,

온 우주 간(宇宙間)에 존재한 최고의 가치요,

더 할 수 없는 행복의 극치(極致)요,

피조(被造)된 자가 창조주와의 친구로써의 감히

만남의 비밀이 열려지는 은총과 충만으로 이끄시는

우리 주님의 기쁨(영광)이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하리라” 요한 8장 32절.

 

“제대로 된 사람”이란,

진리를 알고 완전하게 자유하게 된 사람이 아닐까?!

아니, 이 명제(命題)는 두렵고 떨림으로 자아를 주의 은혜의 장중에

모습 그대로 의탁(依託)하는 자 일 것이다.

 

2015년 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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