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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사전

블레셋 사람( Philistines)

작성자노동교회|작성시간26.06.18|조회수7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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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셋 사람( Philistines)

히) '펠리쉬팀'   פלשתים

 

B.C. 12세기초 또는 B.C. 13세기경 가나안 해안 지역으로 이주해 온 민족('블레셋'; 히. '펠레쉐트'  פלשת

란 말로부터 '팔레스타인'이란 이름이 유래되었음). 블레셋 사람들은 초기 이스라엘 민족에게 큰 위협이 되었으며, 결국 이들의 위협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에 왕국 시대가 탄생하였다.

 

1. 기원과 정착

B.C. 13세기는 고대 근동 지역의 대격변기였다. 즉 기존의 정치 체제가 붕괴되고, 에게 해 유역에서 수리아나 소아시아를 거쳐 많은 삶들이 가나안과 애굽 국경 지대로 이주해 왔다. 그리스도와 발칸, 심지어는 더 먼 북쪽 지역에서온 '해양 민족들'이, 헷 제국을 멸망시키고 애굽을 위협하면서 남쪽으로 이동하였다. 블레셋 사람들은 이 '해양 민족들' 가운데, 특별히 애굽 국경 지역으로 밀어닥친 민족이었다. 렘 47:4; 암9:7에서 보면, 이들은 갑돌, 즉 그레데와 에게 해의 북쪽 섬들 또는 소아시아의 남쪽 해안에서 이주해온 자들로 나타나 있다.

 

애굽 국경 지역으로 밀어닥친 블레셋 사람들은 애굽 왕 메르넵타에게 B.C. 1224-1211년경에 저지를 당하자, 팔레스타인의 해안 지역에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이 견해는 출애굽의 후기 연대설을 전제로 한 것임). 그 후 이들의 영토는 점점 확장되어, 북으로는 '욥바'에서 남으로는'와디 가제'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블레셋 사람들의 주요 거주지는 해안 지역의 아스돗, 아스겔론, 가자와 내륙지역의 에그론과 갓이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일강의 델타, 누비아, 가나안의 남서부 지역에서 애굽의 용병으로 고용되었다. 그 후 애굽 세력이 아시아 지역에서 약화된 B.C. 11세기 이후에야 비로소 독립을 획득할 수 있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싸움을 좋아하였다. 그러나 정복한 가나안 사람들을 추방시키지는 않았다. 그대신 그들은 가나안족들의 문화를 많이 도입한 후, 가나안족들의 통치자들이 되었다. 블레셋은 '장관'(히. '쎄라님' סרנים ; 예. 삼상 29:2)이라 불리우는 관리들에 의하여 다스려졌다. 성경에 나타난 불레셋 사람들의 이름들을 보면 대부분 그들의 우상인 다곤 아스다롯. 바알세붑(삿 16:23; 삼상 5:2-5; 31:10; 왕하 1:2)등의 이름을 본따서 붙였던 것 같다. 이스라엘인이나 가나안인이나 애굽인들과는 달리. 블레셋 사람들에게는 할례하는 관습이 없었다(삿 14:3; 15:18; 삼상 17:26). 성경에는 블레셋 사람들의 용맹성을 입증할만한 기록들이 많이 나타나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에서 철병기를 사용하기 전에 벌써 이런 것들을 사용하였으며(13:19-22), 전쟁터에서 병거와 보병을 아주 효율적으로 이용하였다(암 1:6-8).

 

2. 이스라엘과 블레셋

창 10:14; 21:32, 34; 26:1-18; 출 13:17;15:14; 23:31에 나타난 블레셋 사람들에 대한 언급은 아마도 연대의 착오인 것 같다. 블레셋 사람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들어온 시기는 출애굽 이후인 것으로 추측할 수 있으며, 먼저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계속적인 침략을 당했던 것 같다(수 13:2-3; 삿 3:3; 10:6-7; 13장 - 16장). 사무엘 시대까지 블레셋 사람들은 막강한 군사력으로 이스라엘 부족 공동체를 위협하였다. 아벡 전투에서 블레셋에게 언약궤를 빼앗기는 등의 대패배를 맛본 이스라엘은(삼상 4장), 기존 체제의 지도력이 무기력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하나님께 그들을 통치해 줄 왕을 세워달라고 요구하였다.

 

사울을 왕으로 세운 후에도 블레셋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때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끔씩 블레셋에게 승리를 빼앗기도 했다(삼상 13:3; 14장; 17장; 23:1-5). 사울왕이 길보아산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전사하자 그의 후계자로 다윗이 왕위에 올랐다. 왕이 된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다윗 왕은 예루살렘 근처 르바임 계곡에서 블레셋 군과 두 번 싸웠는데, 그들을 게셀까지 몰아내 버렸다(삼하 5:17-25). 그 후 곱과 갓에서도 계속 승리를 거두었다(21:18-22). 이와 같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자들이 바로 '다윗의 용사들'(21:16-22; 23:8-19)이었다. 솔로몬 왕 치하에서는 블레셋과의 분쟁이 전혀 없었던 것 같다(참조. 왕상 4:21).

 

3. 분열 왕국 시대

솔로몬 제국의 붕괴는 주변 국가들이 옛 영토를 회복하겠다는 야망을 품게 만들었으며, 팔레스타인 지역에 애굽의 압력이 다시 가중되게 만들었다. 애굽 제21왕조의 이름모를 왕이 게셀에서 불레셋과 전쟁을 벌였으며(왕상9:16-17), 시삭 왕은 B.C. 917년에 가사에서부터 팔레스타인과 전쟁을 시작하였다. 블레셋 사람들은 가나안족의 정치 체제인 '도시 중심의 왕'(히. '멜레크' מלך )제도를 채택하였다(렘 25:20; 슥 9:5). 따라서 이스라엘이나 유다와 싸울 때 블레셋 사람들의 결속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북이스라엘 왕국은 초창기에 블레셋과 자주 국경 분쟁이 있었다(왕상 15:27; 16:15).

 

남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막강한 통치력을 발휘하던 때. 블레셋은 남유다에게 조공을 바치는 나라 가운데 그 이름이 기록되어 있었다(대하 17:11). 그러나 여호사밧 왕의 후계자인 여호람 왕때에는 블레셋 사람들이 남유다의 왕궁까지 침입하여 약탈해 갔다(21:16-17). 그후 웃시야 왕은 블레셋 성읍들인 가사. 야브네. 아스돗 성들을 점령하고 그 성벽을 헐어버릴 정도로 대 승리를 거두었다(26: 6-7). 아하스 왕이 앗수르의 디글랏 블레셋 3세에게 항복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블레셋 사람들이 남유다를 침공하여 일부 성읍을 차지했기 때문이었다(28:16-21). 블레셋은 여러 선지자들의 묵시의 대상이 되었다(사 14:28-31; 렘 25:20; 47장; 겔 25:15-17; 암 1:6-8; 옵 1:19; 습 2:4-7; 슥 9:5-8).

 

분열 왕국 시대에 블레셋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처럼 앗수르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었다. 앗수르의 아닷- 나라리 3세(B.C. 9세기 후반)는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조공을 받았다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비문에 그 일을 기록해 두었다(ANET, p. 282). 그리고 디글랏 빌레셀 3세 역시B.C. 734년에 조공바치기를 거부하는 아스겔론 성과 가자성을 침공하였으며, 사르곤 2세도 B.C. 715년에 앗수르의 침공으로 인하여 블레셋의 나머지 성읍들도 결국 앗스르 세력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러나 블레셋을 멸망시킨 나라는 앗수르나, B.C. 612년 앗수르 멸망 이후 침공해 온 애굽 왕 느고 2세도 아닌,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었다. B.C. 604년 느부삿네살이 블레셋을 정복하고 블레셋 사람들을 타국으로 강제 이주시킴으로 말미암아 블레셋의 역사는 끝이 나고 말았다.

 

출처: 아가페 성경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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