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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 섬김

목자 없는 무리를 불쌍히 여기심

작성자노동교회|작성시간26.06.05|조회수8 목록 댓글 0
목자 없는 무리를 불쌍히 여기심(마9:35-38)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모든 성읍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들을 고치셨다고 기록함으로(9:35)
천국 설립 이후에 예수께서 행하신 사역을 요약하며 평가한다.
이와 같은 내용은 마태복음 4장에서도 언급한다.
마태복음 4장에서는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들린 자, 간질 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고 요약하고 평가한다(마4:23-25).
이처럼 마태는 말하는 뜻과 의도를 강화하기 위하여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을 재배열한다.
예수의 공식적인 사역의 출발점은 천국의 설립이다.
따라서 산상수훈은 예수께서 따르는 신하와 같은 제자들과
백성들과 같은 무리에게 나라의 출발을 알리는 칙령선포이다.
이와 같은 천국 설립 이후의 가르침과 사역들은
천국 왕의 권세와 그가 설립한 천국의 본질과 특성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본문은 천국 설립 이후에 예수께서 행하신 가르침과 사역을 요약하며 평가하는 말이다(9:35-38).
이러한 요약과 평가의 말을 언급함은 한 단계 더 발전된 단계로 나아가기 위함이다.


공생애 초기 사역의 범위


마태복음은 예수의 초기사역 범위를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셨다’라고 언급하고(4:23),
마무리 평가에서는 ‘모든 성읍과 촌에 두루 다니셨다’라고 기록한다(9:35).
예수께서 두루 다니신 모든 성읍과 마을은 갈릴리의 온 성읍과 마을이다.
이처럼 예수의 초기사역은 온 갈릴리 성읍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예수의 공생애 사역을 마태복음은 갈릴리 사역과 온 유대와 예루살렘 사역으로 구분한다.
갈릴리 사역에서는 천국 복음을 가르치시고 병자들을 치료하시며,
예루살렘 사역에서는 모세율법을 가르치는 자들과 논쟁하시고 그들을 정죄하신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유대와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리에 사시면서 거기에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신다.
이는 그의 전령인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셨기 때문이다(4:12).
이에 대하여 마태복음은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라고(사9:1-2)
이사야 선지서의 말을 인용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방의 권세로부터 압제와 멸시를 받았던 흑암과 사망의 갈릴리를
여호와께서 빛과 영광을 주실 것임을 예언함으로 백성들을 위로한다.
이처럼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는 구원의 배경은 이방의 압제와 흑암과 사망으로부터 구원이다.
그런데 마태가 인용할 때는 이사야 선지서의 배경은 생략되고 대신에 세례요한 잡힘이 배경이다.
이처럼 예수께서 이방의 갈릴리에 사시며 천국을 전파하심은
전령인 세례요한이 잡혀서 감옥에 갇혔음을 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태복음은 헤롯과 율법 아래의 관원들을 천국 왕 예수의 대적자로 말한다.


공생애 초기 예수의 사역을 평가하는 말은 모든 도시와 마을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는 말이다(9:35).
그러나 마태복음에서 예수의 회당 사역은 단 한 번뿐이다.
안식일에 유대인 회당에서 손이 마른 사람을 치료하신 일 외에는 없다(12: 9).
범위를 넓게 잡더라도 눈이 멀고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치료하신 일까지 단 두 번뿐이다(12:22).
마태복음이 말하는 예수의 사역 대부분은 산과 들에서, 집과 길에서 이루어졌다.
오히려 마가복음이 예수의 회당 사역을 처음부터 자주 언급한다.
그런데도 마태복음은 예수께서 갈릴리 모든 회당에서 사역하셨다고 기록한다(9:35).
이는 회당이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유대인들 삶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갈릴리 모든 도읍과 마을에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 중심으로 사역하셨다.
이처럼 유대인 회당은 예루살렘 성전을 대체하는 이스라엘의 종교와 삶의 중심지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갈릴리 모든 회당에 두루 다니셨다고 함은 백성들을 만나신 일을 특정하는 말이다.


천국 왕 예수의 회당 사역


마태복음은 예수의 사역을 갈릴리 사역과 유대와 예루살렘 사역으로 구분한다.
마태복음 4장부터 18장까지는 갈릴리 사역이고,
마태복음 19장부터는 유대와 예루살렘 사역이다.
갈릴리 사역은 예수께서 각 마을을 다니시면서 천국 복음을 가르치고 병자들을 치료하신 사역이며,
예루살렘 사역은 유대 당국자들과 논쟁하고 그들을 정죄하신 사역이다.
유대 당국자들은 여호와의 율법 통치를 대행하는 당국자이며 관료들이다.
그들은 제사장과 장로들, 율법 선생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며,
백성들보다 크고 먼저 된 자로서 주어지는 특권과 명예, 풍족한 삶을 누렸다.
그런데 그들과 하나가 된 헤롯은 천국 왕의 전령인 세례요한을 잡아서 옥에 가두었으며,
나중에는 그들도 예루살렘 성에 입성한 천국 왕을 헤롯에게 넘겨서 못을 박았다.
이처럼 헤롯과 예루살렘에 거주자인 유대 당국자들은 예수를 대적하는 주동자들이 되었다.
종말에 보냄을 받은 아들과 그를 보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되었다.
이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셔서 매매하는 자들과 환전상들을 내어 쫓으신다.
이는 성전을 청결케 하신 행동이 아니라 성전과 성전제사를 부정하신 일이다.
성전제사의 제물인 짐승을 매매하는 자들과
성전유지와 보수에 필요한 유대 돈을 바꿔주는 환전상들이 없다면
성전제도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율법 아래에서 짐승을 매매하는 자들과 환전상들은 필요한 존재들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오심에서 율법 통치가 종결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도 성전에 계시지 않고 사람으로 백성들 가운데 계신다.
그 결과 모세율법을 따라 하나님께서 성전에 계심과 성전제사는 종결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짐승을 매매하는 자들과 환전상들을 내어쫓으심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폐하신 것이다.
이처럼 예수께서 온 갈릴리의 모든 성읍과 마을 회당에 두루 다니심은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율법과 제도를 따라 성전에 계시지 않고,
모세가 말한 대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받지 않으시고,
사람으로 오셔서 자기 백성의 삶의 현장을 친히 방문하신 일이다.


예수께서는 갈릴리 회당에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들을 고치신다.
모든 병을 고치심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심은 같은 일의 반복이며 강조이다.
예수께서 가르치심과 천국 복음을 전파하심도 같은 일의 반복이며 강조이다.
이처럼 천국 왕 예수께서는 그의 말이 시행되는 천국을 설립하시고 천국 질서를 가르치셔서
갈릴리 사람들이 모세율법(구약성경)을 버리고 천국의 질서를 따르도록 가르치신다.
이전에는 모세의 말을 따랐으나 이제는 예수의 말을 따르도록 하신다.
이러한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을 통해서 천국은 전파되고 확장된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모세의 말을 따랐던 백성들에게 천국의 질서를 가르치심으로,
모세의 말이 시행되었던 구약의 하나님 나라는 종결되고
그리스도의 말이 시행되는 천국이 도래하였음을 전파하셨다.
그런데 예수께서 천국을 전파하고 확장하신 대상이 유대인들이다.
그들은 모세의 말인 613개 율법으로 성전에 계신 여호와를 섬겼던 백성들이다.
이처럼 율법 아래에 있는 백성들을 천국 백성으로 구원하기 위하여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유대 땅에 보내신 것이다.
이러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예수께서는 율법 아래에 있는 백성들에게 천국 복음을 가르치신다.
따라서 개혁신학이 말하는 613개 율법 중에서 도덕법은 종말에도 유효하다는 주장은
종말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신 뜻에 반하는 가르침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일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 다 내게로 오라고 초대하신 대상은 유대들이다(마11:28-30).
이처럼 옛적에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종말에는 오직 아들을 통해서 믿는 자에게 말씀하신다(히1:1-2).


맺는 말


추수는 종말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사역이다.
이는 율법 아래에 있는 유대인들을 율법 아래에서 구원하시고,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은 죄와 사망 가운데서 구원하시는 하나님 사역이다.
유대인들을 율법 아래에서 구원하심은 모세율법이 죄를 없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율법은 그 아래에 있는 자를 온전케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율법 아래에서의 구원은
613개 율법의 멍에를 졌던 종(머슴)인 유대인들을 하늘에 앉은 아들(자녀)로 구원하는 일이다.
따라서 유대인이 예수를 믿고 따르려면 613개 율법을 따르던 삶을 버려야 하고,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은 죄와 사망 아래의 삶을 버려야 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613개 율법을 가진 옛 언약 당사자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 여호와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추수하셨으나,
종말에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의 구분이 없이 예수에게 나아온 모두를 천국 백성으로 영접하신다.
공생애 당시에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는 남은 자들,
모세율법에 신실한 남은 자들을 부르셔서 구원하신다.
율법 아래에 있던 백성이 예수에게 나아오게 하심으로,
율법이 주지 못하는 구원과 생명을 누리게 하신다.
이처럼 율법 아래의 종(머슴)이던 백성을 속량하여 하나님의 아들(자녀)로 세우신다(갈4:4-5).
그러므로 율법 통치와 그리스도 통치는 공존할 수가 없다.
613개 율법 통치는 그리스도 통치가 시행될 때까지 시행된 한시적인 조치이다.
구약은 모세의 말이 시행되는 모세 시대이나
종말은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시행되는 그리스도 시대이다.
그러므로 종말에서는 모세의 말은 설 자리가 없다.
개혁신학의 주장처럼 의식법과 신민법은 폐지되고 도덕법은 유효함은 있을 수 없다.
바울을 생각해보라.
예수를 만나기 전에 그는 613개 율법에 충실한 의로운 백성이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 이후에는 613개 율법에 부착하였던 이전의 삶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바울의 고백은 개혁신학의 가르침처럼
613개 율법 항목 중에서 제사법과 시민법 항목은 배설물로 여기고
도덕법 항목은 지금도 따르고 있다는 고백이 아니다.
예수를 만나기 이전에 모세의 말을 따랐던 예전의 삶 전체,
613개 율법 항목을 부착하여 살았던 삶 전체를 배설물로 여긴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한국교회는 구약성경도 하나님 말씀이라는 미명으로 십일조를 행하고 가르치는가?
종말에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 뜻을 대적하고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게 하는 일임을 알지 못하는가?
공생애 당시의 제사장과 장로들, 서기관과 바리새인도 예수를 죽여 없애는 것이
모세율법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예법이라고 생각하고 행한 일임을 알지 못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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