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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작성자수정.|작성시간25.09.29|조회수50 목록 댓글 1

[그때 그시절]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5·18 광주 민주화 운동

1979년 전두환 등 신군부는 12·12 사건을 일으켜 군부를 장악하였다. 이들은 정권 장악을 위해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휴교령과 언론 검열 강화 등의 조치를 내리는 한편, 김대중과 김영삼 등 정치인과 재야 인사들을 대규모로 감금하고 국회를 봉쇄하였다.


5월 18일 광주 대학생들은 전두환 퇴진과 비상계엄 해제를 주장하며 시위를 일으켰다. 신군부는 공수부대를 포함한 계엄군을 투입해 학생들을 구타하는 등 잔혹하게 진압했으며 이를 말리던 시민들까지 무차별 폭행하였다. 광주시민들은 계엄군의 폭력 진압에 거세게 저항했으며 도시 곳곳에서 격렬한 충돌이 일어났다. 19일 계엄군은 장갑차와 헬기를 동원했으며 시민을 향해 발포하기 시작했다. 21일 광주와 외부를 연결하는 전화가 차단되었으며 계엄군은 시민에 대한 폭행·살상을 자행했다.

시민들은 계엄군의 발포에 맞서 경찰서 등에서 꺼낸 무기로 저항을 이어갔다. 5월 21일부터 26일까지 7일 동안 시민들은 전남도청을 사수하고 시민 자치제를 시행하였다. 전남도청 분수대에서는 매일 시민궐기대회가 열렸으며 광주시민들은 수습대책위원회를 구성해 계엄군 대표와 협의를 시도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 결국 26일 탱크를 앞세운 계엄군이 대대적인 무력진압을 감행하면서 시민군은 전원 연행되었으며 광주지역이 계엄군에 넘어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약 193명이 사망했으며 부상자는 850명 이상으로 확인되었다.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된 계엄군의 탱크와 장갑차 



광주 금남로에 모여 항거하는 시민들 




시내 국민은행 앞 도로변에 배치시킨 계엄군의 M48 탱크 대대 




금남로에서 대치한 시위대와 M113 장갑차를 포진시킨 계엄군 공수부대 




시민들을 저지하는 계엄군 


 


시민을 연행해 탱크 앞에 무릎을 꿇리고 있는 계엄군 


 


시내로 진입하기 위해 화정동에 위치한 돌고개를 넘어 내려오는 계엄군의 탱크 대대 




금남로에 탱크를 포진시킨 계엄군

 



금남로를 막은 기관총좌의 계엄군 


 


시내에 투입된 계엄군의 장갑차
 


광주 제일은행 지점 앞에 포진 시킨 계엄군의 장갑차 




금남로에서 이동하는 공수부대와 장갑차 


 


공수부대 병사에게 무릎을 꿇고 살려달라 애원하는 광주 시민 


 


도청을 점령한 계엄군의 M113 장갑차와 M48 탱크 




도로를 탱크로 막아 봉쇄한 계엄군 


 


전남대학교를 봉쇄한 계엄군의 탱크



5·18민주화운동...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민주주의의 가치를 되새기고, 그 역사를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엄숙한 약속의 시간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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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t산머루 | 작성시간 25.09.29 이렇게 불행한사건은 절대로 일어나면 안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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