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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달라진 거 없다.

작성자보륜거사|작성시간26.06.23|조회수13 목록 댓글 0

한달간 저를 돌아보며 주변을 살펴보았습니다.

지난 엄동설한에 위도 높은 지역의 어느 분 댁에서 이 카페 발촉의 낌새를 알았습니다.

저는 전2(田錢)이 별로 없는 시골에서 문화재 부자로 태어났습니다.

왕할배는 아들 5명의 이름에 같은 한자를 넣었습니다.

사람은 싸움을 할 때 참는 게 이기는 게 아니고, 평소에도 같은 처신을 해야 한다고 克(이길 극) 자를 앞에 넣고, 사람이 살야 가는데 필요한 덕목인 仁義禮知信을 뒤에다 나이 순서대로 넣었습니다.

몇 달이 지났다고 그때의 결의는 어디에 가고, 시비성 댓글을 4일 동안 3회를 쓰신 분이 있습니다.

좋은 시기라면 이해를 하고 넘어갈 수가 있었습니다.

남이 곤경에 빠졌을때 무리를 지어서 힘없는 사람을 공격을 하지 맙시다.

나쁜 글을 쓴 사람에게 부처님을 비유를 하는 댓글은 쓰는 게 아닙니다.

사소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서, 죄 없는 본인 남편을 들먹이며, 다른 회원에게 기분 나쁘게 하지 맙시다.

아무리 克仁의 후손이라도 종교를 비하하고, 노령연금을 수령하는 죄 없는 사람에게 타인을 옹호하는 듯한 공격성 댓글은 쓰는데 2번까지는 참았습니다.

어느 카페에서 어린 나이지만 출석부를 잘 써줬습니다.

시기인지 질투인지 나이 드신 분이 공격성 댓글을 달았습니다.

출석부 매일 써 주는 것도 감사한 일인데, 23시에 쓰면 안 된다고 항의를 했습니다.

본문에 너무 졸려서 오늘만 미리 올리고 잔다고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운영진이나 어른 분, 어느 누구도 위로나 댓글 잘못 단 분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시골은 집성촌이라서 나쁜 행동을 해도, 우리가 남인가 해서 감싸주니, 나쁜 시람이 살기 좋은 곳이 되었습니다.

정성껏 쓴 남의 글을 대충 읽고 엉뚱한 댓글을 쓰고, 본인은 읽어서 도움이 되는 글을 많이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商高를 졸업을 했지만 이익을 따지는게 싫어서, 기술직으로 하다가 조기 퇴직을 했습니다.

돈이 없는 단체는 운영이 쉽지 않지만, 돈으로 이해 득실을 따지는 단체는 망한다는 생각이 최근에 많이 납니다.

본인의 글로 스스로 가치를 떨어뜨리는 분이 되지 맙시다.

兵五年에 2인 3분이 두렵습니다.

중학생 때 한문 시험에 1문제를 틀렸습니다.

서울대 영문과를 졸업을 하고, 영어 교수님을 사신 분이 정신 줄을 놓아서, 중학교에 까지 밀려와서, 영어와 한문을 가르쳤습니다.

수업 시작 후 15분은 만담을 하고, 시험 문제도 미리 알려주어서 달달 외었습니다.

한문제 알았는데 실수로 틀렸다고 선생에게 말을 했더니, 시험지에 손수 정답으로 고치고 100점으로 해줬습니다.

유전자와 혈액형에 강해서 외람된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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