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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근이지(同根異枝) 펌

작성자누룩|작성시간26.06.09|조회수27 목록 댓글 0

동근이지(同根異枝)

불개온새 2026. 5. 2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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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5월 20일 수요일 오전 9시 반

숲이 푸르다.

굵직 굵직한 참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큰 그늘을 만들었다.

새들이 찾아와 이른 아침부터 새벽까지 목청을 돋우고 소리를 울린다.

검은등뻐꾸기, 점동새는 밤새 목청껏 멀리 멀리 소리를 전한다.

이른 아침 지바귀류의 새들이, 박새류의 새들이 소리를 낸다.

멀리서 찾아온 꾀꼬리나 뻐꾸기류 들의 소리가 정겹다.

텃새는 텃새대로 텃세를 부리는지 숲의 한 소리를 차지하고 있다.

숲이 푸르다.

새 소리를 들으며 개 소리를 떠올린다.

새 소리는 맑고 청아하고, 사람의 마음에 감흥을 주는데

가끔씩 들려오는 개 소리는 감흥보다는 안타까움의 흐름으로 느껴진다.

개가 내는 소리가 아니라 사람에 의해 불거지는 개에 관한 소리이다.

세상에 나만 옳다는 없다. 혼자만 옳다면 다른 존재는 모두 부정되기 때문이다.

그 한 사례를 보자면...

진돗개의 세계화를 부르짖으며 등장한 모색 단일화와 모색에 대한 궁벽한 주장들이다.

나름대로 합리적 정당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 왔으나, 본질에서 멀어진 주장들에 신뢰를 보

내기가 어렵다.

나는 아직 진돗개의 정통성과 순종성 그리고 순수성을 주장하는 많은 주장들을 보면서 꽉 닫힌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의 편협성을 읽어왔다.

나만 순종이다. 나만 순수이다. 나만 최고이다. 내가 만들었다. 내가 보존했다. 나, 나, 나만, 나만...

나는 불개를 바라본다. 그리고 정읍불개에 애정을 쏟아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양성 속에서 빛나는 존재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여러 나무들이 제 자리를

지키면서 숲의 안정성을 지켜 가듯이, 토종개의 세계 역시 각자의 자리에 자기 몫을 다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모색 유전에 대해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불개 모색의 신비를 과학적으로 탐구하고 불개모색의 원리를

정립하고 싶었다. 어느 정도는 기초가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하지만, 관찰된 범위에서만 그러하다.

잠재적 유전발현에 대해서는 아직 속단하기에 이른 단계이다. 한반도에 이주하였거나 정착했던 초기부터

개는 동반자로 살아왔고,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사람과 함께 이 땅에 적응해 온 존재들이다. 색깔과 모양이

천차만별 다르고 섞이고 그러면서 일정 부분 관리되어 살아온 존재들이다.

개는 영물도 아니고 만능도 아니며, 단지 한반도 정착 생명체들 중에 한국의 풍토와 정서에 잘 적응되어온

존재 중 하나이다. 불개도 마찬가지이다. 개에 대한 과도한 환상이나 도를 넘는 상징화도 불편하기만 하다.

진돗개라는 명칭 또한 그리 오랜 역사는 아니었다. 어떤 이름으로 불려왔든지 간에 현재는 진돗개로 불린다.

불개 역시 불개든 다른 이름이든 불려 왔고, 오늘에 이르렀다.

모든 개의 원조는 최초의 개다. 그 개가 중앙아시아든, 아프리카였든 혹은 한반도의 어느 지역이었든 최초의

개는 사라졌고, 현재의 개만 보인다. 흘러흘러 거슬러 올라가면 뿌리는 한 곳에 모인다. 갈라진 줄기에서 자기

줄기만 적자이며 순수라고 우겨대는 모양은 과히 유쾌하지 않다.

이 세상에 섞이지 않고 흘러온 물이 어디 있는가?

이 세상에 섞이지 않고 부는 바람이 어디 있는가?

어 세상에 홀로 우뚝한 산이 어디 있는가? 서로 뿌리로 이어져 있다.

스스로를 섬에 가두더라도

섬의 뿌리가 육지와 닿아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출처]

동근이지(同根異枝)|작성자 불개온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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