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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낫한스님법문

정어4-③[틱낫한 스님]

작성자적정심|작성시간26.06.07|조회수28 목록 댓글 0

https://youtu.be/YsE05ZphOBs?si=mLEyox8Z51O4WTK6

 

4 정어(正語)

묘법연화경에 나오는 묘음(妙音)보살은 모든 사람에게 그 사람의 관심사를 통해 말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떤 이가 음악을 좋아한다면, 보살은 음악을 통해 말씀하신다. 그리고 의약품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의약에 관한 용어를 써서 이야기하신다. 묘음보살의 말씀치고 의사소통의 장벽을 제거하고 다른 사람들이 처한 상태를 고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없다. 우리도 똑같이 할 수 있기는 하지만, 그러자면 결단력과 숙련된 솜씨가 있어야 한다.

 

두 사람 사이가 좋지 않을 때, 우리는 그중 한 사람을 찾아가 다른 한 사람에 대해서 긍정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한 다음에 다른 한 사람에게 가서 앞 서의 사람에 대해 좋게 이야기해주는 경우가 있다. A라는 사람이 B라는 이가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알게 되면, AB를 잘 이해할 수 있는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된다. 정어의 기술은 정견, 정사 그리고 올바른 실천을 필요로 한다.

 

편지를 쓰는 것은 말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편지가 직접 말하는 것 보다 안전한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것은 편지를 부치기 전에 쓴 것을 읽어 볼 수 있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쓴 글을 읽어가면서 편지를 받을 사람을 떠올리며 그 글이 요령 있고 적절한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보낸 편지가 그 사람 안에 있는 전환의 씨앗에 물을 주고 그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는 한 그것을 정어라고 불러도 무방하리라. 오해를 사거나 속을 긁어 놓을 여지가 있는 문구가 있다면, 다시 써야 한다. 이때 정념을 통하면 아주 요령있게 진실을 표현하고 있는지 여부를 알게 된다. 편지는 일단 부치면, 되돌려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편지를 부치기 전에 몇 번이고 주의 깊게 읽어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편지는 보내는 이와 받는 이 모두에게 이로운 것이다.

 

물론 우리도 고통을 겪어보았고, 상대방 역시 마찬가지다. 그 때문에 편지 쓰기는 매우 훌륭한 수행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편지 쓰기는 일종의 내관(內觀)수행이다. 충분하게 내관을 했다고 확신이 서는 경우에만 편지를 보내야 한다. 더 이상 나무라려고 해서는 안 된다.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정말로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자비를 베풀 가치가 있다. 상대방의 고통을 이해하기 시작할 때, 자비심이 솟아 날것이고 그때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치유력을 갖게 될 것이다. 자비는 우리와 상대방을 연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유일한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자비심이 없는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 없는 법이다. 편지를 받을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수행을 할 때 그의 고통을 알아차리기 시작한다면 자비심이 솟아 날것이다. 자비심이 솟아난 순간 우리는 설사 편지를 마무리 짓지못했다 하더라도 이미 더 좋아진 느낌을 얻게 된다. 편지를 부치고 나면 훨씬 더 좋아진 느낌이 드는데, 그것은 상대방도 그 편지를 읽고 나서 기분이 좋아질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이해와 인정을 필요로 한다. 이제 우리는 상대방에게 건네줄 이해를 가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편지를 쓰면 의사소통이 재개된다.

 

책이나 기사를 쓰는 일도 똑같을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심지어는 글을 쓰기 전에, 즉 정원 손질을 하거나 마루를 닦거나 무슨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우리는 마음속으로 책이나 수필을 쓰고 있는 것이다. 책을 쓰고자 한다면 그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동안만이 아니라 모든 삶을 다 바쳐 글을 써야만 한다. 책이나 기사를 쓸때면, 그 글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의 고통이 다른 이에게 고통을 불러일으키는 한, 우리는 자신의 고통을 표현할 권리가 없다. 삶의 확신을 앗아가는 책과 시 그리고 노래가 무수히 많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잠자리에서도 헤드폰을 낀 채 커다란 슬픔과 흥분의 씨앗에 물을 주는 건전하지 못한 음악과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정견과 정사를 수행하고 있다면, 다만 고뇌의 씨앗에 물을 줄뿐인 테이프와 CD를 상자 속에 집어넣고는 더 이상 듣지 않아야 할 것이다. 영화 제작자와 음악가 그리고 작가들은 우리 사회에 다시 평화, 기쁨 그리고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는 쪽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면 정어를 실천해야만 한다.

 

전화 명상은 정어(正語)를 도와야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또 하나의 수행이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

내가 하는 말이 상호간의 이해와 사랑을 빚어내게 하소서.

그 말이 보석처럼 아름답고 꽃처럼 사랑스럽게 되게 하소서.

 

이 게송을 종이쪽지에 써서 전화기 근처에 붙여두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전화를 걸고자 할 때마다 전화기에 손을 올려놓고 이 게송을 암송한다. 이 게송은 정어를 수행하겠다는 결심을 나타내는 것이다. 게송을 읊은 것뿐이라 해도 마음이 이미 훨씬 더 평화로워지고 통찰력 역시 훨씬 더 분명해지게 된다. 전화를 받는 사람은 우리의 목소리에서 신선함을 느끼게 될 것이고 우리가 하는 말은 그 사람에게 고통이 아니라 행복을 불러 일으켜줄 것이다.

 

명상 수행이 깊어짐에 따라 말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훨씬 적어진다. 묵언수행을 하게 되면, 새처럼 자유롭게 사물의 본질과 접촉할 수 있게 된다. 베트남 선종의 한 지파(支派)의 창시자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에게 그밖에 것을 묻지 말라. 내 가르침의 핵심은 무언(無言)이니라.” 말에 전념하는 수행을 하고자 한다며, 이따금 묵언수행을 해야만 한다. 그러면 내관을 통해 자신의 견해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그동안 가슴속에 맺혀있던 어떤 것이 생각에 떠오른 모습을 알아차릴 수 있다. 침묵은 내관을 위한 시간이다. 침묵이 진리가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그것을 천둥 같은 침묵이라고 일컫는다.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하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 말은 하늘은 우리에게 수없이 많은 말을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들을 줄 모른다는 뜻이기도 한다. 마음의 침묵을 통해 귀 기울여 본다면, 새의 노래 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 가지에서 나는 피리 소리가 우리에게 말을 걸 것이다. 아미타경을 보면 보석 달린 나무에 바람이 불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말이 나온다. 그 소리에 주의 깊게 귀 기울인다면, 부처님이 사성제와 팔정도를 가르치시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정념은 마음을 느긋하게 가라앉게 하고 새와 나무의 말 그리고 우리의 마음과 말에 귀 기울이는 데 도움을 준다. 친절한 말을 하건 너무 서둘러 대답하건 간에 우리는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을 듣게 된다.

 

말과 생각은 남을 죽일 수도 있는 것이다. 생각이나 말로 살생을 지지해서는 안된다. 진실을 말하기가 불가능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직업을 바꿔야 하리라. 진실을 말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면, 고맙게 여겨야 한다. 사회 정의를 실현하고 착취에 반대하고자 한다면 정어를 써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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