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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연중 제5주일 -주님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다.

작성자본당신부|작성시간24.02.03|조회수32 목록 댓글 4

더 밝게 더 기쁘게

 

오늘 1독서는 욥이 너무나 큰 고통 중에 있으면서 인생의 허망함과 푸념 섞인 탄식을 합니다. 더불어 의로운 나에게 왜 하느님께서 고통을 주시는지에 대한 의문과 불평을 하지만 이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중에도 욥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잃지는 않습니다. 다만 고난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애절한 호소를 주님께 하는 것입니다.

 

욥이 고통 중에 하느님께 이같이 푸념하는 것으로 독서는 시작합니다.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요 그 나날은 날품팔이의 나날과 같지 않은가?” 이어진 구절에도 품팔이꾼이 또 나옵니다. 왜 인생을 날품팔이로 비유할까요?

 

성경에서 품꾼은 당시 사회에서 고아와 과부와 더불어 사회의 최하층민에 속했습니다. 율법에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를 명하는 구절이 있지만(레위 19,13) 현실세계에서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대부분 보호받을 수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자기 권리를 주장조차 못하는 품팔이꾼이었습니다. 이렇게 매일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고된 일을 쉬임없이 감당하면서도 무력해서 자기 권리조차 주장하지 못하는 품팔이꾼의 형편과 마찬가지로 인생이 고난과 불안에 싸여 있음을 토로하는 것입니다.

 

독서의 마지막 구절은 자신의 이같은 처지를 주님께서 보아주시기를 청하며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기억해 주십시오, 제 목숨이 한낱 입김일 뿐임을. 제 눈은 더 이상 행복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고통과 불안 가득한 세상에서, 희망을 두지 못하는 세계에서 욥은 인생의 허망함을 느끼며 주님의 정의와 자비를 갈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의롭게 지내고 있는데 왜 내가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 주님께 그 답을 찾고 있습니다.

 

2독서에서 바오로는 자기를 품팔이꾼으로 비유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받는 삯은 무엇입니까? 내가 복음을 선포하면서 그것에 따른 나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복음을 거저 전하는 것입니다.” 갑자기 성당에서 이런 것도 못해주느냐, 이런 서비스도 없느냐하신 분들이 생각납니다. 최소한의 의무도 안하면서 권리를 주장하는 말들이었습니다.

 

바오로는 사도로서 많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겠지만 그저 복음을 거저 전하는 몫을 품삯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내가 받을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거저 줄 수 있다는 자체가 자기가 받는 몫이고 삯이라는 겁니다. 주님께 삶의 의미를 두고 주님께 삶의 가치를 찾는 이에게서 나오는 말입니다.

 

이 몫을 제대로 얻으려고 자유인이지만 스스로 종이 되었고 약한 이들을 얻으려 약한 사람이 됩니다. 여기서 그 유명한 “omnibus omnia”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란 말이 나옵니다. 복음의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 주면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복음과 주님에게서 찾고 발견하는 은총이 우리들에게도 주어지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다른 것에 의미부여와 가치를 논하지 않고 우리의 몸과 마음, 영의 방향이 오로지 주님께 향해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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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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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미카엘라 | 작성시간 24.02.03 아멘!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중에도 욥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잃지는 않습니다.
  • 작성자김상민미카엘 | 작성시간 24.02.04 모든 이에게 모든 것... 아멘...
  • 작성자김순정 유체칠리아 | 작성시간 24.02.04 "omnibus omnia"
  • 작성자레몬에이~♡ | 작성시간 24.02.04 omnibus omnia 모든이에게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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