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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

부활 제2주간 목요일 -증언하시는 성령

작성자본당신부|작성시간24.04.11|조회수24 목록 댓글 2

더 밝게 더 기쁘게

 

오늘 독서와 복음은 둘다 성령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독서인 사도행전에서는 베드로와 사도들이 최고의회에서 신문받는 도중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하면서 이렇게 말하지요. “우리는 이 일의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이들에게 주신 성령도 증인이십니다.”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최고의회 의원인 율법학자 니코데모와의 대화에서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성령만 언급되는 것이 아니라 증언이란 단어도 독서 복음에 공통적으로 나옵니다. 사도들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증인으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성령께서도 함께 증인으로 출두하시니 사도들은 기운나는 것처럼 최고의회에서 자신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산헤드린이라 불리는 이곳 최고의회가 율법적인 일까지 다루고 있으니 법정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그래서 증인, 증언이란 단어가 자주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에서는 법정도 아닌데 증언이란 단어가 세 번이나 나옵니다. “그분께서는 친히 보고 들으신 것을 증언하신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분의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참되심을 확증한 것이다.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하신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시기 때문이다.”

 

증언을 한다는 것은 어떠한 사실을 두고 목격을 하였든 체험을 하였든 자기가 하는 말이 증거가 되도록 책임을 지고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는 데에 있어서, 또는 믿고자 하는 것에 있어서 보탬이 되는 말이 증언입니다. 이를 사도들만이 아니라 그 이전에 예수님께서도 하신 증언이고, 성령께서도 하시는 일입니다. 하느님께서 한량없이 성령을 주신다 하니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한량없이 지니고 계신 분이시고 성령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한량없이 계시는 분이십니다.

 

한량없다는 말은 그 양에 있어서 제한이 없다, 한도가 없이 양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무제한이란 말하고 비슷한 겁니다. 어찌보면 성령은 기름이나 전기, 가스처럼 끌어다 쓰는 것처럼 얘기되곤 합니다. 성경을 보면 불혀 모양, 비둘기 모양이지 어떤 뚜렷한 형상도 없습니다. 어원을 보면 바람, 구름, 입김 모두 뚜렷한 형상이 없습니다. 이렇게 무형, 무량 하신 성령이라는 점은 인간의 어떠한 틀, 제한에 구속받지 않는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아니 반대로 하느님이신 성령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틀이나 제한에 얽매이시는 분이 아니시지요.

 

이렇게 형상이 없고 양이 없으신 성령께서 한량없이 예수님과 함께 계시니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어느 정도만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니라 성령을 온전히 지니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어떤 분께 성령을 청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과 온전히 함께 계시는 예수님께 성령을 주십사 청해야 합니다. 성령을 보내시고 파견하시는 예수님께 성령을 주십사 청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게 성령을 달라고 청했으면 좋겠습니다. 용서할 수 있게 성령을 달라고 청했으면 좋겠습니다. 일치를 이룰 수 있게 해 달라고 성령을 청하도록 합시다. 사도들이 힘있게 증언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처럼 용기있게 해주시는 성령을 청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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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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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신혜원 글라라 | 작성시간 24.04.12 한량없으신 예수그리스도님~♡♡♡
  • 작성자김상민미카엘 | 작성시간 24.04.12 성령을 보내시고 파견하시는 예수님께 성령을 주십사 청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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