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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봉명동 주보성인 : 유대철 베드로

작성자김상민미카엘|작성시간22.03.05|조회수165 목록 댓글 1

박해시기 순교자 중에는 어린 소년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성인이 바로 유대철(베드로) 성인이다.

 

 

성인은 역관이자 성직자영입운동에 함께했던 유진길(아우구스티노) 성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성인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유진길을 따라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반면 성인의 어머니와 누나는 끝내 입교하지 않고 부자의 신앙에 반대했다.

 

성인의 어머니와 누나는 성인의 신앙생활을 방해하고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도록 유혹했다. 성인의 어머니가 “어째서 너는 부모의 말에 순종하지 않고 하지 말라는 일을 고집하느냐”고 물으면 성인은 늘 공손하게 하느님의 임금이요, 만물의 주인을 따르는 일이 진리의 길임을 설명했다. 성인은 갖은 방해 속에 신앙을 굳건히 지키면서도 어머니께 대해 항상 지극한 효성을 보였다.

 

박해가 시작되자 성인의 마음에는 순교에 대한 열망이 솟아올랐다. 특히 이미 옥에 갇힌 아버지와 다른 신자들의 모범들이 성인의 마음을 더욱 뜨겁게 했다. 성인은 1839년 7월경 관청에 가서 자신이 천주교 신자임을 밝히고 스스로 잡혀 들어갔다.

 

관장은 성인의 집안 내력을 듣고 신자의 자식임을 알고 옥에 가두게 했다. 박해자들은 성인에게서 배교의 말을 끌어내기 위해 어르기도 하고, 엄포하고 고문하는 등 갖은 방법으로 회유했다.

 

하루는 감옥을 지키는 옥쇄장이 성인의 넓적다리에서 살점을 떼어내면서 “이래도 천주교를 버리지 않겠느냐”고 했다. 하지만 성인이 오히려 “이렇게 한다고 배교할 줄 아느냐”고 되묻자 분개한 옥쇄장이 성인의 입에 달궈진 숯덩이를 넣으려고 했다. 이에 성인은 두려워하는 기색 없이 당당하게 입을 벌리자 옥쇄장이 기가 막혀 물러났다고 전해진다.

 

신자들은 성인에게 “너는 그것을 가지고 많은 괴로움을 당한 줄로 생각하겠지만 큰 형벌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에 성인은 “저도 알아요. 그것은 쌀 한 알을 한 말에 비기는 것과 같은 것이에요”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또 오랫동안 매를 맞고 기절한 채 옥에 끌려오기도 했는데, 깨어난 성인은 함께 갇힌 이들에게 “너무 염려하지 말라”면서 “이런 것쯤으로 죽지 않는다”고 강인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기록에 따르면 성인은 문초 14회, 고문 14회, 태형 600대 이상과 치도곤 45대 이상을 맞았다고 한다. 어른도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지만 성인은 항상 기쁜 모습으로 지냈다고 한다.

 

관헌들은 성인이 매를 못 이겨 죽을 줄 알았지만, 성인은 꿋꿋하게 견뎌냈다. 결국 형조는 성인을 몰래 죽이기로 결정했다. 어린아이인 성인의 처형에 군중이 자극을 받을까 두려웠던 것이다. 성인은 그해 10월 21일 옥중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이때 그의 나이가 불과 14살이었다.

 

출처 : 가톨릭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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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상민미카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03.0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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