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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백나한에 대하여....
불교에서 아라한과를 증득하여
존경과 공양을 받을 만한 500명의 성자
오백비구, 오백상수라고도 한다.
500명의 석가모니의 뛰어난 제자라고도 하고,
석가모니의 열반 직후 왕사성 칠엽굴에서 행한
제1결집에 참가하여 불전을 편찬한 500명의 비구라고도 하며,
불멸 600년 무렵 가습미라에서 열린
비바사론결집에 모인 500의 나한이라고도 한다.
중세인도어 ‘아라한’의 준말인 나한은
존재의 참 본질에 대한 통찰을 얻어 깨달음에 이른 사람,
그만큼 나한을 새겨 도를 전하는 일도 깨달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나한은 중세인도어인 팔리어 Arhan을 한어로 음사한 아라한의 준말이다.
그것은 고귀한 사람 완전해진 사람 존재의 참 본질에 대한 통찰을 얻어
깨달음에 이른 사람 진리에 응하여 남을 깨우치는 자 등을 말하며,
한어로는 살적, 응공, 불생, 응진, 응인, 무학, 무생 등으로 의역되었다.
살적이란 다섯 감각기관을 통해 생기는 욕망과
내적으로 발생하는 번뇌라는 도적을 모두 없앴다는 의미이고,
응공은 그가 받은 공양을 물론 다시 되돌려 주지만
마땅히 모든 사람과 하늘에게서 공양을 받을 만함을 뜻하고,
불생은 더 이상 생사의 윤회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무학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의미이다.
나한은 석가모니의 부탁에 의해 열반에 들지 않고 세상에
남아있게 되었는데 그 까닭은 사람들이 다음의 부처가 올 때까지
석가모니를 섬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처음에 사람들은 석가모니 당시 그와 가장 가까웠던
16명의 제자들을 16나한이라고 하여 개인보다는 집단을 숭배했으며
이들은 이승에서 부처님의 정법을 지키는 석가모니의 제자들로 상징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8세기 후반 신라에서 16나한 숭배가 성행하였고,
고려시대에도 기우제나 구복을 위해 왕실에서 나한재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선비가 가정에서도 나한을 모시고 가정의 평안을 기원했다.
500나한은 석가모니가 입적한 뒤 가르침을 결집하기 위하여 모였다는
오백명의 아라한 혹은 법화경에 나오는 500제자라고 한다.
이러한 나한신앙은 지금도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